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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대림절] 주의 길을 준비하라! (말 3:1-4; 눅 3:1-6; 빌 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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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길을 준비하라! (말 3:1-4; 눅 3:1-6; 빌 1:3-11) 

<기다림의 미학>

대강절은 기다리는 절기입니다. 아기 예수의 강림을 기다립니다. 부활승천하신 예수님의 재림, 아니 재현을 기다립니다. 기다림은 아름답습니다. 기다림은 언제나 설레고 흥분됩니다. 그런데 기다림에는 시간이 걸립니다. 기다렸던 것이 곧바로 이루어지는 경우도 더러 있지만 대개 아름답고 가치 있는 것일수록 금방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많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지만 옛날에는 군에 간 애인을 기다리는 아가씨들이 많았습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몇 년씩이나 헤어져있다는 사실이 너무도 괴롭지만 수백 통의 편지를 교환하며 끝까지 기다리고 또 기다린 뒤 마침내 아름다운 사랑의 결실을 맺는 커플들이 많았습니다. 

인터넷 시대, 스마트 폰 시대가 도래한 뒤 가장 큰 문제는 사람들이 점점 더 조급해져가고 있다는 사실이지요. 손으로 또박또박 정성스레 글씨를 써서 만든 편지를 집배원아저씨가 며칠이나 걸려서 배달해주는 기다림과 묘한 설렘이 사라졌습니다. 그저 무엇이든지 급히 해내야만 하는 인스턴트 시대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낭만이 사라졌고 깊이가 없어졌습니다. 급히 만났다가 급히 헤어지고, 얄팍한 인간관계가 판을 치는 시대가 되고 말았습니다. 

아름답고 가치 있는 것일수록 금방 즉석에서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오랜 시간이 필요하고 기다림이 필요합니다. 봄에 농부가 씨앗을 뿌려 곧바로 열매를 거둘 수 없습니다. 마음 졸이는 기다림과 고통과 인내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숱한 실패와 좌절을 딛고 기다리고 또 기다린 끝에 얻는 열매는 이루 말할 수 없는 기쁨이 있습니다. 

한 때 판검사가 되기 위하여 사법고시에 수없이 낙방을 거듭하다가 나이 늙어서 합격하는 분들이 있었습니다. 거듭 실패만 하는 약혼자를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믿고 기다리다가 마침내 함께 영광의 열매를 거두는 분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믿음 없이 소망 없이 인내 없이 기다릴 수는 없습니다. 현재 기다리고 있는 것이 언젠가는 이루어지리라는 믿음이 있기에 끝까지 기다릴 수 있지요. 기다리다보면 소망이 생겨납니다. 무엇보다도 기다렸던 것이 금방 이루어지지 않으면 참고 또 참으면서 인내심이 생겨납니다.

대강절, 아기 예수님의 강림과 구원의 주님으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절기입니다. 이 기다림의 계절에 여러분이 기다리고 있는 것들이 반드시 이루어질 줄로 믿고 소망하며 끝까지 잘 참고 기다리시기를 바랍니다. 무엇보다도 이런저런 일로 낙심했던 분들이 용기와 소망을 얻는 계절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우리 예수님이 오실 날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주저 앉아계신 분들은 일어나 머리를 들고 주님 맞을 채비를 하십시오!

<세례요한에게 임한 하나님의 말씀> 

오늘 봉독한 눅 3: 1-6절 말씀은 세례요한에 관한 말씀입니다. 대강절 둘째 주일인 오늘과 셋째 주일인 다음 주일에 우리는 세례요한에게 집중할 것입니다. 예수님의 오심을 준비하고 기다리기 위해서 우리는 크리스마스트리를 만들거나 구유나 집을 만드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일이 있습니다. 크리스마스 선물을 사서 교환하고 크리스마스카드를 보내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일이 있습니다. 세례요한의 말을 듣는 것입니다! 

4복음서 중에서 예수님의 탄생에 대해서 소개하는 책은 마태복음과 누가복음 두 책뿐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오심을 준비했던 세례요한에 대해서는 마태, 마가, 누가, 요한 네 책이 모두 이야기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대강절 기간 동안에 세례요한의 메시지는 그만큼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세례요한의 출현은 먼저 그 시대의 상황을 설명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1절과 2절 전반부를 보면 세례요한이 출현한 당시의 정치종교 지도자 일곱 명의 이름이 차례로 등장합니다. 제일 먼저 그 당시 로마황제, 즉 세계를 주름잡고 있던 최고의 권력자 디베료 황제에 대해서 언급합니다. 유대를 통치하던 로마총독 본디오 빌라도, 로마가 세운 허수아비 분봉왕이었던 헤롯과 빌립, 루사니아에 대한 언급도 나옵니다. 이렇게 그 당시 유대지역을 중심으로 최고의 권세를 휘두르던 다섯 명의 권력자들을 언급한 뒤 맨 마지막으로 예루살렘 성전을 지키고 있던 유대교 최고지도자, 안나스와 가야바, 두 사람의 대제사장을 소개합니다. 

