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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송년] 금년에는 그대로 두소서 (눅 13: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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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년에는 그대로 두소서 (눅 13:6-9)


오늘 본문 말씀은 ‘한 사람이 포도원에 무화과나무를 심었다’라는 말씀으로 시작됩니다. 
포도원에 포도나무를 심었다면 쉽게 이해되지만 무화과나무를 심었다면 뭔가 정상적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을 받습니다.
아마 주인은 포도원이긴 하지만 뭔가 색다른 과일을 기대하면서 무화과나무를 심었을 것입니다. 
사실, 무화과나무에는 꽃이 없습니다. 
무화과나무의 줄기는 재목으로 쓸 만큼 곧거나 크게 자라지 않습니다. 
무화과나무는 관상수로 여길 만큼 그 자태가 곱지 않습니다. 
내놓을 것은 열매 밖에는 없습니다. 
그러니까 무화과나무 열매에 대한 주인의 기대가 적지 않았겠지요!

성경에서는 열매 맺은 이치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① 첫 번째 이치는, 열매는 반드시 심어야 거둔다는 것입니다.

봄에 심어야 가을에 거두고, 젊은 시절에 심어야 노년에 거두고, 이 땅에서 심어야 천국에서 거둡니다.
이 단순한 진리를 명심해야만 합니다. 
심지 않고서는 열매를 거둘 방법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을 위하여 가족을 위하여 내일을 위하여 눈물로 심고, 땀으로 심고, 기도로 심는 여러분이 되길 바랍니다.

② 두 번째 이치는 열매는 때가 되어야만 거둡니다.

갈6:9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아무리 좋은 땅에 아무리 좋은 종자를 심었다하더라도 때가 되어야만 거둘 수 있습니다. 
오늘 뿌리고, 내일 거둘 수 있는 씨앗은 없습니다. 
아니 가치 있는 것치고, 보람 있는 것 치고, 짧은 시간에 되는 일이 없습니다.
흙벽돌집은 한 달 만에 지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4,500년 역사를 지켜온 피라미드는 한 달 만에 지을 수 없습니다. 

그렇지요? 
육적인 일도 이럴진대 어떻게 영적인 일인 신앙의 열매를 단숨에 거둘 수 있으리라고 기대할 수 있습니까? 
그러므로 육적이든, 영적이든 거두려면 참고, 기다리고, 견디는 것이 필요합니다.
열매를 거두기 위해 참고 견디고 기다릴 줄 아는 여러분이 되길 바랍니다.

③ 세 번째 이치는, 열매는 뿌린 씨앗대로 거둡니다.

갈6:7-8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은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난다.’는 것은 변치 않은 자연의 이치입니다.
만일 가을 수확기에 콩 밭에 가서 팥을 찾고, 팥 밭에 가서 콩을 찾는다면 머리가 좀 이상한 사람일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는 이런 정신 나간 태도를 가지고 살 때가 많아요!
평상시 남의 아픔과 곤란을 외면하던 사람이 자신이 어려움에 봉착하였을 때 남들 보고 돕지 않는다고 원망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콩 심은 데서 팥 나오길 기대하는 사람이 아니겠습니까?
영적인 일도 마찬가지 입니다.
‘개털모자’라는 얘기가 있습니다. 
한 부자가 천국에 갔습니다.
이웃 사람들이 제각기 아름다운 면류관을 쓰고 자랑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세상에서 부자보다 살림살이가 변변치 못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부자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부자로 산 나에게는 정말 대단한 면류관이 준비되어 있을거야. 아무렴. 부자인 내가 쌀 한 톨이라도 더 적선하지 않았겠나?’ 
이런 기대를 비웃기라도 하듯이 자기 앞에는 ‘개털모자’ 하나가 던져졌습니다. 
“아니, 웬 개털모자입니까?”
“네가 세상사는 동안 다른 사람에게 준 것이라곤 어느 추운 겨울날 거지에게 던져준 개털모자 밖에 없었다. 그러니 개털모자라도 써야 하지 않겠니?”
열매는 뿌린 씨앗대로 거둡니다.

그런데 본문에 나오는 무화과나무는 열매를 맺지 못하고 있습니다.
무화과나무는 꽃도 아니요, 재목도 아니요, 다만 그 열매로 평가받는데 열매가 없습니다. 
7절 “포도원지기에게 이르되 내가 삼 년을 와서 이 무화과나무에서 열매를 구하되 얻지 못하니 찍어버리라 어찌 땅만 버리게 하겠느냐”
열매 맺지 못하는 나무를 찍어버려야 한다는 것은 상식입니다. 
이 세상에 어떤 과수원 주인도 열매를 맺지 못하는 나무를 불쌍하다고 그대로 놔둘 사람은 없습니다. 
열매 맺지 못한 나무를 찍어버린다는 말씀은 성경에 많이 나와 있습니다.

