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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탄절] 성탄을 잃어버린 사람들 (마 2: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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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을 잃어버린 사람들 (마 2:13-18) 
 
 
❚대통령 선거를 마치고...

지난 한 주간 온 나라가 제18대 대통령 선거로 떠들썩했습니다. 워낙 초박빙의 승부가 되다보니 예상보다 훨씬 높은 투표율을 기록하고, 그 결과에 온 국민이 촉각을 곤두세웠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결과가 나오자 내가 지지한 후보가 당선되어 기뻐하는 사람도 있고 내가 지지한 후보가 떨어져서 낙심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저는 목회자가 강단 위에서 특정 후보를 지지하거나 비방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확신하기 때문에 결코 정치적인 이야기를 하지 않습니다만 이제 선거가 다 끝났으니 이것 하나는 확실하게 말씀드립니다. 이제 선거가 끝나고 이 나라를 5년간 이끌어갈 대통령이 선출되었습니다. 

내가 새로운 당선자를 찬성했든 반대했든 상관없이 이제는 뽑힌 사람을 정정당당하게 인정하고 그를 위해 기도하는 마음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왜요? 물론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한 마디로 말한다면 대통령이 참 어려운 자리기 때문입니다. 얼마나 힘 들면 전직 대통령 중에 “대통령 해먹기 참 힘들다”고 했겠습니까? 목사도 참 어려운 자리지만 대통령도 만만치 않게 어려운 자리인 것 같습니다. 

왜요? 한 가정의 가장으로 몇 안 되는 식구 먹여 살리기도 힘든데, 한 교회의 담임목사가 되어 수백 수천의 성도를 이끌어가기도 쉽지 않은데 5천만 이 넘는 국민을 이끌어가는 것이 얼마나 어렵겠습니까? 요구는 좀 많습니까? 이번에 뽑힌 박근혜 당선자만 해도 얼마나 기대감들이 많습니까? 민생 살리기, 경제 살리기, 정치 경제 국방 안보 등등 엄청나지요? 게다가 우리나라 국민들이 냄비같이 쉽게 달구어졌다가 식는 경향이 있어서 뽑을 때는 열렬이 지지하다가도 조금만 자기 기대에 못 미치면 또 얼마나 냉정하게 내칩니까? 그러니 대통령 정말 어려운 자리입니다. 

저는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기왕 뽑혔으니 잘 해야 한다. 얼마나 많은 대통령이 시작은 좋았는데 끝이 안 좋았습니까? 욥기 8:7은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고 했는데 반대로 시작은 거창했지만 끝이 안 좋고 비참했던 대통령이 얼마나 많았습니까? 그러니 대통령은 시작할 때보다 끝날 때 평가해야 할 것 같습니다. 마지막까지 잘 해주는 성공한 대통령이 되도록 기도하기 바랍니다.

❚실패한 지도자 헤롯

그런데 바로 이 점에서 실패한 지도자가 성경에 나옵니다. ‘헤롯 1세’ 혹은 ‘대(大) 헤롯’이라는 사람입니다. 신약성경에는 여러 명의 헤롯(헤롯의 아들과 손자들)이 등장하기 때문에 그들과 구분하기 위해 이 사람의 이름 앞에 큰 대(大) 자가 붙여 ‘대 헤롯’이라 부릅니다. 헤롯에 대해 알려면 그의 가문에 대해 먼저 알아야 합니다. 로마 황제 줄리어스 시저(Julius Ceasar)는 주전 47년 안티파터(Antipater)라는 사람을 유대 총독 자리에 앉힙니다. 

