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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네가 낫고자 하느냐? (요 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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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낫고자 하느냐? (요 5:1-8)

1.그 후에 유대인의 명절이 되어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니라 2.예루살렘에 있는 양문 곁에 히브리 말로 베데스다라 하는 못이 있는데 거기 행각 다섯이 있고 3.그 안에 많은 병자, 맹인, 다리 저는 사람, 혈기 마른 사람들이 누워 (물의 움직임을 기다리니 4.이는 천사가 가끔 못에 내려와 물을 움직이게 하는데 움직인 후에 먼저 들어가는 자는 어떤 병에 걸렸든지 낫게 됨이러라) 5.거기 서른여덟 해 된 병자가 있더라 6.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래된 줄 아시고 이르시되 네가 낫고자 하느냐 7.병자가 대답하되 주여 물이 움직일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주는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8.예수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시니

오늘 본문은 예수님이 행하신 일곱 가지 이적 중 세 번째 이적입니다. 이것은 베데스다에서 일어난 일인데, 가끔 이 연못의 물이 움직일 때 제일 먼저 들어간 사람의 병이 낫는다는 전설이 있었습니다. 이 전설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는데, 원래 성경에 있던 것이 아니라 이해를 돕기 위해 괄호 안에 넣어 나중에 추가한 것입니다. 가끔 물이 움직일 때 먼저 들어간 사람이 낫는다는 것으로 보아 잘 안 나았거나 알 수 없는 사실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 연못 주변에는 병자들, 다리 저는 사람, 맹인들 등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이 베데스다 연못을 보면서 오늘날 우리가 사는 세상의 축소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따지고 보면 이 세상에는 온전한 사람이 없습니다. 모두 결함을 가지고 있습니다. 육체가 건강하면 정신적으로 병들었고, 정신이 건강하면 육체가 병들었기도 합니다. 멀리서 보면 문제가 없는 것 같지만 모두가 아픔과 고통을 가지고 있습니다. 신경성 환자, 중독 환자들도 많습니다. 중독도 스스로 문제를 풀 수 없는 불구의 몸과 같습니다. 

그런데 이 연못가의 사람들은 몸도 불편한데, 가끔 물이 동할 때 먼저 뛰어들어가야 한다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언제 물이 동할지 알 수도 없고, 누군가 먼저 뛰어들어가면 그 기회가 언제 다시 올지 모르는 불투명한 상태에 있었습니다.

‘베데스다’라는 히브리어의 뜻은 ‘자비의 집, 은혜의 집’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 자비와 은혜의 집에 모여 있는 병자들은 실제적으로 자비와 은혜 밖에서 고통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오늘날 우리의 모습과 비슷합니다. 거기에 가면 희망이 있을 것 같고 문제가 해결될 것 같지만, 정작 해결 받지 못하고 고통의 문제가 그대로 있으면서 막연한 희망 속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오늘 이 베데스다 연못에 주님이 찾아오셔서 38년 된 병자를 만나주셨습니다. 38년이라는 숫자에서 주는 느낌은 ‘불가능’입니다. 혹시 병상에서 1년 정도 누워있어 본 경험이 있습니까? 병상의 1년도 굉장히 긴 시간인데, 38년은 엄청난 시간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절망을 볼 수 있습니다. 그는 예수님께 이렇게 하소연합니다. “주여 물이 움직일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주는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요 5:7)” 자신은 시도조차 못 하고 막연한 기대를 가지고 지금까지 왔다는 것입니다. 스스로는 들어갈 수 없고 도와줄 사람도 없는 상황 속에서 살아온 것입니다. 절망입니다. 

실패를 자주 경험한 사람들의 마음을 들여다보면 어떤 것에도 기대를 하지 않습니다. 계속 실패가 반복되어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지지 못합니다. 그래서 실패보다 실패의식이 더 무서운 것입니다. 당장의 문제 해결에 급급하고 멀리 내다볼 시야가 생기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38년 된 병보다 더 무서운 것은 굳어질 대로 굳어진 마음입니다. 

전신 불구가 된 경우, 부상 후 1~2년이 가장 무섭다고 합니다. 행복에 대한 기대치가 원초적 수준으로 떨어져서 마음이 드러누워 어떤 희망도 가지지 않는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 병자에게 주님께서 다가오셔서 이상한 질문을 던지십니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 너무도 당연한 질문입니다. 주님은 무슨 의도로 이런 질문을 하셨을까요? 분명히 의도가 있었을 것입니다. 

