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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대림절] 주의 길을 준비하는 자 (눅 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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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길을 준비하는 자 (눅 3:1-6)


경부고속도로(京釜高速道路)는 우리나라 최초의 고속도로입니다. 고속도로 건설 구상은 1964년 12월 박정희 대통령의 서독 방문이 계기였습니다. 가난하고 힘들었던 시절 대통령은 전용기가 없어 서독 민항기를 여행객들과 함께 타고 본에 도착했습니다. 박 대통령은 ‘라인강의 기적’으로 불리는 서독의 경제 발전 상황을 하나하나 눈에 담았습니다. 그 중 가장 관심 있고 주의 깊게 관찰한 것은 나치 정부 시절 건설된 세계 최초의 고속도로 아우토반(Autobahn)이었습니다. 뤼프케 대통령은 아우토반을 독일 부흥의 상징이라고 자랑했습니다. 

서독 방문 중 박 대통령은 에르하르트 서독 수상의 말 가운데 두 가지를 가슴 깊이 새기고 왔습니다. “국가 경제발전을 이룩하기 위해서는 도로, 항만 등과 같은 기간시설의 정비가 선행돼야 한다”는 말과 “분단된 국가로서는 경제 번영만이 공산주의를 이길 수 있는 길”이라는 말이었습니다. 귀국한 박대통령은 태국에 고속도로 건설 경험이 있던 현대 건설의 정주영 회장에게 경부고속도로 건설 계획서를 준비시켰습니다. 정 회장은 5만분의1 지도를 들고 서울에서 부산까지 미친 듯이 다녔습니다. 그리고 1968년 2월 1일 발파음이 울리면서 최초의 고속도로 건설이 시작되었습니다. 

정 회장은 길에서 회의를 하였습니다. 차 안에서 먹고 자며 목에 디스크가 걸릴 만큼 최선을 다했습니다. 도로를 닦는 인부들은 정 회장 차만 보여도 열심히 일하였다고 합니다. 드디어 1970년 7월 7일 경부 고속도로 428km가 완공되었습니다. 추풍령에 있는 고속도로 기념비에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우리나라 재원과 우리나라 기술과 우리나라 사람의 힘으로 세계 고속도로 건설 사상 가장 짧은 기간에 이루어진 길” 

밀림에서 길을 닦을 때에 집에서 밀림 쪽으로 길을 닦으면 항상 더디다고 합니다. 반대로 밀림에서 집 쪽으로 길을 닦으면 속도가 빨라진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집으로 간다는 기대감이 있어 속도가 더 빨라지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향하여 길을 준비해야 합니다. 권력이나 교권은 없지만 주의 길을 준비한 세례 요한처럼 소박하고 작은 자로 길을 준비하여 우리에게 오시는 주님을 맞이하여야 합니다. 

본문은 세례 요한이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입니다.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 모든 골짜기가 메워지고 모든 산과 작은 산이 낮아지고 굽은 것이 곧아지고 험한 길이 평탄하여질 것이요 모든 육체가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보리라” 주의 길은 원어로 ‘텐호돈 큐리우’ 로서 왕도(王道)라는 뜻입니다. 왕이 가는 길로 천국 가는 길을 의미합니다. 

세례 요한은 주님이 오실 길을 준비하고 그 길을 평탄케 하기 위하여 예수보다 먼저 온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입니다. 세례 요한은 길을 준비하는 사명의 사람이었습니다. 요한을 통하여 주님이 오실 길을 준비하는 자의 모습을 보시 기 바랍니다. 주의 길을 준비하는 자가 되려면, 

