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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그 모든 율례와 규례대로 지킬지니라 (민 9: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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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모든 율례와 규례대로 지킬지니라 (민 9:1-14)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가 세워진 날로서 달리 경축하는 날이 없다보니 이 개천절이 일종의 '건국일'처럼 지켜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조금만 생각해 보아도 아주 이상한 일이 아닙니까?
우선 이 개천절의 유래는 곰이 쑥과 마늘을 백일 동안 먹은 뒤에 사람으로 변하고 하늘에서 내려온 환웅과 결혼하여 단군이 태어났다는 따위의 허황한 신화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그 신화조차 고조선과는 관계가 있을지 몰라도 오늘날의 대한민국 건국과는 하등 상관이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사실상 10월 3일이라는 날짜조차 그 근거가 희박한 개천절 즉 '하늘이 열렸다'는 날보다는 오히려 대한민국의 헌법이 제정된 7월 17일의 제헌절을 '대한민국 건국일'로 보는 것이 훨씬 더 실제적이고도 합리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간단히 말해서, 저와 여러분은 '고조선의 백성'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대한민국의 국민'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어떤 단체가 어떤 날을 가장 소중히 여기고 함께 기념하며 지키는가 하는 것은 그 구성원의 성격 및 공동체 의식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게 됩니다. 
간단히 예를 들자면, 불교 신자들은 '석가탄신일'을 제일 중요하게 여기고 우리 기독신자들은 '성탄절'을 최고의 절기로 지키는 것입니다. 
하지만 성탄절은 석탄일 등으로 대응된다 하더라도, 우리 기독교에는 다른 종교에서는 전혀 찾아 볼 수 없는 정사기념일 혹은 부활절처럼 기독교 고유의 독특하고도 뜻 깊은 절기들이 있습니다. 

구약에 나오는 절기 중에서 당시 고대근동사회의 다른 우상 종교들과 비교해 볼 때에 유별나게 돋보이는 것을 꼽는다면 역시 유월절이 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바로 그 귀한 유월절의 절기를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한 이후 처음으로 지키게 되는 실로 의미 깊은 장면을 기록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두말할 필요조차 없이 유월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는 절기 중의 절기요 성일 중의 성일이었습니다. 
  
그러니 그 날을 지키는 방법이나 자세 또한 절로 다른 절기나 성일을 지키는 방법과 자세에 대한 지침이요 모범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바로 그런 까닭에 하나님께서는 이 '두 번째 유월절', 아니 기념하여 지키기는 첫 번째에 해당되는 이 유월절을 당신의 백성들이 어떻게 지켜야 할 것인가에 대하여 소상히 가르쳐 주신 것이었습니다. 
본문의 말씀에서 '유월절을 율례대로 지키라'는 표현이 세 번이나 반복되고 있는 배경이 바로 이것입니다. 

비록 명칭은 조금 달라졌다 할지라도 오늘날의 기독신자들 역시 똑같이 의미 깊은 절기와 성일들을 중심으로 신앙생활을 영위해 나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해마다 달마다 주일마다 맞이하는 그런 절기와 성일들을 과연 어떤 자세로 지켜야 하겠습니까?
이 시간 저와 여러분은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을 본문에 기록된 하나님의 육성을 통하여 함께 상고해 보고자 합니다. 

1. 우리는 절기와 성일을 지킴으로써 '하나님의 은혜'를 더욱 깊이 깨닫고 기억할 수 있어야 합니다. 

본문 1절부터 5절에 "1애굽 땅에서 나온 다음 해 정월에 여호와께서 시내 광야에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2이스라엘 자손으로 유월절을 그 정기에 지키게 하라 3그 정기 곧 이 달 십사일 해 질 때에 너희는 그것을 지키되 그 모든 율례와 그 모든 규례대로 지킬지니라 4모세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하여 유월절을 지키라 하매 5그들이 정월 십사일 해 질 때에 시내 광야에서 유월절을 지켰으되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것을 다 좇아 행하였더라"고 기록했습니다. 

