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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대림절] 요한이 증언하신 예수님은 누구신가 (요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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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이 증언하신 예수님은 누구신가 (요 1:6-15)

오늘은 대림절 세 번째 주일입니다. 

대림절이란 절기는 아기 예수님의 강림과 다시 오시는 주님의 재림을 사모하면서 기다리고 준비하는 절기로 지키고 있습니다. 이 계절은 엄숙함을 유지하고, 자신을 돌아보고 성찰하는 진지한 자세를 가지고 주님을 온전히 영접하고 모시고 살아가야 합니다. 성탄절을 앞에 두고 들뜨기 쉬운 연말을 보내지 말고, 우리를 위하여 희생하신 하나님의 사랑, 그 아들을 내어주시고 포기하면서 우리를 구원하여 주시는 그 사랑을 확신해야 합니다. 

금년 대림절은 성탄절을 기다리고 준비하는 것보다는 온통 대통령선거에 관심을 가지고 있어, 성탄절은 뒷전으로 밀려났습니다. 우리는 내가 원하는 그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어야 한다는 생각만큼이나, 예수님을 사모하고, 주님 앞에 설 수 있도록 몸과 마음을 정결하게 준비해야겠습니다. 

내가 믿는 예수님은 과연 누구시며, 왜 그 분을 믿어야 구원을 받으며, 그러면 나는 과연 구원받은 성도인가 하는 점을 확신해야 하고, 흔들리지 않는 구원의 진리를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오늘은 “세례요한이 증언하신 예수님은 누구신가?” 하는 제목을 가지고 말씀을 드려려고 합니다. 6절 말씀에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 있으니 그의 이름은 요한이라”고 하셨습니다. 세례요한이란 사람은 구약 시대에 장차 메시아, 기름부음을 받은 자, 곧 그리스도가 오신다고 증언하신 여러 증언자, 여러 선지자들 중에 최후의 증언자요, 선지자입니다. 요한은 구원의 주, 메시아를 바라보면서 증언한 사람이요,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 6개월 정도 먼저 활동하면서 예수님을 증언하였습니다. 

세례요한이 나와서 회개의 세례를 베풀고 회개하라고 선포할 때에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이 찾아와 물었습니다. “네가 누구냐?” 이 말에 요한은 자신을 숨기지 아니하고 드러내어 말했습니다.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고 했습니다.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이 다시 물었습니다. “그러면 누구냐 네가 엘리야냐?” “나는 아니라” 또 물었습니다. “네가 그 선지자냐” 요한은 “아니라”고 했습니다. 

세례요한은 자신이 엘리야가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말라기 선지자가 예언하신 말씀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자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말4:5)고 하신 것을 문자적으로 이해하지 말라는 말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세례요한은 자신의 사명을 강조하셨습니다. 자신을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라고 했습니다. 요1:23에 “이르되 나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과 같이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로라 하니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주님은 선지자 세례요한이란 가리키면서 “모든 선지자와 율법이 예언한 것은 요한까지니 만일 너희가 즐겨 받을진대 오리라 한 엘리야가 곧 이 사람이니라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마11:13-15)라고 하셨습니다. 


세례요한은 예수님보다 6개월 정도 먼저 세상에 나와서 “내 뒤에 오시는 분”을 증언하고 사람들로 그 분, 메시아를 믿어 구원받으라고 소리 높여 외쳤고, 증언하였습니다. 

마3:11에서 “나는 너희로 회개하게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초지일관 당신 뒤에 오시게 되어 있는 메시아, 기름부음을 받은 자, 인류를 구원하기 위하여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를 증언하였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세례요한이 증언하신 그리스도는 과연 어떤 분이시냐? 하는 것을 잘 알려주시고 있습니다. 세례요한은 증언하러 온 사람입니다. 그의 사명은 당신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메시아를 말하고, 메시아를 증언하고 있습니다. 

