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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교회가 세상의 희망입니다 (행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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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가 세상의 희망입니다 (행 1:1-11)

지난 주 한 교회를 방문했는데 “말씀을 붙들면 이긴다.”라는 저의 책으로 아이들과 함께 100일 큐티를 한 목사님이 계셨습니다. 그 책 때문에 아이들이 공부에 대한 스트레스를 이기고 하나님을 깊이 만났을 뿐 아니라 좋은 대학에 들어갔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굉장히 반가웠습니다. 저자의 의도에 맞게 사용하시는 분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책에 나폴레옹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세기의 정복자이자 유럽군주제도를 마감하게 만든 나폴레옹도 전투에서 패배할 때가 있었습니다. 그때 그가 한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유럽 연합군과의 전투에서 패배한 나폴레옹은 지친 병사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나에게는 아직 비장의 무기가 남아 있다. 그것은 희망이다.”

나폴레옹이 세상을 정복할 수 있었던 것은 그에게 칼이 있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가 세상을 정복할 수 있었던 것은 어떤 실패에서도 다시 일어설 수 있게 하는 희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세상의 희망입니다. 사도행전은 세상의 희망을 주는 교회가 어떻게 탄생했으며 그 교회가 어떻게 세상을 변화시켰는지에 대한 생생한 역사 기록입니다. 사도행전은 하나님이 누가를 통해서 기록한 역사서입니다. 허구가 아니라 사실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계획하신 교회, 사람들이 기다리는 교회가 어떤 모습인지 실제로 보여준 모델이라는 말입니다. 그러기에 ‘교회가 교회다워져야 한다.’는 말은 이렇게 바꿀 수 있습니다. ‘교회가 사도행전에 나타난 교회의 모습처럼 된다.’

한국교회가 세상에 소금과 빛이 되지 못하고, 세상의 희망이 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사도행전적 교회의 모습을 잃어버린 채 저마다의 교회를 꿈꾸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교회가 세상의 희망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사도행전적 교회의 모습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자신이 꿈꾸는 교회에 대해 말하지 말고 사도행전이 말하는 교회의 모습으로 돌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Ⅰ. 그렇다면 세상의 희망이 되는 사도행전적 교회의 모습은 무엇일까요? 

복음이 살아 있는 교회입니다. 사람들이 희망을 잃어버린 것은 결코 희망이 될 수 없는 것을 붙들고 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희망은 어디 있을까요? 마틴 로이드 존스는 “진정한 기독교”라는 그의 책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인간으로 하여금 인생을 정복하고 다스릴 수 있게 하며 결코 사라지지 않는 희망을 줄 수 있는 것은, 하늘 아래 오직 복음밖에 없습니다.”

복음이야말로 세상의 유일한 희망입니다. 그러기에 교회가 세상의 희망이 되기 위해서는 교회 안에 먼저 복음이 들려져야 하고 그 복음을 세상으로 나가 전파해야 합니다. 오늘날 교회가 세상의 희망이 되지 못하는 근본적인 이유가 무엇입니까? 교회 안에 복음이 들려지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 안에 복음 보다 더 중요한 것들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어떤 교회는 학교를 시작하고 사회복지 법인을 만듭니다. 또한 지역주민들에게 다가가기 위해서 카페와 도서관을 만들고 심지어 스포츠센터를 만들기도 합니다. 교회가 이런 것을 갖추어 놓고 믿지 않는 사람들과 접촉하는 것은 정말 좋은 일입니다. 그것을 통해서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거기에 복음전도가 빠져 있다면 그것은 교회가 아닙니다.

어떤 세탁소 주인이 세탁소를 하면서 옷을 수선하는 일도 같이 했습니다. 그런데 수선을 맡기는 사람들이 많아지자 더 이상 세탁은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됩니까? 네, 됩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주인 마음이겠지요. 하지만 적어도 이름은 바꾸어야 합니다. 무슨 세탁소가 아니라 수선집으로 말입니다. 그래야 손님들이 세탁을 맡기러 오는 혼동은 피할 수 있을 것입니다.  교회는 복음이 살아 있어야 합니다. 복음이 살아있지 않은 교회는 교회가 아닙니다. 아무리 많은 구제와 지역주민을 위해 봉사를 한다 할지라도 그것은 교회가 아닙니다.


Ⅱ. 한발 더 나아가서 세상의 희망이 되는 사도행전적 교회의 모습은 무엇일까요? 

성령의 임재가 있는 교회입니다. 어떤 목사님이 교회를 개척하고 전도를 강조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교인들이 부담을 느껴서 시험에 드는 일이 생겼습니다. 그것을 보면서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아무리 좋고 선한 일이라 할지라도 강압적으로 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사도들이 부활의 증인이 되길 얼마나 원하셨겠습니까? 그러나 그 전에 단단히 부탁하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1장 4절 보세요.

