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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대림절] 보내신 이의 영광을 구하는 자 (요 7: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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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내신 이의 영광을 구하는 자 (요 7:1-24)


우리나라를 비롯한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전적으로 '국민의 선택'에 의하여 국가의 최고 통수권자를 뽑게 되지만, 국민의 지지를 많이 받는 사람일수록 국정도 더 잘 수행한다는 공식 같은 것은 결코 성립하지 않습니다. 
압도적인 표 차이로 당선되었다가도 임기 중 온갖 실정으로 인하여 퇴임할 때 즈음에 가면 그 지지율이 뚝 떨어지는 경우는 아주 흔한 일이고, 반면에 국가의 위기상황을 극복해 내거나 국가 발전에 큰 업적을 남긴 세계적인 지도자들의 경우를 보면 오히려 국민 여론의 거센 반대와 비판을 받는 가운데 자신의 소신을 끝까지 밀고 나가서 성공한 경우가 훨씬 더 많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한 나라를 크게 부흥시키고 후대에까지 명성을 남기는 위대한 지도자란 '국민이 선택을 잘 해서'라기보다는 '하나님께서 적시적소에 세워 주셔서' 나타나게 된다고 해야 옳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여전히 '자기의 요구를 충족시켜 줄 수 있는 왕'을 찾으려 하고 '자기의 마음에 맞는 대통령'만 뽑아 놓으면 만사가 잘 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초림하셨을 때에도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바로 그런 식으로 대했습니다. 
즉 예수님을 자기네의 정치적 기대에 부응해 줄 군주, 자기네의 경제적 요구를 만족시켜 줄 메시아로 기대하면서 왕으로 세우려고 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 문제는 예수님 공생애의 말기에까지 끊임없이 이어졌으며 그럴 때마다 예수님께서는 백성들이 당신에 대하여 가지는 그런 정치적 기대를 일축하셨는데, 오늘 본문 역시 그 대표적인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제 곧 성탄절을 맞이하게 되는 오늘 주일에 저와 여러분은 이 말씀을 통하여 예수님은 과연 왜 이 세상에 오셨으며 어떤 메시아가 되셨는지를 함께 상고해 보고자 합니다. 

1. 예수님은 인간사회를 유토피아로 만들기 위하여 추앙을 받은 '정치적 메시아'가 아니십니다. 

1절부터 5절의 말씀에 기록하기를 "1이 후에 예수께서 갈릴리에서 다니시고 유대에서 다니려 아니하심은 유대인들이 죽이려 함이러라 2유대인의 명절인 초막절이 가까운지라 3그 형제들이 예수께 이르되 당신의 행하는 일을 제자들도 보게 여기를 떠나 유대로 가소서 4스스로 나타나기를 구하면서 묻혀서 일하는 사람이 없나니 이 일을 행하려 하거든 자신을 세상에 나타내소서 하니 5이는 그 형제들이라도 예수를 믿지 아니함이러라"고 했습니다. 