메시아라는 말은 히브리어의 ‘마쉬아흐’라는 말에서 나온 말인데, 어떤 직책을 위하여 의식적으로 기름부음을 받은 사람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메시아라는 말은 그리스어(헬라어)로 그리스도(크리스토스)라고 합니다. 구약에서는 메시아, 신약에서는 그리스도라고 합니다. 

세례요한은 메시아가 아니었습니다. 당신은 그리스도가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자기 뒤에 오시는 분, 메시아를 증언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증언으로 말미암아 주님을 믿어 구원받게 하려 함이었습니다. 

1. 참 빛이신 그리스도

“그가 증언하러 왔으니 곧 빛에 대하여 증언하고 모든 사람이 자기로 말미암아 믿게 하려 함이라 그는 이 빛이 아니요 이 빛에 대하여 증언하러 온 자라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요1:7-9)

하나님으로부터 보내심을 받고, 메시아가 공생애를 선포하시기 전에 먼저 와서 메시아를 증언하고 메시아가 오신다고 선포하는데, 그는 빛에 대하여 증거하기 위하여 보내심을 받았습니다. 그는 빛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만이 참 빛이었습니다. 

요1:4에서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 안에 생명이 있었고,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 사람들을 위한 빛이었습니다. 우리 주님은 참된 생명을 가지고 계신데, 그 생명은 사람들을 위한 빛이었습니다. 

‘빛’이라고 하면 세상을 환하게 밝히는 빛, 어둠을 물리치는 빛을 말합니다. 자연에서 볼 수 있는 빛을 가지고 진리와 생명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 영원한 생명, 풍성한 생명을 빛이라는 현상으로 표현하였습니다. 

구약에서 하나님의 생명, 영원한 생명, 구원받은 참 생명을 ‘빛’이라고 하셨습니다. 많은 성경 말씀들이 있습니다. 

시36:9에 보면 “진실로 생명의 원천이 주께 있사오니 주의 빛 안에서 우리가 빛을 보리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생명의 원천이시며, 참된 빛이십니다. 


시80:3에서 “하나님이여 우리를 돌이키시고 주의 얼굴 빛을 비취사 우리로 구원을 얻게 하소서”라고 하십니다. 주님의 얼굴 빛, 여호와의 얼굴 빛을 비추실 때에 우리는 구원받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빛은 곧 우리의 생명이요, 구원이십니다. 

우리 주님은 참 빛이십니다. ‘참’이라는 말은 거짓에 반대되는 개념을 가리키지 않고, 불완전에 반대되는 완전함을 말합니다. 완전하신 빛, 진리의 빛을 말합니다.

우리 주님께서 요8:12에서 “예수께서 또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예수님을 참 빛이시오, 생명이십니다.

빛은 깨끗하고 순수합니다. 빛에는 어떠한 오염도 없고, 그 빛은 어둠을 뚫고 나갑니다. 그래서 주님은 참 빛(the true Light)이십니다. 

명상하는 방법 중의 하나가 먼저 눈을 감고 몸의 긴장을 다 풀어버립니다. 자신의 육체를 영혼의 빛이 감싸고 있다고 상상합니다. 하나님의 생명, 영원한 진리의 빛이 나를 감싸주고 있습니다. 다음에 숨을 내쉬면서 우리 안에 있는 나쁜 기운, 좋지 않은 생각들, 어둠과 부정적인 것을 바깥으로 토해 내버립니다. 그리고는 찬란한 빛, 생명의 빛, 하나님의 생명을 우리의 몸 안으로 불러들이고 호흡을 통하여 몸의 구석구석에 생명의 빛을 받아들입니다. 그 생명의 빛이 우리 몸 구석구석에 자리 잡게 하는 방법입니다. 

