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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서주일] 예수, 인간으로 오신 말씀 (요 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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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인간으로 오신 말씀 (요 1:14)
 
오랜 시간 인류는 인간에 대한 매뉴얼을 찾아왔습니다. 

세상을 분류하는 방식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은 이 세상을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로 분류해 보려고 합니다. 이 세상에서 보이는 모든 사물들이 하드웨어입니다. 그러면 소프트웨어는 무엇일까요? 바로 사람입니다. 사람이 없으면 세상의 모든 것들이 무가치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세상의 소망입니다. 이 세상의 어떤 것보다, 아니 천하보다 더 귀한 존재가 사람입니다. 

그러면 사람 자체를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로 분류하면 어떻게 될까요? 우리의 몸, 육체가 하드웨어입니다. 그리고 생각, 정신, 마음, 영혼이 소프트웨어입니다. 만약 우리에게 생각, 정신, 마음이 없다면 인간은 그저 살덩어리에 불과합니다. 그만큼 생각, 정신, 마음은 소중합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소중한, 사람을 사람답게 해주는 우리의 생각, 정신, 마음과 영혼은 무엇에 의해서 움직이는 것일까요? 우리가 이것에 대해 바르게 알 수 있는 매뉴얼은 없을 까요? 

전기제품이나 컴퓨터, 사진기, 핸드폰 등을 샀을 때 우리는 먼저 그 제품의 간단한 기능들을 시험해 봅니다. 그런데 때로 제품의 매뉴얼을 읽지 않고 이리저리 만져서 기계가 고장 났던 경험을 해보신 적도 있을 것입니다. 때로는 그저 제품 자체에만 끌려서 매뉴얼은 잘 읽지도 않고 제품의 몇 가지 기능만을 사용하는 것으로 만족하기도 합니다. 제품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기능에 대해서는 무지한 채로 말입니다. 

요사이는 핸드폰이 없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것도 대부분 고급스러운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핸드폰으로 하는 일이라곤 그냥 전화를 거는 정도에 그칠 때가 많습니다. 다른 기능들을 잘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젊은 사람들은 다릅니다. 그들은 핸드폰이 가지고 있는 유용한 기능들과 그것들을 활용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애플리케이션(application)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각종 애플리케이션을 이용하여 핸드폰을 마음껏 사용합니다. 

여러분은 소망교회 애플리케이션이 있는 것을 알고 계십니까? 그것을 다운로드 하면, 지금 이 예배도 생방송으로 들으실 수 있습니다. 주일 예배뿐만 아니라 새벽기도회, 삼일기도회의 말씀도 들을 수 있고, 교회소식도 접할 수 있습니다. 잘 알고 활용하면 우리가 누릴 수 있는 많은 기능들이 핸드폰 곳곳에 숨어있습니다. 바로 그 기능들과 그것의 활용방법을 알려주는 것이 매뉴얼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질문이 생기지 않습니까? “우리 인간을 위한 매뉴얼은 없을까?” 수많은 사람들은 오랜 시간 이 질문을 해왔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찾기 위해서 무던히 애를 썼습니다. 지혜자들은 많은 글을 쓰기도 했습니다. 유교의 사서오경(四書五經), 불교의 불경(佛經), 그리고 헬라철학에는 소크라테스(Socrates), 플라톤(Plato),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의 고전들이 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이 인간의 매뉴얼을 찾기 위한 노력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은 어디로부터 와서 어디로 가는 것인가? 인간이란 도대체 어떤 존재인가? 살아간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인생은 어떤 목적을 지닌 존재인가? 인간을 두렵게 하는 ‘죽음’이란 무엇인가? 죽음 이후의 세계는 있는 것인가? 영원한 생명이란 우리가 어떻게 누릴 수 있는 것인가? 이와 같은 수많은 질문들의 답을 찾기 위해 지혜자들은 노력했지만 인간이 스스로 인간의 매뉴얼을 만드는 것에는 늘 한계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인간이 만든 책들에는 끊임없는 물음만 있습니다. 대답 없는 질문의 책인 것입니다. 인문학 중의 인문학이라 할 수 있는 철학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주신 인간의 매뉴얼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세상의 수많은 책들과 성경의 결정적인 차이는 무엇일까요? 인간에 대해서 질문하는 여러 다른 종교들과 우리의 기독교 신앙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일까요? 

