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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깨어 있으라! (마 24:3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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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 있으라! (마 24:37-51) 
 
  
37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38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고 있으면서 
39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40 그 때에 두 사람이 밭에 있으매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41 두 여자가 맷돌질을 하고 있으매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 
   
42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43 너희도 아는 바니 만일 집 주인이 도둑이 어느 시각에 올 줄을 알았더라면 깨어 있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44 이러므로 너희도 준비하고 있으라 생각하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45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줄 자가 누구냐 
46 주인이 올 때에 그 종이 이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이 복이 있으리로다 
  
47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그의 모든 소유를 그에게 맡기리라 
48 만일 그 악한 종이 마음에 생각하기를 주인이 더디 오리라 하여 
49 동료들을 때리며 술친구들과 더불어 먹고 마시게 되면 
50 생각하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각에 그 종의 주인이 이르러 
51 엄히 때리고 외식하는 자가 받는 벌에 처하리니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하나님께서 새 해를 주신 의도 가운데 하나는, 우리가 분명히 무엇인가 새로운 각오, 새로운 결심을 하고, 그래서 내 인생이 진보하고 신앙이 성장하라고 주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새 해를 맞이하여 그리스도인들이 해야 할 각오와 결심은, 이제껏 없었던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라, 기본적인 신앙생활부터 바로 해보자는 것이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무엇이든 기본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건축에서 기초가 없이 어떻게 건물이 세워지겠으며, 학문에서 기초가 없이 어찌 더 지식의 진보를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기본은 힘이 세다고 했습니다. 지난 주일에는 새 해에 우리 송정 중앙 교회 성도들이, 더욱 힘 있는 신앙생활을 하기 위해, 몇 가지 꼭 갖추어야 할 성도의 기본생활에 대해 말씀을 드렸습니다.

1)성수주일입니다.

신앙생활의 가장 기본적인 단계, 유치원 단계, ㄱ.ㄴ 단계는, 주일을 지키는 데서부터 시작된다고 했습니다. 눅 14:28-30절에 “너희 중에 누가 망대를 세우고자 할진대, 자기의 가진 것이 준공하기까지에 족할는지, 먼저 앉아 그 비용을 예산하지 아니하겠느냐? 그렇게 아니하여 그 기초만 쌓고 능히 이루지 못하면, 보는 자가 다 비웃어 가로되, 이 사람이 공사를 시작하고 능히 이루지 못하였다 하리라.”고 했습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집을 짓는다고 하면서, 일 년, 아니 3년 5년이 가도 기초도 제대로 쌓지 못하고 있다면, 모든 사람이 다 비웃지 않겠습니까? 

2)온전한 십일조 생활입니다.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는 말하기를 “인간에게는 두 가지의 회심이 있어야 한다. 첫째는 심령의 회심이고, 둘째는 그의 돈지갑의 회심이다.”고 했으며, 웨슬레는 “한 인간 중 회심해야 할 마지막 부분은 그의 돈지갑이다.”고 하였습니다. 미국의 달라스 제일침례교회의 크리스웰 목사님은 말하기를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지 아니하면, 하나님께서 십일조를 거두어 가실 때, 그 돈이 소리를 지르면서 나에게 고통을 주고 도망간다.”고 경고하였습니다. 새 해에는 모두 온전한 십일조 생활을 하여서, 병원에다 돈 갖다 주지 않는 평강의 복을 받으시고, 터진 웅덩이 파지 마시고, 하는 일마다 번성하고 창대케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3)전도생활입니다.

