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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탄절] 가장 소중한 선물 (마 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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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소중한 선물 (마 2:1-12)


대기업의 총수가 손자의 돌을 맞아 호텔을 빌려 돌잔치를 하게 되었습니다. 생일잔치를 전문으로 진행하는 이벤트 회사에서 연회장을 화려하게 장식하였습니다. 초대된 정계와 재계의 유명 인사들이 많이 참석하였습니다. 아들과 며느리가 한복을 입고 나와서 손님을 맞이하였습니다.

아기의 돌잔치가 시작되었습니다. 유명한 가수가 나와서 축하 노래를 불렀습니다. 아기가 태어나서 자라온 일 년의 과정이 사진으로 담겨져 대형 스크린에 영상이 올랐습니다. 대형 축하 케이크를 자르고 생일축하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런데 정작 오늘의 주인공인 아기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연회에 참석한 사람들이 술렁였습니다. 오늘의 주인공 아기가 보이지 않는다고 두리번거렸습니다. 재벌의 총수가 나아 인사말을 하면서 ‘우리 손자는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 나오면 그 날 잠을 자지 못합니다. 그래서 지금 집에서 가정부가 아기를 보고 있습니다.’ 라고 하였습니다. 하객들은 모두 크게 웃었습니다. 그러면서 축하객들은 이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기가 없이 축하객들만의 잔치라면 사실 아무런 의미가 없는 모임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지키는 성탄절도 잘못하면 이런 꼴이 될 수 있습니다. 아기 예수님이 주인공이 되지 못하고 단지 선물과 흥청거리는 분위기만 있다면 왜곡된 성탄절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 본문에 아기 예수님께서 탄생하셨을 때 아기 예수님을 맞이하는 세 부류의 사람이 나옵니다. 그 세 부류의 사람을 살펴보면서 우리는 어떤 마음과 자세로 성탄절을 맞이하고자 하는지 돌아보는 시간을 갖고자 합니다.

아기 예수님을 맞이하는 첫 번째 부류의 사람은 헤롯 왕입니다. 헤롯은 유대인들과 앙숙 관계에 있는 에돔 출신의 사람입니다. 그는 부자인 아버지의 도움을 받아 로마에 유학을 했습니다. 그는 로마 황제에게 뇌물을 주고 주전 47년에 유대 총독이 되었습니다. 7년 후에는 유대지역의 분봉 왕으로 임명되어 44년간 이스라엘을 통치했습니다. 그는 권력 욕심이 대단히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자신의 왕권을 지키기 위해 정적들을 무자비하게 죽였습니다. 그는 대규모의 건축 사업을 벌려 자신의 힘을 과시하려고 했습니다. 궁전을 여러 개나 지었습니다. 만석에 가까운 극장을 일곱 개를 지었습니다. 그 중에 30만 명까지 수용할 수 있는 경기장도 있습니다. 헤롯은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87년간에 걸쳐 불가사의 한 건물이라고 말하는 헤롯 성전을 지었습니다.
  
헤롯 왕은 심한 편집증 환자였습니다. 그의 아버지 헤롯이 누군가에 의해 독살 당했습니다. 그 이후로 헤롯 왕은 모든 사람을 의심하며 불안해했습니다. 모든 음식을 철저하게 검사했습니다. 수많은 백성들을 동원해 곳곳에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요새를 건축했습니다. 이스라엘을 가보면 맛사다라는 어머 어마한 요새가 있는데 그것도 헤롯 왕이 건축한 것입니다. 그는 의심증이 심해서 자신의 부인인 미리암과 장모 알렉산드리아, 그리고 장남 안티파터와 손자들까지 죽였습니다. 

