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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송년] 선을 이루셨습니까? (롬 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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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을 이루셨습니까? (롬 8:28)

[로마서 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좋은 결산이 되기를…

거룩한 삶의 은밀한 대적 “게으름”이라는 책에서 참 의미 있는 내용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게으른 모습 중의 하나가 “끝까지 하지 않는 것”이라고 합니다. 사실 우리 주변과 나의 모습을 봐도, 처음에 시작은 그럴듯하게 합니다. 문제는 그것을 끝까지 밀고 나가거나 완수하지 못한다는 것이지요.

잠언 19장 24절에서는 이것을 아주 재미있게 표현합니다. “게으른 자는 자기의 손을 그릇에 넣고서도 입으로 올리기를 괴로워하느니라”

그릇에 손을 넣는 것까지 합니다. 그릇에 손을 넣은 것 보니까 먹으려는 의지가 분명히 있는 듯합니다. 그러나 입으로 올리기까지를 괴로워하는 것. 이것이 게으름입니다. 

성도의 은혜 생활도 같습니다. 아마도 이번 한 해 동안 은혜를 경험한 많은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특별히 올해는 광야 성전에서 예배를 드리며 신앙의 야성을 경험한 분도 있었으리라 생각됩니다.
그런데 그 뜨거움이 삶으로 연결되거나 삶의 열매로 나타나는 경우가 그리 많지 않았음을 알 것입니다. 그리고 그때 결심했던 많은 내용을 슬그머니 포기해 버린 자신의 모습도 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는 사람은 많지만, 좋은 열매를 거두는 사람들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현상을 우리는 “은혜 중독”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수없이 은혜 받았다는 말을 반복하는 사람들 말입니다. 그런데 그들의 삶이 변화되지 않으므로 좋은 열매를 거두지 못하는 것도 많이 목격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삶의 결산을 수없이 계속되는 “결단”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그 결단으로 말미암은 “열매”로 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입장에서는 수시로 은혜를 받았다고 표현할지 모르지만, 하나님의 입장에서 보면, 깨어놓으면 또 잠이 드는 모습이 아닙니까. 깨어 놓아도 또 잠이 드니 도대체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용하셔서 일할 수 없었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결산에 대해 설교를 할 때마다 언급하는 성경 말씀이 마태복음 25장 14-30절에 있는 달란트의 비유입니다. 여기에는 “착하고 충성된 종”과 “악하고 게으른 종”이 등장합니다. 
착하고 충성된 종은 주님께서 주신 달란트를 가지고 무엇인가를 활용한 사람이요, 악하고 게으른 종은 주어진 달란트를 포기하고 땅에 묻어 둔 사람입니다. 

달란트는 누구에게나 주어집니다. 마치 우리 옛말에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다!”라는 말처럼 말입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무엇인가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주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결국, 한 해를 마감하면서 중요한 것은 결과입니다. 시작은 같습니다. 
육상선수들의 출발점은 같습니다. 그러나 영광을 받는 사람은 종착점에 일등으로 돌아오는 사람입니다. 
‘아름다운 시작보다 아름다운 끝을 선택하라!'라는 말이 있습니다.

오늘 이 시간은 한 해를 마감하는 시간이지만, 긴 우리의 인생에서 보면, 역시 하나의 과정에 지나지 않습니다. 아직은 과정을 살아가는 순간입니다. 그러므로 좋은 결산을 거두기 위해서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우리 인생의 최종적인 결산을 위해서 말입니다. 
오늘 본문은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조건으로 두 가지를 말씀합니다. 
하나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그리고 또 하나는,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

누구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이 원하는 일을 한다는 것과 일맥상통합니다. 
우리의 삶이 형통할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님을 사랑하므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할 때입니다. 자꾸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려고 하면, 어려운 인생을 살아가게 됩니다. 

오늘 제가 여러분에게 묻고 싶은 말은 혹시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에 게으르지 않았냐는 것입니다. 

