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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영적전쟁에서 승리하려면(7) : 구원의 투구 (엡 6: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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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전쟁에서 승리하려면(7) 구원의 투구 (엡 6:10-20)

오늘날 너무 하나님에 대한 기대가 없는 시대입니다. 병이 들도 하나님께 기대하기 보다는 의사에게 기대합니다. 돈이 없어도 하나님께 기대하기 보다는 은행에 기대합니다. 기쁨이 없어도 하나님께 기대하기보다는 드라마에 기대합니다. 문제를 당해도 하나님께 기대하기보다는 상담소에 기대합니다. 우리 어차피 하나님 믿고 살아야 할 사람들입니다. 확실하게 믿고 사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기도응답에 대한 확신, 용서에 대한 확신, 구원에 대한 확신, 인도에 대한 확신, 승리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영적 전쟁터에서 사탄은 계속에서 우리의 확신을 무너뜨리기 위해 갖은 방법으로 유혹을 하고 핍박을 합니다. 어떤 경우도 이런 확신이 흔들리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계속해서 영적 전쟁에 대한 말씀을 듣고 있습니다. 오늘은 일곱 번째로 구원의 투구입니다. 로마 군인들이 쓰는 단순한 투구가 아닙니다. 

요즈음은 전투모자인 철모를 씁니다. 총알이 날아오면 머리를 보호하기 위해서입니다. 머리에 쓰는 방어용 무기입니다. 당시는 총이 없었으나 창이나 칼 도끼 화살 등으로부터 머리를 보호하기 위해 보통 청동이나 철과 같은 단단한 금속으로 만들어진 투구를 착용하였다고 합니다. 이것은 안쪽에는 털을 대거나 가죽을 깔아 도끼나 망치로 내려치지 않는 한 머리를 안전하게 보호 될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중요한 머리를 보호하여 안전하게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상징적으로 말씀하고 있겠습니까? 사탄이 계속적으로 우리의 생각을 공격하는데 구원의 확신을 우리의 생각을 무장하라는 말씀입니다. 

머리는 대표적인 기능은 사고의 기능입니다. 사탄은 이 생각을 공격합니다. 생각 중에 구원의 확신을 공격합니다. 구원의 확신을 갖지 못하게 하고 구원의 확신을 가졌더라고 회의하게 만들고 소멸하게 만듭니다. 구원이란 근원적인 것이고 중요한 것이기 때문에 끊임없이 공격합니다. 우리가 구원에 대한 정확한 지식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구원이란 단어는 히브리어에서는 “예수아”, 헬라어에서는 “쏘테리아”로 되어있습니다. 이 단어는 어떤 위험이나 질병으로부터 구출하는 행위 또는 결과를 뜻합니다. 성경에서는 죄와 그로 인하여 이루어진 결과로부터 구원을 말합니다. 

Ⅰ. 인간이 지음 받았을 때 처음 상태는 어떠했습니까?

하나님께서 만물을 창조하시고 인간을 여섯 째 날 창조하였습니다. 그런데 다른 것들은 그저 말씀으로 있으라 하시며 창조하였는데 독특하게 창조한 것이 두 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동물과 사람입니다. 다른 것들은 원재료가 없이 그저 말씀으로 만 창조하였는데 동물과 사람은 재료를 가지고 창조하였습니다. 흙으로 만든 것입니다.(창2:19; 창2:7)

그러면 사람이 동물과 다른 점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흙으로 지은 후 그 코에 생기를 불어 넣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인간을 창조하였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에 따라 영적 생명을 가지므로 어떤 특권을 누리게 되었습니까?

1) 영적 생명을 가진 인간의 특권입니다.

(1) 영생의 가능성을 가진 특권입니다.(고전15:51-56;계1:1-7) (2)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는 특권입니다.(고전2:13,14) (3) 만물을 주관하는 특권입니다.(창1:28)

2) 범죄 후 인간은 이 특권을 잃어 버렸습니다.
범죄하여 결국

(1)신분인 하나님의 아들에서 "본질 상 진노의 자녀"(엡2:3) "마귀의 자식"(요8:44,행13:10)으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행위 언약의 위반으로 법정적 정죄에 이르렀습니다. 롬5:16)

(2) 이렇게 인간이 법적으로 그 지위를 잃어버리게 되자 필연적으로 상태의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그러면 범죄 후 인간은 어떤 상태에 처하게되었습니까?

①죄의 결과 단절이 오게 되었습니다.

