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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송년] 아담에서 이스라엘까지 (대상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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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에서 이스라엘까지 (대상 1:1-54)


황진이가 지었다고 알려지고 있는 "산은 옛 산이로되 물은 옛 물이 아니로다 / 주야로 흐르는 물이 옛 물이 있을소냐 / 인걸도 물과 같아서 가고 아니 오더라"는 유명한 시조가 있습니다.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는 '산'은 달라지는 것이 없지만 계속 흐르고 있는 '물'은 바뀔 수밖에 없다는 뜻으로서, 특히 '사람'의 마음이 변하고 '인생'의 흐름이 변화무쌍함을 노래하는 시조입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은 우리 기독신자의 역사에는 아무리 시간이 흘러가고 세대가 바뀌면서 모든 것이 '물'처럼 변화되어도 끝까지 변치 않는 '산'과 같은 것이 있음을 증거해 주고 있습니다. 
역대상과 역대하의 말씀은 이스라엘의 역사를 세속적인 관점에서가 아니라 역사의 참 주인 되신 하나님의 관점에서 조명하고 있는 '구속사적 역사서'입니다. 
그 역대상의 처음 몇 장들은 순전히 족보로만 가득 차 있는데, 오늘 본문인 1장에서는 그 중에서 '아담'에서부터 '이스라엘' 즉 야곱까지 이르는 족보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특이한 점을 두 가지 보게 됩니다. 
  
우선 보통 족보에는 그저 조상에서부터 시작하여 그 자자손손을 순서대로 빠짐없이 기입하는 것이 보통인데, 이 역대상 1장에 기록된 족보에는 주요 혈통에서 벗어난 '비주류' 종족의 족보가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것만 해도 이상한 족보라고 할 수 있는데 더욱 이상한 것은, 그런 불신앙의 자손에 관한 족보가 양적으로도 훨씬 더 많이 기록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소수의 족보에는 도대체 무엇이 포함되어 있었기에 그처럼 절대적인 다수를 제치고 '구속사의 주류'가 될 수 있었던 것이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장구한 세월의 흐름과 수많은 세대의 교체 중에도 마치 '산'처럼 변하지 않는 두 가지가 그 정통 가문을 통해 계속 이어지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제 2012년을 보내는 연종주일을 맞이하면서 저와 여러분은 한 해가 흘러가고 또 새 한 해가 다가오는 이런 시간의 흐름 속에서도 우리가 결코 잃지 않고 변함없이 간직해야 할 가장 소중한 전통과 유산이 무엇인지를 함께 상고해 보고자 합니다. 

1. 흘러가는 역사 속에서도 '바른 신앙'이 교회를 통하여 변함없이 계승되어야 합니다. 

1절 이하 23절에 이르는 족보에서 이것을 배울 수 있는데, 그 중에서 1절부터 4절만 보면 "1아담, 셋, 에노스, 2게난, 마할랄렐, 야렛, 3에녹, 므두셀라, 4라멕, 노아, 셈, 함과 야벳,"이라고 간결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서는 "아담"의 대를 잇는 아들로서 "셋"의 이름만 나와 있지만 잘 아시다시피 아담에게는 그 전에 '가인'과 '아벨'이라는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벨은 가인에게 죽임을 당했고 그 후에 셋이 태어났는데, 여기서는 의도적으로 가인의 이름은 제외되고 오직 경건한 후손 즉 아벨 대신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주신 셋의 자손들만 기록되어 있는 것입니다. 

