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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일어나 빛을 발하라! (사 6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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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나 빛을 발하라! (사 60:1-3)


우리가 살다보면 때로는 우리가 전부인 것처럼 착각할 경우가 있습니다. 누군가 우리 뒤에 있다는 사실을 잊고 지낼 때가 있지 않습니까? 돈을 벌어도 내가 벌었다고 생각하고 고생을 해도 내가 했다고 생각합니다. 성공한 것도 다 내가 잘나서 성공했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우리의 삶의 주인인 것처럼 생각할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전혀 다르게 말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의 삶의 배후에 모든 것을 다스리시는 분이 계신다고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참 믿음이란 바로 그것을 아는 것에서부터 시작됩니다. 누가 인생의 주인인가 하는 것을 아는 것에서부터 참 예배가 시작되고 우리의 올바른 신앙생활이 시작된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그 옛날 이스라엘은 그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때문에 그들은 우상을 만들었고 늘 죄악을 향해서 빠르게 달려가곤 했습니다. 그들은 스스로 삶의 주인 행세를 하며 살았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하나님의 매를 맞고 무너져 내렸습니다. 나라는 망하고 성전도 파괴되었습니다. 가족들은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리고 이방 땅에 포로로 끌려가 70년이라는 긴 세월을 보내야 했습니다. 아무 희망도 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모든 것이 끝났다고 좌절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들을 과연 누가 거기서 건져낼 수 있었습니까? 참고 기다리는 것도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결코 밝아 오지 않을 것 같은 깊은 어두움 속에서 떨고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그들 이스라엘의 문제가 무엇이었습니까? 희망이 없는 것, 나라가 없고 집이 없고 예배드릴 성전이 없는 것과 같은 없음의 자리에서 그들은 절망하고 있었습니다.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하나님이 없는 것이었습니다. 범죄하고 타락한 그들을 벌할 수밖에 없으셨던 하나님의 임재를 느낄 수 없었던 것이 그들의 진짜 문제였다는 말입니다. 포로로 잡혀온 이방 땅에서는 마음 놓고 예배도 드릴 수 없었습니다. 그들이 깊은 절망 가운데서 하나님의 임재를 느낄 수 없었던 것이야말로 그 모든 상황을 더욱 힘들게 한 가장 근본적인 문제였습니다.

   열무 삼십 단을 이고 / 시장에 간 우리 엄마
   안 오시네, 해는 시든 지 오래 / 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
   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 / 엄마 안 오시네
   배춧잎 같은 발소리 타박타박 / 안 들리네, 어둡고 무서워
   금간 창틈으로 고요히 빗소리 / 빈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던
   아주 먼 옛날 / 지금도 내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 그 시절, 내 유년의 윗목

시인 기형도의 “엄마 걱정”이라는 시입니다. 엄마의 존재는 추운 겨울도 따뜻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엄마의 부재는 모든 것이 있어도 모든 것이 없는 것처럼 만들었습니다. 빈방에 엎드려 훌쩍거리는 것은 바로 엄마의 부재 때문이었습니다. 엄마가 있으면 모든 것이 있지만 엄마가 없으면 모든 것이 없습니다. 우리가 어렸을 때에 그렇게 소중하게 생각했던 엄마는 세상을 떠나셨고 이제 우리가 어버이가 되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엄마와 같은 존재는 필요합니다. 그 존재 앞에 설 때까지 우리는 진정한 행복을 맛볼 수 없기 때문에... 그런데 그 옛날 이스라엘은 그것을 몰랐습니다. 좌절과 절망의 시간을 보내면서 그들이 꼭 배워야 할 것은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이 그렇게 깊은 절망에 빠져 있을 때에 갑자기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왔습니다.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사 60:1) 하나님이 없어서 암울했던 시간, 그 절망의 자리에 들려온 그 말씀은 하나님의 임재 선언이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계시겠다는 약속의 말씀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빛을 비춰 주시면 어두움은 물러가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빛을 비춰 주시면 절망의 시간은 끝이 나게 마련입니다. 하나님이 그 영광의 빛을 비춰 주시면 그들은 다시 일어설 수 있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임재 선언은 하나님이 친히 구원하시겠다는 말씀으로 이해해도 좋을 것입니다. 이사야 43장 3절 상반절 말씀에 뭐라고 기록되어 있습니까? “대저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요 네 구원자임이라!” 이스라엘의 구원자이신 그 하나님이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맨 먼저 들려 주시는 말씀이 바로 “일어나라!”는 명령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일어나는 것입니다. 절망과 좌절의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야 합니다.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을 경험한 사람은 주저앉아 있어서는 아니 됩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더 이상 머뭇거려서는 아니 된다는 말입니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는 것은 절망했던 사람이 “하나님은 나의 힘이십니다. 때문에 이제 하나님을 나의 소망으로 삼겠습니다!”라고 선포하는 것입니다.