1절에 "애굽 땅에서 나온 다음 해 정월"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대로 여기 나타나는 유월절은 이스라엘 백성의 출애굽 해방이 꼭 1주년 되는 때에 지켜진 것이었습니다. 
이 "정월"이란 양력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종교력 1월 즉 '니산월'을 가리키는데, 오늘날의 3월 중순에서 4월 중순에 해당됩니다. 
민수기 1장 1절에 보면 이스라엘의 인구 조사는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나온 후 제 이년 이월 일일에" 실시하게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으므로, 본문 9장에 기록된 사건은 연대적으로 보면 오히려 먼저 생긴 일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월절 지킨 일을 여기 나중에 기록한 것은 이것이 바로 앞의 8장에 기록되어 있는 레위인의 성별 즉 '이스라엘의 초태생 성별'과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여튼 유월절은 모든 이스라엘 자손들이 "그 정기 곧 이 달 십사일" 즉 출애굽하게 된 바로 전날 밤을 기념하여 지키는 절기였습니다. 
그리고 그 절기를 지킴에 있어서 강조된 사실은 "그것을 지키되 그 모든 율례와 그 모든 규례대로" 지키는 것이었습니다. 
그 율례와 규례는 나중에 본문 11절과 12절에서 나오는 대로 어린 양과 무교병과 쓴 나물, 이 세 가지로 이루어진 음식을 먹을 것과 다음날 아침까지 그것을 조금도 남겨 두지 말 것, 그리고 그 뼈는 하나도 꺾지 말 것 등이었습니다. 

특히 유월절에 먹는 세 가지 음식들은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그들이 받은바 출애굽 구원의 은총을 구석구석 세세히 상기하도록 하는 것들이었습니다. 
어린 양의 고기를 먹으면서 그들은 그 양의 피로 인하여 애굽의 모든 장자와 가축의 초태생이 죽는 재앙을 피했을 뿐 아니라 바로 그 재앙이 그들에게 해방을 가져다 준 하나님의 결정타가 되었었음을 기억했습니다. 
무교병, 즉 누룩으로 발효시키지 않은 떡을 먹은 것은 그들이 막상 애굽을 떠나게 될 때 급히 나오는 바람에 발효되지 못한 반죽으로 무교병을 구워 먹을 수밖에 없었던 것을 상기하는 것이었습니다. 
쓴 나물은, 쉽게 짐작할 수 있듯이, 그들이 애굽에서 종살이할 동안 당했던 쓰라린 고통을 잊지 않음으로써 출애굽의 은총을 더욱 크게 실감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처럼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어서 유월절이란 그 날을 통해 베풀어 주신 '출애굽 구원의 은혜'를 뜨겁게 상기할 수밖에 없는 날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유월절을 지키되 그 율례를 따라 정확히 지킴으로써 모든 순서를 통하여 더욱 구체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들을 하나하나 기억했던 것이었습니다. 
과거에 하나님께서 베푸셨던 큰 구원의 은총, 바로 그것 때문에 지금까지도 자유로운 민족으로 살 수 있게 된 바로 그 은총을,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로 유월절을 지킴으로써 자기 자신에게 항상 되새기고 자손들 역시 배우고 익히게 했던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오늘날 우리들에게 주신 절기와 성일들 역시 우리로 하여금 당신께서 베풀어 주신 큰 은혜들을 깨닫게 하고자 주신 축복의 날인 줄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잊기 쉬운 은혜, 한번 체험했다가도 점점 기억 속에서 약해져 가는 은혜, 그러나 결코 놓쳐서는 안 될 가장 중요한 은혜들을 우리 심령 속에서 항상 새롭게 만들게 해 주시려고 지키게 하신 것이 바로 절기와 성일들인 것입니다. 