이 사건은 "초막절"이 가까이 다가왔을 때에 일어났는데, 이 초막절이란 유대인의 '추수감사절'에 해당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로 그 다음해의 유월절에 수난을 당하셨으므로 이 사건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약 반년 전에 일어났던 일이었습니다. 
이때 즈음에는 예수님께서 "갈릴리에서 다니시고 유대에서 다니려 아니하셨다"라고 했는데, 그 이유는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죽이려"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여기서의 '유대인'이란 바로 바리새인과 사두개인과 제사장 등의 유대 종교지도자들을 가리키는 말로서 예수님에 대한 그들의 적의와 살기가 극에 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그런 적대 세력이 집결되어 있는 유대 지방에 다니지 아니하신 것은 그들을 두려워해서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하나님의 예정하신 구속사의 시간표에 따른 당신의 때가 아직 반년이나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 와중에 초막절이 다가오자 야고보, 요셉, 시몬 등 예수님의 육신의 "형제"들이 예수님에게 "당신의 행하는 일을 제자들도 보게 여기를 떠나 유대로 가소서"라고 뜻밖의 건의를 했습니다. 
그들이 말한 '예수님의 행하는 일'이란 바로 앞 장에 나오는 '오병이어의 사건' 같은 기적을 가리킵니다. 
그것은 당시 거의 모든 유대인들이 가지고 있던 메시아에 대한 기대감을 폭발시키는 도화선과 같은 사건이었으며, 그 결과 그 디베랴 언덕에 모였던 군중들은 당장 예수님을 잡아서 억지로 임금을 삼으려는 시도까지 했던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의 형제들 역시 백성들이 예수님을 그처럼 정치적 메시아로 추앙하려고 하는 분위기를 잘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말 중에 "제자들도 보게"라고 한 것은 '열두 제자'들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예수님을 추종하며 따르는 대중'을 가리킵니다. 
즉 그 예수님 형제들의 건의는 "형님, 지금 당신께서 보여 주시는 일을 이런 갈릴리 촌구석에서만 해서야 무슨 효과가 있습니까? 그러지 말고 우리 민족의 정치1번지인 유대로 가서 많은 대중 앞에서 이런 기적을 한번 베풀어 주시면 순식간에 엄청난 추종자와 지지자들을 끌어 모을 수 있을 것입니다."라는 의미였습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덧붙이기를 "스스로 나타나기를 구하면서 묻혀서 일하는 사람이 없나니... 자신을 세상에 나타내소서"라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당신께서 정치적인 큰 뜻을 품고 있다면 이제 슬슬 출사표를 던지고 대중 앞에 나타나야 합니다.'라는 뜻이었습니다. 
마치 오늘날 '당신이야말로 국민의 여망과 기대에 부응하는 이 나라의 지도자가 되어 주셔야 합니다.'라고 대선 출마를 부추기는 것과 똑같은 형국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가운데 5절은 "이는 그 형제들이라도 예수를 믿지 아니함이러라"고 아주 의미심장한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형제들조차 예수님을 '성자 하나님'으로는 믿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물론 예수님께서 부활 승천하신 후에는 이들도 예수님을 믿게 되었지만, 이 당시까지는 다른 대부분의 유대인들과 마찬가지로 예수님을 그저 자기 민족을 로마의 압제에서 해방시켜 줄 정치적 구세주로만 기대하고 있었고 그래서 예수님께 그런 건의를 했던 것이었습니다. 

그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은 무엇이었습니까?
6절 이하 13절에 "6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때는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거니와 너희 때는 늘 준비되어 있느니라 7세상이 너희를 미워하지 못하되 나를 미워하나니 이는 내가 세상의 행사를 악하다 증거함이라 8너희는 명절에 올라가라 나는 내 때가 아직 차지 못하였으니 이 명절에 아직 올라가지 아니하노라 9이 말씀을 하시고 갈릴리에 머물러 계시니라 10그 형제들이 명절에 올라간 후 자기도 올라가시되 나타내지 않고 비밀히 하시니라 11명절 중에 유대인들이 예수를 찾으면서 그가 어디 있느냐 하고 12예수께 대하여 무리 중에서 수군거림이 많아 혹은 좋은 사람이라 하며 혹은 아니라 무리를 미혹하게 한다 하나 13그러나 유대인들을 두려워하므로 드러나게 그를 말하는 자가 없더라"고 기록했습니다. 