시편 145편 20절에도 “여호와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은 다 보호하시고 악인들은 다 멸하시리로다”라고 했습니다. 여러분은 과연 하나님을 사랑하십니까, 돈을 사랑하십니까, 아니면 자신만을 사랑하십니까? 우리는 그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강림절 말씀과 크리스마스 말씀을 통해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과 그리고 그 하나님이 우리의 사랑을 받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가 좋은 결산을 할 수 있는 이유는 사랑하는 대상을 위하여 올바른 결단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인생의 결단은 결단코 후회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하게 될 것이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한다면 하나님의 뜻대로 살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16-18절을 보십시오.
“16 항상 기뻐하라 17 쉬지 말고 기도하라 18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이 말씀을 접하면 사람들이 지레 겁을 먹습니다. 어떻게 우리가 그렇게 살 수 있습니까? 우리 스스로 그럴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지 않습니까? 하나님도 우리가 그럴 만한 존재가 아닌 것을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단지 하나님께서 우리가 그렇게 살아가기를 원하신다는 것이지요. “하나님의 뜻” 말입니다.

서양의 격언에 “think and thank”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렇게 풀어보겠습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며 순간순간 하나님을 묵상하며 생각하고 기도하십시오. 그러면 순간순간 감사할 일들이 생각날 것입니다. 그리고 순간순간 넘치는 감사 때문에 당신은 항상 기쁨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항상 기뻐하려고 노력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려고 노력하고, 범사에 감사하려고 노력하면서 살다 보면 아름다운 열매와 결산을 하게 되지요.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그 뜻을 따르려는 것입니다.

우리 함께 찬양을 했으면 좋겠는데요,
감사해요. 깨닫지 못했었는데, 내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라는 걸…
고마워요. 그 사랑을 깨닫게 해 준 당신께… 
당신은 사랑 받기 위해, 그리고 그 사랑 전하기 위해… 
또 하나의 열매를 바라시며.

요한복음 15장 16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신, 그리고 우리를 사랑하시는 가장 확실한 원리가 나와 있습니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
우리를 택하셔서 열매 맺기를 원하시는 것, 그리고 아버지의 이름으로 구하는 모든 것을 다 받게 하시는 것 말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내 이름으로”라는 말입니다. 이름을 빌려준다는 것은 모든 것을 양도하는, 즉 그 사람의 뜻을 빌려준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뜻을 분명하게 알고 아버지께 구하는 모든 것을 다 받게 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그 뜻을 아는 중요한 방법의 하나가 “하나님을 묵상하는 것” 즉 말씀을 보고 묵상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의 진의(眞意)를 파악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사랑하는 이의 진의를 파악하고 나면, 그 사람을 기쁘시게 하는 때가 많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저희 아이들이 중학교에 들어갈 때입니다. 둘이 12년 동안 같은 학교 같은 학년으로 다녔습니다. 딸아이는 여러 가지 이유로 2년을 늦게 학교에 다니게 되었고, 그 부담은 늘 동생에게 주어졌습니다. 중학교에 가게 되는 순간에도 “웅기야! 누나를 특수 학급에 보내면…. 아이들이 너를 놀리면 어떡하지.” 아들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어쩔 수 없지요. 그래도 누난데요. 하나님께서 그렇게 주셨는데 어떻게 해요.”
이 말을 듣고 엄마는 기뻤습니다. 이 상황을 받아들인다는 것이 얼마나 대견했는지, 그리고 그 부담을 같이 지고 간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했는지. 
얼마든지 반항하고 환경을 거부할 수 있지만, 그것을 받아들이고 기꺼이 뜻을 따르는 것이 기뻤습니다.

[학교 밖 선생님 365]라는 책에 나오는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작은 영웅“

세상은 나폴레옹을 ’작은 영웅‘이라 부른다. 볼품없는 작은 키 때문이다. 그러나 이 ’작은‘이라는 수식어 때문에 ’영웅‘이라는 명사가 더 돋보이는 것이다. 만약 그가 ’큰 영웅‘이었다면 감동과는 거리가 먼 반응만 있었을 것이다. 
그래, 너 잘났어! 하면서.
당신은 지금 보잘것없는 수식어를 들고 있다. 작은, 가난한, 약한, 촌스러운…. 그러나 수식어가 보잘것없을수록 뒤에 따라붙는 명사는 더 빛난다. 작고 가난하고 약하고 촌스러운 당신, 이제 당신이 들고 있는 초라한 수식어 뒤에 당신이 꿈꾸어 온 멋진 명사를 붙일 차례다.