이 질문은 병자에게 한 것이지만, 우리에게 던진 질문이라고 생각해보십시오. 이 질문은 당연한 것 같지만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38년 동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사람의 마음상태가 어떨까요? 1,2년도 아니고,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만성적인 병자로 살아온 사람들도 예전에는 낫고자 하는 마음이 있어서 무언가 노력을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실패하고 기대가 무너진 것이 한두 번이 아니고, 희망이 절망으로 바뀌는 반복이 38년이 된 것입니다. 이렇게 만성적인 절망과 실패는 스스로 자기는 안 된다는 결론을 가집니다. 이런 상태 속에 있는 병자에게는 희망의 불씨가 완전히 꺼져 있습니다. 자신의 그런 삶에 오히려 익숙해져 있습니다. 인간은 고통이나, 불편한 것도 오래되면 익숙해지고 운명으로 받아들입니다. 벗어나고 싶은 환경에서 돌아섰다가도 앞으로의 길이 보이지 않으면, 익숙함 때문에 다시 그 환경으로 돌아갑니다. 죄를 지어도 처음에는 치를 떨지만, 그것에 빨리 익숙해집니다. 화장실에 처음에 들어갈 때는 냄새가 나서 죽을 것 같지만, 조금 있으면 익숙해지는 것과 같습니다. 

알코올 중독의 피해가 크지만, 술을 끊으면 다시 미련이 생깁니다. 변화하고 싶고 금단 현상도 있지만, 술이 주는 쾌락이 있고, 술친구를 잃어버리는 것과 변화에 대한 두려움으로 익숙한 것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그래서 변화를 원하지만 동시에 변화를 원하지 않는 마음이 공존하는 모순을 가지고 있습니다. 38년 된 병자도 그 삶에 익숙해진 그 삶의 고리는 굉장히 강합니다. 우리 삶에도 반드시 변화가 필요하지만, 우리는 그럭저럭 살아갑니다. 정말 이래서는 안 된다는 절규가 있었는데 나이가 들어갈수록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주님께서 38년 된 병자에게 ‘네가 낫고자 하느냐’는 질문을 하신 것은 ‘정말 지금 네 삶에 변화가 일어나기를 원하느냐’고 하시는 것입니다. 이 질문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변화가 일어나는 것은 진정으로 그 변화를 원하는 곳에서 일어납니다. 익숙하고 운명 같은 삶에서 그것을 걷어내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일상에 매여 평생을 살아갑니다. 실제로 그 당시 병자들 중에는 낫기를 원하지 않는 사람도 있었다고 합니다. 나아보았자 더 궂은일을 하면서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차라리 사람들에게 동정을 받으며 동냥으로 살아가는 것이 더 편해진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영적으로 변화를 원하지만, 현실은 그대로입니다. 그렇다면 정말 변화를 원했느냐고 질문을 던질 수 있습니다. 변화를 원할 때 어떤 것으로 힘들어질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변화를 가로막아 스스로 결론을 내리고 이대로 살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변화보다 현실과 타협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신의 삶에 변화를 추구하면 현실에 붙잡힌 고리를 끊고 새로운 시도를 하기보다는, 현실과 타협하며 안주하는 경우가 더 많은 것입니다. 

오늘 주님께서 너의 삶이 진정으로 새롭게 되길 원하느냐고 우리에게 묻고 계십니다. 38년 된 질병보다 더 무너진 마음을 보신 것입니다. 그 깊은 내면을 터치하는 것입니다. 몸의 질병보다 마음의 병이 훨씬 더 깊습니다. 어떤 역사가 일어나려면, 가장 먼저 마음에서 불이 붙어야 합니다. 꽁꽁 얼어붙었거나 닫혀져 이미 자신의 삶에 대해 어떤 결론을 가지고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으려고 하는 마음 안에는 기적이 일어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이런 질문을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은 내면과의 싸움입니다. 우리 안에 해묵은 상한 감정들로 인해 마음이 닫혀있다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우리 안에 불안과 절망으로 만들어져 있는, 표현하지는 않지만 덮어놓고 살아가는 그 영혼을 향해 주님이 질문을 던지십니다. “네가 정말 변화되기 원하느냐, 지금의 삶을 정리하기를 원하느냐” 주님은 병자 안에 깊은 반응이 일어나기를 원하면서 터치하시는 것입니다.

이 질문은 병자의 마음을 살리기 원하시는 주님의 간절한 마음입니다. 우리가 예배를 통해서 할 일은 우리 마음의 문이 열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다 보면 수많은 좌절과 실패와 절망을 경험하면서 이제는 희망이 없고 아무 일도 일어날 수 없다며 세상이나 하나님에 대해서 부정적이고 닫힌 마음으로 살아갑니다. 그러나 예배를 드리는 가운데 여러분의 마음이 열리기를 바랍니다. 