마 7:19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느니라.”
눅 3:9 “이미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
찍어 불에 던진다! 
‘과일나무라면 그럴 수도 있겠구나.’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지금 나무에 대하여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 대하여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 말씀을 내 자신에게 적용시키면 그 순간 아찔해집니다.
나에게는 어떤 열매가 있는가? 
나는 지금 어떤 열매를 맺고 있는가? 
나의 지난날들은 어떤 열매를 맺었는가?

주인이 3년 동안 열매를 맺지 않은 나무를 찍어 버리라고 했을 때 과수원지기가 한해만 더 봐달라고 간청을 합니다. 

8-9절 “대답하여 이르되 주인이여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내가 두루 파고 거름을 주리니 이 후에 만일 열매가 열면 좋거니와 그렇지 않으면 찍어버리소서 하였다 하시니라”
한해만 더 두고 보자는 것입니다. 
그래도 열매를 맺지 않으면 찍어버리라는 말씀입니다. 
한해를 유예했습니다.

그러면 이 무화과나무에 주어진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라는 1년이란 시간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1) 첫째는, ‘이 땅에서 나의 삶은 영원한 것이 아니다!’ 라는 뜻이 있습니다.

모두가 오늘 밤이 지나면 내일 아침 동녘에 떠오르는 태양을 맞이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어느 순간에는 그 이어진 시간의 고리가 끊어질 때가 있습니다. 
그 이어진 시간의 고리가 풀릴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만은 영원히 살 것처럼 착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떠오르는 해를 무엇으로 막고, 지는 해를 무엇으로 붙잡겠습니까?

사람의 평균수명을 70세로 보고, 이것을 하루의 활동시간인 아침 7시부터 밤 11시 사이에 맞추어 계산해보면 열 살 난 어린아이는 오전 9시 15분에 해당합니다. 
아침 햇살이 온 대지에 펼쳐지는 황홀한 시간입니다. 
20세의 청년이라면 오전 11시 30분까지 왔습니다. 
바야흐로 아침은 지나고 힘겨운 오후의 일을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30세라면 오후 1시 30분에 해당합니다. 
오후의 뜨거운 햇볕과 싸워야 합니다. 
40세라면 오후 4시가 됩니다. 

하루 시간의 많은 부분은 지나갔으나 아직도 날이 저물 시간은 깁니다. 
50세라면 오후 6시 30분에 해당합니다. 
저녁식사 시간, 후회 없이 석양을 맞도록 일을 마무리 지어야 합니다. 
60세라면 저녁 8시 45분입니다. 
하루의 생활을 정리하고 휴식할 시간입니다. 
70세라면 이제 11시가 거의 다 되었습니다. 
실패도 성공도 슬픔도 기쁨도 이제는 막을 내리고 잠자리에 들 시간입니다. 
이렇게 시간을 따져 가면 인생은 슬프고 허무하지만 그것은 사실입니다. 

아무튼 우리의 시간은 영원하지 않다는 진리를 잊지 않길 바랍니다.
선각자 중의 한분이신 김교신 선생은 매일 밤 관 속에서 잠을 잤다고 합니다. 
그것은 하루하루 삶을 마치 마지막인양 살았다는 의미입니다. 
사람이 철이 들었다는 것은 자기 삶의 한 부분에 들어 있는 죽음을 의식할 때를 말합니다.
이 땅에서 나의 삶은 영원한 것이 아님을 자각하는 교우들이 되길 바랍니다.

2) 무화과나무에게 1년을 유예했다는 것은 ‘올해는 나에게 열매를 맺기 위하여 마지막으로 주어진 기회이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열매 없이 한해를 지내면 찍히게 됩니다. 
그러므로 비장한 결심이 필요합니다. 
저는 여러분들에게 새해에 신앙생활에 있어서 비장한 결심을 하길 권면합니다. 
‘열매를 맺기 위하여 마지막으로 주어진 새해에는 내 욕심에 질질 끌려가지 않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야지.’ 
‘열매를 맺기 위하여 마지막으로 주어진 새해에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한번 통독해보아야지.’ 
‘열매를 맺기 위하여 마지막으로 주어진 새해에는 내가 맡은 이 직분! 하나님께 보란 듯이 멋지게 감당해보아야지.’
이런 결심이 있기를 권면합니다.