여기 이 일곱 명의 정치 종교 지도자는 예수님이 태어나던 그 당시 나는 새도 떨어뜨릴 만큼 엄청난 권력을 한 손에 쥐고 있었던 사람들이지요. 이제 이렇게 그 당시 정황을 언급한 뒤 누가는 세례요한의 사역을 소개합니다. 

2절 후반부를 보세요. “하나님의 말씀이 빈들에서 사가랴의 아들 요한에게 임한지라.” 바로 앞에서 로마황제 디베료를 비롯해서 모든 권세를 한 손에 쥐고 있었던 정치종교 지도자들의 리스트를 소개한 다음에 하나님의 말씀이 세례요한에게 임했다는 것입니다. 일곱 명의 정치종교 지도자들에 비하면 세례요한은 전혀 알려지지 않은 촌사람입니다. 로마 황제가 있는 궁궐도 아니요, 빌라도 총독이 집무하는 총독관저도 아니요, 대제자장이 시무하는 예루살렘 성전도 아닌, 빈들, 광야에서 초라한 생활을 하는 야인입니다. 낮에는 뜨겁고 밤에는 춥고 하늘만 뻥 뚫린 고독한 광야, 빈들에서 한 시골뜨기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왔습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돌발 상태가 일어난 것이지요!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를 죄와 죽음에서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전혀 예기치 못한 곳에서 들려옵니다. 예수님의 오심을 통하여 증거되는 희망의 메시지는 화려하고 힘 있는 곳이 아닌 빈들, 그늘진 곳에서 들려옵니다. 소음 가득한 곳이 아닌 조용한 곳에서 들려옵니다. 

그러므로 오늘 여러분이 어떤 처지에 있든지 우리에게 용기와 소망을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이 세상이 아무리 암울해도 우리에게 희망을 줍니다! 이 세상이 아무리 어두워도 한 줄기 빛을 줍니다! 이 대강절 기간 동안 세례요한의 귓전을 울렸던 하나님의 말씀이 여러분의 귀에도 들려오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세상의 그 어떤 위력 앞에도 주눅 들지 말고 일어나 머리를 들고 당당하게 주님을 맞을 채비를 하시기 바랍니다! 

<죄사함을 받게 하는 세례>

그런데 이 세례요한은 3절에 보니까 요단 강 주변 온 지역을 찾아가서 죄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했습니다. 누가복음에서 가장 중요한 말 중에 하나가 회개입니다. 

신약성경 전체에 ‘회개하라’는 동사가 모두 34번 나오는데, 누가가 기록한 누가복음-사도행전에만 14번이 나옵니다. ‘회개’라는 명사가 신약 전체에 22번 나오는데 누가복음-사도행전에만 11번이 나옵니다, 누가의 신학에서 ‘회개’가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큰지를 보여줍니다. 적어도 누가가 보기에게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최고의 특징은 회개에 있습니다. 

그렇다면 회개는 무엇입니까? 회개는 마음과 생각을 바꾸는 것입니다. 먼저 마음과 생각을 바꾸니 자연 행동도 따라서 변화되는 것이 회개입니다. 그런데 이 마음과 생각을 바꾸는 것은 내 힘과 내 의지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스스로의 노력으로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는 한 회개는 절대로 일어나지 않습니다! 알코올 중독자들이 중독증을 고치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첫 번째 단계는 스스로 술을 끊을 수 없다는 처절한 절망감입니다. 내가 아무리 철석같은 의지를 갖고 최고의 노력을 경주해도 절대로 내 힘으로 술을 끊을 수 없다는 절망감이야말로 알코올 중독증을 고칠 수 있는 첫 걸음입니다. 내가 할 수 없다는 생각을 가지면 자연 외부의 도움을 구하게 되지요. 

마찬가지로 내가 내 죄를 다스릴 수 없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바라봐야 합니다. 내 힘으로 스스로 술을 끊을 수 없다면 이제 나의 무기력함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해야 합니다. 이렇게 “내가 할 수 없다”(I can’t)는 사실을 자인하고 “하나님은 하실 수 있다”(God can)라고 마음과 생각을 바꾸는 것이 회개인데, 이 회개야말로 죄사함을 받게 합니다! 

그렇습니다. “내가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은 하실 수 있습니다.”라고 내 마음과 내 생각을 바꾸는 순간, 신비하게도 우리의 죄는 깨끗이 씻겨나갑니다. 물로 더러운 것을 깨끗이 씻어내듯이 회개의 세례를 통해서 우리의 모든 죄가 깨끗이 용서됩니다! 

