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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송년]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새 사람을 입으라 (엡 4: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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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새 사람을 입으라 (엡 4:17-24)

저는 하루를 조금 길게 사는 사람입니다. 새벽기도회를 나오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보다는 하루를 좀 더 길게 사용하고 알차게 사용하고 있습니다. 오늘 하루를 헛되어 보냈다고 하면 그에게는 큰 손실입니다. 하루를 유익하게 보낸 사람은 보물을 그의 삶의 터전에서 파낸 사람입니다. 시간을 허비한 사람은 물질을 허비한 사람보다 더 어리석은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1초를 아끼는 사람”이라는 글을 읽어보았습니다. 

평생을 최고의 시계를 만드는 데 헌신했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아들의 성인식 날 손수 만든 시계를 선물하였습니다. 그 시계는 특이하게도 시침은 구리, 동(銅)으로, 분침은 은(銀)으로, 초침은 금(金)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아들은 시계를 받아들고 아버지에게 물었습니다. “아버지, 시침이 가장 크니까 금으로 장식하고 가장 가는 초침을 동으로 만들어야 하지 않나요?” “아니다. 초침이야말로 금으로 만들어져야 한단다. 초를 잃는 것이야말로 세상의 모든 시간을 잃는 것과 마찬가지지.”라고 했습니다. 그는 아들의 손목에 시계를 채워주며 이런 말을 덧붙였습니다. “초를 아끼지 않는 사람이 어떻게 시간과 분을 아낄 수 있겠니? 세상의 흐름은 초에 의해 결정되는 것을 명심하고 너도 성인이 되는 만큼 1초의 시간에도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해라.”고 했습니다. 1초를 소홀히 하는 사람은 하루를 잃고 일생을 잃습니다. 인생의 승패는 순간순간에 달려 있습니다. 

시간을 낭비하고 싶은 사람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러나 실제로 보면 시간을 낭비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시간을 낭비하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시간은 곧 그의 인생이기 때문입니다. 

시인 단테는 말하기를 “오늘이라는 날은 두 번 다시 오지 않는다는 것을 잊지 말라.”고 했습니다. S. 존슨이란 사람은 “짧은 인생은 시간의 낭비에 의해 더욱 짧아진다.”고 했습니다. 

어려서 인생의 여정을 출발할 때에는 다 같이 출발합니다. 같은 그룹을 이루고 달려가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세월이 지난 뒤에 보면 어떤 사람은 앞서 있고, 저 앞에 뛰어가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멀리 뒤쳐지고 낙오자가 되어 있습니다. 이제는 뒤에 쳐진 사람이 앞서 가는 사람을 좀처럼 따라잡을 수가 없습니다. 이것은 하루의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잘 이용하였느냐 하는 것이 쌓여지면서 이루어지는 결과입니다. 시간을 선용하십시오. 시간을 허비하였습니까? 그는 인생을 허비하였습니다. 

그래서 시간을 아끼면서 성공적인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하는 말을 들어보면 “오늘이 나의 마지막 날이라고 생각하면서 살아왔노라”고 말합니다. “내가 헛되이 보낸 오늘 하루는 어제 죽어간 이들이 그토록 바라던 하루이다.”라고 말합니다. 유명한 발명왕 에디슨은 “변명 중에서도 가장 어리석고 못난 변명은 ‘시간이 없어서’라는 변명이다.”라고 했습니다. 사랑하시는 여러분, 부디 세월을 아끼고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설교 제목을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새 사람을 입으라”고 정하고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1.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지 말라.

바울사도는 에배소교회에 편지하면서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18절 말씀에서 “그들의 총명이 어두워지고 그들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그들의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생명”이란 무엇을 말합니까? 모든 생명체에게 생명을 공급하는 생명의 근원을 말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으면 그것으로 죽음을 의미합니다. 

포도나무 가지가 포도나무에서 떠나 있으면 떠나는 그 순간 죽음이 시작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지으신 피조물이기 때문에 하나님에게서 떠나면 그것으로 죽음입니다.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는 것은 하나님 없는 상태를 말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확정해야 합니다. 나에게도 하나님이 계신다고 말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생명 안에 있어야 합니다.

1) 하나님의 생명을 떠나면 허망해집니다. 

