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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왜 예수님은 나의 보배인가? (시 2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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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예수님은 나의 보배인가? (시 27:1-3)


“야훼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야훼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 악인들이 내 살을 먹으려고 내게로 왔으나 나의 대적들, 나의 원수들인 그들은 실족하여 넘어졌도다 군대가 나를 대적하여 진 칠지라도 내 마음이 두렵지 아니하며 전쟁이 일어나 나를 치려 할지라도 나는 여전히 태연하리로다”  시편 27편 1∼3절

예수님은 우리 삶의 빛이 되시고 마귀와 사망에서 구원이 되시며 생명의 활기와 능력이 되십니다. 믿는 우리에게는 예수님과 비교할 보배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학문이 아니고 철학도 아니고 종교도 아닙니다. 예수님은 바로 현재 우리의 삶에 빛이요 구원이 되고 생명의 능력이 되십니다. 성화 중에 홀멘 헌트(W. Holman Hunt)라는 화가가 그린 그림에는 예수님이 등불을 손에 들고 굳게 닫힌 주위에 가시넝쿨이 많이 있는 오래된 문 밖에 서있습니다. 

이 그림의 문은 죄의 가시넝쿨에 싸여 꽁꽁 닫아놓은 사람의 마음을 상징합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죄지은 인간들의 모습입니다. 그 문은 문고리가 밖에는 없고 안에만 있어서 밖에서 아무리 두드려도 안에서 열어줘야 열리는 문입니다. 즉 예수님이 아무리 구원하려고 해도 우리가 마음 문을 열지 않으면 구원할 수가 없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은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계 3:20)고 말씀한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누구도 차별하지 않고 지금도 우리의 마음의 문을 두드리십니다.

1. 예수님은 나의 빛

예수님께서 우리 마음에 계시면 마음에 밝은 빛이 비췹니다. 어둡고 캄캄한 밤에 한줄기 빛을 만나면 얼마나 큰 행복인지 모릅니다. 옛날에 시골에서 자랄 때는 이웃 마을에 갔다가 집에 돌아올 때 조그마한 등경을 들고서 걸어가면 그 뒤를 바싹 붙어 따라가야 돌에 걸려 넘어지거나 도랑에 빠지지 않습니다. 빛은 그렇게 귀한 것입니다. 오늘날 인생을 살면서 빛이 없이 인생을 살게 되면 죄와 질병, 저주와 절망, 죽음의 구렁텅이 속에 수없이 빠지고 뒹굴고 상처투성이가 됩니다. 

그러므로 시편 27편 1절은 “야훼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야훼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라고 말씀합니다. 야훼는 죄의 어두움이 사라져 버리고 의의 광명이 비치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죄 가운데 빠진 사람은 죄가 무엇인지 모르고 죄에서 허덕이고 방황하며 벗어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의의 빛인 예수님이 마음속에 비춰서 죄의 어두움을 밝히 보여주시면 우리가 회개할 수 있고 주님을 찾아 나설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빛이 비춰야 죄의 어두움이 드러나서 예수의 보혈로 씻고 의롭게 깨끗하게 될 수 있는 의의 길이 열리게 되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1장 5절로 7절에 “우리가 그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은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둠이 조금도 없으시다는 것이니라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둠에 행하면 거짓말을 하고 진리를 행하지 아니함이거니와 그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라고 말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빛 가운데 계신 것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있으면 어두움을 씻어낼 수 있는 예수님의 보혈에 의지하게 그 보혈이 우리를 깨끗하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진리의 밝은 빛은 절대 가려지지 않고 많은 사람을 옳은 길로 인도합니다. 예수님은 어두운 이 세상의 빛으로 오셨습니다. 예수님이 우리 가슴속에 들어오면 어두운 것이 밝히 드러나고 빛을 보여주기 때문에 어찌할 수없이 어두움을 떠나 빛으로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빛 되신 예수님께 감사해야 됩니다.

 예수를 믿는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의 기쁨입니다. 우리가 기쁨을 잃어버리면 우울하고 좌절과 절망을 갖게 되는데 마귀는 우울하고 좌절하고 절망하게 만들지만 예수님이 오시면 우리 마음속에 삶의 의미와 가치를 발견하고 기뻐하고 즐거워하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빛이 비취면 죽음의 절망의 어둠이 사라지고 천국의 소망과 기쁨의 빛이 비치는 것입니다. 이사야 9장 2절에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주하던 자에게 빛이 비치도다”고 기록합니다. 