열린다는 것은 내 스스로 결론짓던 것에서 하나님에 대한 기대감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그 열린 곳으로 미리 준비된 풍성한 하나님의 은혜가 밀고 들어오는 것입니다. 자기 진단과 절망으로 무너진 마음 안에는 아무 일도 일어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 앉는 순간, “하나님!”하는 외마디 외침이 있다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기대감, 내 영혼이 하나님 앞에 반응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의 역사의 출발입니다. 

오늘 본문의 핵심은 베데스다 연못에 주님이 찾아오셨다는 것입니다. 은혜의 집이라는 베데스다에서 병자들은 물에 들어가기 위해 애를 쓰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한 번도 목적을 이루지 못한 채 절망하고 있는 이 모습은 은혜의 모습과는 전혀 다릅니다. 은혜의 반대는 인간의 노력과 행위입니다. 자기 스스로 수많은 노력을 했지만 반복되는 실패와 절망을 경험한 베데스다에 주님이 찾아오셨습니다. 일방적으로 찾아와서 간단하게 한 말씀을 하십니다. “일어나라” 그때 “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가니라”고 했습니다. 

‘곧’은 38년과 대조를 이룹니다. 38년의 고통 속에 살았던 이 사람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는 순간, 일어납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파워는 굉장히 강력하기 때문에 그것이 밀려오면 단숨에 문제가 해결되는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38년의 무게가 한 번에 날아가는 이것이 바로 은혜입니다. 몇십 년 묵은 문제도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면 한 번에 해결됩니다. 복잡하지 않습니다. 

여러 사람들의 간증을 들어보면, 한마디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말로 설명하기는 어려운 것은 논리를 뛰어넘은 하나님의 독특한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우리 삶에 복잡한 문제들이 수십 년 동안 얽혀있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면 단숨에 역전되는 역사가 일어날 줄 믿습니다.

오늘 우리는 한 해를 정리하는 시간에 이르렀습니다. 한 해 동안 여러분이 꿈꾸던 것이 현실로 되었습니까? 정리하고 싶었지만, 여전히 나를 붙들고 힘들게 하는 것들이 있을 것입니다. 이번에 특별새벽기도에 이런 기대를 하고 싶지 않으십니까? 하나님의 은혜를 만나기 전에는 복잡하지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면 간단합니다. 여러분의 삶에도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면 되는 것입니다. 오늘 이 은혜의 역사가 여러분에게 임하기를 바랍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인간의 죄의 문제를 단번에 해결하였습니다. 인류의 모든 죄가 단 한 번에 완전히 해결되었습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오늘도 우리 삶에 모든 문제가 단 한 번에 해결되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일어나라”고 하십니다. ‘네 자리’가 무엇일까요? 병자가 38년 동안 깔아뭉갰던 자리입니다. 원망과 탄식이 베여 있습니다. 자신의 힘으로는 그 자리를 치울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 자리를 들고 일어나라고 하십니다. 오늘 우리 모두에게 이런 자리가 있을 것입니다. 누구에게나 나를 주저앉게 하고 절망하게 하는 자리가 있습니다. 오랜 세월 동안 힘들게 하고 변화 없이 살게 했던 운명의 자리를 깔고 살아온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38년은 얼마나 억울한 시간입니까. 자리를 깔고 막연하게 도움을 기다리며 세월을 보낸 것이 얼마나 억울합니까. 그것은 자신의 운명을 다른 사람에게 맡기는 도박과 같습니다. 

우리 삶은 요행이나 다른 사람에게 내 인생을 맡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 아래 놓인 인생이 되어야 합니다. 인생은 막연한 기대감이나, 나를 도와주지 않는 사람에 대해 원망과 불평도 할 필요가 없습니다. ‘은혜의 집’에서 누가 먼저 들어갈 것인가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 것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우리 인생에 하나님이 찾아오시면 그 모든 것이 종결될 줄 믿습니다. 

