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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자족의 능력 (빌 4: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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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족의 능력 (빌 4:10-13)


우리 높은 뜻 섬기는 교회 교인들 중에는 저의 어렸을 적을 아시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만 저는 어렸을 때 제법 가난했었습니다. 저희 아버지가 학교 수위이셨는데 한 달 월급이쌀 한 가마 반 정도를 살 수 있는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 어렸을 적 기억은 감사하게도 어둡지 않습니다. 가난했던 어린 시절 저는 행복했었습니다. 그때를 기억하면 늘 따뜻하고 행복한 마음이 지금도 듭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크게 두 가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첫째, 당시 상당히 부자였던 우리 외갓집과의 관계가 좋았습니다. 늘 우리를 염려하고 할 수 있는 대로 도와주려 하였고 특히 가난하다고 깔보지 않았습니다. 우리 어머니께서 나름 자존심이 있으셔서 무조건 기대거나 의지하지 않았지만 그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는 범위 안에서 우리 집을 도와주시려고 애쓰셨던 기억이 납니다.

어머니는 한 달에 쌀 한 가마 반 정도의 수입에도 불구하고 마른 수건을 짜듯 살림을 하여 아주 조금씩이라도 저축을 하였습니다. 둘째 외삼촌께서 그 옛날 주식을 하셔서 제법 큰 돈을 버셨던 것 같습니다. 외삼촌께서 우리 어머니가 모으신 돈으로 주식을 사주셨습니다. 그런데 그 주식이 잘못되어 폭락하였습니다. 그러자 외삼촌께서 원금을 보존해 주신 것이 아니라 기대했던 수익만큼을 보태셔서 어머니에게 돌려주셨습니다. 어머니가 그 돈을 삼촌으로부터 받으시고 거의 통곡하시듯 우셨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65년도에 회기동에 집을 샀습니다. 그때 그 집이 50만 원이었습니다. 대지가 거의 100평 정도 되었던 큰 집이었습니다. 땅이 시유지였던 집이어서 그렇게 큰 집이었는데도 불구하고 50만 원에 나온 것이었습니다. 어머니가 그 집에서 하숙을 하여 그 땅을 시로부터 불하 맡았었습니다.

50만 원짜리 그 집을 살 때 우리 집의 전 재산은 30만 원이었습니다. 모자라는 20만 원을 둘째 외삼촌과 셋째 외삼촌에게 빌리셨습니다. 선뜻 빌려주셨습니다. 어머니가 후에 그 돈을 갚으려 하자 두 삼촌 모두가 다 사양하셨습니다. 집값이 50만 원인데 20만원은 큰 돈이었습니다.

그리고 앞에서도 말씀을 드린바와 같이 부자 삼촌 집과 가난한 우리 집이 사이가 아주 좋았었습니다. 가난의 상처는 가난 자체보다 차별과 업신여김입니다. 그런데 저는 가난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서러운 차별과 업신여김을 받지 않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가난의 상처가 별로 없습니다. 별로가 아니라 거의 없었습니다. 상처가 없는 정도가 아니라 가난 했던 그 어린 시절을 생각하면 그냥 미소가 떠오르기만큼 행복했습니다.

둘째, 교회 생활이 너무너무 행복했었습니다. 좋은 친구, 좋은 어른들을 거기서 만났습니다. 교회는 저의 고향이었습니다. 꽃피는 산골과 같은 정겨운 고향이었습니다. 우리 높은 뜻 섬기는 교회의 이춘익 장로님은 제 중고등부 때 선생님이셨습니다. 우리 높은 뜻 섬기는 교회의 이요일 장로와 이철주 장로는 요즘 애들 말로하면 절친 이었습니다. 사실 이요일 장로님은 저보다 한해 윗 선배인데 우리가 버릇이 없어서 그냥 친구가 되었습니다.