예수님이 오심을 예언해서 그렇게 말한 것입니다. 또한 누가복음 1장 77절로 79절에 “주의 백성에게 그 죄 사함으로 말미암는 구원을 알게 하리니 이는 우리 하나님의 긍휼로 인함이라 이로써 돋는 해가 위로부터 우리에게 임하여 어둠과 죽음의 그늘에 앉은 자에게 비치고 우리 발을 평강의 길로 인도하시리로다 하니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어둠이 물러가고 우리의 해가 떠오른다는 것입니다. 밤이 지나가고 해가 떠오르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생기가 솟아오르고 우리의 발이 밝은 빛을 향해서 곧게 걸어갈 수 있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삶의 방황을 멈추고 길과 진리를 따라 살 수 있는 길은 마음속에 예수님이 들어오셔서 함께 사셔야 합니다. 예수께서는 “내가 바로 길이요, 내가 바로 진리요, 내가 바로 생명”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스스로 길을 찾아서 헤맬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가 들어오면 예수가 살아갈 길이요, 예수님이 참 진리요, 예수님이 우리의 생명이 되시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5장 8절로 9절에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고 기록합니다. 예수님 안에 거하니 이제 우리는 어두움이 아니라 빛입니다. 우리는 앉으나 일어서나 빛입니다. 사람들이 우리를 보고 어두움에서 벗어나서 빛으로 찾아오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이 바뀌는 것입니다. 빛의 열매로서 착하고 의롭고 진실한 사람을 만들어 주는 하나님의 역사가 우리 안에 일어나는 것입니다. 

2. 예수님은 나의 구원

예수님은 빛일 뿐 아니라 구원입니다. 시편 27편 1절은 “야훼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야훼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 하리요”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를 건져주는 자가 있으면 두려워할 자가 없습니다. 또한 이사야 12장 2절로 3절에 “보라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라 내가 신뢰하고 두려움이 없으리니 주 야훼는 나의 힘이시며 나의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심이라 그러므로 너희가 기쁨으로 구원의 우물들에서 물을 길으리로다”라고 기록합니다. 

우리가 힘이 없고 능이 없을 때 주님은 우리의 힘이시고 주님은 우리의 노래시고 주님은 우리의 구원이십니다. 그 구원의 우물에서 물을 길어먹으면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말을 하게 되고 믿음으로 실천하면 생명수가 넘쳐나게 되고 생명의 능력이 우리를 붙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구원이 되십니다. 가난의 어두움이 복의 빛으로 환하게 되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4장 18절에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입니다. 

또한 고린도후서 8장 9절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기록합니다. 예수님은 부요하신 분인데 이 땅에서 헐벗고 굶주리고 벌거벗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가난을 대신 짊어지고 청산하고 하나님의 부요함을 부어주기 위해서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골로새서 1장 13절로 14절에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속량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고 말씀했으며 로마서 8장 2절에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고 기록합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은 우리를 해방시키는 능력이 있습니다. 죄에서 해방시켜 주고 불의에서 해방시켜 주고 염려, 근심, 불안, 초조, 절망, 우울, 슬픔에서 해방시켜 주고 우리에게 의와 평강, 희락, 믿음, 소망, 사랑으로 채워주시는 역사를 베푸는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자유케 하는 능력은 우리의 어두운 눈을 밝혀서 신령한 진리를 깨닫게 하는 것입니다.

필립 얀시(Pillip Yancey) 목사님의 『뜻밖의 장소에서 만난 하나님』이란 책에 보면 이런 일화가 나옵니다. 스페인 선원들이 남미로 가다가 배가 난파되어 갈 길을 잃었습니다. 바다 위에 떠있으니 결국 물이 다 떨어졌습니다. 바닷물을 마시면 고통받다가 죽는다 말입니다. 그래서 이들이 바닷물을 안마시려고 몸부림을 치고 괴로워하는데 배는 어느덧 바다를 지나 아마존 강으로 흘러들었습니다. 아마존 강은 너무 크기 때문에 바다처럼 보입니다. 

