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신년] 당신은 행복이어야 합니다 (시 128:1-6)

첨부 1


당신은 행복이어야 합니다 (시 128:1-6)

: 1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길을 걷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 2 네가 네 손이 수고한 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 : 3 네 집 안방에 있는 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으며 네 식탁에 둘러 앉은 자식들은 어린 감람나무 같으리로다. : 4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이같이 복을 얻으리로다. : 5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네게 복을 주실지어다 너는 평생에 예루살렘의 번영을 보며, : 6 네 자식의 자식을 볼지어다 이스라엘에게 평강이 있을지로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기 원하시는 복을 온전히 누리는 2013년 한 해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을 주시고 우리를 지키시기를 원하십니다(민 6:24). 하나님은 그의 얼굴을 우리에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십니다(민 6:25). 하나님은 그 얼굴을 우리에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십니다(민 6:26). 하나님께서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소원이 우리에게 이루어져 지켜주심을 받고, 은혜 베푸심을 받고, 평강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지키심을 받고, 은혜 베푸심을 받고, 평강을 누리시는 것을 한 마디로 ‘행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013년은 모두 이렇게 행복한 해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해야 우리가 행복해 지는 것입니까? 우리가 어떻게 해야 모든 사람이 행복해 질 수 있습니까? 무엇이 행복입니까?  

I. 행복?  

“행복이 무엇인지 / 알 수는 없잖아요 / 당신 없는 행복이란 / 있을 수 없잖아요 / 이 생명 다 바쳐서 / 당신을 사랑하리 / 이 목숨 다 바쳐서 / 영원히 사랑하리 …”

“행복이 무엇인지 / 알 수는 없잖아요 / 주님 없는 행복이란 / 있을 수 없잖아요 / 이 생명 다 바쳐서 / 주님을 사랑하리 / 이 목숨 다 바쳐서 / 영원히 사랑하리 …”

이준례가 작사․작곡하고, 조경수가 노래한 ‘행복이란?’이라는 가요입니다. ‘당신’을 ‘주님’으로 바꾸어 부르면 훌륭한 복음송가일 수 있습니다. 당신과 함께 있는 것이 행복이라고 노래하듯이, 주님과 함께 있는 것이 성도의 행복입니다.   

오늘 말씀은 무엇이 행복이라고 말씀하십니까?
1절 말씀입니다.

: 1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길을 걷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이 말씀은 ‘주님을 경외하며, 주님의 명에 따라 사는 사람은, 그 어느 누구나 복을 받는다.’[새번역]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복[rv,a/에쉐르]이라는 말이 바로 ‘행복’이라는 말입니다. 히브리 시의 특징을 살리자면 ‘복되어라, 야훼를 경외하며 그의 길을 걷는 자.’[공동]라고 할 수 있습니다. 히브리 시에서는 ‘복’이라는 말이 제일 먼저 나옵니다. 이 말은 감탄사로서 ‘얼마나 행복한지!’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은 ‘행복하여라! 주님을 경외하며, 주님의 명에 따라 사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 행복한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 모두 행복한 사람이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영국의 심리학자인 로스웰과 코언이 행복지수를 계산하는 공식을 만들었습니다. 그들은 행복지수를 계산하는 공식을 찾아내기 위하여 18년 동안 1000명의 남녀에게 80가지의 상황을 주고, 자신을 행복하게 만드는 5가지 상황을 고르는 실험을 했습니다. 

그 결과, 행복은 개인적 특성(P)과 생존조건(E), 고차원 상태(H)라는 3가지 요소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을 알아냈습니다. 여기에서 개인적 특성은 인생관, 적응력, 유연성 등을 가리킵니다. 생존조건은 건강, 돈, 인간관계 등을 가리킵니다. 고차원 상태는 야망, 성공, 기대, 자존심 등 사회적인 욕구를 의미합니다. 이 세 가지 요소 중에서도 생존조건(E)이 개인적 특성(P)보다 다섯 배 더 중요하다고 계산하였습니다. 건강, 돈, 인간관계와 같은 것이 인생관, 적응력과 같은 것 보다 훨씬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고차원 상태(H)는 개인적 특성보다 세 배나 더 중요한 것으로 계산하였습니다. 즉 야망, 성공, 기대, 자존심이 인생관, 적응력과 같은 것 보다 역시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행복을 위해서는 생존의 조건인 건강과 돈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결코 행복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무엇인가 희망을 품고 도전 할 수 있을 때 행복합니다. 아무런 낙이 없다는 것은 절망이자 불행입니다. 인간의 삶에서 희망을 가진다는 것은 그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그리고 서로 사랑받고 존경하는 것은 행복의 매우 중요한 요소입니다. 