특히 청량리중앙교회에서의 중고등부생활은 가장 행복하고 아름다웠던 꿈같은 과거입니다. 제가 목사로서 저로서는 감당도 안 되는 성공(그냥 인간적이고 세상적인 판단과 기준으로)을 하였다면 그 모든 이유가 그 행복했던 청량리중앙교회, 특히 중고등부 시절의 경험 때문이었습니다. 그게 제 목회의 실력이 되었었습니다.

이요일 장로가 고등부 회장을 했었고, 그 다음이 지금 대구대학교 교수인 김의명 장로가 회장을 했고, 그 다음에 제가 고등부 회장을 했었습니다. 열심이 뻗쳐서 고등학교 3학년 때까지 회장을 했습니다. 교회가 너무 재미있어서 제법 열심히 했었습니다. 그 결과 대학교에는 보기 좋게 낙방을 했었지만 말입니다.

이요일 장로가 유년부 총무를 했었습니다. 그 후임이 저였습니다. 그때 우리 다 갓 스물이 조금 넘은 새파란 청년들이었는데 제법 총무일 잘 했었습니다. 아이들도 꽤 많았었고 선생님들도 거의 5-60명 정도 되는 작지 않은 조직이었는데도 제법 총무일을 잘했었습니다. 장로님들이 저희들을 어리게만 보지 않고 맡겨 주시고, 그냥 맡겨만 주신 것이 아니라 적극 후원해 주셨기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제일 잘 운영되던 대표적인 주일학교 중에 하나였습니다.

교회생활이 너무 즐겁고 행복했었기 때문에 가난했지만 그것 때문에 불행할 틈이 없었습니다. 

가난했었지만 행복했었다는 것이 평생의 재산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가난을 바라지는 않으나 크게 두려워 하지는 않습니다. 가난했던 어린 시절 행복했던 기억 때문에 저는 다시 가난해 지는 것에 대한 공포가 거의 없어졌습니다. 만에 하나 또 가난해진다고해도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제게는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그 때에 비하면 비교도 되지 않게 많이 가지고 누리고 살지만 혹시 그것을 잃어버리면 어떻게 할까하는 두려운 마음이 상대적으로 좀 적습니다. 생각해 보니 그것이 제게 큰 무기가 되었습니다. 가난을 크게 두려워하지 않는 마음이 용기가 되어 그 용기 때문에 적지 않은 큰 것들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처음 담임목회를 했던 교회는 그리 크지 않은 교회였습니다. 부임 당시 장년주일 출석이 150명 정도 되는 교회였습니다. 부임하자마자 제가 제일 먼저 한 일은 교인 배가 운동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게 하나님이 원하시는 목회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느 날 새벽기도회 후 기도를 하는데 제 마음 속에 질문을 해 오셨습니다. ‘왜 300명이냐?’ 깜짝 놀랐습니다. 하나님께서 교인배가운동을 달가와 하시지 않으신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교회를 부흥시키고 성장시키려고 했던 이유가 저 자신을 과시하고 자랑하기 위함이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 마음이 바로 소명을 가장한 야망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그래서 교인 배가 운동을 중지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때 아주 중요한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평생 작은 수의 교인이라도 저들을 사랑하며 잘 섬겨서 저들을 행복한 교인이 되게 해 주겠다는 기특한 생각을 하였었습니다.

그 교회는 제가 목회했던 교회 중에 가장 작은 교회였었습니다. 그러나 그 크지 않은 작은 교회에서의 목회생활이 그때 참 행복했었습니다. 그 소중한 기억과 추억 때문에 큰 교회를 목회했었지만 거기에 집착하지 않고 하나님이 떠나라 말씀하실 때 크게 연연하지 않고 떠나고 포기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작은 교회 목사가 되어 목회를 하여도 얼마든지 행복하게 목회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저로서는 감당도 못할 큰 교회를 목회하게 되었었습니다. 동안교회 시절에는 큰 예배당도 건축해 보았습니다. 출석교인 2,000여명 정도였을 때 교회건축을 하였었는데 예배당을 건축하고 입당하면서 거의 일년에 출석교인이 천 명 정도씩 늘 정도로 성장하였었습니다.