지금 당장 유대로 가서 정치적 꿈을 펼치라고 종용하는 당신의 형제들에게 예수님께서 응답하신 첫 마디는 "내 때는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거니와 너희 때는 늘 준비되어 있느니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즉 여기서 예수님께서 '내 때(kairos)'라고 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구속사 완성을 위하여 미리 예정해 놓으신 '적시'(適時, the right moment) 즉 정확한 시간을 가리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수난을 당하시고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실 때는 아직 반년이나 남아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내 때는 아직 이르지 아니했다.'고 하셨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너희 때는 늘 준비되어 있느니라"는 말씀은 무슨 뜻이겠습니까?
이것은 바로 예수님의 형제들이나 유대인들처럼 메시아가 오기만 하면 자기네들의 요구와 소원이 당장 이루어질 것이라고 기대하던 자들의 성급한 마음을 가리키는 말씀입니다. 
즉 그들은 '하나님의 계획과 시간표' 따위에 대해서는 아무 관심도 없고 그저 항상 자기네들이 원하는 때, 즉 '당장'이라는 한 가지 때에만 집착하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그처럼 예수님은 사람들이 원하는 대로 맞추어 주지 않으실 뿐 아니라 '하나님의 때'는 전혀 안중에도 없는 세상 사람들의 행사를 "악하다"고 정죄하시는 분이셨고, 그런 까닭에 세상으로부터 "미움"을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대통령으로 뽑아 놓은 후에 그 대통령이 매사를 자기 욕심대로, 그것도 당장 해 주지 않으면 온갖 비난과 욕설을 퍼붓기 일쑤인 것이 대중인데, 예수님 역시 똑같은 일을 당하셨던 것이었습니다. 

그런 후에 예수님께서 "나는 이 명절에 아직 올라가지 아니하노라"고 하셨는데, 이 말씀은 '지금 당장은 올라가지 않겠다.'는 뜻입니다. 
즉 초막절을 맞이하여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순례자들과 같이 행동하지 않으시겠다는 뜻으로서, 이것 역시 메시아에 대하여 잘못된 기대감을 가지고 있는 군중들을 자극시키지 않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 형제들이 명절에 올라간 후"에 "나타내지 않고 비밀히"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던 것이었습니다. 

그 초막절 기간 중에 "유대인들이 예수를 찾으면서 그가 어디 있느냐"라고 한 것은 바로 아까 언급했던 대로 바리새인과 사두개인과 제사장 등 예수님에 대하여 적대적인 유대 지도자들이 예수님의 행적을 예의주시하고 있었음을 가리킵니다. 
반면에 "무리"는 예수님의 제자도, 예수님의 대적도 아닌 일반 군중으로서 그들 가운데 "수군거림이 많았다"는 것은 예수님에 대한 잘못된 기대감으로 들떠 있었음을 가리킵니다. 
하지만 그 군중들은 "유대인을 두려워하므로" 즉 유대 사회의 실권을 잡고 있던 종교지도자들이 예수님을 싫어하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의 미움을 사게 될까 두려워서 예수님에 대하여 "드러나게 말하는 자"는 없었던 것이었습니다. 

이런 일련의 사건들은 예수님 당시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 예수님을 오해하고 있었음을 보여 줍니다. 
예수님의 형제들이나 대중들은 예수님을 오직 '정치적 메시아'로만 기대하고 있었으며, 유대의 종교지도자들 역시 예수님을 자기네의 기득권을 위협할 '정치적 요주의 인물'로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들 중 아무도 예수님을 오직 '하나님의 정하신 때'에 맞추어 하나님의 일을 행하시는 구세주로 깨닫지 못했던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처럼 '사람의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사람이 뽑아 놓은 정치적 메시아'가 아니십니다. 
예수님은 무슨 청년 실업자 해결, 경기 회복, 교육 정상화, 국민 화합, 국가 안보 따위를 위해서 세워진 세속적 군주가 결코 아니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국민의 열망에 부응하여 출마하겠다.'라는 식으로 '자기를 드러내지' 않으셨고 오히려 그런 식으로 당신을 추앙하려는 무리를 피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새 대통령에게 바라는 것'들을 끝도 없이 열거하는 국민들에게 그런 기대에 어긋나지 않는 메시아가 되겠다고 공약해 주시면서 우리의 구세주가 되신 분이 절대로 아니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이 요구하는 것을 '아무 때'나 즉석에서 행해 주시기 위하여 이 세상에 오시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기 때가 늘 준비되어 있는' 온 '유대'의 대중이, 당신의 '제자'와 같은 측근들이, 아니 당신의 '형제'라는 혈육들이 아무리 조급하게 굴고 부추겨도 그런 인간적인 소원풀이를 해 주시려고 초림하신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서 정하신 일을 하나님께서 예정하신 때에 이루기 위하여 화육강세하신 메시아이심을 깨닫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 예수님은 하나님의 계시 사역과 구원 사역을 완성하시기 위하여 '보내심을 받은 메시아'이십니다. 