이 안티파터는 혈통 상으로 에돔의 후손인 이두매인입니다. 로마인도 아니고 그렇다고 유대인도 아닌 이방인이 어떻게 유대 총독이 된 것일까요? 이두매의 통치자였던 그는 당시 세계를 정복하고 유대를 식민지로 통치한 로마의 권력을 교묘하게 이용하는 뛰어난 정치력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로마의 폼페이 장군을 지지하다가 전쟁에서 폼페이 장군이 죽자 재빠르게 시저에게 붙어 온간 아부와 아첨, 그리고 뇌물 등 갖은 수단방법을 다 동원해 유대의 총독으로 임명받은 것입니다. 요즘도 이런 간교한 정치력을 발휘하는 정치인들이 많은데 정말 안티파터는 뛰어난 술수와 계략을 가진 사람이었던 모양입니다. 

안티파터는 여기 만족하지 않고 또다시 온갖 수단을 동원, 로마 황제를 설득해 자기 아들 헤롯을 갈릴리 지역의 통치자로 임명받게 하는데,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라는 말 하시지요? 정말 이 말처럼 아들 헤롯도 아버지 안티파터보다 더 뛰어난 술수와 계략과 정치력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헤롯이 갈릴리의 통치자가 된 후 로마 황제에게 잘 보여서 드디어 유대 전체의 분봉왕으로 봉함을 받게 된 것입니다. 분봉왕(分封王)이란 로마 황제가 자신이 지배하는 식민지 국가에 왕으로 세워 대신 통치하도록 한 사람입니다. 이두매 촌놈이 유대 전체를 지배하는 분봉왕으로 일약 출세한 입지전적인 정치인이 바로 대 헤롯입니다.

제가 이렇게 헤롯이 출세하게 된 이야기를 길게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아버지로부터 이어받은 뛰어난 두뇌와 술수, 그리고 탁월한 정치 감각, 로마에게 아부하는 능력까지 대 헤롯은 아주 뛰어난 정치인이었던 것입니다. 또 실제로 정치도 잘 했습니다. 요즘으로 치면 경제, 국방, 외교, 문화, 종교 등 모든 면에서 아주 뛰어난 능력을 발휘한 왕이었습니다. 그가 통치하는 동안 로마와 아주 좋은 관계를 유지했기 때문에 외교나 국방으로는 걱정할 일이 없었습니다.

게다가 경제도 살리고 나라와 국민을 윤택하게 만든 유능한 왕이었습니다. 우리도 새로 뽑은 대통령에게 가장 먼저 기대하는 것이 이것 아닙니까? 나라 좀 살리고 국민들 잘 살도록 경제를 살리라고요. 그런데 헤롯이 이걸 잘 했다는 말씀입니다. 나아가 곳곳에 화려한 건축물을 세우고 각종 문학, 예술, 체육경기를 개최하고, 무엇보다 유대인들이 이방인인 이두매인 왕을 탐탁하게 여길 리 없는데 유대인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성전을 새로 아주 거창하고 화려하게 짓습니다. 

요한복음 2:20에도 나오는 것처럼 헤롯은 이 예루살렘 성전을 자그마치 46년 동안이나 공사를 해서 신축합니다. 대단하지요? 그러니 유대인들이 얼마나 좋아했겠습니까? 로마 황제에게 잘 보이고, 나라를 부강하고 윤택하게 만들고, 백성들 잘 살게 해주고, 더욱이 종교적으로 가장 큰 업적까지 남겼으니 그는 정말 뛰어난 왕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헤롯은 결국 실패한 왕이 되고 맙니다. 이렇게 뛰어난 정치적 감각을 가지고, 실제로 많은 업적을 남겼지만 대 헤롯은 결과적으로는 철저하게 실패한 왕이 되고 맙니다. 마치 시작은 거창했지만 끝이 비참한 대통령처럼 말입니다. 왜 그가 실패한 것일까요? 왜 그 뛰어난 능력과 수많은 업적에도 불구하고 그가 결국 실패한 왕이 되고 만 것일까요?