아벨이 경건한 신자였다는 사실은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 제물을 열납하셨다"는 창세기 4장 4절의 기록으로도 알 수 있으며, 그 아벨 대신에 신앙의 계보를 잇게 된 셋 역시 그의 시대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는 창세기 4장 26절의 말씀을 보아서 경건한 신앙의 인물이었음을 잘 알 수 있습니다. 
이어지는 이 계통에서 특별히 "에녹"은 평생을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는(창5:24) 유명한 구절이 전해 주는 대로 두말할 필요조차 없는 모범적인 신앙인이었습니다. 
또한 그의 증손에 해당되는 노아는 온 세상이 죄악으로 관영해졌을 때에도 하나님 앞에서 유일한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 자"로(창6:9) 인정받을 만큼 "믿음을 좇는 의의 후사"(히11:7)로 명성을 남겼습니다. 
이처럼 이 1절부터 4절까지의 내용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이 정확하게 계승된 족보를 아담에서부터 노아까지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이하 5절부터 23절까지는 노아의 세 아들 "셈"과 "함"과 "야벳"의 뒤를 잇는 족보가 나오는데 거기에는 4절 이전과는 완전히 대조적인 내용들이 가득 채워져 있습니다. 
나중에 24절로 27절에 보면 "24셈, 아르박삿, 셀라, 25에벨, 벨렉, 르우, 26스룩, 나홀, 데라, 27아브람 곧 아브라함"이라고 셈에서부터 아브라함에 이르는 족보가 나타나고 있는데, 이것은 바로 1절부터 4절까지 나왔던 것과 똑같이 간결한 패턴으로 똑같은 '신앙의 계보'로 연결되는 내용임이 분명합니다. 
그렇다면 그 '정통신앙이 계승된 족보' 사이에 이 5절 이하 23절의 내용이 끼어들어 있는 것은, 이 부분이 바로 '비주류' 즉 '불신앙적인 후손'들이 이어진 족보임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 중에서 우선 5절 이하 7절에는 "야벳"의 자손들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이름이 "고멜"로부터 "도다님"까지 기록되어 있는데, 이들이 헬라 민족, 러시아 민족, 켈트족, 아르메니안족 등 우리가 세계사를 통해 알고 있는 유명한 민족들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이름들 중에서 의미심장한 것들은 바로 "마곡, 두발, 메섹" 등의 이름들인데, 에스겔서 38장 2절 말씀에 보면 이 자손들이 장차 말세에 적그리스도 세력이 될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노아까지는 두말할 것도 없고 야벳 역시 신앙의 인물이었지만, 그 자손에 가서는 이처럼 오히려 하나님의 원수들이 나타나는 비극이 발생했던 것이었습니다. 

8절 이하 16절에는 노아의 또 다른 아들 "함"의 자손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함은 잘 알다시피 노아로부터 이미 저주를 받은 패역한 아들이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자손들이 걸어간 길은 10절에 있는 "니므롯"이란 사람을 통해 대표적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10절에 그 니므롯을 가리켜 "세상에 처음 영걸한 자"라는 특별한 수식어를 붙이고 있는데, 이 '영걸한 자'란 '개인적으로 대단한 용맹을 떨치거나 큰 권력을 잡은 자'를 가리킵니다. 
즉 함의 자손들은 이처럼 인간의 힘을 과시하고 권세를 추구하는 세속주의의 효시가 되었던 것이었습니다. 

17절부터 23절까지는 "셈"의 자손들입니다. 
셈은 아까 잠시 설명한 것처럼 노아의 아들 중에서 아브라함까지 직접 이어지는 경건한 계보에 속한 자입니다. 
하지만 그 셈의 족보에서도 아주 중대한 문제가 나타났습니다. 
17절부터 19절 상반절까지는 24절부터 25절에 나오는 것과 똑같은 이름들이 반복되다가, 19절 하반절에서는 갑자기 곁가지가 하나 튀어나오고 있습니다. 
즉 "에벨은 두 아들을 낳아 하나의 이름을 벨렉이라 하였으니 이는 그 때에 땅이 나뉘었음이요 그 아우의 이름은 욕단이며"라는 기록이 나오면서, 그 이하 20절부터 23절까지에는 그 "욕단"의 아들들의 이름이 기록된 것입니다. 

