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은혜 중심으로 사는 사람 (고전 15:9-10)

은혜 중심으로 사는 사람 (고전 15:9-10)


프랑스의 계몽주의 사상가 [루소] 는 <에밀> 이라는 책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인생의 초반 30년은 무엇을 했는지 모르고 지나가 버리며, 그 다음 30년은 무엇인가 해보려고 하다가 지나가 버리고, 또 나머지 30년은 무엇인가를 해보기에는 너무 늦은 채로 흘러가 버린다.” 
인간의 삶이란 이토록 후회의 연속입니다. 그런데 후회에도 질이 있습니다. 마땅히 후회 할 것을 후회 할 것이지만 후회하지 말아야 할 것 때문에 아파하는 어리석음은 애당초 만들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프랑스의 미술 전문 잡지인 <일뤼지옹> 지에 중세의 귀부인이 화장하는 그림이 실렸습니다. 

화려한 옷을 입고 온갖 보석으로 치장한 채 거울을 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거울에 비친 얼굴은 치장한 겉모습과는 달리 흉측한 해골의 모습이었습니다. 이 그림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누구나 세월이 지나면 늙고, 겉모습을 치장하는 것만으로는 자신의 거짓된 삶을 속일 수 없다는 엄숙한 교훈이 담겨 있습니다. 인생은 속일 수 없는 진실입니다. 그 진실 된 모습이 후회의 질을 결정할 것입니다. 마땅히 후회할 것을 후회하느냐, 가치 없는 후회나 만들어 가는 하찮은 인생을 사느냐의 문제입니다. 

[토니 캄폴로] 라는 사회학자는 “모든 인간은 죽음 앞에 섰을 때 이루지 못한 업적 때문에 후회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바르게 살지 못했음을 후회한다.” 고 했습니다. 
인생이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최고의 시간입니다. 그리고 반드시 결산의 정점이 있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죽음 앞에 하나님의 심판을 예감하고 본능적으로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됩니다. 인생을 허비하며 살았는지, 어느 정도의 가치를 인정받을 만한지를 스스로 돌아보게 됩니다. 

요즘 여러분은 어떻게 살고 있습니까? 진실을 버린 채 눈앞에 보이는 업적만을 따라서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래서 후회 할 가치가 없는 것에 매여 사느라고 진정 후회해야할 것을 놓치고 살지는 않습니까? 
사람들은 누구나 나름대로의 세계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찮은 일을 앞에 놓고 이것을 어떻게 생각하느냐, 어떤 각도에서 이해하느냐 하는 것이 그 사람의 세계관을 말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세 가지의 유형으로 나타납니다. 
첫 번째 유형은 모든 것을 우연으로, 자연현상으로 보는 세계관입니다. 세상 모든 일은 시작도 끝도 없는 모두가 우연적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책임 질 것도 없고, 미리 걱정 할 것도 없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속편한 삶이라고 할지 모르지만 무책임 한 것입니다. 

두 번째 유형은 모든 것에는 법이 있고 원리가 있다고 보는 세계관입니다. 자연에 법칙이 있듯이 생명에도 법칙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 법칙을 벗어나지만 않고 살아가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굉장히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결정적인 문제는 그 원리를 누가 만들었고 누가 주었는지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런가하면 세 번째 유형은 모든 것을 은혜로 보는 은혜중심의 세계관이 있습니다. 특별히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서 볼 수 있는 유형입니다. 이런 사람에게는 이것도 은혜요, 저것도 은혜입니다. 직분이 주어진 것도 은혜요, 직분이 주어지지 않은 것도 은혜입니다. 제직이 된 것도 은혜요, 그렇지 못한 것도 은혜입니다. 칭찬도 은혜요, 책망도 은혜입니다. 성공도 은혜요, 실패도 은혜입니다. 건강도 은혜요, 심지어는 질병도 은혜로 여깁니다.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어떤 세계관이겠습니까? 은혜중심의 세계관이어야 합니다. 아니 하나님을 믿는 자가 되었다면 이런 세계관을 가질 수 있어야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믿기만 하면 저절로 이런 세계관이 만들어지는 것입니까? 모든 것을 아름답게 볼 수 있는 이 은혜 중심적인 세계관으로 살아가려면 적어도 기본적인 신앙의 자세가 있어야 가능합니다. 
그 첫 번째 자세가 모든 것은 내 공로로 되는 것이 아니요, 내 의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나는 무자격하다. 나는 아무 의도 없고 복 받을 만한 선도 없는 자다.” 라는 것을 인정하는 그 고백에서부터 출발해야 합니다. 그런 사람만이 은혜를 바로 알 수 있습니다. 