❚헤롯이 실패한 이유

헤롯이 철저하게 실패한 이유는 그가 권력욕에 눈이 멀었기 때문입니다. 헤롯은 유능한 정치인이었지만 유난히 권력에 집착했기 때문에 자신의 권력을 지키기 위해서는 수단방법 안 가리는 잔인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권력을 지키나가기 위해 모든 정적을 무참하게 살해하고 나아가 왕위의 합법적인 계승자들을 모두 죽입니다. 심지어 첫 번째 부인도 위협이 된다고 죽이고, 그 사이에서 얻은 두 아들도 죽이고, 대제사장 등 자기 외에 백성들에게 인기가 높은 사람은 모두 잔인하게 살해했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십시오.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동방박사들이 아기 예수님이 베들레헴에서 나실 때 별을 보고 찾아옵니다. 그런데 하필이면 이 헤롯이 그 소문을 듣고 헤롯과 온 궁전이 난리 법석이 일어납니다. ‘유대인의 왕’이 태어나서 동방박사들이 경배하러 찾아왔다고 하니 헤롯 말고 또 다른 유대인의 왕이 태어난다는 것이 얼마나 헤롯과 권력자들에게 큰 위협이 되었겠습니까? 그러니까 예루살렘에 큰 소동이 일어난 게지요. 

헤롯은 이 소식을 듣고 동방박사들을 궁전으로 불러 자기도 아기에게 경배하려 한다고 거짓말을 하며 아기 예수가 태어난 곳을 알아내려 합니다. 물론 진짜 경배하려는 것이 아니고 찾아내 죽여서 후환을 없애려는 것이지요. 왕위를 넘볼 수도 있다는 이유로 아내도 죽이고 친아들도 죽이는데 그까짓 아기 하나 못 죽이겠습니까? 하지만 동방박사들은 꿈속에서 이 헤롯의 무서운 음모를 알게 되어 아기에게 경배한 후 동방으로 돌아가 버립니다. 이에 격노한 헤롯은 어떻게 합니까? 베들레헴이라는 장소만 아니까 아예 베들레헴에서 태어난 사내아이 중 두 살 미만 아기들을 모조리 죽이지 않습니까?

이렇게 헤롯은 그야말로 권력욕에 철저하게 눈이 먼 사람이었습니다. 권력을 지키기 위해서는 가족도 죽이고 아내도 아들도 죽이고 유대인의 왕이 되실 아기 예수님까지 죽이려 든 사람입니다. 내 권력을 넘보거나 위협한다면 누구라도 다 죽이겠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날도 이런 욕심과 욕망에 사로잡혀 눈이 멀면 정치인도 지도자도 결국 실패하고 맙니다. 대통령도 마찬가지입니다. 지도자란 군림하고 권력을 휘두르는 자리가 아니라 백성을 섬기는 자리입니다. 이 사실을 인정하지 못하고 권력욕에 눈이 멀어 죄를 범한다면 그 사람의 말로는 헤롯처럼 비참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인간의 욕심이나 욕망은 사람의 눈을 멀게 합니다. 우리말에 “돈에 눈이 멀었다, 욕심에 눈이 멀었다”는 말이 있지요? 정말 꼭 맞는 말입니다. 육신의 눈이 머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눈이, 나아가 영적인 눈이 머는 것입니다. 사람에게는 눈이나 귀, 입 같은 감각기관이 있습니다. 눈으로는 보고, 귀로는 듣고, 입으로는 맛을 봅니다. 그런데 이 감각기관이 두 가지 종류가 있어요. 육신적인 눈과 귀가 있고, 영적인 눈과 귀가 따로 있습니다. 

육신적인 이 눈과 귀는 그저 눈에 보이는 현상만 보고 소리만 들을 수 있지만 영적인 눈(=영안)과 영적인 귀가 없으면 어떻게 되느냐? 영적인 눈, 영안이 닫히면 영적인 세계를 볼 수 없게 되고 하나님을 볼 수 없게 됩니다. 영적인 귀가 닫히면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없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늘 비유를 들려주신 후에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 ‘들을 귀’가 바로 영적인 귀에요. 비록 육신의 귀가 멀쩡해서 말소리는 들을 수 있을지 몰라도 이 들을 귀, 즉 영적인 귀가 닫혀있으면 하나님 말씀의 진리와 그 오묘한 맛을 깨달을 수 없는 것이지요. 영적인 눈도 마찬가지입니다.