왜 여기서 나중에 아브라함까지 이어질 장자인 '벨렉'의 계보는 잠시 사라지고 그것과는 아무 관계없는 벨렉의 동생, '욕단'의 족보가 등장하고 있는 것이겠습니까?
그것은 이 시점에 와서 셋의 후손 가운데서도 신앙 계승에 큰 이상이 발생했음을 보여 주기 위함입니다. 
19절 중간에 보면 "그 때에 땅이 나뉘었다"라는 구절이 나오는데, 이것은 바로 에벨에서 벨렉으로 이어지는 시대에 '바벨탑의 사건'이 일어나면서 사람들이 전 세계로 흩어지게 된 것을 가리킵니다. 
즉 하나님께 반역하면서 '다시 홍수심판 따위가 일어나도 온 지면에 흩어지게 되는 것을 막으면서 우리 이름을 온 세상에 퍼뜨리자'는 그 교만의 바벨탑이 세워졌을 때, 이 셋의 자손들 중에서도 그런 불신앙 운동에 빠져 들어간 사람들이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셈, 함, 야벳의 아버지 노아는 '당대에 유일한 의인'이라 불린 경건한 신자였습니다. 
하지만 바로 그 아버지와 함께 홍수 심판에서 구원을 받았던 이 세 아들들의 자손 대에 와서는 그 신앙 계승이 제대로 이어지지 못했습니다. 
그들 중에서 '적그리스도'에 속한 불신앙인들이 태어났습니다. 
그들 중에는 세상만 사랑하는 세속주의자들이 있었습니다. 
이들 중에는 사람이 하나님의 위치에까지 오를 수 있다고 자만하는 극단적인 '하나님의 원수'들까지 나왔던 것이었습니다. 

이처럼 인류역사가 계속되는 동안 '신앙의 백성'들과 '불신앙의 백성'들이 나누어지는 일은 끊임없이 계속됩니다. 
아무리 부모 세대는 신앙을 잘 지킨 집안이라 해도 그 자녀들 중에서는 불신앙인들이 나올 수 있으며, 그렇게 되지 않고 신앙을 바로 이어 받은 자녀라 할지라도 또 세월이 흐르면 그의 후손에게서도 역시 불신앙의 무리들이 나타나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즉 그 어떤 '신앙의 가문'에도 자자손손 단 한 명도 불신자가 생기지 않는 경우란 결코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교회사에서도 똑같이 적용됩니다. 
어느 한 교단이 바른 신앙의 전통을 받아 세워져도 역사가 흘러가면서 바로 그 안에서도 또 이단의 무리, 불신앙의 배교자들이 끊임없이 일어나기 마련입니다. 
그러면 참된 교회는 그들과 갈라설 수밖에 없으며 그렇게 해야 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기도 합니다. 
우리나라의 기독교 역사만 보더라도 처음에 우리나라의 장로교는 청교도의 신앙을 이어받은 '개혁주의적인 신앙'으로 일치가 되어 있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바로 그 장로교 안에서 일제 신사참배에 가담하는 '우상숭배자'들이 나오게 되었고 자유주의 신학을 따르는 '이단'들이 생겼습니다. 
바로 그런 이유로 해서 원래는 하나였던 우리나라의 장로교가 지금에 와서는 여러 개로 나누어지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단이 나누어지게 되는 것은 정통 진리를 지키는 교회들이 독선적이고 분열주의자라서 그렇게 된 것이 결코 아닙니다. 
교단 분열의 진짜 이유는 그처럼 배교하는 오늘의 '가인'들, 그처럼 이단에 빠진 오늘의 '함' 족속들, 그처럼 정통신앙에서 곁길로 빠져버린 오늘의 '이스마엘과 에서'와 같은 무리들이 교회 안에 끊임없이 일어나는 까닭에 자연히 발생할 수밖에 없는 필연적 현상인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곁가지'들 때문에 하나님의 구속사가 차질을 빚거나 하나님의 택함을 입은 선민이 끊기게 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왜냐하면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셋의 경건한 후손들은 창세기 때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오직 소수의 참된 교회를 통하여 끊임없이 계승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절대다수의 '불신앙의 후손'에도 불구하고 '아담에서부터 아브라함'까지 경건한 영적 혈통이 계속 이어진 것처럼, 이제 한 해를 보내면서 예수님의 재림이 그만큼 더 가까워지고 있는 이 종말시대에도 역시 오직 바른 교회운동을 통하여 여호와 하나님만을 유일하신 절대주권자로 모시는 정통신앙을 맥맥이 이어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 교체되는 세대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유업'이 가정을 통하여 계속 상속되어야 합니다. 