일반적으로 행복이란 ‘욕구가 만족되어, 부족함이나 불안감을 느끼지 않고 안심해 하는 심리적인 상태’를 가리킵니다. 그런데 사람마다 그 심리적인 상태가 다릅니다. 그래서 행복이 무엇이라고 쉽게 이야기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오늘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우리의 행복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무엇으로 행복하기를 원하십니까?   

오늘 말씀은 어떤 사람을 행복한 사람이라고 하십니까?
4절 말씀입니다.

: 4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이같이 복을 얻으리로다. 

여기에서 관심을 가지려는 말은 ‘복을 얻으리로다’는 말씀입니다. 여기에서 복은 1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복, ‘행복하여라’는 말과는 전혀 다른 단어입니다. 이 말은 5절에서도 반복되고 있습니다.

: 5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네게 복을 주실지어다 너는 평생에 예루살렘의 번영을 보며, 

여기에서 복은 구약성경에서 가장 일반적이고, 가장 많이 사용되는 ‘복[&r'B/바라크]’입니다. 그 뜻은 ‘무릎 꿇다’입니다. 하나님께 대하여 높여 그 앞에서 무릎을 꿇는 것입니다. 사람에 대하여 그를 축하하기 위하여 그 앞에서 무릎을 꿇은 것입니다. 약간 무릎을 굽히면서 인사하는 것이 여기에서 유래하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식으로 머리를 굽혀 인사하는 것도 상대방을 높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복을 주신다는 말은 하나님께서 높여주신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높여 주시는 사람이 바로 복 받은 사람입니다. 


2. 높여주시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높여주시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다른 사람에게서 사랑받고 존경받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입니다. 사람들이 그토록 높은 자리에 오르려고 하는 이유는 다른 사람이 자신을 알아주기를 원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돈을 모으고 권력을 추구하는 것도 다른 사람에게 존경받기를 원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돈을 벌고 권력을 가졌는데도 사람들이 알아주거나 존경하기는커녕 비웃고 조롱한다면 그 사람은 결코 행복하지 않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까치발을 들고서라도, 때로는 다른 사람을 짓눌러서라도 더 높아지려고 하는 것은 그래야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스스로 높이는 것으로 행복하여 질 수는 없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높여 주어야 행복합니다. 더욱이 하나님께서 높여 주셔야 참으로 행복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높여 주셔서 행복한 한 해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사람을 높여 주십니까? 하나님은 어떤 사람을 높여 주셔서 행복하게 하십니까?
1절 말씀입니다.

: 1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길을 걷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사람을 행복하게 하십니다. 또 어떤 사람을 행복하게 하십니까?

4절 말씀입니다.

: 4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이같이 복을 얻으리로다. 

여기에서 다시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을 이와 같이 높여 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1절과 4절에 공통적으로 나오는 말은 ‘경외하다’는 말씀입니다. ‘경외하다[arey:/야레]’는 말은 기본적으로 ‘두려워하는’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하나님이 무서워서 벌벌 떠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사랑하여 그 앞에서 몸 둘 바를 모르는 것입니다. 단지 무서워하기만 하는 것만이 아닙니다. 높이고 존경하기에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3. 경외하는 사람의 행복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높이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높이는 그 사람을 하나님께서 높여주십니다. 자신을 높이려는 사람은 오히려 낮추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겸손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하려면 우리는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묵상하여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인정하고 높여 찬양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대하게 하십니다.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내 영혼이 찬양하네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내 영혼이 찬양하네”(79장 후렴)

우리는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세계를 마음속에 그리어 보며 그 위대하심을 찬양하여야 합니다. 하늘의 별과 울려 퍼지는 뇌성을 보며 주님의 권능이 우주에 찼음을 인정하여야 합니다. 숲 속에서 지저귀는 새소리들을 듣고, 고요하게 흐르는 시냇물을 보면서 주님의 솜씨를 노래하여야 합니다. 그 무엇보다도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아낌없이 우리를 위해 보내주시고,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게 하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를 구속하심을 찬양하여야 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예수님께서 세상에 다시 오실 때 저 천국으로 인도하여 주실 것을 믿고 겸손히 엎드려 경배하여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인정하고 드러내는 것입니다.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내 영혼이 찬양하네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내 영혼이 찬양하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행복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행복하도록 그들을 높여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하나님을 경외하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높이는 사람을 높여주십니다. 하나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묵상하고 인정하고 찬양하시기 바랍니다. 그런 사람을 하나님께서 높여 주시고 위대하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높여 주심을 경험하시는 행복한 사람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께서 높여 주시는 사람이 누리는 행복은 무엇입니까?
  

II. 행복! 

오늘 말씀은 하나님께서 높여주심으로 행복한 사람의 구체적인 모습들을 열거하고 있습니다.
2절 말씀입니다.