하나님의 생명으로부터 떠난 사람은 어떤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까? 17절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이것을 말하며 주 안에서 증언하노니 이제부터 너희는 이방인이 그 마음의 허망한 것으로 행함 같이 행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생명을 떠나면 허망한 것으로 행하는 사람입니다. 

허망한 것으로 행한다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허망하다’는 말은 그리스어로 “마타이오테스”라고 하여 ‘텅빈, 공허, 무익, 무가치한 것’을 말합니다. ‘채워지지 않는 욕망’입니다. 강물이 흘러가서 바다로 들어가지만 결코 바다를 다 채우지 못합니다. 오늘 많은 사람들이 이방인의 습관을 따라 허망한 것을 좇아 살아가는데, 부귀와 영화는 바람을 잡는 것과 같습니다. 

2) 하나님의 생명을 떠나면 총명이 어두워집니다. 

18절의 말씀에는 “그들의 총명이 어두워지고 그들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그들의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으면 총명이 어두워집니다. 총명이 빛을 잃었습니다. 그런 사람의 영혼이 어두워집니다. 무지하고 마음이 굳어집니다. 살았다는 이름이 있습니까? 실상은 죽은 자라고 하셨습니다. 총명이 어두워졌으니 그는 무지합니다. 양심이 화인 맞아 굳어졌습니다.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난 사람들이 그렇습니다. 

3) 하나님의 생명을 떠나면 감각이 죽어버립니다.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난 사람은 19절의 말씀에도 특별한 증후군이 나타납니다. “그들이 감각 없는 자가 되어 자신을 방탕에 방임하여 모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하되”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면 감각이 무디어집니다. 감각 없는 사람, 감각이 죽은 사람이 되고, 자신을 방탕에 방임합니다.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하는데, 양심에 화인을 맞아 아픈 감각이 없습니다. 죄송한 마음이 들지 않습니다. 피부가 예민해야 느낄 수 있는데, 화인 맞다 보니 감각이 없습니다. 


2. 예수 그리스도로 옷을 입어야 합니다. 

옷에 대한 속담이 있습니다. 우리 속담에 “옷이 날개다”라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입는 옷은 우리의 직업이나 사회적 신분을 보여줍니다. 왕은 왕이 입는 옷을 입을 때에 그를 왕이라고 말합니다. 옷이 신분을 말합니다. 양반은 양반의 옷, 평민은 평민의 옷을 입었습니다. 오늘 하얀 가운을 누가 주로 입습니까? 대부분 의사나 약사, 간호사 등, 의료계통에서 일하는 사람들입니다. 아니면 연구실에서 실험하는 과학자들도 흰 가운을 입습니다. 그러면 주로 검정 가운을 입는 사람들은 누구입니까? 판사처럼 법조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이나 아니면 교회의 목사들입니다. 또 경찰관은 경찰복을 입고 군인은 군복을 입습니다. 

이렇게 우리가 입는 옷은 우리의 직업과 신분을 알려줍니다. 남자들이 예비군복을 입고 트럭을 타고 이동하면 사람이 아니라 군바리로 변합니다. 그래서 지나가는 아가씨들에게 휘파람을 불고 난리도 아닙니다. 옛날 군인으로 돌아갑니다. 옷이 사람을 말해줍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그리스도인들로 불러주셨습니다. 사람이 옷을 입는다, 벗는다는 말은 어떤 스타일의 인생을 사느냐, 접느냐 하는 것을 말합니다. ‘옷을 벗는다’는 말은 깨끗이 털어버린다, 청산한다는 뜻이 들어 있습니다. “그 사람 옷 벗었대”라는 말은 그 직을 그만 두었다는 말입니다. 무엇을 입는다는 말은 이제는 그 옷에 걸맞게 산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으며 우리 성도는 무엇을 벗고 무엇을 입어야 하겠습니까? 옛 사람을 벗고 새 사람, 곧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어야 합니다.

1)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으려고 예수 그리스도를 배워야 합니다. 

이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배워야 합니다. 20절에서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를 그같이 배우지 아니하였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 인간의 원본의 삶을 살아가셨습니다. 우리 인생길에서 예수님처럼 생각하고 예수님처럼 말하고 예수님처럼 행동하면 반드시 성공합니다. 그는 인생을 승리합니다. 그는 하나님의 원하시는 인생을 살아갑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배운다는 말은 예수님 대하여 알아가는 것을 지나서 예수님을 닮아간다는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배운다는 것은 우리의 성화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배우지 않으면 안 됩니다. “배운다”는 말은 어떤 것에 익숙해지는 것이며, 경험하고, 알게 되고, 이해하고, 나의 것으로 받아들입니다. 예수님을 배운다는 말은 예수님의 삶에 익숙해지는 것이며, 예수님을 경험하고, 예수님을 알게 되고, 예수님을 이해하고, 예수님을 나의 가치관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말합니다. 

