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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여호와 나의 목자 (시 2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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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 나의 목자 (시 23:1-6)   

어느 고참 목사에게 후배 전도사가 설교 부탁을 합니다. 제목을 불러달라고 해서 “여호와 나의 목자”라 했습니다. 그랬더니 묻습니다. “그 다음은요?” 퉁명스럽게 대답합니다. “그거면 됐지 뭐가 더 필요해?” 다음 주일 저녁에 그 교회로 갔어요. 주보에 설교 제목이 있습니다. "여호와 나의 목자, 그거면 됐지 뭐가 더 필요해.” 

어쩌면 좋아요? 정정해야하나? 자세히 들여다보니 정말 맞는 말입니다. 여호와 한 분이면 다 되는가? 이스라엘은 그랬어요. 다 없어도 여호와만 있으면 다 있다. 시23편은 기독교의 대표 말씀입니다. 미국 장례식 결혼식의 단골입니다. 그러나 그 좋은 말씀, 하늘 보물이 그냥 날아가요. 맘에 남아있게 해야 다윗처럼 복 받는데요. 

1. 나의 신 나의 구원자 

세상에 양처럼 약한 존재가 없어요. 눈도 나쁘고 달리기도 잘 못합니다. 목자가 인도하지 않으면 물도 풀도 못 찾아요. 맹수들의 밥이고요. 목자만이 모든 것을 다 해결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신들이 양처럼 약함을 잘 알았어요. 그리고 하나님이 자기들만의 목자 되어주심을 감사했어요. 목자 없는 양 될 수는 없었어요. 

가장 훌륭한 사람 되는 길이 무엇인가요? 공부하고 돈 벌고 높은 사람 되는 건가요? 그래 보았자 별 수 없어요. 빨리 자신이 얼마나 무능한 죄인인지 알고 하나님께 매달려야 삽니다. 그러면 영적 차원의 사람이 됩니다. 아무리 유명하고 부자라도 육신만으론 죄인입니다. 영적으로 볼 수도 없고 지식도 없어요. 귀신들의 밥입니다. 

버려진 양들처럼 세상에서 배회하면서 망해 갑니다. 우리도 그랬고 여전히 그럴 수 있어요. 그래서 하늘에서 목자가 오셨습니다. 하나님이 사람 되어 예수라는 이름으로 오셨어요. 그분을 내 목자로 모시고 믿고 따르면 영적 눈이 열립니다. 그러기 때문에 세상에서 가장 선하고 가장 훌륭한 일은 다른 게 아니고 예수 믿는 겁니다. 

평생 연구해도 예수의 풍성함은 다 알 수 없어요. 예수는 다 알려졌지만 여전히 비밀입니다.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호4:6) 성경은 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 빛 같이 어김없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6:3)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여호와를 목자로 삼으면 그래요.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먹고 사는 문제는 완전 책임지십니다. 뿐만 아니라,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영혼도 책임지고 구원해 주시는 분입니다. 

2. 그를 신뢰하라 

이제 양으로서 할 일이 나옵니다. 신뢰입니다. 미국 돈 뒷면에 반드시 쓰여진 문장이 있어요. “In God we trust.” “우리는 하나님을 신뢰한다.” 무슨 말인가요? 하나님이 자신들의 신이라서 책임지고 돌보심을 믿는다는 말이지요. 그러니까 어떤 상황이 닥쳐와도 망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다 필요한 과정이요 복이라는 겁니다. 

아브람은 부름 받고 잘 살던 문명지를 떠났습니다. 광야에 나가 텐트 치고 목축을 합니다. 고달픕니다. 기근이 오고 아내를 빼앗기고 적과 싸웁니다. 잘 된 건가요? 고향 사람 만나면 그럴 겁니다. “자네 왜 고생을 사서 하나?” 신자도 그럴 수 있어요. 기도해도 사업이 펴지지 않아요. 아브람이 아브라함 될 때까지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람 중 고생 안 한 사람 없어요. 잘 알다시피 야곱은 외삼촌이 20년을 노예처럼 부려먹고 계속 속입니다. 요셉은 노예가 됩니다. 아무리 하나님의 뜻이라지만 너무 하잖아요? 바르게 살았더니 감옥입니다. 세상 사람들처럼 생각하면 목자를 따라 나가 잘 된 것 없어요. 그냥 고향에서 이방신 믿어도 잘 먹고 잘 살아요. 

그러니까 요령껏 믿을 수 있어요. 열심 안 내고 대충 하면 됩니다. 교회 와서 불평하고 멋대로 휘저을 수 있어요. 그러나 그건 목자 신뢰하는 게 아닙니다. 신뢰하면 무엇이 다른가요?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사망의 골짜기에서 흔들리지 않아요. 내면의 강함이 하나님 같아요. 이미 세상의 두려움을 넘어서는 겁니다. 노예라도 노예가 아닙니다. 주인조차 그를 존경하고 섬깁니다. 감옥에 있어도 자유롭습니다. 그 평안이 영광의 족장이 되게 하고 총리가 되고 왕이 되게 합니다. 이 힘은 목자를 신뢰할 때 나오는 복입니다. 이게 필요해요. 

3. 목자 신뢰하기를 소원하라 

다윗도 우리와 같은 사람입니다. 믿음이 안 나와요. “내 영혼아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불안해하는가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시니 내 하나님을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다윗처럼 23편을 암송하기 바랍니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친구 목사의 이야기입니다. 독일에서 공부할 때 늙은 라틴어 교수가 있었습니다. 10여 개의 언어를 한다는데 히브리어도 능통입니다. 그분이 대학에서 공부할 때 한 방에 유대인 피가 섞인 친구가 있었답니다. 공부하고 두어 시간 지나면 히브리어로  시23편을 암송합니다. 힘들 때 그러면 머리가 깨끗해지고 힘이 난다는 것이에요. 

나치의 핍박이 심해지면서 그 친구가 잡혀갑니다. 자전거를 타고 트럭을 따라가며 친구 이름을 부릅니다. 옆으로 얼굴을 내밉니다. 자신은 통곡을 하는데 친구는 달관한 얼굴로 시23편을 암송합니다. 그것이 마지막이었어요. 얼마 후에는 자신도 징집되어 러시아로 보내집니다. 거기서 전투에 지면서 많이들 죽고 포로가 되었습니다. 

러시아인들이 포로를 총살합니다. 그도 사형대에 세워집니다. 먼저 간 친구 생각하며 마지막 말을 신청했어요. 허락 받아 평상시대로 시23편을 히브리어로 암송합니다. 신비한 평안이 그를 두릅니다. 러시아 장교 하나가 일어나 함께 히브리어로 암송합니다. 그도 유대인이었어요. 풀어주라 명령하고 안전한 곳까지 데려다 줍니다. 

이런 극적인 일은 우리들 가운데서도 일어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대로 사실입니다. 다윗을 포함한 수없이 많은 신앙인들이 이 시편을 암송하면서 세상의 차원도 죽음도 넘어섰어요. 목자를 알고 목자를 신뢰합시다. 그러나 그럴 수 있는 힘은 하나님께만 있어요. 그래서 찬송하고 말씀을 암송하는 겁니다. 믿음으로 그리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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