우리가 세상 사람들이 사용하는 명상의 방법으로 빛을 받아들이고, 우리 몸에 빛으로 채우지 않아도 우리는 예수님을 영접함으로 빛이 우리의 영혼과 정신과 육체를 다 점령하시고 빛으로 채워주시고 그 빛이 우리의 모든 어둠과 부정적인 생각들을 다 몰아내어주셨습니다. 우리 주님은 참 빛이 되어 주셔서, 우리 안에 생명의 빛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어둠의 세력이 우리 안에 자리 잡지 못하게 하셨고, 두려움을 물리쳐주셨으며, 안 된다고 하는 부정적인 생각을 몰아내어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영혼의 빛을 잃으면 여러분의 마음, 여러분의 영혼은 어둠에 쌓이게 됩니다. 마음이 어두워지면, 영혼이 흑암에 쌓이면 얼굴이 어두어지고, 하는 일마다 불안해지고, 삶 전체가 무너집니다. 빛이 우리 안에 있어야 어둠을 물러가고 밝음으로, 불만은 만족으로, 불평은 사라지고 찬송이 넘치고 원망은 감사로 이어집니다. 

2. 창조의 주

세례요한이 증언하신 예수님은 창조의 주님이시었습니다. 

10-11에서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라고 하셨습니다.

요1:1에는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주님은 아니 계신 때가 없었습니다. 영원 전부터 창조주 하나님과 함께 계셨습니다. 이 세상은 주님으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천지만물을 창조하실 때에 함께 계셨던 성자 하나님, 하나님의 아들로서 함께 계셨고, 하나님이 천지만물을 창조하실 때에 아들과 성령과 함께 지으셨습니다. 


창1:26에서도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라고 하실 때에, 우리의 형상, 우리의 모양이라고 하실 때에, 우리는 삼위일체 하나님,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을 의미합니다. 


골1:15-16에서 “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라고 하셨습니다.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었다”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고 하는데, 우리 주님도 창조하셨다고 하면, 혼란스럽게 생각할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신 성자 예수님께서 하나님과 함께 창조하셨습니다. 아들 예수님은 하나님의 지혜요, 하나님을 계시하시고, 아버지 하나님을 보여주신 아들이십니다. 

빌2:6-8에서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처럼 자신을 비우고 낮추고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 주님은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나를 지으신 하나님의 하나님이십니다.


3. 구원의 주님

12-13입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창조의 주님이시며 구원의 주님이십니다. 주님이 당신이 창조하신 이 땅에 오셨는데, 자기 백성들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습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람은 주님의 백성인데, 주의 백성인 자들이 주님을 몰라보고 영접하지 않고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그러나 구원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 되어 주셨습니다.

요1:12은 아주 유명한 말씀입니다. 구원받은 확신으로 암송해야 하는 말씀입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라고 하셨습니다. 

‘영접한다’는 말은 단순히 ‘신뢰한다’는 말보다 더 구체적이고, 강력한 행동을 의미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전인격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나의 주님이시라고 신앙 고백하는데, 영접하는 것은 믿음으로 고백하는 것을 말하고, 전인격적으로 진솔하게 시인하는 것입니다. 

우리 기독교는 고백의 종교입니다. 롬10:9-10에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고 하셨습니다. 

마10:32-33에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시인할 것이요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부인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이름을 믿는다’는 것을 ‘그 이름을 가진 사람을 믿는다’는 말입니다. 이름은 그의 전인격을 의미합니다. 이름은 곧 그 사람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을 믿는다고 하면 예수님을 우리의 주님으로, 나의 생명으로, 나의 왕으로, 나의 하나님으로 영접하고 고백하고 인정하고 항복하고 굴복합니다. 그의 소유된 것을 인정하고 내가 나의 주인 됨은 포기합니다. 주님 내 안에, 나는 주님 안에, 주님으로 살게 됩니다. 주님이 우리의 살아가는 목적이 되었고, 내 안에 살고 계시는 분이 주님이시고, 주님이 나의 실체가 되었습니다. 

우리 마음의 의자가 있는데, 그동안 내가 주인이 되어 내가 앉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내 마음의 의자에 주님이 앉아 계십니다. 그것도 나의 주인으로, 나의 왕으로, 나의 하나님으로 앉아계신다는 말입니다. 

