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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송년] 어찌 땅만 버리느냐 (눅 13: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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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 땅만 버리느냐 (눅 13:6-9)


미우라 아야꼬(三浦綾子)의 저서 '시오카리 언덕'(塩狩峠)은 실화를 바탕으로 쓴 소설입니다. 북해도의 가장 큰 도시 삿뽀로의 키따이찌죠오(北一條)교회에 나가노 노부오(永野信夫) 집사가 있었습니다. 그는 삿뽀로 철도청에서 근무를 하였는데 아사히가와로 발령이 났습니다. 북해도 가장 끝에 위치한 곳입니다. 그렇지만 주일이 되면 꼭 돌아와 본 교회에서 봉사하였습니다. 삿뽀로와 아사히가와 사이에는 시오카리 언덕이 있었습니다. 1909년 2월 28일 그가 삿뽀로로 돌아가는 길이었습니다. 

언덕을 달리던 열차의 끝 부분 객차의 연결기가 풀려 뒤로 밀려가기 시작하였습니다. 기관사는 그 사실도 모르고 나머지 객차를 끌고 언덕을 넘어가고 있었습니다. 떨어진 객차는 계속 역주를 하고 있습니다. 달려가서 브레이크를 당겨보았으나 말을 듣지 않습니다. 객차에 가속도가 붙으면 벼랑으로 떨어져 140명의 승객이 죽는 것은 시간문제였습니다. 이 때 나가노는 “하나님, 당신께서 만약 이 기차에 타셨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라고 기도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주여, 제가 하겠습니다” 라며 뛰어 내렸습니다. 

자기의 몸을 스스로 철로에 던져 달리는 객차를 세웠습니다. 구조대가 달려왔습니다. 그의 주머니에서 유서가 나왔습니다. 독실한 신앙을 가진 나가노 노부오 집사는 죽음의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유서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나의 죽음을 필요로 하는 곳에서 나는 비겁하게 살려고 하지 않겠다. 내가 죽지 않을 자리에 가서 죽음을 자청하지 않겠다.” 미우라는 어떻게 하든 승객의 목숨만큼은 철도에 몸을 담은 사람으로서 명예를 지키며 책임을 다해 구하려 했던 나가노의 희생적 모습에 감명을 받고 이 소설을 쓰지 않고는 배길 수가 없었습니다. 나가노 노부오의 모습이야말로 열매 맺는 자의 모습 그 자체이었습니다. 

본문에 나오는 무화과나무 비유의 초점은 은총의 유예기간을 설명합니다. 심판하시는 하나님이기보다 회개를 기다리시는 자비로우신 하나님의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회개하기를 기다리시며, 회개하도록 기회를 주시는 하나님을 발견하고 그 앞에 다시 서라는 교훈입니다. 

한 해의 마지막 주일에 우리는 서 있습니다. 한 해 동안 어떻게 살아오셨습니까? 불꽃같은 눈으로 살펴보시는 하나님 앞에서 어떤 모습입니까? 열매 있는 모습입니까? 아니면 열매 없는 모습입니까? 열매를 맺지 못한 무화과나무에게 “네가 어찌하여 땅만 버리느냐?” 라고 책망하시는 음성을 듣는 것은 아닙니까? 그렇다면 ‘어찌 땅만 버리느냐’ 의 의미는 과연 무엇입니까?  