미국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해마다 부활절 휴가가 되면 플로리다 해변에는 수천 명의 대학생들이 몰려들어 젊음을 즐긴다고 합니다. 
한번은 그 대학생 중 6명이 동네를 시끄럽게 했다는 죄로 경찰에 연행되었습니다. 
이튿날 즉결재판에 붙인다는 말을 듣고 학생들은 덜컥 겁이 났습니다. 
그러자 그 중 한 학생이 경찰에게 전화를 한통 써도 되겠느냐고 부탁을 했습니다. 
경찰은 ‘단 한번!’ 이라는 말을 강조하며 전화를 사용할 기회를 주었습니다. 
학생이 전화를 하고 돌아오자 친구들은 좀 용기를 얻었습니다. 
부모님이나 변호사의 도움을 요청한 것으로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30분 후에 피자 두 통이 이 학생에게 배달되었습니다. 
학생이 전화를 건 곳은 피자집이었던 것입니다. 
이 학생은 단 한번 주어진 기회! 그 안타깝고 마음 조이는 순간에 고작 피자집에 전화를 걸었던 것입니다.
우리들도 이 학생과 같은 잘못을 범해서는 안 됩니다. 
도끼가 이미 나무뿌리에 놓이고, 새해는 열매를 맺기 위해 주어진 마지막 기회인데 딴전을 피워서는 안 됩니다. 
새해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열매를 맺혀야 합니다. 
하나님께 내놓을, 하나님께 보여드릴 열매를 맺는 교우들이 되길 바랍니다.

3) 무화과나무에게 1년이 더 주어졌다는 것은, 지금 나의 삶은 덤으로 주어진 것이란 뜻이 있습니다. 

열매를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는 그 해로 찍혀져서 불에 던져져야 마땅합니다. 
무화과나무의 수명은 그 해로 다 한 것입니다. 
그러나 한 해가 더 연장되었습니다. 
따라서 그 한 해란 덤으로 주어진 것입니다.

덤이란 시골장터에서 인심 좋은 콩나물 장수 할머니가 제 값어치는 다 주었지만 듬뿍 한 움큼 더 얹어주는 것을 덤으로 준다고 말합니다. 
제 값어치를 받고도 더 받는 것을 덤이라고 합니다. 
제 명을 다 살고도 더 사는 것을 덤의 삶이라고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나이가 많든 적든 덤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과거를 자세히 살펴보면 죽었다가 살아난 경험들이 한 번씩은 있기 때문입니다. 
꼭 죽어야 할 상황인데 웬 은혜인지 살아난 놀라운 체험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분은 병으로, 어떤 분은 자동차 사고로, 어떤 분은 비행기 불시착으로, 어떤 분은 화재로, 어떤 분은 전쟁으로, 어떤 분은 강과 바다 그리고 산에서, 어떤 분은 연탄가스로, 어떤 분은 식중독으로…….

나의 삶이 덤으로 주어진 시간이라고 믿는다면 그 시간은 내 시간이 아니라 주님의 시간입니다. 
나의 삶이 덤으로 주어진 시간이라고 진정으로 고백한다면 그 시간을 값지게 써 보자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새해는 순간순간 값지게 써야 할 덤의 시간입니다.

루이스(C.S.Lewis)의 작품(The Screwtape a Letters)에는 악마의 왕 사탄이 자기 조수인 윔우드(Wormwood)를 교육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사탄은 말합니다. 
“우리의 목적은 인간들이 악행을 하도록 유혹하는 일이 아니라 인간들이 결과적으로 아무것도 한 것이 없이 죽게 만드는 것이다. 윔우드야, 명심해라. 우리의 두 가지 무기를 결코 잊지 말아라. 그것은 사람들에게 무관심하게 하고, 연기하게 하는 것이다. 인간들에게 이기심을 불어넣어 주어 남에게 무관심하게 하라. 그리고 그들에게 ‘내일이 있다’는 것을 믿게 하여 모든 고상한 계획을 연기하도록 하라.” 
덤으로 주어진 삶을 내일로 미루지 말고 순간순간 값지게 사용하는 교우들이 되길 바랍니다.

나가는 말 

어느덧 365일이 다 지나고 하루만 지나면 계사년 2013년을 맞이합니다. 
지난 일 년 동안을 뒤돌아보면 크고 작은 일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때로는 자녀들의 건강문제로 몸이 후끈 단 적이 있었고, 
때로는 사업의 문제로 밤잠을 설친 경우도 있었고,
때로는 예전과 같지 않은 자신의 건강 때문에 자신감을 잃어버린 적도 있었고,
때로는 남모르는 번민 때문에 술과 줄담배로 밤을 지새운 적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이런 늪지대를 통과하여 12월31일이라는 언덕을 오르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기도를 들어주느니 안 들어주느니’ 회의가 일 때가 적지 않았지만 우리가 이렇게 한 해를 마감할 수 있는 것은 결국 하나님의 은총이었습니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한 해를 마무리 하시고, ‘마지막이다.’라는 결심으로 새해를 맞이하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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