우리는 기독교를 계시의 종교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구약과 신약으로 되어있는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 곧 계시의 말씀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왜 그럴까요? 그동안 수많은 지혜자들이 질문했던 것들을 성경은 똑같이 가지고 있으면서 동시에 그토록 찾고자 애썼던 대답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인간이 어디서부터 와서 어디로 가는지, 인간의 기원과 인간의 존재 이유, 삶의 목적, 죽음을 넘어서는 생명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경을 하나님이 주신 인간을 위한 매뉴얼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인간의 매뉴얼로 성경책을 우리에게 주셨다면, 그것을 읽고 익히는 것을 통해 인간의 감춰진 가능성과 인간 존재의 모든 것들을 우리가 누릴 수 있지 않을까요?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기에 인간은 소중한 존재이며, 인간은 하늘로부터 내려온 지혜를 선물로 받은 존재임을 우리가 다시 깨닫는다면 우리의 삶의 내용들이 훨씬 더 풍성해지지 않겠는가 하는 말입니다. 

성경이 하늘에서 그냥 뚝 떨어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인간의 치열한 삶의 현장 가운데, 죄와 갈등의 문제 속에서 나타났습니다. 종 되었던 애굽 땅에서 벗어나 약속의 땅인 가나안으로 향해 가는 투쟁과 해방의 역사 속에서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이 매뉴얼을 작성하게 만드셨습니다. 모세에게만이 아닙니다. 여호수아를 비롯하여 여러 사사들과 사무엘, 다윗, 그 뒤를 잇는 여러 왕들, 그리고 예언자들이 역사의 현장 한 가운데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것을 기록하게 하셨습니다. 

첫 인간 아담과 하와가 스스로 교만해져서 하나님께 대적했을 때, 하나님은 그들을 에덴동산에서 쫒아내셨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인간을 향한 끈을 결코 놓지 않으셨습니다. 인간이 하나님께 다시 돌아올 수 있는 길, 인간이 회복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구약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구원 역사입니다. 

하나님은 다양한 방법으로 우리에게 찾아오십니다. 

하나님은 여러 가지 경로로 하나님 앞에 나아오는 길을 열어놓으셨습니다. 먼저는 하늘과 땅에 만드신 자연 피조물을 통해서 인간이 하나님을 알고 느끼게 하셨습니다. 로마서 1장 20절을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로마서 1:20)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의 거룩한 신성이 만물 속에서 보인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늘과 땅을 보면서, 거대한 자연의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의 놀라운 솜씨를 느껴보신 적 없으십니까? 다음은 자연을 보며 하나님을 인식하기 시작한 어떤 사람의 고백입니다. 

나는 갑자기 내가 숨을 쉴 수 있다는 것이 감사했습니다. 아직도 내 심장이 뛰고 있구나 하는 생각에 감격했습니다. 그래서 밖으로 나갔습니다. 밤하늘에는 별들이 가득했습니다. 저 높은 곳에 계신 하나님을 향해 “주님!”이라고 크게 소리쳤습니다. 아침에 떠오르는 태양이 나를 위한 하나님의 선물처럼 느껴졌습니다. 들에 핀 꽃들을 보면서 하나님의 솜씨에 감탄했습니다. 그때 갑자기 들리지 않던 새소리가 들렸습니다. 바람 소리, 물 흐르는 소리가 내게 들렸습니다. 보는 것, 듣는 것,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이 만드신 창조의 세계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내 영혼이 기쁨으로 솟구쳤습니다. 주님을 향한 감사의 찬양이 저절로 내 입에서 튀어나왔습니다. 

이 사람은 하나님이 만드신 자연 만물을 보면서 하나님의 미세한 음성을 영적으로 들을 수 있는 기쁨을 맛보게 되었습니다. 온 몸의 감각으로 하나님을, 하나님의 손길을 느끼기 시작한 것입니다. 
또 구약을 보면, 하나님께서 꿈과 환상을 통해서 가르쳐 주시는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특히 ‘꿈쟁이’로 표현되는 요셉의 이야기는 꿈을 통해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보여줍니다.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내가 꾼 꿈을 들으시오 우리가 밭에서 곡식 단을 묶더니 내 단은 일어서고 당신들의 단은 내 단을 둘러서서 절하더이다 (창세기 37:6~7) 

요셉이 다시 꿈을 꾸고 그의 형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또 꿈을 꾼즉 해와 달과 열한별이 내게 절하더이다 하니라 (창세기 37:9) 

이 꿈 때문에 요셉은 형들에게 미움을 받습니다. “아니, 우리가 형인데 너한테 절을 한다고? 이 못된 놈.” 결국 요셉은 형들에 의해 애굽으로 팔려가게 되고 그 때부터 그에게는 고난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는 종의 신분으로 있으면서도, 또 억울한 감옥생활을 하면서도 이 꿈 때문에 이길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내 인생을 새롭게 열어주실 거야. 하나님은 내 인생에 복을 주실 거야!’ 그 꿈은 요셉을 움직이는 강력한 원동력이 되어주었습니다. 