첫째, 생명의 단절입니다. ㉠ 영적 사망입니다.(인생의 시작에서-하나님과 인간의 영적 단절)㉡ 육적 사망입니다.(인생의 종말에서-인간의 영과 육의 분리) ㉢ 영원적 사망 사망입니다.(내세에서-하나님과 인간의 전인격의 영원한 분리) 이 영원적 사망을 성경은 둘째 사망이라 합니다.(계2:11;계20:6,14) 영원한 지옥의 형벌을 받는 사망입니다.(마25:46;막9:43-48;살후1:9)

둘째, 교통의 단절의 결과입니다 ㉠ 영적 소경이 된 것입니다. ㉡ 죄의 지배입니다. ㉢ 친죄 성향입니다. 이제 인간은 죄의 노예가 되었습니다. 마지못하여 억지로 죄를 짓는 것이 아니라 죄 짓기를 좋아 한다는 말입니다. 죄에 대하여 매력을 느끼고 쾌감을 맛보면서 그길로 가기를 좋아 합니다.(창6:2)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취하기 좋아 하고, 세상을 사랑(딤후4:10)하고 "강포함을 좋아하"(시11:5)고 죄는 인간에게 "꿀을 떨어뜨림"과 "기름 보다 미끄러웁게"(잠5:4) 매력을 느끼게 합니다. 

얼마나 인간들이 죄짓기를 좋아합니까? 같이 모여 있을 때 흉보기 좋아하십니까? 칭찬하기 좋아하십니까? 남 흉보며 놀면 2시간도 놀 수 있지만 남 칭찬하면 놀면 30분도 못 버틸 것입니다. 얼마나 남의 눈 속에 있는 티는 잘 보고 내 눈 속에 있는 들보는 보지 못합니까? 인간이 얼마나 쉽게 유혹과 중독에 넘어가고 있습니까? 

[유혹의 기술]의 저자 로버트 그린은 "세상의 모든 것은 유혹으로 통한다."라고 말합니다. 오늘날 세상의 핵심 키워드는 '유혹'이며 정치, 사회, 문화, 남녀 관계 등 도처에서 유혹으로 넘쳐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유혹은 숨은 권력으로 상대의 마음을 장악하기 위한 현대사회를 움직이는 심리적인 기술입니다. 기업의 마케팅이나 광고 전략, 그리고 개개인의 PR 전략, 정치인들의 선거 전략 등 모든 것들이 유혹을 배제하고는 효과를 거둘 수 없다는 사실을 증명해 주고 있습니다. 소비자의 시선을 끌기 위해 유혹의 언어들이, 유혹의 그림들이, 유혹의 영상들이 춤을 추고 있습니다. 거친 듯하면서도 부드럽게, 순진한 듯하면서도 교활하게 다가와 우리를 넘어뜨리고 있습니다. 현용수 목사님의 책을 보니까 이런 이야기가 나와 있습니다. 

미국 L.A.에서 사극 '용의 눈물' 이 매 주 인기리에 방영되던 때의 이야기랍니다. 어느 교회 장로가 너무 재미있어서 기다리지 못하고 한꺼번에 비디 오 4개(8시간)를 빌려 왔다고 합니다. 토요일 밤, 그는 원래 1~2개만 보고 자려고 했는데 내용이 아슬아슬하게 끝나서 참지 못하고 8시간 동안 비디오를 연속하여 새벽 4시까지 시청했다고 합니다. 잠깐 눈을 붙이고 아침에 교회로 갔답니다. 공교롭게도 그 장로님이 주일 대예배 시간에 대표 기도를 하기로 되어 있었답니다. 깜박 잊고 대표 기도를 준비하지 못한 그 장로는 ‘아차’ 했으나 때는 이미 늦었답니다. 그는 회중 앞에서 엄숙하게 기도를 시작했답니다. “다 함께 기도합시다. 거룩하신 하나님, 성은이 망극하나이다.” 

회중 가운데 이곳저곳에서 폭소가 터졌답니다. 이어서 그는 "통촉하여 주소서I"라고 기도했다고 합니다. 우리가 사는 죄악된 세상에서 우리는 자유로울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죄를 애써 부인하려고 해도 사람은 죄의 지배를 받게 되어 있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구원의 의미란 이 모든 죄로 부터의 구원입니다. 그러므로 주의 사자가 인류의 죄를 구속하기 위해 오시는 예수님을 가리켜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마1:21)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구원 받은 백성이 들이 들어가는 곳에는 죄가 존재 할 수 없으니 사도 요한은 "무엇에든 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 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오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 뿐이니라"(계21:27)라고 하였습니다.