: 2 네가 네 손이 수고한 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 

제일 먼저 이야기하는 행복은 자신의 손으로 일하여 일한 만큼 먹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적게 일하고 많이 받는 것이 행복이라고 생각하는 세상에서 별로 복인 것 같아 보이지 않습니다. 놀고먹는 것이 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수고하고 그것을 먹는다는 것은 행복이 아닌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 말씀은 분명히 수고한 대로 먹는 것이 행복이라고 말씀하십니다.

1. 수고를 누리는 행복이 있습니다.

저는 어렸을 때 ‘불한당’이 세상에서 가장 나쁜 사람인 줄 알았습니다. 아버님께서 ‘저 불한당 같은 놈들이’라고 하시는 것을 자주 들었기 때문입니다. 무엇인지는 몰랐지만 불한당이 세상에 가장 나쁜 사람들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불한당(不汗黨)은 아니 불(不) 자에, 땀 한(汗) 자, 한증막(汗蒸幕) 할 때 한 자를 써서, 제 땀 흘려 일하지 않고 다른 사람이 땀 흘려 모은 것을 마구 빼앗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것이었습니다.

적게 수고하고 많이 거두는 것이 경제 원칙이지만, 수고하지 않고 거두려는 것은 도둑놈의 심보입니다. 그 반대로 수고하고 애쓴 사람이 정당한 대가를 받지 못한다면 이것은 강도를 당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수고한 대로 먹는 것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이것은 개인적으로 노력한 만큼 성과를 거두는 것이고, 사회적으로는 분배의 정의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노동의 복을 누려야 합니다.

한 사람이 이발을 하기 위해 이발소를 찾았습니다. 그런데 문 앞에 “오늘은 현금, 내일은 공짜”란 팻말이 있었습니다. 

공짜로 이발을 하고 싶었던 그는 하루를 기다리기로 작정했습니다. 다음날, 그는 일찌감치 이발소를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역시 그 팻말이 그대로 걸려 있었습니다. “오늘은 현금, 내일은 공짜” 그래서 또 그 다음날에 가기로 했습니다. 다음날도 여전히 같은 팻말이 있었습니다. 

공짜를 좋아했던 그 사람은 “또 내일이란 말이지”라며 투덜거렸다고 합니다. 한마디로 공짜는 없다는 것입니다.

공짜는 없습니다. 헛수고도 없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의 일터와 사업을 축복합니다. 일터를 원하는 사람에게 일자리가 열려지기를 축복합니다. 수고할 수 있고, 수고가 지켜지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십시오. 여러분의 수고와 노력을 하나님께서 지켜주셔서 누리게 하시는 이 한 해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에게 주시는 행복은 또 무엇입니까?
3절 말씀입니다.

: 3 네 집 안방에 있는 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으며 네 식탁에 둘러앉은 자식들은 어린 감람나무 같으리로다. 

이 말씀은 한마디로 가족의 행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내를‘열매를 많이 맺는 포도나무’로 비유하고 있는 것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포도나무는 소나무나 참나무처럼 스스로 설 수 없습니다. 포도나무는 기둥은커녕 서까래로도 쓸 수 없습니다. 무엇인가로 받쳐주어야 합니다. 더욱이 열매를 많이 맺은 포도나무라면 튼튼한 버팀목이 있어야 합니다. 아내에게는 남편이 있어서 의지가 되고, 남편에게는 아내가 있어서 안정감을 누리는 것이 행복입니다. 가족은 ‘웬수’가 아니라, 서로를 세워주는 ‘버팀목’이 되어야 합니다. 

식탁에 둘러앉은 자녀들이 ‘어린 감람나무’와 같다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감람나무 즉 올리브나무는 햇순에서 열매를 맺습니다. 여리고 보잘 것 없지만 바로 거기에서 귀한 열매를 맺습니다. 특히 올리브 나무의 생명력은 대단합니다. 물이 없는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자녀들이 험한 세상에서도 잘 자라는 것을 보는 것이 부모의 행복이 아니겠습니까!


2. 가족이 어우러지는 행복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높이고 예배하는 사람의 가정을 하나님께서 높여 주시고 어우러지게 하십니다. 이 해에 가족을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남편과 아내가 어우러지고, 부모와 자식이 어우러지고, 형제와 자매가 어우러지는 행복을 하나님이 주시기 바랍니다.

가족이 없는 분들은 가족을 만드십시오. 결혼 적령기에 있는 자녀들이 시집가고 장가가 가정을 이루기 바랍니다. 육적인 가족을 만들지 못할 분들은 영적인 가족을 만드십시오. 우리는 모두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들입니다. 교회 안에서 영적인 가족임을 더욱 확실하게 확인하는 한 해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속회와 각 선교회를 통하여 영적 가족을 느끼고 누리시기를 축복합니다.

딸만 6명인 어느 행복한 가정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엄마가 친구로부터 예쁜 인형을 하나 선물 받았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아이는 6명이고 인형은 하나라서 누구에게 주어야 할지 난감했습니다. 엄마는 고민 끝에 말했습니다. 