마11:29-30에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을 배우라고 하시면서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무겁고 둔탁한 멍에를 싫어합니다. 그러나 주님이 메우시는 멍에는 멜만 합니다. 주님이 함께 그 멍에를 지고 가시기에 우리는 주님이 메우시는 멍에를 메지 않고는 주님을 결코 배우지 못합니다. 

주님이 지고 가신 십자가를 나도 지고 갈 때에, 십자가를 지신 주님을 배우게 됩니다. 섬기신 주님을 배우고 싶습니까? 주님이 섬기셨던 이들을 우리도 섬기며, 살아갈 때에 섬기시는 주님을 배우게 됩니다. 교사나 찬양대원, 구역장, 소그룹인도자, 멍에를 메고 가실 때에 주님을 배우게 되어 있습니다. 아무런 멍에도 메지 않으면 예수님을 배우지 못합니다.

예수님을 배우고 싶습니다. 우리는 나를 내려놓고 주님에게 위탁하고 모든 일을 주님에게 위임하고 주님이 내 안에 사시므로 우리는 주님을 따라가야 됩니다. 주님이 내 안에서 사시면서 주님이 나를 사용하시고 나를 붙들고 주님의 합당한 도구로 사용하실 때에 주님을 온전히 배울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장성하신 모습처럼 예수님의 인격을 흠모하면서 예수님에게까지 자라나야합니다. 

2)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으려고 진리를 알아야 합니다.

진리는 오직 예수님 안에 있습니다. 우리는 진리의 예수님에게 들어야 하고, 가르침을 받아야겠습니다. 21절입니다. “진리가 예수 안에 있는 것 같이 너희가 참으로 그에게서 듣고 또한 그 안에서 가르침을 받았을진대”라고 하셨습니다. 진리는 예수님 안에 있습니다. 진리를 알아야 그 진리가 우리를 자유롭게 합니다. 

요8:32에서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내 안에 사시고,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이 우리 안에 사실 때에, 진정으로 예수님을 배우고, 예수님을 닮아가고, 예수님처럼 살게 됩니다. 우리 안에 사는 이가 내가 아니라, 예수님이십니다. 

3)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새 사람을 입으십시오.

예수님을 배우고 예수님을 닮아가려면 우리 안에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새 사람을 입어야 합니다. 

22-24입니다.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벗고 입는 일상을 그림언어로 비유하여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버려야 새 사람을 입을 수 있습니다. 거지들은 더러운 속옷을 벗어버리지 못하고 위에 껴입기만 합니다. 그러니 냄새가 배게 되고, 금방 더려워 집니다. 새 옷을 입으면 무엇 합니까? 더러운 속옷을 벗어던지고 새 옷으로 갈아입어야 합니다. 

사람은 심령이 새롭게 되어야 하고, 추구하는 방향을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어야겠습니다. 


플라벨이란 사람이 이런 시를 쓰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한 영혼을 채우시려 할 때는
먼저 그것을 비우신다. 
하나님이 한 영혼을 부요하게 하시려고 할 때는  
먼저 그것을 가난하게 하신다. 
하나님이 한 영혼을 높이시려 할 때는 
먼저 그것으로 하여금
자신의 비참과 결핍과 무를 느끼게 하신다.
그에게 의존해서 지혜를 구할 만큼 어리석고 
그의 힘으로 덧입어야 할 만큼 연약하고 
하나님의 명예 외에는 아무 명예도 없을 만큼 낮고 
그 분의 발 앞에서 먼지 속에 있을 만큼 멸시받고
하나님이 모든 것이 되실 만큼 아무 것도 아닌 자로....”

하나님은 우리에게 채워주시려고 비우시고, 부요하게 하시려고 가난하게 하십니다. 우리를 높이시고 명예롭게 하시려고 낮추시고 멸시받게 하시고 아무 것도 아닌 자로 살게 하신 후에 금과 같이 사용하십니다.