첫째로 기회를 살렸는가

‘곽재구(郭在九)의 포구기행’ 이라는 산문집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어린 소년이 길을 가다가 우연히 동전을 줍게 되었습니다. 소년은 가슴이 떨리며 자랑스러운 기분이 들었습니다. “이건 내 꺼야. 아무 고생도 하지 않고 나는 돈을 번거야” 그 날 이후로 소년은 어디를 가든지 머리를 숙이고 눈을 크게 뜬 채 바닥에 떨어져 있는 보물을 찾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소년은 평생 동안 262개의 일 페니 동전, 48개의 오 센트 동전, 19개의 십 센트 동전, 16개의 이십오 센트 동전, 2개의 오십 센트 은화, 똘똘 뭉친 한 장의 일 달러 지폐 등 합계 십삼 달러 이십육 센트를 땅에서 주웠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것 대신 31,369회의 숨 막히도록 아름다운 노을을 볼 기회를 잃어버렸습니다. 그리고 눈부시게 영롱한 157회의 무지갯빛, 몇 천 개의 단풍잎이 가을을 물들인 풍경, 푸른 하늘이 흰 구름으로 곱게 그려내는 몇 백 몇 천 번의 모습, 지나가는 행인들의 아름다운 미소로 삶을 빛낼 수 있는 수많은 소중한 기회를 잃어버린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주어진 기회를 놓치는 이유는 눈앞의 작은 이익에 집착하기 때문입니다. 

본문 6절입니다. “이에 비유로 말씀하시되 한 사람이 포도원에 무화과나무를 심은 것이 있더니 와서 그 열매를 구하였으나 얻지 못한지라” 여기의 ‘포도원에 무화과나무를 심은 것이 있더니’ 라는 구절 속에 포도원 주인의 뜻이 담겨져 있습니다. 포도원은 포도나무를 심어놓은 장소인데 무화과나무를 심은 것은 포도나무를 위한 것이 아니라 바로 무화과나무를 위해서입니다. 무화과나무에게 기회가 주어졌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무화과나무는 전혀 열매를 맺지 못했습니다. 3년이나 열매를 맺지 못했습니다. 포도원 주인은 많은 열매를 기대했지만 하나도 볼 수가 없었습니다. 무화과나무는 기회를 놓쳐버리고 만 것입니다. 

예수께서 비유를 통해 당시 이스라엘 백성을 책망하셨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열매를 찾으시나 열매하나 내놓지 못하는 모습이 아닙니까? 신앙 생활한지 여러 해가 지났지만 아직도 변변한 열매를 내놓지 못하는 것이 아닙니까? 포도원에 심어놓으시고 나를 향해 품으신 하나님의 기대를 생각해야합니다. 그래야만 주어진 기회를 놓치지 않을 수 있으련만 과연 주어진 기회를 살리며 한 해를 살아오셨습니까?
 
둘째로 열매를 맺었는가

사랑의 집짓기로 유명한 해비타트 운동은 밀라드 풀러(Millard Fuller)라는 미국 변호사가 시작하였습니다. 그는 독실한 그리스도인으로 벤처 기업을 일으켜 20대 후반에 백만장자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아내가 이혼을 요구했습니다. 많은 돈을 벌어다 주는 남편으로서 유능하고 훌륭한 가장이라고 생각하던 풀러는 가정의 위기 앞에서 생각하였습니다. ‘내가 어떻게 사는 것이 인생을 올바르게, 의미있게 사는 것인가?’ 그는 결국 1965년 전 재산을 정리하여 나누어주고 코이노니아 농장에서 하나님의 인도를 기다렸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새로운 비전을 받은 풀러 부부는 1975년 아프리카 자이레로 가서 가난한 흑인들을 위해 집을 짓기 시작했고, 1976년 국제 해비타트를 창설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가정의 위기 앞에서 새로운 인생의 열매, 신앙의 열매를 맺는 아름다운 부부가 되었습니다. 

본문 7절입니다. “포도원지기에게 이르되 내가 삼년을 와서 이 무화과나무에서 열매를 구하되 얻지 못하니 찍어 버리라 어찌 땅만 버리게 하겠느냐” 하나님이 보고 싶은 것은 열매입니다. 꽃이 아닙니다. 무화과나무에도 꽃이 있지만 꽃을 보려고 키우는 관상목이 아닙니다. 과실수입니다.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에게서 열매를 찾는데 우리는 열매보다 오히려 화려한 꽃에 치중하는 신앙생활이 아니었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열매는 남지만 꽃은 남는 것이 없습니다. 잠시 화려했다가 시들어질 꽃에 치중해서는 결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기대하시는 열매는 무엇입니까?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를 보시며 열매 맺지 못하는 너희의 모습이 아니더냐고 지적하십니다. 깨닫지 못하고 알아듣지 못하고 세속적 가치관에 사로잡혀 물질적인 유익이나 세상 권세를 잡는 데에만 관심을 두는 모습이 바로 우리의 실상이 아닙니까? 
 