첫째로 말씀이 임해야

랜디 피터슨(Randy Petersen)과 윌리엄 피터슨(William J. Petersen)의 저서 ‘말씀의 힘(100 Bibles Verses That Changed the World)’이 있습니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은 무엇일까? 비전? 이념? 돈? 권력? 세상을 변화시키는 능력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의 힘이라는 것” 을 강력하게 일깨워 주는 책입니다. 책에는 실제로 세상을 변화시켰던 100명의 평범하거나 위대한 인물들과 그들을 변화시킨 100개의 말씀에 대한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들 중에 성도들을 핍박했던 사람, 어거스틴 같이 방탕하게 살았던 사람, 존 뉴턴 같은 노예 상인, 마틴 루터처럼 성질이 급한 사람, 에이미 카마이클 같은 병자와 전신마비 장애인 조닉 에릭슨 등이 있습니다. 인종, 시대, 생활환경, 사고방식, 시대 상황 등 모든 것이 천차만별로 너무나 다른 사람들이 하나로 묶일 수 있었던 이유는 오직 그들이 말씀을 통해 인생의 전환을 맞이하였기 때문입니다. 책은 두 가지 질문을 던집니다. “성경이 어떻게 당신을 변화시키고 있는가?” 그리고 “당신은 세상을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가?” 말씀을 통하여 변화를 경험했다면, 당연히 가정과 교회에 변화가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본문 2절입니다. “안나스와 가야바가 대제사장으로 있을 때에 하나님의 말씀이 빈들에서 사가랴의 아들 요한에게 임한지라.” 하나님의 말씀이 권세도 영향력도 없이 빈들에 있던 세례요한에게 임했습니다. 빈들의 영적 의미는 모든 것이 다 떨어진 상태를 말합니다. 의지할 데 없고 기댈 데 없는 연약한 상태의 심령이었던 세례 요한은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면서 깊은 영적 교제를 나누었습니다. 그때 하나님의 말씀이 임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사모하는 사람에게 임하십니다. 

말라기 선지자 이후 신구약 중간시기 400년 동안 하나님의 말씀이 전혀 들리지 않았는데 빈들에 있던 세례요한에게 임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임했다는 것은 그를 통해서 시대가 변화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요한을 통해서 새로운 시대의 길이 열리고 주께서 오실 준비가 착수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누군가의 몸을 필요로 합니다. 손과 발을, 시간과 정성을 주님께 드리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말씀을 통해 준비되는 길로 세상에 오시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회개를 행해야

에스키모(Eskimo)족은 늑대를 잡기 위해 짐승의 피를 마련합니다. 그 피를 추운 밖에 내어놓고 날카로운 칼 한 자루를 그 속에 세워둡니다. 같이 얼어버린 핏덩이를 늑대들이 다니는 길에 놓아둡니다. 그러면 늑대들이 지나가다가 피냄새를 맡고 혀로 핥기 시작합니다. 차가운 얼음에 혀의 감각이 마비되는 줄도 모르고 핥습니다. 그런데 핥으면 핥을수록 더 맛있는 피가 나옵니다. 차가운 피가 아니라 이제는 따뜻한 피가 나옵니다. 얼음 속에 숨겨져 있던 날카로운 칼에 자기 혀가 갈기갈기 찢어지는 것도 모르고 열심히 빨아 먹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몸속에 있는 피를 다 빨아먹고 나면 결국 그 자리에 쓰러져 죽고 만다고 합니다. 순간적으로 만족을 주는 죄악에 빠진 결과입니다. 원하고 바라는 대로 되었다고 행복이 아닙니다. 

본문 3절입니다. “요한이 요단 강 부근 각처에 와서 죄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니” 우리가 살 길은 오직 회개밖에 없습니다. 회개는 내일의 이야기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회개는 오늘의 이야기가 되어야 합니다. 주의 길을 준비하는 사람은 지금 이 순간 바로 여기에서 회개하여야 합니다. 

후회가 단순히 과거만을 돌아보고 통탄하는 것이라면 회개는 미래에 대한 결단이 따르는 것입니다. 후회는 단지 과거 자신의 잘못된 결정이나 행동으로 인해 괴로워만 할 뿐 중심의 변화는 수반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회개는 거기에 머무르지 않고 결단하고 돌아서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걸어오던 죄악의 길에서 발길을 돌려 하나님을 향하여 새롭게 나아가는 것입니다. 회개는 ‘돌아서는 것’이 원어의 의미입니다. 후회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진정으로 회개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후회는 죄책감과 멸망을 가져오지만 회개는 생명을 얻게 하고 진보적 삶을 얻게 합니다. 