욥23:10에서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욥을 단련하시고 후에 순금 같은 사람이 되게 하십니다.

우리가 벗어버리는 행동도 아주 필요하고 중요합니다. 그러나 적극적으로 입으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옷을 벗어버리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새 옷을 찾아야 하고, 새 옷을 입어야 합니다. 우리가 무엇을 말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떤 존재가 되어야 하느냐 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우리는 하루를 살아가면서 한 달을 살고, 일 년을 살고, 또 일생을 살게 되어 있습니다. 자신을 긍정적으로 보고, 하루를 승리하고, 멋지게 살아야 합니다. 이 세상에 사는 모든 사람들은 이 지구에 처음 도착한 사람들이고, 우리 모든 사람들은 모두 처음으로 이 지구에 태어나고, 처음으로 이 땅을 밟았고, 울고 웃었고, 마지막으로 살아간 사람입니다. 나와 똑같은 사람, 나와 똑같은 모습과 특성과 성품을 가지고 나와 같은 잠재력을 가진 사람은 다시는 태어나지 않습니다. 나와 같은 존재는 나 외에는 없습니다. 내가 노래하지 않으면 나의 노래는 영원히 이 지구상에서 들어보지 못합니다. 

“너만의 명작을 그려라”라는 책을 쓴 ‘마이클 린버그’는 시인 ‘소로’의 시를 인용하고 있습니다. 

“인생은 짧고 다시 되돌릴 수 없다. 
하지만 우리는 삶의 순간순간마다 
존재의 경이로움에 놀라며 
삶의 의미를 맛볼 수 있다. 
이 얼마나 알알이 소중한 시간인가?” 라고 하였습니다. 

내가 이 세상에 살아 있다는 사실, 존재의 경이로움에 놀라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이 땅에 살려두시고 있다는 사실, 이것은 하루하루가 경이로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기회는 딱 한 번입니다. 우리의 일생이 지나가면 다시는 오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삶의 순간순간들을 나만의 특별한 재능과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단 한 번의 기회입니다. 우리의 가진 모든 것으로 현재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 

마더 테레사의 어록에 보면 “하나님께서 당신을 어느 곳에 데려다 놓든, 그곳이 바로 당신이 있어야 할 곳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무엇을 하느냐가 아니라 그 일에 얼마나 많은 사랑을 쏟고 있느냐다”라고 했습니다. 

마틴 루터 킹목사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누구든지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다. 왜냐하면 누구나 봉사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봉사하는 데는 대학 졸업장이 필요 없다. 주어와 동사를 맞출 필요도 없다.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를 알 필요도 없으며, 아인슈타인과 상대성 이론도 알 필요가 없다. 사랑으로 거듭난 영혼만 있으면....”이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자신이 누구인지 알고 싶습니까?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라, 행동하는 사람을 통하여 여러분 자신을 알 수 있습니다. 행동하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생각하는 사람보다는 행동하는 사람이 훨씬 강건한 사람입니다. 그가 건강한 신앙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순간 예수님이시라면, 예수님이 내 입장에 서 계셨다고 어떻게 행동하셨을까?” 예수님이 내 안에 사신다고 고백하고 위임해야 합니다. 주님의 원하시는 뜻에 순종하십시오. 

헬렌켈러의 전기를 읽어보면 “많은 사람들은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잘 모르고 있다. 행복은 자기만족에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가치 있는 일에 충실할 때 얻어지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가치 있는 일에 충실해야 보람을 얻고 행복을 누리게 됩니다. 돈으로 얻는 만족 외에 더 다른 것으로 만족을 얻어야 진정 행복한 사람입니다. 가치 있는 일에서 행복이 옵니다. 

예수님으로 옷을 입었습니까? 이제는 예수님처럼 살아가야 합니다. 작은 예수로 살아갈 때에, 예수님을 알게 됩니다. 예수님을 배우게 됩니다. 

오늘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생명을 떠나면 허망해집니다. 하나님의 생명을 떠나면 총명이 빛을 잃고 어두워집니다. 하나님의 생명을 떠나면 감각이 죽어버립니다. 죽음으로 이끌어가고 있는데 아픔을 느끼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로 옷을 입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으려고 예수 그리스도를 배워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으려고 진리를 알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으려고 하면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새 사람을 입으십시오.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를 드러내시는 작은 예수들, 예수 그리스도로 옷입고 사시는 새 사람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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