“사도와 함께 모이사 그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이 약속하신 것이 무엇일까요? 바로 성령입니다. 요한복음 15장 26절 보세요.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언하실 것이요”

하나님 아버지께서 무엇을 보내신다고요? 그렇습니다. 성령을 보내십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셔서 승천하신 후에 성령을 보내신다는 것입니다. 왜요? 성령이 오셔야 비로소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것을 반복하신 것입니다. 교회가 세상의 희망이 되지 못하고 욕을 먹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급하기 때문입니다. 서두르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역사의 의해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뜻과 열정으로 일을 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저는 다시 한 번 부탁을 드립니다. 교회는 하나님이 세우십니다. 우리가 무엇을 하려고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성령의 임재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성령의 지배를 받으며 우리의 기질과 옛 성품이 다듬어지고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최종병기로 다듬어져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는 일을 하면 할수록 자신도 상처받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상처를 주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성령의 임재를 구하십시오. 예배를 통해서 제자훈련을 통해서 성령의 지배를 받으십시오. 그것이 우선입니다.


Ⅲ. 마지막으로 세상의 희망이 되는 사도행전적 교회의 모습은 무엇일까요?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는 교회입니다. 예수님께서 왜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리라고 하셨습니까? 예수의 증인이 되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그 유명한 사도행전 1장 8절 읽어 보세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그렇습니다. 성령을 보내신 목적은 은사를 받게 하기 위함이 아니라 예수의 증인이 되게 하기 위함인 것입니다. 사도행전은 사도들이 증인되어 살아간 역사입니다. 성경공부한 사람들이 써간 역사가 아닙니다. 예수님의 증인으로 살아간 사람들로 인해 교회가 세워지고 그 교회가 사회를 변화킨 이야기입니다. 그러기에 세상을 변화시키고 싶다면 예수의 증인으로 살아야 합니다. 친절을 베풀고 선행을 베풀고 구제를 한다해도 예수의 증인으로 살지 않으면 여러분의 가정과 일터와 세상은 변하지 않습니다. 성경을 공부하고 봉사를 하고 서로 교제하면서 예수의 증인으로 살지 않으면 세상에는 희망이 없습니다.

최근 한 음식업소에서 임산부가 종업원에 의해 폭행을 당했다는 일로 그 종업원과 그 업소를 비난하는 글이 봇물처럼 일어났습니다. 사람들은 사실을 확인하지도 않고 누군가에게 들은 이야기를 사실처럼 전했습니다. 그러나 CCTV판독 결과 임산부의 말은 거짓으로 들어났습니다. 한국 사회의 경박성은 소문이 시간을 통해 사실로 확인되기도 전에 소문이 사실로 둔갑해 누군가에게 혹은 어떤 기업에게 결정적인 상처를 입힌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가장 심각한 문제가 무엇입니까? 증인도 아닌데 말을 전한다는 것입니다. 보지 않았는데 전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증인입니다. 그러기에 그리스도인이 모여있는 공동체인 교회도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성령의 임재하심을 통해 살아있는 예수님을 만나고 경험해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교회는 교회다운 교회, 사도행전의 증인들이 그랬던 것처럼 예수님을 전함으로 세상의 희망이 되는 위대한 교회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오늘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살았던 한 사람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그는 닉슨 대통령 시절, 특별 보좌관을 지낸 찰스 콜슨이라는 사람입니다. 그는 정말 잘나가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1974년 7월 그 유명한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인해 미연방교도소에 수감이 됩니다. 그런데 거기서 그는 놀라운 변화를 경험합니다. 그는 자신의 변화를 그의 책 “백악관에서 감옥까지”에서 이렇게 소개합니다.

“나는 모든 것을 잃었었다. 권력, 위신, 자유, 심지어 나의 정체성마저도 잃어버렸다. 1974년 여름, 연방 교도소 죄수 23226번이었던 나는 흑백텔레비전의 자그마한 화면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이 나라의 온 국민과 함께 나는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내가 3년 반 동안 성실하게 보필한 그 대통령이 사임하는 장면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것은 내 인생의 가장 황폐한 경험 중의 하나였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나는 모든 것을 얻는 것이기도 했다. 정말로 중요한 모든 것, 즉 살아 계신 하나님과의 개인적인 관계를 얻었다. 내 인생은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극적으로 변화되었다.

감옥에서 지루한 날을 보내면서 나는 내 인생의 극적인 변화, 즉 백악관에 있다가 감옥까지 가게 된 상황의 의미를 설명하고자 조금씩 글을 쓰기 시작했다. 거액을 제시하며 정치 회고록을 써 달라고 하는 요청이 많았지만 나는 하나님께서 내 인생에 하신 일을 사람들에게 꾸밈없이 전달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메모지에 긁적이기 시작했고 그것이 훗날 이 책이 되었다. 당시 나는 기독교 출판 업계가 존재하는지조차도 몰랐다. 내가 아는 것은 단지 사람들에게 반드시 알려야만 하는 이야기, 다른 사람들에게 희망과 격려를 줄 수도 있는 이야기가 내게 있다는 것뿐이었다.”

사랑하는 여러분, 교회는 바로 이 이야기를 전하는 공동체입니다. 그러기에 위해서는 먼저 성령의 임재하심을 경험해야 합니다. 우리의 노력과 우리의 열정이 아닌 성령의 임재하심으로 인해 변화된 모습을 먼저 경험해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우리는 비로소 세상의 희망이 되는 예수님, 그 예수님을 전하는 희망공동체, 교회다운 교회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김인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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