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빚진 자 (롬 1:14-15)

첨부 1


빚진 자 (롬 1:14-15) 
 
 
바울 사도는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자신을 "빚진 자"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아무리 자기가 빚진 것이 많다고 해도 '나는 빚쟁이입니다.'라고 소개할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그런데 바울은 자신을 빚진 자라고 한 것입니다. 바울은 빚진 것을 생각한 것입니다. 빚진자는 갚아야 할 의무를 지게 되는 것입니다. 결코 빚을 갚지 않으면 평안할 수도 없고 자유로울 수도 없습니다. 잠언 22:7에 보면 "빚진자는 채주의 종"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빚진 자란? "오페일레테에스"라고 하는데 이 말은 강제성을 담고 있는 말입니다. 무슨 말인고 하니 이미 확정된 판결을 집행한다는 말입니다. 만약 빚을 갚지 않으면 강제적으로 받아간다는 뜻이 있습니다.

바울사도는 로마서에서만 "빚진 자"(롬 1:14, 8:12, 15:27)라는 말을 세번 사용했습니다. 
사람을 사람답게 살게 하는 것 중에 하나가 "내가 누구냐?"하는 자기 이해, 즉 자기 인식을 바로 하는 것입니다. 내가 누구인지를 알아야 내가 어떻게 살 것인가?가 결정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도의 영적 신분에 관한 정확한 이해는 성도들 자신의 올바른 처신을 위해서 꼭 필요합니다. 인생을 허비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올바른 자기인식을 결여하고 있기 때문에 헛되이 수고하고 애쓰는 것입니다. 
바울은 분명하고도 확실하게 "빚진 자"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복음에 빚진자로서 이 빚을 갚지 않으면 견딜수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빚을 갚지 않으면 자유할 수도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빚을 갚지 않으면 도리어 화가 있을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고전 9:16에 보면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일임이니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내게 화가 있을 것임이로다" 믿는 자가 선을 행하고 구제하고 밤낮없이 예배를 드리고 봉헌을 하고 봉사하는 것이 결코 내 의가 될 수 없는 것은 내가 부득불 해야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빚을 진 자가 빚을 갚은 것이 결코 자랑할 것이 못되는 것과 한 가지입니다. 

바울이 이 빚을 갚기 위하여 얼마나 수고했는지를 고린도후서 11: 23-27절 에서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빚은 이렇게 해서라도 갚아야 할 것입니다. 빚을 쌓아두고서는 행복도, 자유도, 평안도, 미래도 없습니다.

이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첫째는 채권의식에서 사는 사람입니다. 
받아야 만 한다는 생각만 가지고 사는 사람입니다. 채권의식에 사는 사람들은 태도부터 다릅니다. 
하나님께 받아야만 하고 부모에게도 받아야만 하고 형제나 이웃에게도 받아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받지 못하거나 받을 것이 충분하지 못할 때는 원망하고 짜증을 냅니다. 감사치도 아니합니다. 도리어 받을 것을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은혜를 모릅니다. 

내게 채권자 의식이 있는가를 살펴볼려면 간단합니다. 
채권자의식을 가지고 사는 사람은 자꾸 화를 냅니다. 분노합니다. 
받을 것을 못받은 사람처럼 뽀로통하게 부어있습니다. 

미국 백악관에 조기가 걸렸습니다. 
그것은 한 청년이 자기 엄마를 총으로 쏴 죽이고 어머니가 근무하던 학교에 들어가서 어린학생들 28명인가를 총으로 쏴 죽이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그래서 전 미국이 슬픔에 잠겨 있습니다.  

둘째는 채무의식에서 사는 사람입니다. 
갚아야 할 의무를 지고 사는 사람입니다.  빚진 자의 심정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무엇으로 보답할꼬, 내 부모나 형제에게나 이웃에게 내가 무엇을 줄까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받은 것은 그것이 크거나 작거나 은혜요 감사뿐인 것입니다. 빚진 자는 부당한 대우를 받더래도 유구무언입니다. 견디며 수용하고 살아갑니다. 빚진자는 불평은 커녕 화조차 낼 수가 없습니다. 

바울은 채무의식 속에서 산 사람입니다.   
그리고 바울의 채무의식은 "헬라인에게나 야만인에게나 지혜 있는 자에게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자라"한 것입니다. 
헬라인에게도 빚진 자이고 야만인에게도 빚진 자이며 지혜있는 자에게도 빚진 자이고 어리석은 사람에게도 빚진 자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누구에게든지 차별없이 빚을 갚는 것처럼 복음을 전하고자 한 것입니다. 
복음 앞에서는 누구도 우월한 자나 그렇지 못한 자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사람은 누구나 주님 앞에서 동일한 것입니다. 갚아야 한다면 모두에게 갚아야 합니다. 

빚진 자가 빚을 갚았다고 해도 칭찬받거나 상을 받을 것이 없습니다. 
  
신앙생활을 오래하다보면 
빚진 마음은 다 사라지고 빚 받을 것만 생각합니다. 그래서 감격의 눈물은 다 말라버리고 형식과 외식과 율법만 남습니다. 그래서 신앙의 감격은 없고 신앙의 기술만 남습니다. 신령과 진의 마음은 사라지고 모양만 가추기에 급급하게 됩니다. 

우리 모두는 바울처럼 복음의 빚을 진 사람들입니다. 우리 모두는 다른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나누어 주도록 복음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받은 복음은 사도 바울을 비롯한 많은 믿음의 선진들의 사랑과 수고에 의해서 우리에게 전해져 받게 된 것입니다. 얼마나 많은 믿음의 선진들이 이 복음을 우리에게 전해주기 위해 고귀한 생명을 아낌없이 버렸는지 모릅니다. 

우리는 모두 주님 앞에 사랑에 빚진 자요. 용서에 빚진 자요, 은혜에 빚진 자요, 복음에 빚진자입니다. 하나님께 값없이 받았기에 빚진 자입니다. 빚 받을 자처럼 살지 말고 빚 갚는 자의 심정으로 살아갈 수 있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