오늘 베데스다에 주님이 찾아오신 것이 은혜입니다. 은혜는 내가 구해서 받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 편에서 허락하신 것입니다. 오늘 주님이 우리에게 질문을 하십니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 그 주님의 음성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그동안 절망과 실패 속에서 스스로 기대를 끊어버리고 안 된다고 생각하고, 불가능이라고 말했던 그 영역에 주님이 찾아오셔서 말씀하십니다. 우리의 무능력을 고백하고 주의 은총을 붙잡아 내 마음을 열면, 주께서 역사하셔서 내가 할 수 없던 일들이 해결될 줄 믿습니다. 우리 안에 찾아오신 주님을 만나게 되길 바랍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할 때, 어떤 영적 집회를 앞두고 우리 마음의 태도가 상당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특새 또 하네”, “다음에 또 하겠지”가 아닙니다. 우리 삶에 주어진 기회를 볼 때 어떤 마음으로 열려있느냐에 따라서 우리가 받는 은혜의 강도가 달라집니다. 한 해가 저물어 가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네가 정말 그 문제가 해결되기 원하느냐”, “네 인생이 새롭게 되기 원하느냐”고 하실 때, 변화 없는 나의 삶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기 바랍니다. 

우리는 변화되어야 합니다. 새로워져야 합니다. 우리 인생에 너무 오랫동안 가지고 있어서 그 문제를 문제가 아닌 것처럼 생각하지만, 그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인생을 인생답게 살지 못하는 경우가 너무나도 많이 있습니다. 우리가 이제 주님 앞에 마음을 열고, “주님이 필요합니다. 찾아와 주시기 원합니다.” 하고 우리 마음을 드릴 때, 이전에는 상상할 수 없던 은혜의 세계로 주께서 우리를 인도해주실 줄 믿습니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라고 질문을 던지는 주님의 의도는 무엇일까요? 나는 너를 낫게 하고 싶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찾아오셔서 말씀하십니다. 네가 정말 낫기를 원한다면 내가 낫게 해 주겠다고 하십니다. 많은 사람들은 겉으로는 낫기를 원하고 변화되기 원한다고 말하지만 정말 변화를 원하지는 않습니다. 이미 자기 인생에 결론을 내려버리고, 하나님이 하시는 것을 원하지 않는 인생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오늘 여러분의 마음이 하나님 앞에 충분히 열리기를 바랍니다. 내가 낫기를 원하고 변화되고 새롭게 되길 원한다는 간절한 마음으로 마음을 열고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시기를 바랍니다. 이전과는 다른 삶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지금의 인생보다 훨씬 더 위대한 인생으로 이끌어주실 하나님을 기대하며 모든 것을 맡기고 역사해주시기를 원하는 갈망을 드릴 때 주님께서 우리 가운데 마음껏 역사하시고 놀라운 일을 행하실 줄 믿습니다. 

하나님은 놀라운 기적을 행할 수 있는 분입니다. 우리 삶을 이전과 다르게 바꿀 수 있는 능력이 있는 분입니다. 그러나 우리 마음이 문제입니다. 우리 마음이 스스로 불가능이라는 딱지를 붙이고 하나님에 대해서 전혀 기대하지 않고 살아간다면 그것은 38년 된 병자처럼 사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삶에 하나님께서 마음을 바꾸기 원하시고 변화를 돕기 원하십니다. 마음을 여는 사람에게 역사하십니다. 오늘도 기적은 일어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역사하시면 한순간에 바뀌는 일이 일어납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너무나도 강력합니다. 너무도 오랫동안 나를 칭칭 감고 있는 문제 때문에 나도 이제 스스로 할 수 없다고 포기한 분들이 계십니까? 포기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변화되기 원한다는 고백이 가슴에서 일어나 그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낫는 것이 축복인데도 두려움으로 인해 변화를 원하지 않는 태도가 있다면 그것을 주님 앞에 가져가십시오. 주님은 가장 완전하고, 가장 아름답고, 멋있게 우리 인생을 바꿀 수 있는 분입니다. 때로는 그 변화로 인해 어떤 것을 잃어버리게 될지라도 주님은 내 인생을 가장 완벽하고 멋있게 회복시키실 것을 신뢰하기 바랍니다. 두려워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주님 앞에 마음을 활짝 열고 주님을 바랄 때 우리 인생에 무거운 짐이 벗겨지고 새롭게 하시는 회복이 일어날 줄 믿습니다. 시편 23편의 다윗의 경험이 우리의 경험이 될 수 있습니다. 그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그런 기대감을 가지고 나아갈 때, 주님이 반드시, 응답해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생이 지금보다 훨씬 더 나은 인생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초대하십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어느 시점에서 멈춰 서 더 이상 자신의 삶에 기대를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좀 더 깊고 풍성하며 멋진 세계가 있고, 하나님은 그런 삶을 우리 삶에 세우기 원하십니다. 38년 동안 무너진 마음의 성벽을 다시 세우고, 그 인생을 바꾸기 원하시는 그 음성을 듣고 마음의 문을 열고 나아갈 때 위대한 역사가 일어날 줄 믿습니다. (이규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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