28절 이하 54절까지의 내용에서 이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데, 그 중에서 28절과 34절만 보면 각각 "28아브라함의 아들은 이삭과 이스마엘이라", "34아브라함이 이삭을 낳았으니 이삭의 아들은 에서와 이스라엘이더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서는 우리가 잘 아는 "아브라함", "이삭", 그리고 "야곱"까지 이르는 저 유명한 '믿음의 조상 3대'를 앞의 문단에서 보았던 '아담부터 아브라함'에 이르는 정통 족보의 경우와 똑같이 아주 간략하게 기록해 놓았습니다. 
그에 비해서 이들과 같은 집안에서 태어나 동시대를 살았던 "이스마엘"과 "에서"의 후손으로 이어지는 족보는 이 28절부터 54절까지의 긴 문단에서 나머지 스물일곱 절들을 가득히 다 메우고 있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에서 야곱까지 이르는 이 3대에 걸쳐 성취된 것을 세상적으로만 따져 본다면 사실상 아무 것도 없었던 것이나 다름없었습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이 되게 하리라"는 이 말씀 하나만 믿고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땅 가나안으로 들어온 아브라함은 자신의 평생에 걸쳐 '큰 민족'과 '큰 땅'은커녕, 겨우 '아들 하나'를 남기고 '밭 한 뙤기의 장지'만 마련해 놓고 끝났습니다. 
그것은 이삭의 세대에서도 별 변화가 없었고, 야곱 역시 말년에는 오히려 애굽으로 내려가 객지에서 타향살이를 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그 3대에 걸쳐 계속 유산된 아주 중요한 것이 딱 한 가지 있었는데 그것이 곧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내려 주셨던 '언약'이었습니다. 
장차 이스라엘의 자손이 '하늘의 별과 바다의 모래와 같은 큰 민족'을 이루고 '눈에 보이는 동서남북의 모든 땅'을 차지하게 될 것이라는 그 약속 하나를 아브라함은 이삭에게, 그리고 이삭은 야곱에게 유일한 유산으로 남겨 놓았습니다. 
그리고 야곱 역시 죽기 전에 자기 아들 요셉과 그의 형제들에게 바로 그 하나님의 약속을 되새겨 주면서 자신의 '나그네 인생 여로'를 마쳤던 것이었습니다. 

그에 비해서 오히려 서자 출신의 자손들은 크게 출세하고 성공한 인생을 살게 되었습니다. 
이스마엘은 창세기 17장 20절에 "그로 크게 번성케 할지라 그가 열두 방백을 낳으리니 내가 그로 큰 나라가 되게 하려니와"라고 하나님께서 예언해 주셨던 사람이었습니다. 
본문 29절부터 31절에 기록된 '열두 아들'이 바로 그 말씀대로 '열두 방백'이 될 정도로 그의 후손들은 크게 출세하고 세력을 확장했던 것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첩 그두라가 낳은 자손들 또한 32절과 33절에 기록되어 있는데 이들 역시 아라비아 지역을 차지하면서 번창해 나갔습니다. 
정작 적자(嫡子)인 이삭은 우물 하나도 차지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쫓겨 다니는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을 동안에, 이 비주류 후손들은 그야말로 세계가 좁다 하면서 팽창일로를 치닫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이삭의 아들 야곱 세대에서도 그런 현상은 마찬가지였습니다. 
35절 이하 37절까지의 본문에는 에서의 자손들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고, 그 뒤를 이은 38절부터 42절에는 당시 세일 산에 살고 있던 호리 족속이라 불리던 원주민들의 족보가 첨부되어 있습니다. 
이 둘을 나란히 기록한 것은, 에서가 바로 세일산으로 가서 그 지역의 강력한 원주민들을 쳐부수고 그들과 혈통적으로 동화하여 함께 에돔 족속을 이루었기 때문입니다. 