14절 이하 19절의 말씀에 "14이미 명절의 중간이 되어 예수께서 성전에 올라가사 가르치시니 15유대인들이 기이히 여겨 가로되 이 사람은 배우지 아니하였거늘 어떻게 글을 아느냐 하니 16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 교훈은 내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것이니라 17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 하면 이 교훈이 하나님께로서 왔는지 내가 스스로 말함인지 알리라 18스스로 말하는 자는 자기 영광만 구하되 보내신 이의 영광을 구하는 자는 참되니 그 속에 불의가 없느니라 19모세가 너희에게 율법을 주지 아니하였느냐 너희 중에 율법을 지키는 자가 없도다 너희가 어찌하여 나를 죽이려 하느냐"라고 기록했습니다. 

"명절의 중간"이란 7일 동안 계속되는 초막절의 중간 기간을 가리키는데, 이 때에 예수님께서 "성전에 올라가사 가르치기" 시작하셨습니다. 
그러자 유대인들은 "이 사람은 배우지 아니하였거늘 어떻게 글을 아느냐"라고 하면서 "기이히" 여겼습니다. 
여기서 유대인들이 말하는 "글"이란 바로 '거룩한 말씀'(sacred letters) 즉 구약성경을 가리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랍비에게서 정식으로 고등교육을 받은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구약의 예언을 가지고 메시아에 대하여 실로 깊고도 오묘하게 가르치시는 것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런 유대인들에게 예수님께서는 "내 교훈은 내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것이니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가르침이 '스스로 깨닫게 된 도'나 '다른 스승에게서 배운 학식'이 아니라 전적으로 '나를 보내신 이의 것' 즉 '하나님의 말씀과 뜻과 계시'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런 후에 연이어서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 하면 이 교훈이 하나님께로서 왔는지 내가 스스로 말함인지 알리라"고 하신 대로 '하나님의 뜻'과 '예수님의 말씀'은 항상 정확하게 일치하는 것이었습니다. 
즉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요구와 기대'를 충족시켜 주기 위하여 오신 메시아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사람에게 '하나님의 진리'를 알려 주고 그 말씀대로 살게 해 주시기 위하여 하나님께로부터 보냄을 받은 메시아이심을 스스로 천명하신 것이었습니다. 

반면에 "스스로 말하는 자는 자기 영광만 구하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바리새인이나 사두개인들은 율법을 빌미로 해서 사실상 '자기 말을 하는 자'들이었습니다. 
마치 온갖 공약과 선동으로써 결국은 '자기 영광'을 구하려는 세상의 정치가들과 같았던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들과는 달리 오직 "보내신 이의 영광을 구하는 자"이셨고 그래서 "참되며 그 속에 불의가 없는" 분이셨습니다. 
  