발람 선지자가 돈에 눈이 멉니다. 민수기 22장에 보면 모압 왕 발락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멸망시키기 위해 발람 선지자에게 사람을 보내 많은 복채를 주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저주해 달라고 합니다. 그런데 발람 선지자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아무리 부탁하고 돈을 줘도 거절하다가 드디어 못 이기는 척 따라나서게 됩니다. 아마도 많은 물질에 잠시 눈이 멀었나 봅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발람 선지자를 태우고 가던 나귀가 여호와의 사자가 칼을 빼들고 길을 막아선 것을 보고 놀라 꼼짝도 안 하는데 그것도 모르고 발람은 “이 바보 같은 나귀가 왜 안가냐?”며 채찍으로 때린 것입니다. 나귀는 계속 앞으로 가다가는 여호와의 사자 칼에 자신도 주인도 맞아 죽을 줄 알기 때문에 꼼짝도 안 하는데 그것도 모른 주인이 이번에는 지팡이로 나귀를 마구 두들겨 팹니다. 드디어 놀랍게도 하나님이 나귀의 입을 열어 말을 하게 하시지요. 주인님, 정신 좀 차리라고요. 그제야 발람은 눈이 밝아져 칼을 빼들고 길을 막고 선 여호와의 사자를 보고 하나님 앞에 회개하게 됩니다. 

보세요. 돈에 눈이 머니까 나귀도 보는 여호와의 사자를 못 보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돈에 대한 욕심이든, 권력에 대한 욕심이든, 음욕이든 간에 모든 욕심은 사람의 눈과 귀를 멀게 만듭니다. 어떤 눈과 귀입니까? 영적인 눈을 멀게 하고, 영적인 귀를 닫게 만듭니다. 그래서 돈에 영적인 눈이 발람처럼 헤롯도 권력욕에 사로잡혀 영적인 눈이 멀게 됩니다. 영적인 귀도 닫히게 됩니다. 마음 밭도 완악하고 황폐하게 됩니다. 

그래서 어떻게 된 겁니까? 마음 밭이 완악하고 황폐해지니 권력을 지키려 부인도 죽이고 아들도 죽이고 다 죽이는 죄를 짓게 되지요. 더 중요한 것은 영적인 눈이 머니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합니다. 예수님이 유대인의 왕으로만 온 것이 아니라 만왕의 왕으로서 온 세상을 구원하러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깨닫지 못하고 그저 자기 왕위를 빼앗을 경쟁자로만 여겨 죽이려 든 것입니다. 영적인 귀가 닫히니 구약에서 예언하신 메시야가 바로 예수님임을 깨닫지 못하고 그렇게 큰 죄를 지은 것입니다. 

헤롯이 예루살렘 성전을 46년 동안 화려하게 지으면 뭐합니까? 믿음이 있어서 그렇게 한 게 아니란 말입니다. 그저 정치적인 계략으로만,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만 그렇게 한 것입니다. 선거 때만 되면 교회를 찾아와 등록하고 예배하는 척만 하는 정치인들과 다를 바 없습니다. 예수 믿는 게 가장 중요하지 교회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든다면 주님이 기뻐하시겠습니까? 주님이 그런 사람을 정말 도와주시겠습니까?