또 때로는 하나님께서 천사의 모습으로, 때로는 미천한 동물을 통해서, 때로는 사람의 말을 통해서 찾아오기도 하셨습니다. 이러한 방법을 통해 믿음의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하늘의 신탁을 맡겨준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자들은 모두 하나님의 영에 붙잡힌 사람들이었습니다. 히브리서 11장을 보면 믿음의 인물들이 나옵니다. 노아, 아브라함, 야곱, 모세, 다윗, 엘리아, 엘리사, 이사야, 예레미야. 성경은 구름 같은 수많은 믿음의 증언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순종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강하고 담대하라”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은, 이처럼 다양한 방법들을 통해 우리에게 찾아오시는 걸까요?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일까요? 대답은 간단합니다. 인간답게 살라는 것입니다. 세상 속에서 하나님이 주신 자유를 누리며 살라는 것입니다. 세상의 두려움 속에 떨지 말고 강하고 담대하게 살라는 것입니다. 

성경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하나님이 얼마나 인간과 함께 있기를 원하시는지, 얼마나 우리와 교제하기를 원하시는지, 하늘의 축복과 하늘의 생명을 우리에게 넘치도록 부어주기를 원하시는지 말입니다. 

오늘 본문은, 모세라는 걸출한 지도자의 뒤를 이어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나아가는 여호수아에게 임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여호수아도 대단한 인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게는 새로운 약속의 땅, 미지의 세계를 향해 가는 데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그는 위대한 지도자 모세의 후계자로 이 일을 감당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알고 있었습니다. ‘모세 없이 어떻게 그 땅에 들어갈 수 있을까?’ 여호수아는 두렵고 떨렸습니다. 

바로 그 때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다가오셔서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다른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강하고 담대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두려워하지도, 떨지도, 놀라지도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내가 네게 마련한 새로운 세계를 향해서 들어가라는 말씀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도 다르지 않습니다. 강하고 담대하라고 하십니다. 세상은 치열하고, 수많은 장벽들이 우리를 가로막고, 실망하고 낙담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됐을 그때에도 강하고 담대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주저앉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도대체 우리가 어떻게 하면 강하고 담대해질 수 있을까요? 

하나님은 한 가지 방법을 말씀하십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인생의 중심에 놓는 것, 그것뿐이라고 가르치십니다. 말씀을 떠나서 오른쪽 왼쪽으로 가거나, 말씀에서 벗어나 세상에서 헤매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인생의 중심에 놓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오직 강하고 극히 담대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령한 그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여호수아 1:7)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고 내가 종 모세에게 전한 이야기들을 너도 너의 인생 한가운데에 품고 있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길을 열어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지금 신약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더 큰 축복을 받았습니다. 신약 시대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고, 만질 수 있는 모습으로 이 땅에 보내주셨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은 가장 확실한 인간에 대한 매뉴얼입니다. 

옛적에 선지자들을 통하여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상속자로 세우시고 또 그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 (히브리서 1:1~2) 

옛 선지자들에게는 여러 모양과 방법으로 말씀을 주셨지만, 마지막 때에는 아들을 이 땅에 보내셔서 우리에게 친히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즉 인격으로 오신 하나님의 말씀, 사람으로 오신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가 받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말씀이신 예수님을 사랑하십시오. 

신앙이란 위로부터 내려오는 것이고, 미래로부터 내게로 다가오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신앙이 지닌 다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탁월성입니다. 그리고 이 하나님, 내게 다가오시고 나를 찾아오시는 하나님은 성경의 중심 주제이기도 합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요한복음 1:14)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계시 그 자체입니다. 살아계신 인격으로서의 말씀입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성경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읽는 것이 필요합니다. 

디트리히 본회퍼(Bonhoeffer, Dietrich) 목사님은 성경을 묵상하고 읽어나갈 때 다음과 같이 권면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말은 분석하지 않고 그 말 그대로 받아들이듯이 성경의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마음 속에서 음미하십시오.” 

성경을 읽다보면 난해한 단어가 나오기도 하고, 복잡한 구문을 만나기도 합니다. 그래서 때로는 성경은 왜 이렇게 어려울까 싶기도 합니다. 말씀을 외우려고 애써보지만 그것도 쉽지 않습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우리가 성경 속에서 봐야할 것은 살아계신 하나님, 우리에게 인간으로 다가오신 예수님, 그 분의 사랑과 그분의 은총입니다. 그 속에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이 얼마나 치열하게 움직이는지 알고 있습니다. 이런 세상 속에서 우리가 강하고 담대해질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이 시대를 이겨나갈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 삶의 중심에 놓는 것입니다. 성경을 읽으면서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내 마음의 왕좌에 모시는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서 일하실 것입니다. 우리의 길을 새롭게 열어 주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인간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십시오. 그러면 두려움이 없어질 것입니다. 새 생명을 얻게 될 것입니다. 그 분을 내 가슴 속에 모시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한 걸음, 한 걸음 새롭게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기도드리겠습니다. (김지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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