"샴푸“

비누가 지배하던 욕실에서 샴푸가 한자리 차지할 수 있었던 건 자신만의 전문분야를 확실히 보여줬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그대로 흉내 내서는 내 자리를 갖기 어렵다.
샴푸가 지배하던 욕실에서 린스가 한자리 차지할 수 있었던 건 샴푸의 일을 빼앗지 않고 도와주었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쓰러뜨려야 내 자리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역대상 16장 34절입니다.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하나님의 사랑을 알면, 그리고 하나님을 사랑하면 우리의 삶에 선하심과 인지하심이 넘치게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없는 것이 아니라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불행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선한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것입니다.

뜻대로 부르심을 입었다는…

영어 성경의 표현에 의하면 “according to His purpose”라고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목적에 따라 만들어진 존재라는 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뜻을 이룰 때까지 우리의 삶이 절대로 헛되지 않으리라는 것이지요. 우리는 하나님 드라마의 주인공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드라마가 이루어질 때까지, 그 드라마가 끝날 때까지 절대로 죽을 수 없는 존재, 이 세상에서 없어질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이지요.
또한, 우리가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불림을 받았다는 것은 그 목적에 부합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뜻을 포함합니다. “순리(順理)”라는 말이지요.
편안한 삶이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자꾸 이 뜻을 벗어나려고 하므로 어려움을 당하는 것입니다.

우리 만나 교회에서 영성훈련을 하는 BTD 프로그램에서는 식당에서 봉사하는 사람들이 부르는 노래 가운데 하나가 이런 가사가 있습니다. 
“먹고 깨질래? 굶고 깨질래? 이왕이면 먹고 깨지자!”
하나님의 부르심에 합당한 삶을 살면서 선을 이루시겠습니까? 아니면 뺀질뺀질 하게 살다가 매를 맞고 선을 이루시겠습니까?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사람들은 늘 하나님의 뜻이 드러나기를 원하며, 하나님의 의가 드러나기를 원합니다. 선을 이루는 삶에 있어서 가장 장애가 되는 것은, 바로 내가 드러나는 것입니다. 
악하고 게으른 종이 무엇입니까? 게으른 사람의 특징이 무엇이라고 생각을 하십니까? 게으른 사람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이 아닙니다. 아무리 게으른 사람도 자신이 원하는 일은 합니다. 

예를 들어서 매일 TV를 보고 뒹굴뒹굴 하는 사람도 고장이 나면 빨리 고칩니다. 
조금 더 깊이 생각한다면, 세상을 아주 열심히 사는 사람이지만, 하나님의 뜻과 무관하게 살고 있다면, 악하고 게으른 종이 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5장에 등장하는 악하고 게으른 종은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맡겨주신 달란트를 활용하지 않은 것입니다. 

성경에 그 사람이 무엇을 하였는지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단지 분명한 것은 달란트를 묻어 둔 것입니다. 그 달란트란 마태복음 25장 15절에 보니까, “각각 그 재능대로”라고 되어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그 사람이 할 수 있는 만큼 나누어주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마지막 결산을 하는 주인의 책망은 많고 적음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게으름”에 대한 문책입니다. 주인이 맡겨준 것은 충분히 무엇인가를 할 수 있는 정도의 분량이기 때문입니다. 달란트 하나만으로도 무엇인가를 충분히 할 수 있는 액수의 돈이라는 사실입니다. 
1 달란트 = 6.000데나리온인데, 1 데나리온 = 성인의 하루 품삯 그러니까 약 5만 원을 잡는다고 하면, 50.000 × 6.000 = 300.000.000이니까 무엇을 하든지 할 수 있는 액수라는 것이지요.

“뜻대로 부르심을 받았다!”라는 말씀에서 우리는 두 가지의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뜻은 누구와 비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거룩한 뜻이라는 것입니다. 바로 여러분 한 분 한 분을 위한 “거룩하신 하나님의 뜻” 말입니다. 

지난달에 저는 어떤 모임에서 수백 명의 목회자를 대상으로 한 세미나를 인도하게 되었습니다. 2시간 가까이 교회 성장과 한국 교회에 대한 흐름을 강의하고 질문을 받았습니다. 
그때 한 목사님이 일어나서 저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목사님이 교회 성장학을 전공하고 선교학 박사라고 해서 기대를 했는데, 실망했습니다. 왜 목사님은 성장하는 교회에 대한 강의만 하고, 성장하지 못하는 시골 교회에 대해 배려를 하지 않습니까?”