이와 같이 대강절은 우리의 모든 죄를 깨끗이 씻어내고 예수님의 오심을 준비하는 계절입니다. 우리에게는 스스로의 힘으로 고칠 수 있는 문제도 많겠지만 우리의 영혼 깊은 곳에 뿌리박고 있는 죄의 문제와 같이 우리 스스로 고칠 수 없는 고질적인 문제도 있습니다. 바로 그 때 우리는 마음과 생각을 바꾸어야 합니다! 나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은 하실 수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교회의 제일가는 사명은 언제나 죄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베푸는 일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주님 오실 길을 준비하라!>

이제 이와 같이 빈들에서 낙타털옷을 입고 허리에는 가죽 띠를 띠고 메뚜기와 야생꿀을 먹으면서(마 3: 4) 죄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베풀던 요한에게 들려온 하나님의 말씀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놀랍게도 구약의 이사야서 40장 3-5절에 기록된 예언의 말씀이었습니다. 

우리 다함께 눅 3: 4-6절을 읽겠습니다. “선지자 이사야의 책에 쓴 바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 모든 골짜기가 메워지고 모든 산과 작은 산이 낮아지고 굽은 것이 곧아지고 험한 길이 평탄하여질 것이요 모든 육체가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보리라 함과 같으니라.”

그 옛날 임금이 어느 곳을 방문할 예정이면 몇 달 전, 아니 몇 년 전부터 대대적인 준비를 합니다. 제가 강원도 동부 전선 최전방에서 군대생활을 할 때도 그랬습니다. 사단장이나 군단장, 혹은 계급이 더 높은 4성 장군 군사령관이나 육참총장, 아닌 군의 최고통수권자인 대통령이 방문한다고 하면 부대 안에는 그야말로 비상이 떨어집니다. 몇 달 전부터 오늘 말씀 그대로 길을 곧게 하고, 골짜기는 메우고, 모든 산과 언덕은 평평하게 하고, 굽은 것은 곧게 하고, 험한 길은 평탄하게 만듭니다. 

왜 이렇게 정성을 다하여 준비를 합니까? 높은 분들이 쉽게, 편하게, 안전하게, 영광스럽게, 신속하게 도착하실 수 있도록 배려하기 위함이 아닙니까? 한 마디로 가장 높으신 분이 편히 오시도록 대대적인 준비를 하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이 세상의 그 어떤 최고의 권력자와도 비길 데 없는 만왕의 왕이요, 만유의 주이신 예수님이 오신다면 우리는 더욱 더 철저한 준비를 해야 합니다. 바로 이런 이유로 이사야 선지자도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고 외칩니다. 우리는 그 분이 오실 길을 준비해야 합니다! 

그런데 여기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한 비유를 보면 모두 평평해지는 것들입니다. 울퉁불퉁 차이가 났던 길이 곧게 펴집니다. 들쑥날쑥 차이가 났던 골짜기를 메웁니다. 높고 낮고 크기가 달랐던 산과 언덕이 평평해집니다. 그리하여 꼬불꼬불 굽은 것은 곧게 하고, 울퉁불퉁 험한 길은 평탄하게 만듭니다! 

여러분, 이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주님이 오시면 세상만사가 모두 평등해진다는 말이지요! 절대 평등, 예수님이 오심으로 세상이 평등해집니다! 남자와 여자, 부자와 빈자, 주인과 노예, 일체의 굴곡과 차이가 메워지고 해소되고 결국 모두가 주님 앞에 평등해집니다! 

그런데 6절 말씀을 보면 이것을 이사야 선지자는 “모든 육체가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보리라”고 선언합니다. 여러분, 왜 우리가 이렇게 지극 정성을 다하여 주님이 오실 길을 준비해야 합니까? 모든 육체가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볼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모든 육체는 단지 모든 인류만 말하는 것이 아니라 훨씬 더 포괄적인 용어입니다. 모든 육체를 뜻하는 희랍어 ‘para sarx’는 온 우주의 피조 세계 전체를 통칭하는 포괄적인 용어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구원은 이 땅 위의 모든 피조 세계에까지 구석구석 두루 미치게 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이 오심으로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구원을 보게 될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대대적으로 준비해야 합니다. 한 때 유행했던 유행가 가사처럼 우리 마음에 주단을 깔고 예수님의 오심을 준비하고 기다려야 합니다! 우리 마음의 길을 닦고 준비해야 합니다. 우리 마음의 모든 굴곡을 평탄케 해야 합니다. 미움, 시기, 질투, 탐욕 등으로 일그러지고 골이 패인 우리의 마음을 믿음과 사랑과 자비로 메워야 합니다! 

우리 마음의 길을 닦기 위하여 먼저 선행되어야 할 것이 ‘하나님의 말씀’이요, ‘회개와 죄사함’입니다. 세례요한 위에 먼저 하나님의 말씀이 임했으며, 그 다음에 죄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선포했던 것처럼, 우리 위에도 하나님의 말씀이 임해야 하며, 회개를 통하여 우리의 모든 죄가 용서함을 받아야 합니다! 그리할 때 우리는 굽어진 우리의 마음을 곧게 펴고 깊게 패인 마음의 골짜기를 메우고 평탄하게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이제 분명해진 것은 (1)“하나님의 말씀이 세례요한 위에 임해서”, (2)“죄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고”, (3)“주님 오실 길을 준비하게 될 때”, (4) 결국 “모든 육체가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보게 될 것”이라는 말씀을 믿고 순종하여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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