즉 마시지 못하는 바닷물이 아니고 마실 수 있는 강물입니다. 그런데 선원들은 아직도 바닷물인줄 알고 물을 마시지 못해 죽어가는데 한 선원이 너무 목이 말라서 ‘에라 바닷물이라도 실컷 먹고 죽어야 되겠다’고 물에 풍덩 들어가서 마셔보니 바닷물이 아니고 민물입니다. 자기도 살고 배에 탄 사람들에게도 민물이니 마시라고 해서 다 물을 마셔서 살았다는 일화입니다. 이처럼 이 세상의 물을 마시면 더욱 목마르고 기쁨이 없고 희망이 없습니다. 성경의 사마리아 여인은 남편을 다섯이나 갈고 여섯째 남편과 살아도 만족이 없었습니다. 이와 같이 목말라서 죽어가는 사람이 예수님의 은혜의 강물에 풍덩 빠지면 모든 갈급한 것이 모두 없어지고 생명으로 넘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바로 구원의 강물입니다. 예수님의 생명수는 먹어봐야 체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십자가가 위대한 것은 변화가 거기에 따라오기 때문인 것입니다. 종교나 철학이나 학문이 아니라 우리와 내가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변화되는 기적이 일어난다. 내 힘으로 안되는 것이 내가 변화되어서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통해서 우리가 예수께 나가면 마귀에게 눌린 자가 자유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10장 38절에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그가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고 말씀합니다. 질병은 마귀의 역사입니다. 악한 마귀가 마음에 염려, 근심, 불안, 초조, 절망으로 억압을 하고 몸을 짓눌러서 몸에 양분이 공급되지 못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께서는 “내가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세를 주었으니 너희를 해할 자가 결단코 없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음을 누르는 마귀야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물러가라! 떠나가라! 병은 고침을 받으라! 몸은 자유를 얻으라! 저주는 물러가라!”고 담대하고 권세있게 고백하고 선포해야 합니다. 그러한 선포에 하나님의 능력이 따라오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5장 1절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굳건하게 서서 종의 멍에가 다가오면 권세있게 명령해서 물리쳐 털어버려야 됩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우리 삶에 구원이 되시기 위하여 십자가의 고난의 대속을 지불하셨으므로 예수님을 선물로 받아들여서 믿기만 하면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구원은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것이지 우리의 행위로써 우리가 값 주고 산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 은혜의 선물을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2장 8절로 9절에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고 기록합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선물을 받아 이 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그 선물이 예수님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거저 공짜로 받았습니다. 

받았으면 예수님 안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선물 상자를 열어봐야지요. 무엇이 있습니까? 용서와 의의가 들어 있습니다. 거룩함과 성령충만이 들어있습니다. 치료와 건강의 선물이 들어있습니다. 아브라함의 형통의 복이 들어있는 것입니다. 부활, 영생, 천국이 들어있는 것입니다. 영혼이 잘되고 범사도 잘되고 강건한 선물이 들어있습니다. 우리는 이 선물을 껴안고 감사하고 찬양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 선물을 보고 난 후에 우리 스스로 ‘나는 패배자가 아니구나 가난한 자가 아니구나. 버림받은 자가 아니구나. 나는 주 안에서 부자가 되었구나’하고 생각이 달라져야 되고 새사람이 된 꿈을 꾸고 믿고 입술로 시인해야 합니다. 그러면 그 선물들이 모두 우리의 소유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선물을 받고서도 액세서리로 목에 십자가를 걸고 다니기만 하지 십자가가 우리에게 허락해 주신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은 종교가 아니며 남에게 보이기 위한 액세서리가 아닙니다. 현재 우리의 필요를 채워줄 수 있는 능력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복음은 진정한 복음이 아닙니다. 그것은 철학이요, 학문이지 복된 소식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다는 말은 바로 지금 이 자리에서 우리의 주님이 되신다는 것입니다. 지금 믿고 의지하십시오. 지금 그를 끌어안으십시오. 그 분은 지금 바로 이곳에서 우리를 위해 일해 주시는 주님이십니다. 이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의 것임을 잊지 마십시오. 