일단 주일만 생각해 보아도 그렇지 않습니까?
신도가 정기적으로 예배드리는 성일이 기독교처럼 처음부터 확고부동하게 설정된 종교는 없습니다. 
우리가 지키는 주일은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 엿새 동안 일하고 이레 되는 날은 쉬신 그 명백하기 이를 데 없는 패턴을 따라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그처럼 스스로 본을 보이신 하나님께서 친히 내리신 명령을 따라 창세 때부터 오늘날까지 지켜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일 성수를 이미 남다른 은혜 받은 신자만이 제대로 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그 반대로 주일을 지킴으로써 우리 자신이 더 큰 은혜를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들로 하여금 이 일곱 째 날을 거룩하게 지키게 만드시고자 하나님께서 천지창조 때부터 친히 일곱째 날에 안식하심으로써 천지만물이 존재할 동안 변함없이 계속될 '주간의 패턴'을 제정해 놓으셨습니다. 
  
그리고 이 주일을 지키는 성도로 하여금 더욱 은혜를 받도록 하시기 위하여 우리 예수님께서 바로 이날 아침에 부활하심으로써 주일의 기념 주제와 의미를 이처럼 풍요롭고도 크게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성부와 성자 하나님께서 우리들로 하여금 당신의 거룩함을 옷 입고 당신의 승리에 참여하는 은혜를 얻게 하시려고 이처럼 정성껏 제정해 놓으신 날이 바로 주일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신자로서의 일말의 양심이라도 있으면 어떻게 이 주일을 지키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이 될 수가 있겠습니까?
주일도 그 정도라면 고난 주간이나 부활절, 감사절, 성탄절 같은 특별 절기는 더더욱 두말할 필요조차 없습니다.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결코 몰라서는 안 될 정말 크고 중요한 은혜를 그날만큼이라도 꼭 상기하고 우리 심령에 더욱 깊이 뿌리박고 살게 하시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특별히 구별하여 우리에게 주신 날이 바로 주일을 비롯한 절기와 성일들인 것입니다. 

요즘 젊은 세대의 연인들이나 부부들은 온갖 종류의 기념일(anniversary)들을 부지런히도 챙깁니다. 
결혼 몇 주년 하는 것은 두말할 나위조차 없고 심지어는 첫 데이트한 지 몇 개월째, 첫 키스한 지 몇 주일째 되는 기념일 따위까지 만들어 냅니다. 
그런 날들이 정말 무슨 마술적인 효력이 있어서 그렇게 야단법석을 떠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기념일 이름이야 어떻게 붙이든지 간에 하여튼 그런 날들을 자꾸 만들어 내어서 자기의 남친이나 여친의 마음을 더 확실하게 붙잡아 두고 부부끼리는 더욱 사랑의 감정을 새롭게 일깨우려 하는 것이 그 목적이 아니겠습니까?
이처럼 어떤 '기념일'들을 함께 지킴으로 인하여 초래되는 가장 중요한 결과는 바로 그 인간관계가 더욱 가까워지는 데에 있는 것입니다. 

신자들이 지키는 절기와 성일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날들을 지킴으로써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과 그 크신 은혜들을 더욱 깊이 깨닫게 됩니다. 
그처럼 성일을 지키며 신앙생활을 계속하는 날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또한 그 믿음 역시 확고부동하게 자리 잡히게 될 것이며 하늘 아버지와 그 자녀 사이의 영적 관계 역시 더욱 뜨겁고 강하게 결속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자가 지켜야 할 성일들을 그 어떤 경우에도 부담스러운 날들로 생각해서는 결코 안 됩니다. 
왜냐하면 그런 날들을 지키지 않고서는 달리 은혜를 보충해서 받을 수 있는 날도 없으며 하나님과 더 가까워질 길도 없기 때문입니다. 
절기와 성일이야말로 우리 인생이 지나치는 많은 날들 가운데 가장 큰 복을 누릴 수 있는 최대의 기회요 특별한 기회라는 사실을 꼭 명심하고 매 주일, 매 절기마다 오직 그 날에만 누릴 수 있는 특별한 은혜들을 충만히 체험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 우리는 절기와 성일을 그 어떤 경우에도 빠지지 말고 '온전히 성수'하도록 힘써야 합니다. 