이어지는 43절부터 54절까지는 그 에서가 세운 "에돔"이라는 나라에 일찍부터 왕정 체제가 설립되었음을 기록하는 내용입니다. 
43절에 보면 "이스라엘 자손을 치리하는 왕이 있기 전에 에돔 땅을 다스린 왕들이 이러하니라"고 하면서 그 이하에 에돔의 왕들과 족장들의 이름을 나열하고 있습니다. 
여기 "이스라엘 자손을 치리하는 왕이 있기 전에"라는 문구가 아주 의미심장합니다. 
즉 에돔의 왕정은 이스라엘에 첫 왕 사울이 세워졌을 때보다 훨씬 더 오래 전부터 이미 존재해 왔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왕정의 체계가 갖추어졌다는 것은 그만큼 국력이 강하고 조직과 기강이 잘 잡혀 있는, 즉 정치적으로 발달된 나라임을 의미합니다. 
에서의 자손이 이룬 에돔이라는 나라가 이런 점에서는 야곱의 자손 이스라엘보다도 훨씬 더 앞서 있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아브라함의 정통 계보를 잇는 집안에서는 겨우 몇 십 명 정도의 가솔을 거느리는 족장으로 평생을 사는 정도에서 끝났으며, 야곱 대에 가서는 다른 나라에 몸 붙이고 사는 처지가 되었고, 그 자손들은 아예 애굽에서 바로의 종으로 전락해 버렸습니다. 
하지만 그러는 동안 서자의 후손 에돔은 이미 강력한 왕이 다스리는 독립국가를 건설해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참 얼마나 대조적인 가문입니까?
불신앙의 자손들이 세상에서 출세하고 권력을 잡고 다른 나라를 점령하기도 하며 일국의 통치자들이 되어 가고 있는 판에, 명색이 '믿음의 조상'이라는 집안은 자기 살 땅 하나 변변히 자리 잡지 못하고 국가건설은커녕 남의 나라에서 더부살이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냥 세상적 관점에서만 본다면 '아브라함의 정통 가문'이 '이스마엘과 에서의 자손'에 비해 너무나 못나고 약한, 보잘것없는 모습으로 살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결국에 가서는 결코 그렇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아브라함의 '적자 후손'을 통해서는 세상에서 성공하고 출세하는 유산보다 백배 천배 더 귀중한 유산이 전해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이스마엘이 아니라 이삭에게만, 에서가 아니라 오직 야곱에게만 주신 '축복의 약속'이었습니다. 
그들이 장차 이루게 될 큰 민족과 나라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이 세대가 바뀌며 겉보기에는 별로 나아지는 것이 없어 보이는 가운데도 이들을 통하여 꾸준히 후손에게 전수되었으며, 그 약속은 결국 '가나안 정복'과 '이스라엘 건국'이라는 엄청난 축복으로 실현되고 말았던 것이었습니다. 

여러분의 가정에서는 과연 어떤 유업이 자녀들에게 전해지고 있습니까?
결코 '이스마엘과 에서의 유업'을 사모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내 자식이 나보다 더 머리가 좋아서 좋은 대학교에 입학했다고, 나는 고생했지만 내 아들딸은 억대 연봉을 받는 좋은 직장에 취직되었다고, 나는 촌구석에서 태어났지만 내 자녀와 손주들은 남들이 다 부러워할 만한 사회적 지위에 오르게 되었다고만 해서 우리 가문이 복을 받았다고 절대로 착각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약속', 이것을 전해 주고 물려받지 못하면 그 가문에서는 사실상 빈껍데기 상속만 이루어지고 있을 뿐입니다. 
오직 의인의 자손, 선인의 후손에게만 주시기로 약속된 금세의 축복과 내세의 소망, 이것이 유업으로 전해지지 않으면 그런 집안이란 저 천국에서는 문자 그대로 이산가족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부모는 교회의 직분자까지 되었는데도 그 자녀는 주일학교와 SFC에 출석도 하지 않고 있다면, 아무리 다른 사람 앞에서 '잘난 자식'을 두었다고 뻐기고 있어도 실상은 그것이야말로 '콩가루 집안'인 것을 똑똑히 깨달아야 하는 것입니다. 

