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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계 3: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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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계 3:7-13)

어느 가정에 사랑하는 외아들이 군대를 가게 되었습니다. 어머니가 아이가 보고 싶은 모양인지 아이가 쓰던 방에 들어갔다 나왔다 들어갔다 나왔다 하더니 아들한테 편지를 썼습니다. "보고 싶은 아들아! 오늘도 네가 그리워 네가 썼던 방 들락날락거리는 구나. 그런데 네가 쓰던 침대에서 아직도 너의 따뜻한 온기가 느껴지는 구나." 며칠 후에 답장이 왔습니다. "보고 싶은 어머니! 내 침대가 따뜻한 이유는 내가 전기장판을 끄지 않고 왔기 때문입니다. 속히 전기장판을 끄시면 좋겠습니다." 우리의 마음을 따스해지게 하는 한 교회가 있습니다. 빌라델비아 교회입니다.

사도 요한이 인생 말년에 밧모 섬에 유배 생활을 할 때 예수님과 천사가 나타나서 세상 종말과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환상을 보여주셨다. 이것을 기록한 것이 요한계시록이다. 요한 계시록 1~3장에 보면 예수님이 그 당시 세상 모든 교회를 대표한다고 할 수 있는 소아시아 일곱 교회를 향해서 메시지를 주셨다. 에베소 교회, 서머나 교회, 버가모 교회, 두아디라 교회, 사데 교회, 빌라델비아 교회, 라오디게아 교회 등이다. 

이 교회들 중에서 예수님의 책망을 받지 않은 교회는 두 교회였다. 두 교회 중에서도 책망이 없이 칭찬을 받은 교회는 빌라델비아 교회 한 교회였다. 대부분의 교회들은 책망을 받았는데 오직 빌라델비아 교회만 칭찬과 약속을 받았다. 빌라델비아 교회 성도들은 어떻게 신앙생활을 했기에 칭찬을 받았을까? 

오늘날에도 수많은 교회들이 있다. 기흥구에만 약 150개의 교회가 있다고 한다. 정말 교회가 많은 시대이다. 많은 교회 중에서 우리 교회는 과연 빌라델비아 교회처럼 책망을 받지 않고 칭찬을 받을 수 있는 교회일까? 나 개인을 돌아볼 때에도 과연 책망을 받지 않고 칭찬을 받을 수 있는 성도일까?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 교회가 빌라델비아 교회가 되기를 소망한다. 또한 우리 모두가 빌라델비아 교회 성도처럼 주님께 칭찬 받는 성도가 되기를 소망한다. 

빌라델비아 교회 성도들처럼 되어야겠다는 소망을 가지고 동기부여를 위해서 우선 빌라델비아 교회 성도들에게 예수님이 어떤 복을 허락하셨는지 살펴보기를 원한다. 

마치 우리가 어떤 대회에 나갈 때 상금이 얼마이며 상품이 무엇인지 알면 그 대회에 꼭 나가서 일 등 해야겠다는 동기부여가 되지 않는가? 그런 측면에서 살펴보자. 


1. 예수님이 빌라델비아 교회에 허락하신 복

1) 그들 앞에 열린 문을 두셨다. 

(계3:7)  빌라델비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이가 가라사대 
(8)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예수님이 빌라델비아 교회와 성도들 앞에 열린 문을 두셨다고 말한다. 열린 문은 무엇일까? 다윗의 후손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이 열어주시는 구원의 문이다. 예수님에게는 사망과 생명을 결정하는 열쇠가 주어져 있다. 하나님이 예수님에게 주신 권세이다. 

예수님이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심으로 우리 죄를 위해서 십자가에 죽으셨다. 하나님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어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히시고 그에게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 사망과 생명을 주관하는 권세를 주셨다. 그래서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는 자에게 예수님은 사망의 문을 닫으시고 생명의 문, 영생의 문, 구원의 문, 천국의 문을 활짝 열어주신다. 

예수님은 믿음으로 승리한 빌라델비아 교회와 성도들 앞에 구원의 문을 활짝 열어두셨다고 약속하셨다. 빌라델비아 성도들은 훗날 세상을 떠날 때 바로 열린 문을 통과해서 두 팔을 벌리고 맞이해주시는 예수님의 품에 안겼다. 천국에 입성하였다. 

만약 우리도 빌라델비아 교회 성도들처럼 믿음으로 승리하는 삶을 산다면 예수님은 우리 앞에도  열린 문을 두실 것이다. 저와 여러분은 이 세상 떠나는 날 반드시 열린 문을 통과해서 예수님의 품에 안기고 천국에 입성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2)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셨다.