또한, 어떤 분은 저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우리 시골 교회와 작은 개척 교회들이 성장을 하지 못하는 이유는 큰 교회 때문입니다. 큰 교회에서 우리 작은 교회에 교인들을 나누어줄 용의가 없습니까?”

강의를 마치고 났는데, 주최한 목사님이 상당히 미안했던 모양입니다. 저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목사님! 사실 작은 교회의 목사님들이 마음에 많은 상처가 있습니다. 그리고 많은 피해의식이 있습니다. 목사님이 이해를 하세요.”

저는 그런 말을 했습니다. 
“그 상처받은 마음이 치유되지 못하고, 큰 교회에 대한 피해의식이 없어지지 않는다면 저분이 평생을 얼마나 힘들게 목회를 하시겠습니까?”

왜 큰 교회도 처음에는 작은 교회에서 시작했다는 사실을 모르십니까?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큰 교회가 되는 것이 아니라 신실한 하나님의 종이 되는 것인데 말입니다. 
우리는 나에게 주어진 분량만큼의 열매를 거두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이상을 우리에게 기대하지 않습니다. 결국은 “최선의 삶”을 살았느냐는 질문입니다. 
저는 이런 표현을 쓰는데,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았느냐?”라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5장에 보면, 악하고 게으른 종의 변명이 나옵니다. 혹시 달란트를 잃어버릴까 봐 “땅에 묻어 두었습니다.”라는 것이지요.
우리는 많은 염려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을 시작하지 못하거나, 중도에 포기하는 사람들을 보게 됩니다. 제가 말씀을 묵상하면서 깨닫게 된 것은 우리가 최선의 삶을 다할 때 하나님은 우리를 도우시는 분이며, 행여 우리의 실수로 문제가 생긴다면, 하나님은 우리를 질책하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를 연민의 눈으로 바라보시고, 우리와 함께 아픔을 나누는 분이라는 것이지요.
우리는 쓸데없는 염려 때문에 오늘 하나님 앞에 “결산”하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까?

어떤 할아버지가 약국을 찾아와 의심스러운 듯이 약사를 올려다보며 말했습니다.
“뭐 좀 물어보겠는데요, 아저씨는 약사 면허증을 가진 약사가 맞는가요?”
“그럼요, 약사가 면허증 없이 어떻게 약을 팔아요?”
“그래요? 그럼 좋아요. 그렇다면 약사님은 지금까지 실수로 손님에게 혹 약을 잘못 주어 사람을 죽게 한 사실은 없겠죠?”
약사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대답을 하였습니다.
“큰일 날 말씀이십니다. 그런 실수를 범한다면 어떻게 합니까? 그런 적은 결코 없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분명하죠?”
“그렇다니까요!”
“그렇다면, 좋습니다. 박카스 한 병만 주세요.”

여러분이 자신의 주어진 삶을 살아가는데 최선을 다하는데 왜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며 살아가느냐는 것입니다. 왜 당신에게 주어진 것을 활용하는데 염려를 하느냐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바로 당신을 부르셔서 뜻을 이루시기를 원하시는데 말입니다.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내가 드러나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늘 잊지 말아야 할 부분이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는 늘 내가 드러나려고 하므로 받은 은혜를 쏟을 때가 많이 있습니다. “내가” 인정받지 못하는 것으로 실족하고 상처를 받을 때가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위해 부르심을 받았음에도, “나”를 쳐서 복종시키지 못하여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것 말입니다.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기다려야 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먼저는 씨가 떨어져서 썩어지는 아픔이 있어야 합니다. 썩지 않는 씨에서는 싹이 나지 않습니다. 싹이 나기 시작하면, 많은 양분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땅에서도, 햇빛에서도, 공기에서도, 그리고 가꾸는 농부의 손길을 통해서도 말입니다. 

그리고 어느 정도 자라나면, 양분을 받아들이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는데 “견디는 것”입니다. 이제는 봄의 따사로운 햇볕이 아니라 작열하는 태양의 빛을 견뎌야 합니다. 산들산들 부는 봄바람이 아니라 폭풍우를 견디고서야 합니다. 