몇 십 년 전 언젠가 원로목사님께서 우리 형제들을 다 불러 놓고 미리 '유언'처럼 말씀하시기를 "나는 너희들에게 예수 믿는 신앙 이것 하나는 확실히 전해 주었으니 내가 너희들의 아버지로서 할 것은 완전히 다 했다. 그러니 나한테서 아무 것도 더 받기를 바라지 말아라."고 하셨습니다. 
정말이지 아버지의 그 말씀 그대로 저는 세상에서 가장 부요한 유산을 이미 받았다고 확신합니다. 
그런 신앙의 유업을 물려받은 우리 형제들과 우리 집안은 아무리 감사해도 다할 수 없는,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을 이미 넘치도록 누리고 있는 축복의 가문이라고 자부하는 것입니다. 
  
오늘도 '아브라함의 언약'을 계속 유업으로 전해 주는 가정이 있는가 하면 '이스마엘의 출세'만 지향하면서 자녀들을 들들 볶고 부모에게 상속받는 날만 기다리는 집안도 있습니다. 
전자는 '그리스도의 왕국'을 건설하며 '14만 4천인의 택자'를 이어가게 되지만, 후자는 '장망성'만 확장시키며 '지옥 가족'만 늘리고 있을 뿐 아니겠습니까?
해가 바뀌고 세대가 바뀌어도 영원히 변치 않을 최고의 축복인 '하나님의 유업'을 각자의 가정에서 대대로 이어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 아무리 역사가 흘러가고 시대가 변화되어도 유일하신 여호와만을 참 하나님으로 경건히 섬기는 바른 신앙을 계승하는 교회, 아무리 세대가 교체되고 환경이 바뀌어도 하나님의 언약이라는 가장 귀한 유업만을 나와 내 자녀와 내 후손을 통하여 계속 전수하는 가정 – 바로 이것이 이 역대상 1장에 기록된 수많은 이름들 중에 오직 몇 명의 신앙인들과 그 가문만 누렸던 축복이었습니다. 
절대다수의 가인의 자손들이 '불신앙'을 온 세상에 퍼뜨리고 '세속적 성공'을 자랑하면서 기세를 올리는 가운데, 아담으로부터 야곱 즉 이스라엘에 이르는 소수의 신앙선조들은 '구원에 이르는 바른 신앙'과 '금세뿐 아니라 내세에까지 미치는 영원한 유업'을 대대로, 자자손손까지 전해 주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새해가 되면 '여호와 유일신앙'을 지키는 참된 교회들은 작년보다 오히려 더 거센 공격을 당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마귀가 '자기 때가 다 된 줄'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에 그 발악은 더욱 극성스러워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자녀들을 '주의 교양과 훈계'로써 올바르게 키우는 일은 날이 갈수록 점점 더 어려워질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종말사회는 해가 바뀔수록 그 '죄악의 관영'함이 점점 더 지독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 까닭에 연말연시를 맞이하는 이 시점에 저와 여러분은 더욱 각오를 단단히 하고 더 큰 힘을 내어 이 '바른 신앙'과 '참된 유업'을 우리 교회와 우리 가정을 통해 계속 지켜내고 전해 나가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바로 이 두 가지에 이 경향교회와 여러분의 가정의 새해뿐 아니라 오고 올 미래 전체가 다 걸려 있기 때문입니다. 
경향공동체가 더욱 부흥하느냐 아니면 현대교회의 사조처럼 쇠퇴하고 마느냐 하는 문제는 오직 우리 교회가 '살아 계신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아는 개혁주의 신앙'을 끝까지 굳게 붙잡느냐 아니면 놓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여러분의 가정이 진정 화목과 기쁨과 감사가 넘치는 지상천국이 되느냐 아니면 부모자녀 사이에 욕이 오가고 싸움이 벌어지고 끝내 살인까지 저지르는 패가망신을 당하느냐 하는 문제는 오직 그 집안에 가족들이 함께 기도하고 찬양하는 경건의 능력이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39년 전에 설립된 이후 우리 경향교회가 계속 붙잡고 왔던 '참된 신앙'과 지금까지 우리의 가정을 통하여 계속 전해지고 있는 '하나님의 유업'이야말로 이 경향의 역사와 우리 가문이 소유하고 있는 최고의 '가치'요 '은혜'요 '축복'임을 깨닫고 감사드리는 가운데 다가오는 새해에도 이 귀한 신앙의 전통과 유산을 '태산'처럼 계속 지켜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석기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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