죄의 결과로부터 구원입니다. 인간의 죄로 ①영적 사망 ②육적 사망 ③영원적 사망 ④영적 소경 ⑤죄의 지배 ⑥친죄 성향의 결과를 가져 왔습니다. 구원이란 바로 이러한 상태로 부터의 구출을 말하는 것입니다.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께서 이 구원사역을 이루시는 것입니다. 성부께서 계획하시고 성자께서 십자가를 통해 실행하시고 성령께서 우리에게 적용해 주시는 것입니다. 성경은 구원의 계시이며 인간 타락으로 부터 시작하여(창3) 구원의 웅장한 완성으로(계21-22)끝이 나는 구원 역사의 위대한 드라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단은 이 구원을 공격하는 것입니다. 


Ⅱ. 우리가 어떻게 사탄의 공격으로부터 구원에 대한 확신을 지킬 수 있겠습니까?

1. 어떤 경우도 우리는 신분적으로 구원을 이미 받았다는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사단이 오늘날 우리를 공격하는 것은 구원에 대하여 무관심으로 구원의 확신을 갖지 못하게 하는 전략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오늘 같은 시대에 구원이라는 것이 무슨 필요가 있느냐는 것입니다. 돈 벌고, 잘 먹고 잘 사면 됐지 이미 시효가 끝나버린 천국이나 내세라는 말을 붙들고 사느냐는 것입니다. 예수만 믿어야 구원받는다고 주장하는 것은 옹졸한 생각이라는 것입니다. 편협한 생각이라는 것입니다. 구원받는 길을 다양하다는 것입니다. 종교 다원주의를 부르짖습니다. 과거 돌아가신 예수님과 너의 구원과는 무슨 상관이 있느냐는 것입니다. 비웃고 조롱합니다. 너가 구원받을 만한 것을 무엇을 했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말씀합니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엡 2:8)” 

내 조건, 내 능력, 나의 상태에 따라 구원받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선택이며 하나님의 조건 없는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가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에베소서 1장 3절 이하를 보십시오. 우리는 신령한 복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창세전에 선택함을 받았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아들딸이 된 것입니다. 이미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구원은 성취되어 신분이 하나님의 아들딸로 변화되었습니다. 이 사실에 대하여 디도서에서 말씀하십니다.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딛3:5)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구원하시되"라는 말은 헬라어로 [엔쏘센]라는 말로 제 1 부정 과거형입니다. 이미 끝나 버린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①영적 사망, 영적 소경으로 부터의 구원받아 중생함을 얻었다는 말씀입니다. 엡2:1에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라고 말씀합니다. 과거에 죄와 허물로 죽었던 우리를 살리셨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영적 소경이 아니라 영적 세계를 분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니고데모에게 말씀합니다. 요3:3-8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영생을 누릴 기본적인 자격이 갖추어 진 것입니다. 믿습니까? 어떤 경우도 이 구원의 확신이 흔들리지 말아야 합니다. 

②정죄의 신분으로 부터의 구원받게 된 것입니다. 칭의, 양자라고 합니다. 

롬3:30에서 말씀합니다. "할례자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또는 무할례자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실 하나님은 한 분이시니라 "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신 것입니다. 

요1:12에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라고 말씀합니다. 이 칭의와 양자는 우리가 예수님을 영접하여 최초 신앙을 가질 때 이루어지며 따라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는 결코 정죄함이 없습니다.(롬8: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믿습니까? 확신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신 것은 역사적인 사실이며 지식의 문제이고 믿음의 문제입니다. 단순한 관념이 아닙니다. 실효적 사건입니다. 우리나라가 1945년 8월 15일에 해방이 된 것을 아는 것은 관념이 아닙니다. 역사적인 사실이며 실효적 사건입니다. 어떤 경우도 이 관계가 변경되는 것이 아닙니다. 감정의 문제가 아닙니다. 사실적 사건이며 법적인 문제이고 믿음으로 수용하느냐 하지 않느냐의 문제입니다. 내가 수용하지 않아도 사실적 사건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2. 우리는 흔들리지 말고 성품을 변화시켜 상태적으로 구원을 이루어 가야 하겠습니다.

사탄은 말합니다. “아니 네가 구원받은 존재라며 그러면 아무렇게나 살도 되지 않아” 이단들을 통해 유혹을 합니다. 우리의 양심을 통해 “아니 네 상태를 보라. 구원받은 하나님의 아들딸이라면 그렇게 사느냐?” 자신에 대하여 회의를 가지게 만듭니다. 네 상태를 보면 네가 하나님의 아들딸이 아니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금같아야 금이고 은같아야 은인데 너는 금같이도 은같이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똥같은 것이 금이라고 우기냐는 것입니다. 어차피 이렇게 된 것 그냥 살자는 것입니다. 