(계3:10)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키어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 

며칠 전 남미의 마야 문명의 문서를 토대로 2012년 12월 21일이 세상 종말이라는 허황된 종말론 때문에 웃지 못 할 해프닝이 있었다. 우리는 그런 거짓 풍설과 소문에 현혹되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그 날 때 그 때는 오직 하나님 아버지만 아신다. 그러므로 언제가 종말일 것이라는 말에 절대로 현혹되어서는 안 된다. 

하지만 반드시 예수님은 다시 오신다. 예수님이 다시 오시면 하나님의 자녀들은 죽은 사람은 부활해서 들림을 받고 산 사람은 산 채로 변화되어 들림을 받아서 공중으로 올라가서 예수님을 만나게 된다. 반면에 이 땅에 남은 사람들은 감당하기 힘든 환난과 핍박을 받게 된다. 

그런데 예수님이 빌라델리비아 교회 성도들에게 약속하셨다. 너희들은 마지막 때의 시험을 피하게 될 것이다. 이미 많은 환난과 핍박을 견디며 믿음으로 승리하였기 때문에 세상 종말에 있을 시험을 면제해주시겠다는 약속이다. 

우리도 빌라델비아 교회 성도들처럼 믿음으로 승리한다면 주님은 우리에게도 세상 종말에 있을 시험을 면제해주실 것이다. 이 땅에 남은 사람들은 감당하기 어려운 환난과 시험을 받겠지만 우리는 하늘로 들림을 받아서 예수님의 품에서 안식을 누리게 될 것이다. 우리 모두 시험을 면제받기를 소망한다. 

3)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셨다.

(계3:12)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 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 

건물에 기둥이 얼마나 중요한가? 기둥은 건물을 유지하고 지탱해주는 중요한 존재이다. 기둥이 약하면 건물이 무너진다. 빌라델비아 지역은 지진이 많이 일어나는 지역이다. 대지진으로 도시 전체가 무너진 적도 있었다. 그러나 기둥이 튼튼한 건물은 지진을 버텨낸다. 기둥의 중요성을 그들은 잘 안다. 

예수님은 빌라델비아 교회 성도들이 잘 이해할 수 있는 개념인 건물의 기둥으로 상급을 약속하셨다. 하나님 나라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신다는 것은 하나님 나라에서 매우 중요한 존재요 존귀한 존재로 삼으시고 높여주시겠다는 말씀이다. 또한 그 기둥에 하나님의 이름, 새 예루살렘의 이름, 예수님의 새 이름을 새겨주신다고 하셨다. 

어떤 사람은 유명 연예인의 사인을 받을 때 아예 자기 옷에 해달라는 사람도 있다. 하나님은 나를 기둥 같은 존재로 삼으시고 나에게 하나님과 예수님이 직접 친필 사인을 해주시겠다고 하신다. 마치 청와대 대통령으로부터 요직의 임명장을 받는 것과 같은 의미이다.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인가? 

빌라델비아 교회 성도들에게 예수님이 약속하신 복은 이처럼 크게 세 가지이다. 활짝 열린 문, 아무도 닫을 수 없는 열린 문, 구원의 문, 영생의 문, 천국의 문이다. 세상 종말의 시험을 면제해주신다. 천국에서 기둥 같은 존재로 삼아주신다. 어떤가? 동기부여가 되는가? 사모하는 마음이 생기는가? 사모하는 마음이 생긴다면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이다. 

자, 그러면 빌라델비아 교회 성도들이 어떻게 신앙 생활을 하였기에 이런 복을 허락받았을까? 

2. 빌라델비아 교회의 신앙

(계3:8)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였도다 

(계3:10)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키어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예수님의 말씀을 지키며 신앙을 저버리지 않았다. 또한 인내의 말씀을 지켰다. 

요약하면 그들은 적은 능력을 가졌음에도 적은 능력에 비해서 훌륭하게 말씀을 지켰다. 신앙을 지켰다. 또한 인내했다. 

빌라델비아 교회가 적은 능력을 가졌다는 말은 무엇일까? 성경이 자세히 말하지 않기 때문에 어떤 의미인지는 정확히 알 수가 없다. 다만 두 가지 가능성을 추측해볼 수 있다. 첫째 빌라델비아 교회 성도들의 숫자가 적었을 것이다. 두 번째는 성도들의 재정적 형편이 넉넉지 않았을 것이다. 