6절 이하 12절에 기록하기를 "6때에 사람의 시체로 인하여 부정케 되어서 유월절을 지킬 수 없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들이 당일에 모세와 아론 앞에 이르러 7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사람의 시체로 인하여 부정케 되었거니와 우리를 금지하여 이스라엘 자손과 함께 정기에 여호와께 예물을 드리지 못하게 하심은 어찜이니이까 8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기다리라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대하여 어떻게 명하시는지 내가 들으리라 9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10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너희나 너희 후손 중에 시체로 인하여 부정케 되든지 먼 여행 중에 있든지 할지라도 다 여호와 앞에 마땅히 유월절을 지키되 11이월 십사일 해 질 때에 그것을 지켜서 어린 양에 무교병과 쓴 나물을 아울러 먹을 것이요 12아침까지 그것을 조금도 남겨 두지 말며 그 뼈를 하나도 꺾지 말아서 유월절 모든 율례대로 지킬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서는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 정말 피치 못할 사정으로 인하여 유월절의 절기를 제대로 지킬 수 없는 경우가 나오고 있습니다. 
그들은 "사람의 시체로 인하여 부정케 된" 자들이었습니다. 
자기 가족 중에 장례가 생겼다든지 혹은 우연히 죽은 사람의 시체에 접하게 됨으로써 부정함을 입게 된 사람들은 일정한 기간 동안 진 밖에 나가서 거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당연히 유월절 행사 같은 거룩한 예식에 참여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만약 오늘날의 믿음 약한 교인들에게 생긴 것이었다면 아마도 얼씨구 잘되었다고 좋아들 했을 것이 틀림없습니다. 
유월절 행사에 참여하지 않으면 남들처럼 유월절 예물(13절 하)을 드리지 않아도 될 것이었고 귀찮고 복잡한 의식을 따라 하룻밤을 지낼 필요도 없이 그저 편안히 발 뻗고 누워 쉬어도 될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문자 그대로 돈과 시간을 절약할 수 있는 무슨 특별면제처럼 여겨질 만한 경우였습니다. 
더더구나 그것이 자기 자신이 빠지려고 해서 빠지는 것도 아니고,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정결 규례를 따르려 하다 보니 피치 못할 사정으로 그렇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 이것은 어떤 구차한 핑계를 댈 필요조차 없이 지극히 당당하게, 아주 합법적으로 유월절 성수를 빼먹어도 될 만해 보이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시체로 인하여 부정케 되어서 유월절을 지킬 수 없는 사람들"은 어떤 자세를 보여 주었습니까?
놀랍게도 그들은 그것을 '귀찮은 절기 하나 쉬고 넘어가도 될' 좋은 변명거리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오히려 자기네들이 남달리 유월절을 지킬 수 없게 된 그 사실을 지극히 안타깝게 여기면서 모세에게 찾아와서 하소연을 했습니다. 
"우리가 이러이러한 사유로 유월절을 지킬 수 없는 형편에 처해졌는데 너무나 안타깝습니다. 어떻게 다른 길로라도 유월절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이 없겠습니까?"라고 특별청원을 했던 것이었습니다. 

그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는 과연 어떤 대답을 해 주셨습니까?
바로 10절 이하의 본문에서 "너희나 너희 후손 중에 시체로 인하여 부정케 되든지 먼 여행 중에 있든지 할지라도 다 여호와 앞에 마땅히 유월절을 지키되 이월 십사일 해 질 때에 그것을 지켜서... 유월절 모든 율례대로 지킬 것이니라"고 지시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기서 '시체로 부정케 된 경우'에다가 '먼 여행 중에 있는 경우'까지 하나 더 포함시켜서 그런 특별한 상황에 대처할 방법을 일러 주신 것입니다. 
  