이어서 좀 더 적극적인 하나님의 명령이 그들에게 주어졌습니다. “빛을 발하라!” 우리 안에 빛이 없는데 어떻게 빛을 발할 수 있습니까? 우리 안에 온통 어두움뿐인데 어떻게 빛을 발할 수 있느냐는 말입니다. 여기서 빛을 발하라는 명령은 우리 안에 있는 빛을 발하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비춰 주시는 빛을 반사하라는 것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선지자 이사야도 분명히 말하지 않았습니까?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라.” 이제 그 빛은 어두움 속을 방황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비치게 될 것이며 그들도 또한 그 빛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알아가게 될 것입니다. 성탄절과 주현절은 빛의 절기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어두움의 땅에 빛이 비치고 그 빛을 받은 사람들이 일어날 때에 모든 사람들이 함께 그 빛을 누리게 되는 참으로 복된 계절이라는 말입니다. 

직업마다 특히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고 합니다. 의사가 제일 싫어하는 사람은 “앓느니 죽겠다.”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치과 의사가 제일 싫어하는 사람은 “이 없으면 잇몸으로 산다.”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한의사가 제일 싫어하는 사람은 “밥이 보약”이라고 하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변호사가 제일 싫어하는 사람은 “법 없이도 살” 사람이라고 합니다. 학원 강사가 제일 싫어하는 사람은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아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제일 싫어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에 싫어하는 사람은 없을지 몰라도 하나님이 매우 안타깝게 여기시는 사람은 있습니다. 말씀을 듣고도 주저앉아 있는 사람, 빛 앞에서 고개를 돌리는 사람, 다시 말해서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는 사람을 하나님은 얼마나 안타깝게 여기시는지 모릅니다.

오늘 우리 사회는 많은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어느 시대나 문제가 없었던 시대는 없지만 요즘 우리에게 들려오는 소식들은 그 어느 때보다 마음을 무겁게 만들고 있지 않습니까? 미성년자와 여성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가 늘어갈 뿐 아니라 갈수록 더 흉폭해지고 있습니다. 학교 폭력도 갈수록 늘어가고 있으며 입시 중심의 교육과 그에 따른 청소년들의 극심한 스트레스도 많은 문제를 낳고 있습니다. 자살률은 OECD 국가 중에서 우리나라가 1위라고 합니다.

2012년 기준으로 하루 43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있다고 하지 않습니까? 세대 간 갈등의 골도 깊어지고 있으며 빈부 격차도 점점 더 심해지고 있습니다. 선진국이 되었다고 떠들어대고 있지만 우리 사회는 아직도 짙은 어두움이 지배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권력형 비리에 대한 이야기는 하도 많이 들어서 이제 웬만한 사건은 터져도 놀라지도 않게 되었습니다. 교회 지도자들의 타락한 이야기는 또 어떻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더 늦기 전에 일어서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일어나 빛을 발하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오늘 주님이 친히 말씀하시지 않습니까?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그 때에 비로소 어두움이 지배하고 있는 이 절망의 땅에 주님의 통치와 구원이 널리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 빛의 절기에 먼저 우리에게 임하신 주님의 빛을 경험해야 합니다. 

참 빛으로 오신 그 주님 앞에서 그 주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우리의 삶을 통치하시는 그 주님으로 인해서 더욱 기쁘게 찬양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주님이 원하시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앞이 전혀 보이지 않는 것 같은 바로 그 삶의 현장에서 오히려 구원의 감격을 노래할 수 있어야 하겠다는 말입니다. 말씀에 순종하여 그 어떤 어려움이 있을지라도 일어나 빛을 발함으로 말미암아 참 빛으로 우리를 찾아오신 그 구원의 주님을 찬양하며 그 이름을 널리 전하는 복되고 충성스러운 빛의 자녀들이 다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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