그 당시 교회와 성도들은 대부분 재정적으로 열악했다. 넉넉지 않은 형편 중에도 이웃 교회가 어려움에 처하면 구제 헌금을 보내주었다. 마게도냐 교회 성도들이 자신들도 어려운 형편 중에서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이 기근을 만났다는 소식을 듣고 바울 편에 구제 헌금을 보낸 적이 있다. 빌립보 교회 성도들도 자신들도 힘들게 살아가지만 복음을 전하는 바울 사도에게 선교 헌금을 보내서 바울의 마음을 감동시킨 일도 있다. 

빌라델비아 교회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교회 규모가 약하고 재정적으로 무척 어려웠지만 그럼에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아름다운 열매를 맺었던 것이다. 

그 결과 예수님이 그들을 위로해주실 목적으로 빌라델비아 교회를 괴롭히던 유대인들 중에서 몇 사람을 변화시켜서 교회 앞에 무릎을 꿇고 사죄하게 하는 일을 주셨다. 빌라델비아 교회 성도들이 적은 능력을 가지고 말씀을 지키고 신앙을 지키고 인내했기 때문이다.   

빌라델비아 교회가 빛나고 아름다운 교회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것이다. 그들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말씀을 지키며 인내했기 때문에 예수님께로부터 큰 복을 허락받았다. 오늘 우리에게 도전이 되는 것은 바로 이 말씀이다. 적은 능력을 가졌음에도 가진 능력에 비해서 말씀에 순종함으로써 풍성한 열매를 맺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우리도 빌라델비아 교회 성도들처럼 될 수 있을까? 말씀에 답이 있다. 비록 받은 능력이 적다할 지라도 불평하거나 낙심하지 말고 내게 주어진 환경 속에서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인내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면 나머지는 주님께 알아서 역사하시고 인도해주신다. 

3. 적은 능력을 가지고 열매맺은 사람들

성경에 보면 이런 예들이 많이 있다. 주님께 받은 능력이 적지만 적은 능력을 가졌음에도 하나님 말씀에 순종함으로써 풍성한 열매를 거둔 믿음의 선진들이 있었다. 

요셉을 생각해 보자. 요셉은 받은 능력이 무엇이었나? 그는 형들의 미움을 받고 애굽에 종으로 팔려갔다. 종의 능력이 무엇이 있겠는가? 주인이 시키는 대로 순종해서 일하는 것뿐이다. 요셉이 가진 능력을 꼽으라면 다른 사람보다 본인 스스로 꿈을 많이 꾸었고, 다른 사람 꿈을 꿈을 들으면 해몽을 잘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꿈 해몽하는 것도 요셉은 자신 스스로의 능력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항상 주변 사람들의 꿈을 듣고 나면 꿈의 해몽은 자기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있다고 고백했다. 

그래서 요셉은 다른 사람의 꿈을 듣고 나면 요셉은 하나님께 기도한다. 그러면 하나님이 해몽을 주신다. 그러다 보니까 왕의 술 관원의 꿈까지 해몽하였고, 그 일을 계기로 하여 애굽 왕의 꿈도 해몽하게 되었다. 그래서 애굽 왕의 총애를 받고 애굽의 총리대신의 자리에까지 올랐다. 

요셉이 총리대신에 오르기 위해서 대학을 졸업했나? 유학을 갔다 왔나? 그는 다른 사람의 꿈을 들으면 꿈의 해몽을 하나님께 여쭈었다. 해몽을 들으면 그것을 말해주었을 뿐이다. 단지 그것뿐이었다. 적은 능력을 가졌지만 말씀에 순종하고 인내했다. 애굽의 군대장관의 집에서 종살이 10년,  감옥살이 3년을 말씀에 순종하면서 인내했다. 그 결과 애굽의 총리대신이 되었다. 총리대신으로써 애굽의 7년 기근을 슬기롭게 극복하게 하였다. 자신의 부모, 형제 70명을 애굽으로 피신하도록 하였다. 70명의 가족이 430년 후에는 200만 명 이상의 대 민족으로 번성하게 되었다. 적은 능력을 가졌던 요셉 한 사람의 순종과 충성이 이런 열매를 맺도록 하였다.  

다윗을 생각해보자. 다윗은 처음부터 큰 능력을 받았는가? 그는 일개 양치기 소년에 불과했다. 그가 가진 능력은 열심히 양을 돌보는 것이었다. 그런 그가 블레셋의 골리앗 거인을 마주했을 때 물맷돌 한 개만을 가지고 골리앗을 물리쳤다. 어떻게 그런 일을 할 수 있을까? 그 물맷돌로 양을 곰과 사자로부터 지키기 위해서 사용했던 기술이었다. 