랍비들은 제자들 앞에서 권위를 세우기에 급급했고 제사장들은 백성 앞에서 거룩한 사람인 척하며 스스로를 높이기에 바빴습니다. 
예수님은 그처럼 '자기 영광'을 구하려는 인간사회의 지도자들과는 달리 오직 당신을 '보내신 이' 즉 하나님의 영광만을 높이시는 메시아이신 까닭에 그 어떤 욕심도 없이 늘 진실하신 분이셨던 것이었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너희 중에 율법을 지키는 자가 없도다"라고 책망하신 것처럼 유대의 종교지도자들은 '모세의 율법'을 백성들에게 제대로 가르치기는커녕 본인조차 제대로 준수하지 못한 실패자가 되었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뜻과 교훈'을 정확하게 중재해 주시기 위하여 오신 예수님만이 그 율법을 '일점일획도 틀림없이 완성하시는' 메시아가 되셨던 것이었습니다. 
초막절에 예루살렘에 모인 군중들의 기대와 선동적인 분위기가 무르익는 가운데서도 예수님께서는 오직 성전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 주셨을' 뿐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는 '계시의 완성자'로서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메시아이시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어지는 20절부터 24절에 기록하기를 "20무리가 대답하되 당신은 귀신이 들렸도다 누가 당신을 죽이려 하나이까 21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한 가지 일을 행하매 너희가 다 이를 인하여 괴이히 여기는도다 22모세가 너희에게 할례를 주었으니 (그러나 할례는 모세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조상들에게서 난 것이라) 그러므로 너희가 안식일에도 사람에게 할례를 주느니라 23모세의 율법을 폐하지 아니하려고 사람이 안식일에도 할례를 받는 일이 있거든 내가 안식일에 사람의 전신을 건전케 한 것으로 너희가 나를 노여워하느냐 24외모로 판단하지 말고 공의의 판단으로 판단하라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한 가지 일을 하매 너희가 다 이를 인하여 괴이히 여기는도다"라고, 당신을 향한 적대감과 살의가 발생하게 된 동기를 일러 주셨습니다. 
그 '한 가지 일'이란 앞서 5장에 나온 것으로서 바로 베데스다 못가에서 38년 된 병자를 고쳐 주신 사건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 치유의 기적을 '안식일'에 행했다고 해서 유대인들은 바로 그때부터 예수님을 "핍박"(요 5:16)했던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사실상 유대의 종교지도자들조차 안식일에도 허용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바로 "모세가 전한 할례"인데 이것은 생후 8일 째 되는 날에 시행하게 되어 있었고, 그러다보니 그날이 하필이면 안식일에 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안식일에는 일정한 거리 이상을 여행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아궁이에 불을 피우는 것까지도 '노동'이라고 금지했던 랍비들이 이 할례만은 안식일에 거행해도 괜찮다고 허용해 주었습니다. 
랍비들의 '구전 율법'으로서 성경에 '장로들의 유전'이라고 언급되고 있는 미쉬나에 보면 "할례는 안식일의 규례를 준수하는 것보다도 더 우월할(override) 정도로 위대하다."라고 확인까지 해 주었던 것입니다. 
그 이유는 두말할 것 없이 할례란 것이 '선한 일'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로 그 사실을 일깨워 주시면서 "내가 안식일에 사람의 전신을 건전케 한 것으로 너희가 나를 노여워하느냐"라고 반문하신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이 행하신 기적은 그 병자의 '전신'(entire man) 즉 영혼과 육신을 동시에 살리신 것으로서, 당연히 할례보다 오히려 더 선한 일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안식일을 어겼다고 "노여워"하면서 격렬한 적대심과 살기를 품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외모로 판단하지 말고 공의의 판단으로 판단해" 보면, 예수님께서는 어디까지나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선한 일'을 행하시려 이 세상에 오신 메시아이신 것이 명백했던 것이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하나님의 계시'의 완성자로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으신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자기의 학설을 논증하고 학위나 노벨상의 명예를 받으려고 하는 학자가 아니십니다. 
예수님은 오직 '말씀이 육신이 되어' 화육강세하신 것이며 그 결과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신 메시아이신 것입니다. 