장년주일 출석이 거의 5천 명이 되었을 때 경희대학교 노천극장에서 청년들 집회가 있었습니다. 그때 그 자리에 3만 명이 넘는 청년들이 모여왔었습니다. 그 집회 설교를 제가 했었는데 평생 잊을 수 없는 자리였습니다. 청년들이 발 디딜 틈도 없이 가득 앉아서 은혜를 받는 것을 보면서 동안교회를 사임하고 이런 청년들 집회를 할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집회를 하려면 적지 않은 돈이 드는데 그런 돈을 쓰려면 기존 교회에서는 어렵고 새로 개척을 하여 그 일에만 집중해야 가능하겠다는 엉뚱한 생각이 들어서였습니다. 집에 와서 아내에게 동안교회 사임하고 개척하여 이런 청년들 집회에 집중하면 어떨까 물었습니다.

아내가 펄쩍 뛰었습니다. ‘좋다고’

아내가 자기도 그 자리에 함께 있었는데 왜 자기는 그런 생각을 못했는지 모르겠다면 저보고 훌륭하다고 칭찬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전격적으로 동안교회에 사표를 내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해에 높은 뜻 숭의교회를 시작하였습니다.

속된 표현이지만 그 인생에 있어서 정말 대박 사건이었습니다. 동안교회는 좋으신 후임목사님이 오셔서 더 많이 부흥하였습니다. 그리고 우리 높은 뜻 숭의교회도 동안교회만큼이나 큰 교회가 또 되었습니다. 피자 한 판을 샀더니 한 판이 더 생긴 꼴이 되었습니다.

높은 뜻 숭의교회가 부흥하여 또 출석교인 5천 명 정도가 되었을 때 하나님이 높은 뜻 숭의교회를 넷으로 분립하라는 말씀을 마음에 주셨습니다. 우리가 예배당 지을 돈 200억원으로 보이지 않는 성전 사업을 하여 그것이 잘 진행되자 사탄이 우리의 보이지 않는 성전건축을 방해하기 위하여 예배처소였던 숭의여자대학에서 나가게 만들었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보이지 않는 성전건축 헌금으로 보이는 예배당 문제를 먼저 해결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때 하나님이 저에게 주신 말씀이 누가복음 9장 62절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 다 보는 자는 하나님 나라에 합당치 않다.’는 말씀이었습니다.

보이지 않는 성전건축을 뒤로 미루지 않기 위하여 교회를 분립하는 초강수를 두었습니다. 교회를 분립하여 덩치를 작게 한 후 각기 고등학교 강당을 빌려 분산하였습니다. 결과적으로 성공했지만 대신 저 개인적으로는 큰 교회를 잃었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대박이었습니다. 제 인생에 있어서 가장 잘 했던 일 중에 하나가 교회분립이었습니다.

사람들이 가끔 저에게 묻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작지도 않은 교회를 두 번씩이나 포기하고 떠날 수 있었느냐고? 힘들지 않았느냐고? 후회되지 않느냐고? 그런데 저도 잘 이해가 되지 않으리만큼 힘들지 않았고 지금도 힘들지 않습니다. 잘 믿어지지 않으실는지 모르겠지만 한 번도 후회해 본 적 없습니다. 후회라니요? 정말 가당치도 않습니다. 얼마나 신나고 재미있는데 후회라니요.

150명 교회도 물론 작은 교회가 아니지만 이제껏 제가 목회했던 교회에 비하면 작은 교회입니다. 그런데 저는 그 작은교회에서의 목회생활이 행복했었기 때문에 수천 명이 모이는 교회도 좋지만 하나님의 뜻에 의하여 그 교회를 떠나고 포기하여 다시 작은 교회를 목회해야 한다고 하여도 별로 두려움이 없습니다.
그 작은 용기가 저로서는 쉽지 않은 결정과 판단을 내릴 수 있게 하였고 결과적으로 그것이 저에게 말도 못할 축복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저희 높은 뜻 교회에는 원로목사 제도가 없습니다. 2016년이면 이제 저도 은퇴입니다. 교단헌법이 보장해준 70세까지 목회하면 저도 원로목사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포기했습니다. 그것이 우리 목사에게는 좋은 제도가 될 수 있지만 교회에 꼭 필요하고 유익한 제도라는 생각이 들지 않아서입니다.