기독론이라고 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진리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하는 신학입니다. 바울은 기독론, 속죄론을 수립한 위대한 신학자입니다. 어느 누구도 할 수 없는 속죄론을 정리하여 이신칭의의 신학을 선포한 사람입니다.

바울의 속죄론은 1)형벌대체의 신학입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해결해야 하고 갚아야 하는 죄 값을 하나님의 아들, 우리 주님이 다 해결해주시고, 대속해주시고 우리가 죽어야 하는 자리에서 죽으셨습니다. 죄가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신데, 하나님은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셨습니다. 

고후5:21에서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고 하셨습니다. 죄가 없으신 예수님이 우리 죄인을 대신하여 형벌을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이 나를 대신하여 형벌을 받으셨다는 형벌대체의 개념이 구속론의 정설입니다. 

우리의 죄는 참 인간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옮겨지고 -전가되어지고, 예수님이 형벌을 받으시므로 우리에게는 형벌이 미쳐지지 않고, 구원받게 되었습니다. 대체의 개념은 ‘ 때문에’, ‘위하여’, ‘대신하여“라는 말로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죄인들 때문에 죽으셨습니다, 죄인들을 위하여 죽으셨습니다. 죄인들을 대신하여 죽으셨습니다. 

고후5:14-15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하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살아 있는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고 하셨습니다. 

바울의 속죄론은 2) 속량의 신학입니다. 우리 주님의 구원을 말할 때에 배놓을 수 없는 진리는 대속, 구속, 속량이라는 말입니다. 

롬3:24에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속량이라고 할 때에 속량이란 말은 몸 값을 지불하고 구입한다는 말입니다. 전쟁 포로로 잡혀갔으니, 그 사람들의 몸값을 지불하고 다시 사와야 합니다. 노예로 팔려가는데 그 노예는 값이 메겨져 있습니다. 노예의 값을 지불하고 사온다는 말이 속량입니다. 

고전6:20에서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하셨습니다. 값으로 산 것이 되었다는 말이 값을 지불하고 산 것이라는 말입니다. 

갈3:13에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를 속량하셨다는 말은 율법이 저주하는 그 값을 지불하고 사 왔다는 말입니다. 

갈4:5에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 하셨는데,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셨습니다. 율법의 저주,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값을 지불하시고, 우리를 하나님의 양자, 하나님의 아들의 몀분을 얻게 하셨습니다. 

바울의 속죄론은 3) 형벌만족의 신학입니다. 

우리 주님의 구속을 말할 때에 빼놓을 수 없는 진리는 ‘형벌 만족’이라는 것입니다. 

롬3:25에서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주님은 하나님이 내어버린 화목제물이셨습니다. 아들이 피를 흘리면서 죽는 순간에 하나님은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다 죽은 것으로, 모두 다 벌하신 것으로 간주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아들을 내어주셨습니다. 아들을 내어주신다는 말에는 하나님의 희생적인 사랑, 하나님의 자존심을 포기하시면서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사람을 용서하시기로 하셨습니다. 

우리는 아들 예수님을 우리의 주님으로 영접하여 당당하게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었고, 합법적인 권리를 얻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기 때문에 받아들인 것이요, 깨달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요, 선물이요, 하나님이 다 이룩해주신 것을 우리가 받아 누리는 것뿐입니다. 

세례요한이 참 빛으로 오신 주님, 우리를 지으신 창조주이신 주님, 우리의 죄악을 사하여 주시는 구원의 주님으로 증언하셨습니다. 우리가 구원받게 된 것은 우리 주님이 대신하여 형벌 받으신 때문입니다. 우리가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은 주님이 우리의 죄를 속량하여 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구원받은 것은 하나님이 아들에게 형벌하시고 그것을 만족하시고 기뻐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세상에 나가서 참 빛으로 오신 주님, 온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주님, 우리를 구원하여 주시는 예수님을 널리 증언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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