그런데 다윗은 하나님과 이스라엘을 조롱하는 골리앗을 가만히 두고 볼 수 없었다. 자신이 가진 능력은 물맷돌을 던져서 표적을 맞추는 것이었지만 그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담대히 나아갔다. 그 결과 사자나 곰이 아닌 적군의 장군을 물리쳤다. 그 결과 블레셋은 전쟁에 패하고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다윗은 양치기 소년이었고, 물맷돌을 던지는 적은 능력을 가졌지만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하나님을 의지하고 나아갈 때 놀라운 기적을 경험했다. 

하나님이 내게 주신 능력이 보잘 것 없고 적을지라도 다윗처럼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담대히 나아갈 때 우리는 골리앗을 쓰러뜨리는 것과 같은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양치기 소년 다윗이 했다면 우리도 할 수 있는 것이다. 

베드로를 생각해보자. 베드로가 받은 능력을 무엇이었는가? 그는 어부로서 갈릴리 바다에서 그물을 던져서 물고기를 잡는 능력만이 그의 유일한 능력이었다. 어디에 그물을 던지고, 언제 그물을 던지면 고기가 잡히는 지 아는 능력이 그가 받은 능력의 전부였다. 

그런데 베드로는 어떤 열매를 맺었는가? 그가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서 설교를 할 때 그 자리에서 3천명이 회개하고 세례를 받았다. 또 한 번은 5천명이 회개하고 세례를 받았다. 그는 예루살렘의 교회의 수장이 되었고, 또한 유대인의 사도로서 초기 기독교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감당하였다. 

적은 능력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베드로가 풍성한 열매를 거둘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말씀에 순종하였다. 인내로 충성하였다. 비록 받은 능력은 적었지만 베드로는 예수님의 말씀이라면 절대 순종하였다.   

예수님이 갈릴리 바닷가에서 그를 찾아오시어 말씀하셨다.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그 때 베드로는 배와 그물을 버려두고 즉시 예수님을 따라갔다. 그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풍성한 열매를 거둔 비결은 바로 이것이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말씀이라면 거친 바다를 향해서도 뛰어들었다. 그래서 물위를 걸어오시는 예수님을 향해서 본인도 바다 위를 걸은 적까지 있었다. 

마가의 다락방 사건 이후에 성령충만을 받은 베드로는 성전에 기도하러 올라 가다가 날 때부터 앉은뱅이로 살았던 불쌍한 거지를 보고는 이렇게 말했다. ]

(행3:6) 베드로가 가로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하고 

학교에서 배운 지식도 없고 받은 능력도 적었던 베드로였지만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령하고 나아갈 때 그는 앉은뱅이를 일으켜 세웠다. 그 일로 인하여 베드로의 설교를 들은 사람 5천명이 그 자리에서 회개하고 세례를 받았다. 적은 능력을 받았지만 말씀에 순종할 때 풍성한 열매를 거둔 것이다.

말씀을 맺겠다. 소아시아 일곱 교회 중에서 유일하고 책망을 받지 않고 오직 칭찬만 받았던 빌라델비아 교회. 예수님은 그 교회에 세 가지 복을 주셨다. 첫째는 열린 문을 그들 앞에 두셨다. 구원의 문, 영생의 문, 천국의 문. 이것보다 중요한 문이 어디에 있겠는가? 둘째는 세상 종말에 시험을 면제해주셨다. 셋째는 천국에서 기둥과 같은 존재로 세워주신다고 하셨다. 하늘의 상급을 말한다. 

그러면 빌라델비아 교회에 왜 세 가지 복을 주셨을까? 그들은 적은 능력을 받았음에도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충성했기 때문이다. 오늘 우리도 빌라델비아 교회와 같은 복을 받기 원한다면 우리도 적은 능력을 받았을지라도 낙심하고 실망하지 말고 지금 있는 나의 자리에서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인내하자. 요셉처럼 하나님이 우리에게 답을 주신다고 말하자. 다윗처럼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나아가자. 베드로처럼 하늘과 땅의 권세를 가지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나아가자. 그러면 하나님은 나에게도 풍성한 열매를 주실 것이다. 그래서 우리에게 세 가지 복을 주실 줄 믿는다. 나에게 절대 닫히지 않는 구원의 열린 문을 주시고, 종말에 시험을 면하게 해주시고, 천국에서 기둥과 같은 존재로 삼아주시고 면류관을 주실 줄 믿는다. 적은 능력을 가지고 풍성한 열매를 맺는 우리가 되기를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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