둘째 자세는 하나님의 인격적이고 강권적인 사랑을 믿을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부족하고 부덕함에도 불구하고 받아주시고 용서해 주시는 하나님의 그 크신 은혜, 그 강권적인 은혜를 믿어야 합니다. 내 쪽에서는 다가설 수 있는 체면도, 용기도 없는데 하나님께서 강권적으로 사랑해 주신 결과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진정으로 감사할 수 있고 은혜아래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세 번째 자세는 은혜의 현실성을 믿어야 합니다. 이것은 무슨 말이냐 하면 하나님의 은혜는 언제나 임한다는 사실을 믿는 신앙입니다. 그래서 언제나 현실에서 돌아보면 그 은혜 아래 내가 있었고, 그 은혜 아래 내가 있고, 그 은혜 아래 내가 있을 것이라는 과거의 은혜, 현재의 은혜, 미래의 은혜까지를 믿는 것입니다. 이것이 은혜의 현실성을 믿는 믿음입니다. 그리고 이런 믿음이 은혜중심의 삶입니다. 

오늘 말씀에서 바울이 고백하는 것을 들어보십시오. 10절입니다.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이것이 진정 은혜 중심의 사람이 드릴 수 있는 신앙고백입니다. 
적어도 오늘의 고백을 보면 바울은 지금 은혜를 구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은혜를 받은 자입니다. 은혜를 더 받으려고 수고하겠다는 조건적인 믿음도 아닙니다. 이미 받은 은혜에 감격해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이미 받은 은혜가 오늘의 자기를 있게 했고, 그 은혜만으로도 충분히 살아갈 수 있음을 고백하는 말입니다. 

나에게 무언가 주어졌을 때는 주체 할 수 없이 흥분해서 이리 뛰고 저리 뛰다가도 조금만 비위가 뒤틀리면 돌아서서 온갖 잡다한 것들을 다 쏟아 놓는 은혜보상형의 하찮은 삶이 아니라 항상 이미 받은 자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바울의 모습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 삶의 방법을 터득해야 합니다. 내 지식도, 내 건강도, 내 가정도, 내 직장도, 그 무엇도 은혜 아닌 것이 없습니다. 은혜 안에 내 존재가 있다는 말입니다. 바울은 은혜를 단순히 감상적인 기분이나, 어떤 진리에 대한 깨달음으로나, 감정적인 기쁨으로나, 단순한 용기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바울에게 있어서 은혜란 곧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전적으로 하나님에 의한 것이 은혜란 말입니다. 

자, 은혜에 대한 비밀을 생각해 봅니다. 은혜는 나 자신 보다 먼저 있었습니다. 내가 있기 전에 은혜가 있었고, 내가 아직 은혜를 모를 때에 하나님은 이미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그 깨달음이 지금일 뿐이지 은혜의 사건은 벌써 오래 전에 있었다는 말입니다. 바울이 오늘 자신이 그 많은 수고를 했고 자랑할 만한 업적을 남겼음에도 그것을 “내가 아니요, 하나님의 은혜” 라고 말하는 것이 그 비밀을 알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모든 것을 은혜로 여기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사실이 있습니다. 매우 정직하게 자기 자신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점입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자신의 약점을 드러내기를 꺼려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자기 자신의 잘못한 점, 나쁜 점을 적나라하게 내어놓고 조금이라도 변호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어떤 잘못을 저지르고는 그것을 변명하기에 급급합니다. 그런데 바울은 오히려 교회를 박해했던 자기의 잘못을 그대로 인정하였습니다. 이것이 바울의 위대함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아름다운 모습은 그의 겸손입니다. 9절에서 그는 자신을 일러 “사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 라고 했고, 8절에서는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나” 라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자신을 비우고 자신을 버릴 때 은혜를 은혜로 깨닫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자신의 사역을 멈추지 않고 순교 할 때까지 계속했다는 사실입니다. 은혜 중심의 사람이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바울은 마지막까지 다 보여주었습니다. 우리의 시작이 은혜였다면 삶의 가정도 은혜여야 하고 당연히 마지막도 은혜여야 합니다. 이것이 은혜중심의 삶입니다. 
은혜를 기억하는 사람에게는 살아내야 할 삶이 있고, 반드시 수행해야할 사명이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서는 날까지 해야 할 일이 있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영남대 교수를 지낸 [이기철] 시인이 은퇴하면서 쓴 시로 알려진 <자주 하는 생각> 이라는 시가 있습니다. 

내가 새로 닦은 땅이 되어서 / 집 없는 사람들의 집터가 될 수 있다면 
내가 빗방울이 되어서 / 목 타는 밭의 살을 적시는 여울물로 흐를 수 있다면 
내가 바지랑대가 되어서 / 지친 잠자리의 날개를 쉬게 할 수 있다면 
내가 음악이 되어서 / 슬픈 사람의 가슴을 적시는 눈물이 될 수 있다면 
아, 내가 뉘 집 창고의 과일로 쌓여서 / 향기로운 술이 될 수 있다면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생각대로 살면 실수만 쌓여 갑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살면 수고하는 대로 우리에게 쌓이는 하나님의 선물이 있습니다.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 이것은 바울의 고백입니다. 동시에 은혜 중심의 사람으로 살아가려는 우리들의 고백이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