셋째로 최선을 다했는가

스펜서 존슨(Spencer Johnson)의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 라는 저서에 두 마리 생쥐와 두 명의 꼬마가 어렵게 해매다 치즈 창고를 발견합니다. 치즈를 먹으며 행복하게 살던 그들에게 위기가 닥칩니다. 치즈가 점점 없어져가기 시작한 것입니다. 위기를 재빨리 알아차린 생쥐들은 다시 치즈를 찾아 나섰습니다. 문제는 인간들입니다. 인간들은 그 현실을 받아들이지 않으려합니다. 헴이 이렇게 말합니다.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 마침내 그는 두 손을 허리에 얹고 시뻘게진 얼굴로 화를 내기 시작합니다. ‘어떻게 내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가 있지!’ 원망하다가 누군가 치즈를 훔쳐갔다고 화를 냅니다. 

그러면서 ‘나는 이곳이 좋아, 편해. 다른 곳은 몰라. 다른 곳은 위험해’ 라며 그 자리에서 꼼짝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나머지 한 명은 현실을 받아들이고 새로운 치즈를 찾아 떠납니다. 치즈에 대한 미련을 버릴수록 새 치즈를 빨리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미 도끼가 나무뿌리 위에 놓여 있습니다. 최선을 다해 변해야 합니다. 땅을 파고 거름을 주어야 합니다. 

본문 8절입니다. “대답하여 이르되 주인이여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내가 두루 파고 거름을 주리니” 여기의 ‘내가 두루 파고 거름을 주리니’는 무화과나무를 정성껏 더 돌보겠다는 뜻입니다.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또 한 번의 기회를 주시되 그냥 맡겨두지 않으십니다. 정성을 다해 도와주십니다. 한 번 더 기회를 주었으니 알아서 잘 해 보라고 내버려 두시지 않으십니다. 열매를 맺도록 도와주신다는 것입니다. 이 또한 우리에게 은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기회가 언제까지 다시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더 이상의 기회가 없을 때가 있습니다.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고 최선을 다해 열매를 맺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세계적 방송 앵커 월터 크롱카이트(Walter Cronkite) 에게 “당신의 성공 비결이 무엇입니까?” 라고 물었습니다. 그때 그가 했던 대답이 유명합니다. “방송이 나를 위해 있으니까요” 이 한 마디 속에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나를 위해 직장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직장을 위해 내가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 생각에 따라 일하는 자세가 달라집니다. 무슨 일을 하던지 이 일은 나를 위해 있는 것이다 생각하면 주인정신으로 할 수 있습니다. 교회를 섬기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가 나를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하면 감사하며 섬길 수 있습니다. 그런데 내가 이 교회를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하면 교만해집니다. 내가 없이도 잘 굴러가나보자는 고약한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동서독이 분단되어 있을 때입니다. 어느 날 동베를린 사람들이 트럭에 쓰레기 더미를 싣고 와서 서베를린 진영으로 쏟아 부었습니다. 서베를린 사람들은 그 쓰레기를 실어 보낼까 하다가 그만두었습니다. 대신 트럭에 통조림과 식량을 가득 실어 동베를린 쪽으로 보냈습니다. 트럭에 표지판을 붙였는데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사람은 각자 자기 속에 있는 것을 준다.” 사람은 자기 속에 있는 것을 주며 삽니다. 마음에 성령이 충만하다면 사랑, 희락,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성, 충성, 온유, 절제의 열매를 다른 이들에게 주며 살아갑니다. 

모름지기 열매 없는 신앙으로 살면서 부끄러움이 없다면 결코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무엇 때문에 존재하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유예기간이 언제까지 계속 될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더 이상의 유예기간 없이 바로 집행의 때가 올 수 있음을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부디 주어진 기회를 살려 열매 맺는 일에 최선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주어지는 새해에 하나님이 원하시는 열매를 많이 맺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김광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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