그리고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흐르면서 곁가지들을 쳐내야 양분을 제대로 모아 탐스러운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과정이 지나야 선을 이루는 열매를 맺지요.
많은 사람이 양분을 받는 단계에서 자라지 못하고 포기합니다. 다른 사람들의 판단과 비판들을 견디지 못하고 포기합니다. 곁가지를 포기해야 하는 아픔을 감내하지 못하고 포기합니다. 
탐스러운 열매를 맺기까지는 끊임없이 자기를 포기하고 인내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이 과정을 지나야만 열매를 맺기 때문입니다. 사실은 이 과정을 견디기가 힘이 듭니다. 

사실 절망과 고통의 시절, 즉 아무것도 없던 때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양분을 받아들이기가 오히려 쉽습니다. 그러나 어느 정도 내가 이루었다고 생각하는 시점이 되면 더욱 힘들어집니다. 
“시련을 이겨내는 사람이 100명이라면, 성공을 지키는 사람은 1명도 되지 않습니다.”
근래 들어서 아주 재미있게 읽은 책이 있습니다. “1인자를 만든 참모들”이라는 제목인데, 유명한 지도자와 군주들은 혼자서 된 것이 아니라 좋은 참모들을 만남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그 책에 나오는 좋은 참모의 여건 중의 하나는 “명예를 탐하지 말 것”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성공을 거머쥐고, 섬기던 사람이 대통령이 되어서도 끝까지 명예를 탐하지 않는 사람이야말로 가장 필요한 참모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요즘 학생들에게 인기 있는 아르바이트 중의 하나가 “넘돌이” “넘순이”랍니다. 
이 아르바이트는 주로 음악을 전공하는 학생이 연주회 때 연주하는 피아니스트 옆에 앉아서 악보를 넘겨주는 아르바이트를 말합니다. 그래서 이 아르바이트를 하는 학생들이 스스로 자신을 가리켜 남자는 '넘돌이'이라 부르고, 여자는 '넘순이'로 부르고 있습니다. 
피아노를 동반하는 실내악에서 이들 아르바이트생의 존재는 필수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피아노의 악보는 다른 악기에 비해 음표가 많아 자주 페이지를 넘겨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1회 공연에 적게는 5만 원에서 많게는 7만 원까지 받는다고 합니다. 이 정도면 대학생 아르바이트로서는 상당히 좋은 대우를 받는 아르바이트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반드시 지켜야 할 사항이 있습니다. 

첫째는 무대에서 화려한 옷을 입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관객들의 시선을 끌 수 있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는 악보를 넘길 때 손이 악보를 가리거나 연주자의 턱을 치는 일이 있어서도 안 됩니다. 
세 번째는 악보를 넘길 때 조금의 오차가 있어서도 안 됩니다. 왜냐하면, 연주에서 타이밍은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아르바이트는 쉬운 아르바이트가 아닙니다.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아르바이트는 아닙니다. 그러기 때문에 또 이들에게 돌아가는 몫은 단지 다른 아르바이트에 비해 돈을 좀 더 많이 받는 것에 그치지 않습니다. 잘만하면 거장의 연주를 누구보다도 가장 가까운 곳에서 지켜볼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뜻하신바 목적을 이루기 위해 택함을 받은 존재라는 것은, 여러분의 삶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집중될 수 있도록 살아가라는 말씀입니다. 그렇게 살면,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최후의 승리를 얻는다는 것
오늘 말씀의 결론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사람은 결국 “선”을 이루는 결과를 이루게 될 것이라는 말입니다. 여기서 ‘선을 이룬다!’라는 것은 ‘유익하게 된다.’라는 뜻입니다. 또한, ‘좋게 된다.’라는 뜻입니다. 더 나아가서 ‘최상의 결과가 된다.’라는 뜻입니다. 
저는 이런 말로 표현하고 싶습니다. 당신은 전쟁에서 승리하기를 원하십니까? 아니면 전투에서 이기시렵니까?

이번에 중국 단기 선교 여행을 갔다 오면서, 장가계라는 곳을 들렸습니다. 
이 지명의 유래는 유명한 장량의 이름을 땄다고 합니다. 그는 유방을 도와 한나라를 세운 사람입니다. 그가 유방을 도와 나라를 세우는데 가장 큰 장애물은 역발산 기개세 항우였습니다. 
장량과 유방은 기원전 202년 그 유명한 해하지전에서 승리하기 전까지 한 번도 항우를 이겨본 적이 없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한 번의 전투로 항우는 31세에 천하를 잃었고 유방은 한 번의 승리로 45세에 천하를 얻었습니다. 여기에서 그 유명한 말이 나옵니다. 수많은 전투에서 졌지만, 전쟁에서는 승리했다는 말입니다.