3. 예수님은 내 생명의 능력

예수님은 우리 삶의 생명의 능력입니다. 우리가 약할 때 힘이 되는 것입니다. 시편 18편 1절로 2절은 “나의 힘이신 야훼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야훼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내가 그 안에 피할 나의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라고 기록합니다. 이처럼 예수 안에 있으면 만사형통입니다. 예수님의 능력으로 만사가 평안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우리에게 생명의 능력이 되신다는 것을 우리 잊어버리면 안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광풍을 피하는 곳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에 살면서 시험과 환난의 광풍이 다가올 때 빨리 뛰어가서 예수님이 날개 밑에 피하면 주님이 우리를 피하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보배를 우리가 질그릇에 가졌으니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고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고 핍박을 받아도 버린바 되지 아니하고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죽으신 십자가를 몸에 끌어안고 있으면 예수님의 부활의 생명이 우리 몸에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예수 죽음 내 죽음, 예수 천당 내 천당이 되어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예수님은 폭우를 막아주는 피난처가 되십니다. 하늘에서 폭우가 쏟아져도 예수님 안에 있으면 비를 맞지 않습니다. 저주의 폭우, 환난의 폭우가 다가올 때 피할 곳은 예수님 밖에 없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온 세상에 심판의 폭우가 부어도 예수님 안에서 피난처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마치 마른땅에 냇물 같아서 생명수가 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목마른 자는 다 내게 와서 마셔라. 너희 뱃속에서 생수의 강이 넘쳐나리라”고 말씀합니다. 

마른 땅에 샘물이 흐르면 모든 것이 살아나듯이 예수님은 생수의 강이 되어서 우리 마음속에 모든 하나님의 영광이 살아나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은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내가 생명수를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겠다”고 말씀합니다. 또한 예수님은 곤비한 땅에 큰 바위그늘이 되어서 생명의 근원이 되시는 것입니다. 나무가 없고 풀이 없는 사막을 지나가는데 유일하게 그늘 진 곳은 큰 바위 밑입니다. 그곳에 숨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이 아무리 삭막해도 우리의 큰 바위가 되어서 그 곳에 피하면 쉼을 얻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에스겔 골짜기에 마른 뼈다귀, 완전히 백골이 되어서 있는데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이 뼈들이 살겠느냐?”고 물으셨습니다. 그러자 “나는 모릅니다”라고 하며 머뭇거리는 에스겔을 통해 생기에게 명하여 그 마른 뼈들에게 들어가게 하니 즉시로 혈관이 생겨나고 살이 붙고 뼈들이 여기저기 모이더니만 큰 군대가 되어서 일어났다고 기록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와 같이 우리에게 놀라운 생기를 주어서 소망을 품고 살게 만들어 주십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참 능력의 주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보배가 되십니다. 온 세상이 다 우리를 버려도 예수님은 우리를 버리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온 세상 다 잃어버려도 예수님만 끌어안고 있으면 그 속에 모든 것이 다 있는 것입니다. 그곳에 구원도 있고 그곳에 성령도 있고 그곳에 건강도 있고 그곳에 축복도 있고 그곳에 천당도 있고 예수 안에 모든 것이 다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만이 우리 문제의 해결이 되시는 것이요 최고의 선물이 되는 것이요 최고의 축복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보다 귀한 것은 없습니다. 

예수님은 오늘도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예수님은 종교도 아니며 철학도 아닙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 시간에 기적이 일어납니다. 변화가 일어납니다. 좋은 일이 일어납니다. 생각에서 일어납니다. 꿈 꾼대로 됩니다. 믿음대로 됩니다. 우리의 입술로 고백한대로 됩니다. “나는 오늘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성령 받았습니다. 건강합니다. 치료받았습니다. 응답받았습니다. 성공을 얻었습니다. 평안하고 기쁩니다. 영생을 얻었습니다. 축복받은 사람입니다” 이렇게 입술로 고백한대로 모두 이뤄질 것을 믿습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시여, 주님께서 우리에게 생명의 능력이 되시니 감사합니다. 주님은 우리의 빛이시니 어둠에 거하지 않게 하시고 우리의 구원이시니 사망에 처하지 않게 하시고 생명의 능력이시니 이 세상에 패배자가 되지 않고 승리자가 되게 만들어 주심을 감사합니다. 내 아버지 하나님이시여, 오늘 빛되신 예수님이 우리 마음을 다 밝혀 주시고 오늘 구원이신 예수님이 모든 사람을 구원받게 해주시고 예수님이 생명의 능력이시니 마음에 생명의 강이 넘쳐나게 도와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조용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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