어제 뉴스에 정말 황당한 소식이 나온 것을 보았습니다. 요즘 사행성 오락실, 돈 넣고 노름하는 오락실에 대한 단속이 워낙 심하다 보니 이 사람들이 머리를 써서 간판을 ◯◯한의원, ◯◯독서실 하고 붙여서 단속하기 참 힘들다는 뉴스입니다. 참 머리 좋아요. 수법이 놀랍습니다. 그런데 가장 충격적인 것은 간판을 ◯◯교회 하고 붙인 곳도 있다는 겁니다. 정말 세상이 이렇게 막갈 수도 있네요. 위장할 게 없어서 간판을 교회로 위장합니까? 세상은 이렇게 교회를 ‘이용’하려 듭니다. 사행성 오락실뿐 아니라 정치인들도, 또 사업하거나 장사하는 사람들 중에도 교회를 사업이나 장사 대상으로 이용하려는 일이 너무도 많습니다. 

헤롯은 하나님의 성전을 ‘이용’했습니다. 믿음도 없는 사람이, 오히려 하나님의 아들을 죽이려던 사람이 성전을 으리으리하게 지어 정치적으로 이용해 먹으려 했습니다. 그러니 헤롯은 실패한 왕이 된 것입니다. 그토록 뛰어난 정치술과 능력에도 불구하고, 또 그가 세운 수많은 업적에도 불구하고 그가 비참하게 실패한 것은 이런 사람에게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당연하지요. 하나님을 못 보는 사람, 하나님의 아들을 알지 못하고 인정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기 때문에 이런 사람은 반드시 넘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성탄을 잃어버린 사람들

말씀을 맺습니다. 결국 헤롯은 어떻게 되었나요? 성탄을 잃어버린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바로 오늘 설교 제목처럼 말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아기 예수를 믿음으로 맞이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오직 모든 것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고만 들고, 권력욕에 사로잡혀 자신의 권력을 지키기 위해 수단방법 안 가리는 사람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토록 뛰어나고 유능한 사람이지만 성탄절에 동방박사나 목자들처럼 아기 예수님을 맞이하고 경배하지 못하고, 아기 예수를 죽으려 들었으니 그는 성탄을 잃어버린 사람입니다. 그의 성탄절은 인생서 가장 끔찍하고 불행한 순간이 되고 만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날에도 성탄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혹시 헤롯처럼 성탄을 잃어버린 사람은 아닌지요? 욕심 때문에 말입니다. 돈 욕심, 권력욕, 음욕 등 많은 욕심이 우리를 사로잡아 영적인 눈을 멀게 하고 귀를 멀게 해 주님을 못 보게 하고 맞이하지 못하게 만들지는 않은지요? 혹은 우리 마음에 근심과 슬픔, 무거운 짐 때문에 성탄을 잃어버리고 있지는 않습니까? 

비록 최고 권력의 자리에 있었지만 언제 누가 이 자리를 빼앗을지 모른다는 두려움과 걱정 때문에 밤잠을 못 이루었을 헤롯처럼 지금 내 마음에 근심 슬픔 무거운 짐이 나를 내리눌러 성탄의 기쁨을 누리지 못하게 만들지는 않는지요? 혹은 가정 때문에, 남편과 아내, 부모와 형제, 특히 자녀 문제 때문에 성탄의 기쁨을 못 누리고 있지는 않은지요? 아니면 성탄절이 그저 즐거운 명절이고 연휴일 뿐 정작 성탄절의 주인공인 예수님을 보지 못하고 만나지 못해서, 예수님은 인정하지 못해서 성탄을 잃어버린 사람이 되고 있지는 않은지요? 우리 모두 헤롯이라는 실패한 인물을 통해 교훈을 얻고 이 성탄절을 참 기쁨으로 맞이해 ‘나의 성탄절’로 만들기 바랍니다. 

예수님이 왜 오셨습니까? 인간의 모든 근심 걱정 아픔과 죄악을 씻어버리기 위해 오시지 않았습니까? 그 주님을 볼 수 있고 맞이할 수 있어야 진정 이 성탄절을 ‘나의 성탄절’로 만들고 기쁨과 행복의 성탄절로 맞이할 수 있을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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