어떤 날 인도의 스테판 닐 주교가, 성공회의 캔터베리 대주교에게 서류를 내밀며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대주교는 서류를 옆으로 밀어 놓으며 이렇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최근에 마지막으로 누구를 그리스도에게 인도했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이 다른 사람에게 전도한 적이 언제입니까? 10년 전입니까? 5년 전입니까? 3년 전 입니까? 작년에 한 영혼이라도 주님께 인도한 적이 있습니까? 금년에는 내가 한 달에 한 명, 혹은 일 년에 5명 또는 3명을 반드시 전도해야 하겠다는 결심을 하시고, 열심 있는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4)선교사가 되는 것입니다.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이 주님의 명령은 어떤 그리스도인도 거역하거나, 외면할 수 없는 명령입니다. 그래서 모든 그리스도인은 가든지 보내든지 선교사가 되어야 합니다. 몇 천원 부스러기 돈으로 형식적인 선교헌금을 하는 것이 아니라, 구령의 열정에 불타는 마음을 담아서, 힘껏 선교헌금에 동참하여, 보내는 선교사들이 되시고, 큰 상급과 축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5)성경애독 생활입니다.

육신의 양식은 하루 세끼 잘도 챙겨 먹는데, 영혼의 양식인 성경 말씀은 일주일 내내 한 장도 읽지 않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육신의 건강의 척도는 식욕이고, 영혼의 건강의 척도는 하나님의 말씀 식욕입니다. “성경책이 더러우면 마음이 깨끗하고, 성경책이 깨끗하면 마음이 더럽다”는 말도 있습니다. 작년에 우리 교회 김현준 장로님은 하루 종일 서서 힘들게 일하고, 밤늦도록 성경을 읽어서 1년 동안 12독을 했다고 했지요. 우리 모두 큰 도전을 받아서, 새 해에는 모든 성도들이 반드시 최소한 성경을 1독 이상하시기 바랍니다. 

6)기도생활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영혼의 양식이라면, 기도는 영혼의 호흡과도 같습니다. 호흡의 원리는 간단합니다. 호흡을 통하여 탄산가스를 배출하고, 산소를 들이마시는 것입니다. 기도생활을 통하여 죄를 토해내고, 성령의 능력을 공급받아야, 능력 있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기도생활을 통해 응답을 받고, 응답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감사드리는 생활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7)가정예배 생활입니다. 

일본의 ‘내촌감삼’은 행복한 가정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남편이 있고, 아내가 있고, 그리고 그 사이에 한 자녀가 있어, 가을 밤 고요해질 때, 그들 세 사람이 등불을 둘러앉아 머리 숙여 하나님께 기도한다. 이것이야말로 행복한 가정이다.”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많은 가정들이 무참히 붕괴되는 이 시대에, 가정 예배를 통해서 여러분의 가정이 견고해지고, 임마누엘의 은혜를 체험하고, 기도의 응답을 받고, 감사가 넘치고, 화목하고 성결한 가정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올해 다섯 살 된 제 손자가 젓가락질을 하는 것을 본 아내가 “와 우리 주경이 젓가락질도 잘하네.”하고 놀라니까, 녀석이 하는 말이 “이 정도는 기본이지요!”라고 해서 한바탕 웃었다고 했습니다. 제 손자의 말을 인용해서 여러분에게 물어볼 때 대답해보시기 바랍니다. 성수주일 하십니까? 온전한 십일조생활을 하십니까? 일 년에 한 명이라도 전도하십니까? 선교헌금에 힘껏 동참하고 계십니까? 성경애독생활을 하십니까? 기도생활을 하십니까? 가정예배를 드리십니까? 무엇이든지 기본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기본이 가장 힘이 세다고 했습니다. 2013년 새 해에는 우리 송정 중앙 교회 성도들이, 꼭 이 같은 기본적인 신앙생활을 실천해서, 신앙의 큰 진보와, 영육간에 큰 축복을 받게 되기를, 다시 한 번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마 24장은 구약의 다니엘서와, 그리고 신약의 요한 계시록과 함께, 종말에 대한 아주 귀중한 교훈을 우리에게 가르쳐 줍니다. 기독교의 역사관은 직선사관이라고 했습니다. 직선사관이란 한 해의 시작이 있는가 하면, 또 한 해의 끝이 있듯이, 역사는 시작이 있는가 하면, 반드시 끝이 있고 종말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기독교에서의 종말이란,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 때부터 재림 때까지를 말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탄생하신지 2천년이 넘었고, 그래서 지금은 말세지말 이라고 하는데, 곧 말세 중에서도 끝자락에 와 있다는 뜻이라고 했습니다. 이 시대가 말세라는 말은 기독교에서만이 아니라, 불신 세상 사람들까지도 이 시대를 가리켜 ‘말세다 말세!’라는 말들을 많이 한다고 했지요?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예고하신 말세의 현상과 징조들은 어떠한 것들일까요? 