헤롯 왕은 죽을 때가 가까워오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존경받는 지도자 70명을 체포했습니다. 그리고 신하들에게 자신이 죽으면 그 70명을 동시에 죽이라고 명령했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죽었을 때 아무도 슬퍼하지 않을 것을 알고 있기에 70명의 지도자를 죽임으로 예루살렘과 이스라엘 전역에 통곡의 소리로 가득 차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역사가들은 그를 무자비한 미치광이라고 평했습니다. 아기 예수님께서 태어 나셨을 때 베들레헴 지역에 있는 두 살 이하의 남자 아이들을 모두 죽이게 했습니다. 그는 자신을 위해서는 어떤 악한 일도 할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동방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방문해서 메시야가 탄생했다는 소식을 전하며 그 곳이 어디인가 물었습니다. 헤롯 왕은 서기관들에게서 그곳이 베들레헴이라고 듣고 동방박사들에게 전했습니다. 헤롯 왕은 동방 박사들에게 아기를 경배하고 돌아갈 때에 자신에게 그 곳을 알려달라고 했습니다. 자신도 메시야로 탄생하신 아기를 경배하고 싶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말함은 아기 예수님을 경배하기 위함이 아니라 아기 예수님을 죽이기 위함이었습니다. 헤롯 왕은 아기 예수님 오심에 대한 감사와 감격이 전혀 없었습니다. 헤롯 왕은 자신이 원하는 것과 다르면 성탄절은 성탄절이 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도리어 그는 성탄의 의미를 파괴했습니다.

오늘날 성탄절을 맞이하는 우리들의 모습 가운데 바로 이런 자세로 성탄절을 맞이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성탄절에 아기 예수님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단지 어디에서 어떻게 즐길 수 있을까에 관심이 있습니다. 내가 원하는 즐거움과 선물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그것이 충족되면 좋은 성탄절이고 그것이 충족되지 않으면 의미가 없는 성탄절입니다. 아기 예수님의 오심과는 전혀 관계없는 이기적인 성탄절입니다.

성탄절을 맞이하는 두 번째 부류의 사람은 대제사장과 서기관입니다. 동방 박사들이 예루살렘을 찾아와 메시야가 탄생한 곳을 물었을 때 헤롯 왕은 대제사장과 서기관을 불렀습니다. 대제사장과 서기관은 성경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대제사장과 서기관은 구약 성경의 미가서 5장 2절의 말씀을 인용하며 메시야가 탄생하는 곳은 베들레헴이라고 정확하게 말했습니다. 그들은 성경을 정확하게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이 알고 있는 성경 말씀을 믿고 따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메시야가 베들레헴에서 태어난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 곳에서 메시야가 태어났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메시야의 탄생을 확인하기 위해 동방박사와 동행해서 베들레헴으로 가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성경에서 메시야가 오셔서 이스라엘과 온 인류를 구원한다는 것을 알고 그 날이 오기를 사모한다고 말하며 그 내용을 가르쳤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이뤄지는 것은 원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현재에 자신들이 누릴 수 있는 기득권이 너무 많았기 때문입니다. 대제사장으로 서기관으로 누리는 권력과 부, 그리고 명예는 세상에서 누구도 부럽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직분과 성경 지식을 가지고 남을 가르치고 남을 비판하며 정죄했습니다. 자신의 신앙과 영성을 자랑하며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고 대접받기를 좋아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따르는 일에는 행동으로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야고보의 말에 따르면 그들의 믿음은 행함이 없는 죽은 믿음입니다. 성탄절의 의미와 내용은 누구보다도 잘 압니다. 그러나 성탄절의 의미를 살려서 살지를 않습니다. 말은 잘 합니다. 그러나 행동이 없습니다.

본문 3절에 보면 ‘헤롯 왕과 온 예루살렘이 듣고 소동한지라’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에서 소동했다는 말은 지진이 나는 것처럼 백성들이 동요했다는 말입니다. 메시야가 태어났다는 말에 모든 백성들이 웅성거리며 난리쳤습니다. 그러나 정작 그들 중에 아기 예수님이 태어난 베들레헴으로 달려간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성탄절을 맞아 흥겨움으로 떠들썩하기는 한데 진정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기뻐하며 그 분이 오신 의미를 찾아 일어서는 사람이 없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오늘 성탄절을 맞이하는 우리의 모습에서도 찾아볼 수가 있습니다.

성탄절을 맞이하는 세 번째 부류의 사람은 동방박사입니다. 동방박사란 동쪽에서 온 박사를 말합니다. 유대인들이 말하는 동쪽은 페르시아였습니다. 지금의 ‘이란’입니다. 동방박사들은 별을 보고 역사를 공부하고 예측하는 점성가들이었습니다. 이들은 별을 연구하던 중에 아주 특이한 별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 별이 인류를 구원하실 왕이 탄생했음을 알려주는 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박사들은 인류를 구원하실 왕이 나셨는데 우리가 찾아가서 경배하고 오자고 했습니다. 그래서 마음이 통한 박사들은 별을 따라 유대 나라까지 오게된 것입니다. 페르시아에서 유대의 예루살렘으로 오고, 베들레헴을 다녀가야 하는 길은 하루 이틀 걸리는 길이 아니었습니다. 산을 넘고, 강을 건너고, 광야를 지나 여러 도시들을 통과하는 힘들고 어려운 먼 길이었습니다.