우리 교단은 연금제도가 제법 잘 되어 있어서 저 같은 경우 원로가 되지 않아도 사는데 큰 지장이 없습니다. 그래도 원로목사가 되어 죽을 때까지 교회에서 월급을 받는다면 나쁠것 없을 겁니다. 훨씬 더 넉넉하게 살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감사하게도 저는 그 욕심이 별로 없습니다. 그렇게 살아야하겠다는 필요를 잘 못 느끼기 때문입니다. 제가 만일 가난했던 어린 시절이 불행했었다면 저도 돈에 집착하며 살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앞에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가난했던 어린 시절이 전혀 불행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필요 이상의 돈에 큰 욕심이 생기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쓸데없는 욕심으로부터 아주 조금이라도 자유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무래도 은퇴를 하면 지금보다 조금 경제적으로 위축될 겁니다. 저는 제가 지금 목사임에도 불구하고 너무 넉넉하게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조금 죄송스럽고 불편합니다.

저는 부함이 무조건 나쁘고 죄 된 것이라고만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지나치게 사모하거나 바라지도 않습니다. 조금은 은퇴 후 소박하게 살다가 그래도 남는 것이 있다면 하나님과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다 잘 쓰다가 하나님 앞에 가고 싶습니다.

이런 생각을 하면 너무 행복합니다.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는 힘이 저는 가난했던 어린 시절과 작은 교회를 목회했던 젊은 시절이 행복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작고 보잘 것 없어 보이는 소소한 일상에서도 행복을 느끼고 누릴 줄 아는 것이 믿음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부하고, 크고, 높고, 성공했기 때문에 행복한 것이 아니라 부하든 낮든, 높든 낮든, 성공했든 실패했든 하나님 때문에 항상 자족하고 만족하고 행복하게 사는 것 그게 믿음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부함과 크고 높음과 성공에서만 의미를 찾고 행복을 누립니다. 어떤 사람들든 반대로 가난하고 작고 낮은 것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것을 가치 있는 것처럼 미화합니다. 저는 둘 다 동의하지 않습니다.

저는 하나님에게만 동의합니다. 하나님 안에 있으면 부해도 행복하고 가난해도 얼마든지 행복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렇게 되니 드디어 항상 기쁘고 범사에 감사하는 삶이 보이기 시작하였습니다. 부와 성공은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어집니다. 그러니 그것에 의존하면 항상 기쁘고 범사에 감사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사실은 부함과 성공이 없어지지 않고 계속된다고 하여도 그것 때문에 항상 기뻐하고 즐거워할 수는 없습니다.

1960년도 우리나라 국민소득은 80불 정도였습니다. 지금 우리나라 국민소득은 2만 불 정도입니다. 부함이 우리를 행복하게 하고 잘 살게 하는 것이라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되어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와 함께 계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진정한 의미의 행복과 기쁨을 우리에게 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 때문에 늘 기쁘고 감사하고 행복한 삶을 사는 법을 배워야만 합니다.

저는 오늘 본문의 말씀이 좋습니다. 사도바울은 풍부함을 죄악시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기에 인생을 걸지 않았습니다. 사도바울은 진정한 삶의 능력을 주시는 하나님께 자기 인생을 걸었습니다.

그랬더니 풍부함도 좋지만 비천할 때도 불행하지 않았습니다. 사도바울은 하나님 때문에 자족을 배울 수 있게 되었다고 말씀합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주 안에서 자족의 능력을 배우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풍부에 처할 줄 알지만 풍부의 노예가 되지는 마십시다. 가난이 두려워 비겁해 지거나 어리석어지지는 마십시다.

하나님 때문에 항상 기쁘고 감사하며 세상에 대하여 당당하고 지혜로운 삶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실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김동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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