“오늘 제일 말을 잘 듣는 사람에게 이 인형을 줄께.” 

그 말이 끝나자마자 여섯 딸이 하나같이 소리쳤습니다. 

“에이! 그러면 아빠 거잖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삶은 ‘들어주기를 힘쓰는 삶’이라고 누군가 말하였습니다. 가족은 서로에게서 손해 보는 일도 없고, 이익을 남기는 일도 없습니다. 가족은 다만 가족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높이고 하나님이 높여주시는 사람들인 우리 교회가 또 하나의 가정이기를 소원합니다. 또한 여러분의 가정 가정마다 행복하시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에게 주시는 행복은 또 무엇입니까?
5절 말씀입니다.

: 5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네게 복을 주실지어다 너는 평생에 예루살렘의 번영을 보며,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시온에서 너에게 복을, 높여주시는 복을 내리시기를 축복하고 있습니다. 또한 평생 모든 나날을 예루살렘의 번영을 바라다보기를 축복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시온과 예루살렘은 다윗의 도성이자 성전이 있는 곳입니다. 저는 이것은 노동의 복과 가정의 복에 이어지는 신앙의 복 또는 교회의 복이라고 해석합니다. 노동의 복과 가정의 복은 세상의 모든 사람들도 추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의 복, 신앙의 복은 영적인 복입니다. 진정으로 인간이 행복하기 위해서는 등 따습고 배부른 것 그 이상이어야 합니다. 가족의 친밀감을 느끼는 것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역시 그 이상이어야 합니다. 바로 영적인 충족감이 있어야 합니다.


3. 신앙이 성장하는 행복이 있습니다.

여러분의 신앙이 성장해 가는 행복이 있기를 축복합니다. 신앙은 우리에게 자신이 살아야 할 이유를 가르쳐 줍니다. 수고하고 애쓰는 것이 단지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한 것이라면 쉽게 피곤하고 지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사명감과 소명감이 없다면 이 세상의 모든 것은 헛되고 헛된 것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배의 성공자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높이는 예배를 통하여 존귀한 자신을 확인하고 행복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런 행복한 사람들을 세워가는 교회는 행복한 교회입니다. 우리 교회가 사람들을 행복하게 도와주는 행복한 교회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세상에서 상처 받은 모든 것이 회복되는 영적 가족이 바로 우리 교회임을 확신합니다.

영적 성장에 진보를 이루는 한 해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에게 주시는 행복은 또 무엇입니까?
6절 말씀입니다.

: 6 네 자식의 자식을 볼지어다 이스라엘에게 평강이 있을지로다.

‘아들딸 손자손녀 보면서 오래오래 사는 것’은 가정의 복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역사를 이어가는 것입니다. 자식이 자식을 낳고 그 자식이 또 자식을 낳는 것은 한 개인의 일이 아닙니다. 사회와 국가가 평화를 이루고 존속하는 것입니다. 국가가 존속되지 않으면 개인의 삶도 피폐해 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은 ‘이스라엘에 평화 있으라!’고 축복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대한민국에 평화가 있으라!’고 축복해야 합니다.


4. 국가가 평화로운 행복이 있습니다.

우리는 다시 한 번 새로운 대한민국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고 대통령 당선인의 공약대로 국민 통합을 이우기를 소망합니다. 올해는 남북한의 관계가 개선되고 평화통일을 위한 걸음이 다시 시작되어야 합니다. 지역의 화합뿐만 아니라 이번 선거를 통하여 드러난 세대 간의 갈등도 완화되어야 할 것입니다. 젊은 세대가 자신의 장래와 사회의 미래에 대하여 희망을 가질 수 있게 되어야 합니다. 대한민국은 공동운명체입니다. 그래서 이 나라가 행복하기를 기도합니다. 이 행복을 지키기 위해서 이 한반도가 평화의 땅이 되어야 합니다. 이 백성이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하나님께서 보호하셔서 ‘우리나라 만세!’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헬렌 켈러는 “하나의 행복의 문이 닫히면 다른 문이 열린다. 그러나 가끔 우리는 그 닫힌 문만 너무 오래 보기 때문에 우리를 위해 열려있는 다른 문을 보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2012년을 접어주셨습니다. 그리고 2013년 펼쳐주셨습니다. 우리는 새해를 맞았습니다. 새로 열린 문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 문은 행복의 문입니다. 당신은 ‘행복한 사람’이어야 합니다. 아니 당신은 ‘행복’이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 ‘너는 복이 될지라.’(창12:2b)고 하셨습니다. 그를 복 그자체로 부르셨습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을, 이 사회를 행복하게 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당신을 하나님이 높여주실 것을, 행복하게 하실 것을 확신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