주의 길을 준비하는 것은 죄를 회개하는 일로 시작됩니다. 높은 산을 깎아 내려야 합니다. 교만의 산을 깎아 내려야 합니다. 하나님 없이 살 수 있다고 믿는 교만을 회개하여야 합니다. 하나님께 예배하지 않아도 모든 일이 잘되어 간다고 믿는 우매함을 회개하여야 합니다. 정욕과 게으름과 악덕을 회개하고 돌이켜 겸손과 온유, 긍휼과 사랑의 길을 준비하여야 합니다. 이것이 주의 길을 준비하는 자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셋째로 구원을 보여야

논산 선한목자교회 김철 전도사가 교회 홈페이지 게시판에 글을 올렸습니다. “오늘 차로 접촉사고를 냈다. 주위에는 아무런 사람이 없었다. 그냥 가려는 그 순간 예수님이 보고 계신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 주인을 찾아가 사고 경위를 말씀 드렸더니 차 수리를 해 달란다. 말을 들어 보니 이참에 기존에 수리해야할 부분까지 다 수리하려는 속셈이 환히 들여다보였다. 몇몇 주변 분들은 본 사람도 없는데 왜 자기 발로 찾아가 문제를 만들었냐고 머리를 절레절레 흔든다. 마치 바보가 된 기분이었다. 그런데 한 가지 확신하는 것은 예수님이 그때 봤다는 것이다. 나는 '바보'다. 예수님만 아는 '바보'다.” 구원받은 사람은 마음에 예수님을 모시고 사는 사람입니다. 예수께서 우리 안에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것을 사모하게 하시고 또 구원의 일을 나타나게 하십니다.

본문 4절입니다. “모든 골짜기가 메워지고 모든 산과 작은 산이 낮아지고 굽은 것이 곧아지고 험한 길이 평탄하여 질 것이요 모든 육체가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보리라 함과 같으니라.” 아무리 재화를 모으고 지식을 쌓고 재능을 닦고 힘을 집중한다 해도 그것들이 구원을 보장하지 못합니다. 구원은 인간에게서 만들어지는 게 아닙니다. 구원은 하늘로부터 온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구원을 베푸실 테니 우리는 주께서 오실 길을 준비해야 하는 것입니다. 언덕은 깎고 골짜기는 메우고 구부러진 것은 펴서 올바르고 곧은 길을 마련해야 합니다. 그리할 때 구원의 주께서 그 길을 따라 오실 것입니다. 

대림절(Advent)의 의미는 구원하실 예수의 오심을 준비하며 기다림에 있습니다. 주의 길을 준비하라는 외침은 더욱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이 크다는 것을 일깨워 줍니다. 주님이 가까이 와 계십니다. 서둘러 주님을 영접할 준비를 갖추어야 합니다. 빈들같이 삭막한 세상에서 들려주시는 음성을 듣고 주의 길을 준비하는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편견도 고집도 교만도 없이 주의 오심을 맞이하여야 합니다. 내 길이 아니고 주의 길을 준비하라는 말씀 앞에 바로 서야 합니다. 준비하는 만큼 성탄의 의미가 되살아날 것입니다. 

선교사 리빙스턴 (David Livingstone)은 길이 없는 정글을 헤치고 아프리카에 도착하였습니다. 자신을 파송한 런던선교회에 잘 도착했다는 편지를 보냈습니다. 그러자 선교회는 오지에 도달하는 길을 개척했다면 더 많은 선교사를 보내겠노라고 답장을 보냈습니다. 그 때 리빙스턴은 다시 편지를 선교회에 보냈습니다. “만들어진 길이 있다고 해야만 올 사람은 필요 없고, 길이 없다고 해도 올 사람이 필요합니다.”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며 주의 길을 준비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만들어 놓은 길을 따라가는 자가 아니라 스스로 주의 길을 개척자의 마음으로 준비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회개함으로 마음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그리고 구원을 보이는 행적을 통해 주의 오실 길을 준비하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김광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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