'상식 밖의 경제학'의 저자인 댄 애리얼리가 말한 '어차피 이렇게 된 거' 효과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다이어트 중인 사람의 예를 듭니다. 그는 다이어트를 위해 엄격하고 어려운 메뉴 규칙을 지키려 애씁니다. 그런데 어느 날 누군가 초콜릿 트뤼프를 내밉니다. 유혹에 굴복해 그것을 한 입 먹는 순간 그가 굳건하게 지켜온 규칙은 무너집니다. 그는 이렇게 스스로에게 말합니다. "빌어먹을! 규칙을 깨버렸잖아. 어차피 이렇게 된 거, 한 주 내내 참고 먹지 않았던 거나 실컷 먹어보자. 다이어트는 내일부터 새로 시작하면 되니까. 아니면 다음 주 월요일부터 새로 시작하든가. 그때는 진짜 제대로 할 거야." 이렇게 말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신앙생활에 사탄이 이렇게 속삭이는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받은 존재라는 것을 증명해 주어야 구원의 상태가 있습니다. 이것은 죽을 때까지 진행되는 현재 진행 중인 구원입니다. 성경에서는 구원이 아직 완성되지 않은 현재 진행형으로 나타난 곳이 있습니다. 

고전1:18에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여기서 구원 얻은 이란 헬라어 성경에서 [쏘조메노이스]로 현재 수동형 분사입니다. 따라서 이 말씀은 현재 우리에게 구원이 실현되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는 말씀입니다. 

빌립보서에서는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빌 2:12)”라고 말씀합니다. 

이미 구원받았는데 무슨 구원을 또 이룹니까? 이것은 우리가 신분이 변했지만 아직 상태가 완전하지 못하기 때문에 점점 하나님 아들 딸답게 되라는 말씀입니다. 성화되라는 말씀입니다. 누가 보아도 왕자이고 공주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성숙하라는 말입니다. 부끄러운 구원을 받지 말라는 것입니다. 불 가운데 얻는 구원을 받지 말라는 말입니다. 고전3:14-15절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력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누구든지 공력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기는 구원을 얻되 불 가운데서 얻은 것 같으리라“ 화재가 났을 때 여관방에서 바람피우다 팬티만 입고 뛰어 나오는 그런 구원받지 말라는 말입니다. 

현재 진행 중인 구원의 내용 바로 이런 것입니다. 

① 친죄 성향으로 부터의 구원을 말합니다. 즉 성화되라는 말입니다. 성화는 스스로 되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부단히 우리가 노력해야 하는 것입니다. 정죄 아래에 놓여 있는 인간들이 죄를 낙으로 삼는 경향이 있었는데 이 성향은 중생하므로 바뀌어 집니다. 죄와 허물로 죽은 심령이 중생하는 순간에 성령께서는 새로운 성향을 심어 주십니다. 

이제는 육체의 소욕대로 살지 않습니다. 성령의 소욕, 성령의 소원대로 사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 성령의 소욕이 육체의 소욕을 거슬려 대적하는 것입니다.(갈5:17)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갈 5:17)”

따라서 성령의 소원은 죄를 미워하게 만들고(잠8:7) 지은 죄를 애통하게 만듭니다.(마5:4)
이런 성향은 중생에서 시작 됩니다. 그러나 결코 현세에서 완성되지 않습니다. 중생 후에도 친죄 성향은 아직 남아 있어 계속 범죄에 떨어지게 만듭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이 두 가지 마음이 계속해서 싸우고 있음을 가르치고 있습니다(롬7:17-25) 성령께서는 신앙과 회개를 통하여 이 친죄 성향에 대항하여 계속 싸우게 만드는데 이것을 성화라 합니다. 예방 주사를 맞았어도 병균은 계속 들어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항체가 있어 그것들과 싸워 결국 승리하는 것입니다. 죽을 때까지 이 구원은 현재 진행 중입니다. 

② 죄의 지배로 부터 구원하신 것입니다. 이것도 성화입니다. 죄의 지배로 부터의 구원은 죄의 성향으로 부터의 구원의 내면입니다. 중생으로 부터 시작한 성령의 역사는 친죄 성향을 바꿔 그것을 애통하고 미워하게 할 뿐 아니라 죄의 종된 상태로 부터 해방되어 이제는 의의 종이 되게 하십니다(롬6:18) "죄에게서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 

신자를 하나님께 의의 병기로 드리게 하십니다(롬6:13).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리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산 자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의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전에는 죄가 사망 안에서 왕노릇하였으나 이제는 의로 말미암아 왕노릇하십니다(롬5:21).