결국, 오늘의 본문 말씀은 “결과”에 대한 것입니다. 
과정이 어떠했는지가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결국 “선(善)”을 이루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창세기 50장 20절에 보면 바로 그런 사람의 이야기가 나와 있습니다.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요셉은 형들의 시기로 애굽에 종으로 팔려갔지만, 나중에는 애굽의 총리가 되어 하나님 앞에 감사와 찬송을 돌리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후에 형들에게 자신이 종으로 팔려갔던 그 길이 축복의 길이요, 성공의 길이라고 말할 수 있었습니다
만약 요셉에게 믿음이 없었다면 그가 얼마나 불평하고 낙심했겠습니까? 그러나 요셉은 끝까지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하나님을 의식하며 세상의 불의 앞에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그로 말미암아 많은 어려움을 당하는 것 같았으나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것을 일시에 바꿔 놓으셨습니다. 

지금까지 그가 지나왔던 모든 발걸음이 축복의 발걸음이 되었고, 의미 있는 사건으로 변했습니다. 그가 어려운 생애를 살았기 때문에 삶이 의미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벗어나지 않는 삶을, 하나님을 의식하며, 하나님의 뜻하신 바대로 살아갔기 때문에 모든 고난의 순간이 선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오늘 여러분이 당하는 모든 고난이, 모든 아픔이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혹시라도, 여러분의 불성실함과 불의함으로 말미암은 고통을 미화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그러나 당신이 바로 하나님으로 인하여 어려움을 당하고, 당신 안에 있는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므로 “의미 있는 고난”을 당하고 있다면 염려하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결국은 모든 것을 선으로 바꾸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사야 43장 1절에는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너는 내 것이라!’라고 말한 사람은 말한 것에 관한 책임을 져야 합니다. 남자가 여자한테 ‘너는 내 것이라!’라고 말했으면 생활비를 다 대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너는 내 것이라!’라고 말씀하셨으니 우리의 인생을 다 책임져 주시지 않겠습니까?

지난주간에 어느 권사님 댁을 심방하게 되었습니다. 
그분은 다른 성도님 한 분을 권면하시는데, 이렇게 말씀을 하셨답니다. “목사님에게 섭섭한 마음을 갖지 마세요. 목사님이 언제 멀리 떠나 있었나요? 당신이 멀리 갔다가 가까이 왔다 했지요. 하나님께 충성을 다했으면 그만이지 왜 사람들에게 인정을 자꾸 받으려고 하느냐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그 자리에 계셔서 우리를 사랑하고 계십니다. 단지 우리의 마음이 섭섭해서 문제이고, 인정을 받지 못한 것 때문에 실족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무엇을 하였든지 변함없이 그 자리에 계신 분이십니다.

베드로전서 2장 9절에는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전에는 어둠 속에서 살았습니다.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 무엇이 좋고 나쁜지, 죄가 무엇인지 몰랐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둠 가운데서 택하셔서 빛 가운데 거하게 하셨습니다. 양심의 빛을 보게 하시고 선과 악을 구별하게 하셨으며 온전한 삶을 살게 인도하여 주셨습니다. 
“전화위복(轉禍爲福)”이라는 말이 바로 오늘 본문의 말씀입니다. 지금은 전투에서 지는 것 같지만, 전쟁에서 이기게 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 주위에 당신을 해하려는 자들이 있습니까? 염려하지 마십시오. 그들을 통해서도 하나님은 당신을 위한 선한 일들을 준비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수없이 많은 일이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하나님께서 바로 당신을 향한 놀라운 계획을 세우고 계시며 당신의 삶에서 선을 이루실 준비를 하고 계시다는 사실입니다. 

좋은 결산을 하십시오.
“중간 결산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의의 최후 승리를 믿는 사람들입니다. 
바로 당신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불림을 받은 사람이요, 당신이 그 하나님을 사랑하는 한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역사가 있습니다.
(김병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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