우선 그런 불가피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도 "마땅히" 유월절을 지켜야 하며 또한 "모든 율례대로" 지켜야 한다고 선포하셨습니다. 
즉 어떤 '특별한 사정이나 경우'라는 것도 유월절을 지키지 않고 넘어가는 면제조건이 될 수는 없으며, 혹은 지키기는 지키되 몇 가지가 생략된 간소한 방법으로 해서도 아니 됨을 명백히 하신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그처럼 피치 못할 사정에 처한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과연 어떻게 유월절을 마땅히, 그리고 모든 율례대로 지킬 수 있다고 일러 주셨습니까?
그 대답이 바로 "이월 십사일"이었습니다. 
원래 정기에 지키는 유월절은 "일월 십사일"이었지만, 그날 부득이 못 지킨 사람들만은 한 달 후 그 날에 똑같은 방법과 원칙을 따라 유월절을 지키도록 명하셨던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시체 접근으로 인하여 부정을 타게 된 경우도 유월절 준수와 아무 마찰이 없게 되었고, 부재중이었던 사람들 역시 마땅히 지켜야 할 유월절을 늦게나마 지킬 수 있게 된 것이었습니다. 

이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유월절을 성수하는 것이란 그 어떤 경우에도 예외가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아니, 이스라엘 백성 스스로가 유월절을 지키지 않아도 되는 면제 대상에 들어가고 싶어 하지를 않았습니다. 
그들은 절기를 지키지 않고 넘어갈 변명거리를 굳이 만들어 내려고 하지 않았음은 물론, 피치 못할 사정이 생겼을 때에도 오히려 그것을 극복하고 유월절 지킬 방도를 찾아보려는 열성적인 자세까지 보여 주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도 유월절은 사람이 마땅히 지켜야 하는 것이며 또한 그것을 지키고자 노력하는 자에게는 그 길도 반드시 열려 있음을 명백히 보여 주셨던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정해 주신 절기를 지키기를 그렇게 어려워하고, 적당한 핑계거리만 있으면 그 날들을 어물쩍 넘기는 것을 지극히 당연한 것처럼 여기는 오늘날의 교인들이 정말 귀담아 들어야 할 말씀이 아니겠습니까? 
주일을 못 지킬 만한 이유라는 것이 여러분의 머릿속에 혹 떠오르면 그것을 그 주일을 지키지 못할 지극히 '당연한 이유'라고 생각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몸이 피곤해서'라는 이유가 주일을 지키지 못하는 아주 당연해 보이는 이유 중에서 상위 랭킹에 속하는 것이 오늘날 현대교회의 현실입니다. 
  
하지만 여러분 가운데 단 한 명이라도 피곤해서 그날 가게 문을 닫거나, 자식이 피곤하다고 해서 그날 학교를 결석해도 좋다고 허락해 준 경우가 단 한 번이라도 있었습니까?
'아파서'라는 이유는 적어도 예배당에 출석하여 주일을 지키지 못할 이유는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주일에도 인터넷 생중계를 통해서 얼마든지 예배를 드릴 수 있으며, 그것도 여의치 않을 경우에는 최소한 병상에서 혼자 찬송을 한 장 부르고 기도를 드리고 성경 한 장이라도 읽음으로써 마땅히 주일을 거룩하게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여행 중이라서'라는 이유는 적어도 본 교회의 예배당에서 주일을 지키지 못할 이유는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나라의 어느 도시, 어느 시골구석을 가도 여러분이 조금만 눈을 뜨고 살펴보면 그날 주일 아침에 찾아가서 예배드릴 수 있는 교회당을 하나도 찾지 못할 곳은 결코 없을 것입니다. 
'주일 아침에 출근해야 해서'라는 이유는 병원이나 경찰서 등 다른 사람의 안전과 생명을 위한 일에 근무하는 경우에는 피치 못할 형편이라 할 수 있겠지만, 이것 역시 주일 근무는 빠질 수 있는 더 좋은 길을 열어 주시기를 하나님께 계속 기도드리면서 스스로 노력해야 합니다. 
  
물론 그런 경우에도 근무가 낮에 끝나면 주일 밤 예배라도 꼭 참석해서 어찌하든지 주일을 거룩히 지키도록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우리가 지극히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이유들이란 조금만 생각해 보면 결코 '주일성수를 못할 당연한 이유'가 아닌 것이며, 뜻이 있는 성도에게는 하나님께서 얼마든지 그 길을 열어 두고 계시는 것입니다. 