동방박사들은 왜 그토록 먼 길을 달려왔습니까? 무엇을 얻으려는 목적이 없었습니다. 단지 메시야로 오신 아기 예수님을 경배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진정한 경배는 사모함에 있습니다. 사모함이 없는 경배, 즉 예배는 진정한 예배가 될 수 없습니다. 사모함이 있는 경배에는 자신의 헌신과 섬김이 따릅니다. 자신의 것을 내려놓는 헌신과 섬김이 없이는 진정한 경배가 될 수 없습니다. 동방 박사들에게는 메시야를 경배하기 위해 먼 길을 떠나 고생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을 만큼 사모함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형식보다 의미에 더 충실했습니다. 그들이 온갖 고생을 하며 베들레헴에 도착했을 때 메시야가 탄생한 곳은 커다랗고 화려한 궁전이 아니었습니다. 초라하고 냄새가 나는 마구간이었습니다. 그들은 세상을 구원할 메시야의 탄생을 축하하기 위해 찾아왔습니다. 그런데 그 메시야가 마구간에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같으면 실망하지 않았겠습니까? 왕의 탄생을 알리는 별을 보고 먼 길을 고생하면서 왔는데 화려하고 웅장한 궁전이 아닌 냄새나는 마구간이었습니다. 그러나 동방박사들은 실망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마구간의 말구유에 나신 아기 예수님께 자신들이 정성껏 준비한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렸습니다.

마구간 말구유에 엎드려 예물을 드리며 경배하는 동방박사들의 모습을 상상해 보십시오. 그들의 진정함과 순수한 믿음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성탄절을 맞이하는 순수한 믿음의 사람들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화려하고 웅장한 곳에서 파티를 하고 술을 먹고 마시며 흥겹게 노래하는 곳에서 맞이하는 성탄절이 아닙니다. 가장 어둡고 냄새나는 곳, 신음과 눈물이 있는 곳을 찾아 그 곳에 엎드려 아기 예수님이 오심을 기뻐하며 경배했습니다. 마구간에 누우신 아기 예수님을 향해 경배하며 예물을 드리는 동방박사들의 모습 속에서 진정으로 성탄절을 맞이하는 이들의 모습을 봅니다.

우리는 2012년도 성탄절 주일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죄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는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하늘의 보좌를 버리고 이 땅의 가장 낮은 곳인 마구간 말구유에 오신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기뻐하는 예배입니다. 저희들은 성탄일인 25일에는 11시에 성탄축하 예배를 드립니다. 우리들은 25일에 드리는 성탄 예배 때에 동방 박사들이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기뻐하며 정성을 다해 예물을 드렸던 그 마음으로 성탄헌금을 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그 헌금 전액을 가지고 강서구 안에 질병으로 고생하는 두 학생의 치료비로 전달하려고 합니다. 우리 행복한교회의 가장 아름다운 전통 가운데 하나는 성탄헌금으로 아기 예수님이 오신 것을 축하하며 아기 예수님의 이름으로 돈이 없어 치료를 받지 못하는 어려운 이웃을 돕는 일입니다.

성탄축하 예배에 임하는 우리의 마음가짐이 이기적이고 습관에 젖어 있는 헤롯 왕과 대제사장과 서기관과 같은 마음이 아니어야 합니다. 오히려 순수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는 동방박사와 같은 마음으로 임해야 합니다. 저는 분명히 믿습니다. 우리가 드리는 성탄헌금을 아기 예수님의 이름으로 가난하고 병든 이웃에게 치료비로 전달할 때 그 헌금은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선물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2012년도 성탄절을 맞아 드리는 그 어떤 예물보다도 기뻐 받으실 것입니다. 나를 위해 하늘의 높은 보좌를 버리고 낮은 이 땅에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아기 예수님 앞에 우리의 정성을 모아 동방박사처럼 무릎을 꿇고 경배하는 성탄절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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