"이는 죄가 사망 안에서 왕노릇한 것 같이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노릇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함이니라"

그러나 죄는 아직도 신자 속에 남아있습니다. 이것을 몰아내는 작업은 중생에서 시작하여 계속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경각심을 가지고 싸워야 합니다. 방심하면 순간적으로 넘어집니다. 다윗도 넘어졌고, 아브라함도 넘어졌고, 모세도 넘어졌고, 바울도 넘어졌습니다. 

3. 우리는 궁극적으로 구원을 받게 된다는 소망을 가져야 합니다. 

사탄은 공격합니다. 예수님 재림하다면서 그것은 순전이 뻥이라는 것입니다. 기다리지 못하게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말씀합니다. 마태복음 10:22절에 "또 너희가 내 이름을 인하여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나중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라고 했습니다. 

성경은 미래에 이루어질 구원을 말씀합니다. 약1:21에 "그러므로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을 내어버리고 능히 너희 영혼을 구원할 바 마음에 심긴 도를 온유함으로 받으라"라고 말씀합니다. “구원할 바”라고 영혼구원을 미래적 사건으로 말씀합니다. 딤후4:18에서는 "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내시고 또 그의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시리니"라고 말씀합니다. 확실히 미래에 이루어질 구원이 무엇이겠습니까?

①육체적 사망으로 부터의 구원입니다. 부활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어도 한 번 죽는 것은 하나님의 정하신 법칙이기 때문에(히9:27) 성도에게도 죽음이 찾아옵니다. 그러나 언젠가 육체는 썩을 것이나 썩지 아니할 것으로 살날이 오는 것입니다(고전15:53). "이 썩을 것이 불가불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육의 몸이 신령한 것으로 다시 살 것입니다.(고전15:43)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며"

우리가 부활하는 말은 마지막 나팔을 불 때이고(고전15:51) 그 때가 이세상의 마지막 날이고(요6:39) 그리스도의 재림의 때입니다(살전4:16-17) 이 구원은 미래에 이루어질 구원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말씀합니다.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롬8:24)” “우리는 낮에 속하였으니 정신을 차리고 믿음과 사랑의 호심경을 붙이고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자(살전5:8)” 소망을 가지고 인내하여야 합니다. 

② 영원적 멸망으로 부터의 구원입니다. 이것을 영화라고 합니다. 

정죄 아래 있는 인간들은 죽을 때 그 영혼이 지옥에 들어가고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때 심판의 부활로 죽었던 육체가 살아나서 그 육체도 지옥에 들어가 영원한 형벌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눅16:19-24) 부자가 지옥에서 고통을 받습니다. 그러나 나사로는 영원한 천국 아브라함의 품에 있습니다. 계20:13-15에서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바다가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지우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지우더라."

그러나 성도들은 이와 반대로 우리가 죽으면 영혼이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고(고후5:1 빌1:23)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나니"

부활 때에 죽었던 육체가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는 것입니다.(요14:2;계21:1-3)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신자의 영혼과 육체가 천국에 들어갈 때 죄로 부터 완전히 해방시켜 어떤 죄의 요소도 없는 상태로 변화시켜 주십니다.(계21:26-27) “사람들이 만국의 영광과 존귀를 가지고 그리로 들어가겠고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가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 들어가리라” 이것이 곧 영화이고, 이것이 미래에 이루어질 구원입니다. 우리는 흔들리지 말아야 합니다. 반드시 그날이 오고야 맙니다.

마24:37-39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홍수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지금이 노아의 때와 같습니다. 먹고 마시는 문제가 전부인줄로 생각을 합니다. 노아 시대의 사람들이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지 않고 벗어 버렸던 것입니다. 그래서 노아의 가족을 제외하고는 다른 사람들은 홍수심판을 받아 죽고 말았습니다. 이 세상이 전부가 아니라 실존의 천국이 있습니다. 실존적 지옥이 있습니다. 우리는 천국에서 영생할 것입니다. 

사탄의 공격으로부터 구원의 투구를 쓰고 우리의 마음과 우리의 생각이 흔들리지 말아야 합니다. 가룟 유다처럼 무너지지 말아야 합니다. 마귀는 우리를 스스로 낙심하고, 포기하게 만들려고 현대 문명 속에서 갖가지 방법을 동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 언젠가 재림하십니다. 영원한 천국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 나라에 가서 살 것입니다. 이 소망 흔들리지 말아야 합니다. 소망의 구원의 투구를 쓰고 모든 전쟁에서 승리하는 우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김필곤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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