또한 남들보다 한 달 늦게 유월절을 지켰던 이스라엘 백성들이라 할지라도 한 달 전에 지켰던 사람들과 똑같은 방식으로 유월절을 지켰고 똑같은 자세로 유월절 예물을 여호와께 드렸던 사실도 기억해야 합니다. 
정기적으로 돌아오는 세례식이 있는 주일이 아닌 주일에 어떤 성도에게 특별히 세례를 주게 된다고 해서 무슨 약식을 따라 시행하지는 않습니다. 
그런 성도가 그 특별 세례를 통해 받는 축복은 정기 세례식 때의 것과 조금도 다를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특별헌금을 드리는 절기의 경우에 그 절기 주일에 혹 불가피한 사정으로 본 교회에서 주일을 지키지 못했으면 다음 주일에라도 꼭 빠짐없이 드려야 함이 마땅합니다. 
'내가 빠진 주일이 마침 특별헌금 드리는 주일이구나. 정말 잘 됐다.'라는 따위의 유치한 생각은 여러분의 머릿속을 잠깐 스쳐 지나가서도 안 되는 것입니다. 
그 어떤 경우에도 절기와 성일은 꼭 지켜야 하는 것을 잊지 말고 또한 어쩔 수 없이 남들보다 늦게 지키는 경우에도 항상 원래의 '율례대로' 지키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 절기와 성일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내려 주시려고 제정해 놓으신 축복의 날입니다. 
따라서 참된 신자라면 이 날에서 빠져 나갈 구실을 찾으려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어떤 어려운 사정에도 불구하고 꼭 온전하게 지키고자 애를 쓰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렇지 못하고 절기와 성일을 지키는 것이 끝까지 힘겹고 부담스럽기만 하다면, 거기에는 정말 심각한, 아니 두려운 사실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바로 본문 13절과 14절에서 하나님께서 결론적으로 강조하시는 사실, "13그러나 사람이 정결도 하고 여행 중에도 있지 아니하면서 유월절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그 백성 중에서 끊쳐지리니 이런 사람은 그 정기에 여호와께 예물을 드리지 아니하였은즉 그 죄를 당할지며 14만일 타국인이 너희 중에 우거하여 여호와 앞에 유월절을 지키고자 하면 유월절 율례대로 그 규례를 따라서 행할지니 우거한 자에게나 본토인에게나 그 율례는 동일할 것이니라"는 말씀대로입니다. 

즉 이 절기를 지킬 줄 모르는 자는 결국 진정한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미국 사람이 '8.15 광복'을 모르는 것이야 당연하지만, 진짜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이 광복절의 감격을 어떻게 잊을 수 있겠습니까?
마찬가지로 유월절처럼 은혜로운 날을 진심으로 즐겁게 지킬 줄 모르는 마음의 소유자라면 그 육신은 이스라엘 백성일지 모르지만 영적으로는 오히려 유월절 지키는 타국인보다 훨씬 더 먼, 아니 관계가 전무한 사람이 될 뿐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제정해 놓으신 이 은혜로운 절기와 성일을 이 땅에서 진정으로 감사하며 기쁘게 지킬 줄 모른다면 그런 심령의 소유자가 결코 '천국의 시민'일 수가 없는 것입니다. 

2013년에도 우리에게는 '쉰두 번의 주일'이 주어졌습니다. 
부활절, 맥추절, 추수감사절, 성탄절 등의 '4대 절기' 역시 돌아올 것입니다. 
특히 올해는 '교회설립 40주년 기념일'이라는 정말 특별한 날까지 주어졌습니다. 
물론 이런 절기와 성일들을 지키는 것이 우리를 구원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런 거룩하고 특별한 날조차 지킬 줄 모르면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고 그의 백성이 될 수 있는 길은 결코 없는 것입니다. 
  
올 한 해 동안에도 모든 성일과 절기를 온 정성을 다해 온전히 지킴으로써 그 날들을 통해 주시는 큰 은혜들을 더욱 충만히 누리는 가운데 남은 모든 생애를 하나님의 백성 중에 거하며 살다가 장차 저 영광스러운 천국 시민의 반열에까지 함께 이르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석기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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