사람들은 신의 경지란 너무 깊고 심오해서 인간의 능력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길이 없는 것으로 여깁니다. 
혹은 그와 정반대로 사람도 스스로 노력하면 신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둘 다 잘못된 것입니다. 
전자는 '스스로 하나님을 찾으려 하지 않는' 악에 빠져 있는 상태이며, 후자는 '자기 영광만을 구하는' 교만의 소치일 뿐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계시의 완성자'로 오신 예수님을 통해서만 저와 여러분은 '그 깊도고 측량할 수 없는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오묘함'을 배우고 깨닫고 순종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또한 '하나님의 선하신 일' 즉 구속사 완성을 위해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으신 메시아이십니다. 
예수님은 사람의 의견을 수렴하기 위하여, 혹은 사람의 중지를 모아 민주적인 사회를 구현하려고 오신 군주가 절대로 아니십니다. 
예수님은 오직 당신을 거역하고 저주에 빠진 죄인을 용서하시고 구원해 주시려는 하늘 아버지의 이 지극한 선을 구현하기 위해서 이 세상에까지 보내심을 받은 '독생성자'이신 것입니다. 

사람들은 신을 자신의 심부름꾼 정도로 여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신을 섬긴다고 하면서도 사실은 신과 조건을 따지면서 흥정을 하려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기를 위한 신' 곧 온갖 인본주의 우상들을 만들어 내면서 그것을 종교생활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종교란 오직 하나님을 더욱 노엽게 할 뿐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선하신 뜻과 계획'을 완성하시기 위하여 우리에게 '임마누엘'로 찾아오신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는 것만이 바른 신앙이며 유일한 참 종교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인류가 낳은 현자'가 아니며 '세상이 원하는 구세주'도 결코 아니십니다. 
예수님은 오직 하나님께서 당신의 살아 계심을 우리에게 보여 주시려고 보내신 '계시의 완성'과 또한 하나님께서 죄인을 구원해 주시기 위하여 보내 주신 '구속사의 완성'을 위해 '하나님께서 보내신 메시아'이심을 굳게 믿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 제가 얼마 전에 '메시아는 없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본 적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을 부인하는 종교적인 의미가 아니라 '현실 정치에 있어서 모든 사람들을 다 만족시켜 줄 수 있는 국가 지도자란 있을 수 없다.'라는 의미입니다. 
정말 공감이 가는 말이었습니다. 
세상의 그 어떤 성군이, 그 어떤 훌륭한 대통령이 자기 나라의 각계각층의 요구를 다 충족시켜 줄 길이 있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여전히 대통령 선거 때만 되면 그런 '정치적 메시아'를 헛되이 기대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들과 마찬가지로 그런 '어리석고 욕심 많은 대중'은 이 세상 끝날 때까지도 그들이 원하는 구세주를 결코 찾지 못할 것입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저와 여러분에게, 온 인류에게 진정하고도 유일한 메시아로 오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 때문에 '하나님의 깊고 넓고 지극히 높으신 것'을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바로 '계시의 완성자'로 오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오직 예수님 때문에 '하나님께서 행하신 가장 선하고도 고마운 은혜'를 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바로 '구원의 완성자'로 오셨기 때문입니다. 

그런 까닭에 예수님께서는 이 성탄절을 가리켜서 '내 때'이지 '너희들의 때'가 아니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의 탄생은 당장 도깨비 방망이 같은 복이 터지기만을 성급하게 기다리는 인간의 요구를 충족시켜 주는 절기가 결코 아닌 것입니다. 
예수님의 탄생은 '태초부터 계신 말씀'이 화육강세하신 사건이며 '창세기 때부터 언약하신 여자의 후손'이 그 정하신 때가 되매 베들레헴 말구유에까지 친히 내려오신 '하나님의 구속사의 정점'입니다. 
이 성탄절을 통하여 '사람의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한 왕'으로 세움을 받은 것이 결코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그 예정대로 성취하시는 메시아'로 보내심을 받은 예수님을 큰 기쁨과 감사로 영접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석기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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