1)거짓 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들이 많이 출현할 것이다. 2)민족과 민족이,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는 전쟁이 일어날 것이다. 3)처처에 기근과 지진이 있을 것이다. 4)불법이 성하므로 사랑이 식어질 것이다. 5)복음이 온 세계적으로 전파될 것이다. 6)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설 것이다. 7)많은 사람이 빨리 왕래하며 지식이 더 할 것이다 고 했습니다. 성경은 이러한 말세의 징조가 모두 성취되면, 예수님의 재림이 있을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재림과 함께 세상 역사는 끝이 오는데, 이것을 가리켜 대종말이라고 합니다. 

이 같은 대종말에 대하여 신학적으로는 다음과 같이 정의합니다. <종말이란 역사가 정점에 이르러 죄와 악이 청소되고, 만물이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고, 하나님의 모든 구원 사역과 창조 성업이 완성 종결됨으로서, 생의 질이 전혀 다른 새 시대가 와서, 인간은 하나님의 불사의 생명에의 참여로, 피조성의 혼란과 한계를 벗고, 다른 피조물의 세계에도 죄와 적대감의 제거로, 영원한 평화와 안식이 임함으로, 하나님께서 영광을 보시는 날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얼마나 소망스럽고 대망이 되는 날입니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한 마디로 이 같은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스런 재림을 믿고, 그 날을 대망하며 사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재림의 시기에 대하여 성경은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필연적으로 대두되는 문제가, 주님의 재림을 맞이할 만반의 준비가 필요하다는 것이고, 그 준비는 곧 깨어 있으라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세지말에 사람들이 어떻게 살 것인가를 주님께서는 미리 예견하셨습니다. “홍수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노아 당시의 사람들은 대홍수 심판이 임박한 순간까지, 세상 것에만 취해 있었던 것처럼,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 역시 사람들은 그러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물론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는 것은, 인간 생활에 반드시 필요한 일들입니다. 따라서 그 자체가 잘못되었다고는 볼 수 없습니다. 

문제는 사람들이 이러한 문제 외에, 다른 일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는 데 있습니다. 즉 노아 당시의 사람들은 심판이 있으리라는 경고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는 등, 식욕과 성욕과 같은 인간의 본능적인 욕망을 충족시키는 행위에만 관심이 있었으며, 하나님과 영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동물처럼 땅의 것에만 관심을 쏟다가, 하나님의 심판에 의해 모두 멸망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이 세상은 어떠합니까? 어느 일간지에 어떤 작가가 “생각 없이 사는 사람들”이라는 제하에, 이러한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눈을 떠보면 매일 생겨나는 것은 레스토랑과, 골프장, 러브호텔 뿐, 그리고 들려오는 소리는 오직 돈과 섹스에 관한 이야기들뿐, 참으로 그들은 무엇을 생각하며 살아가는 것일까?” 이것이 오늘 이 세상의 현실입니다. 주님은 분명히 세상 종말이 있을 것을 말씀하셨고, 그 징조들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는데, 사람들은 그 일에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고, 노아 시대의 사람들과 같이, 오직 세속적인 욕구를 채우는 일에만 몰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자들에게는 소망이 없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심판 날이 순식간에 임할 때, 다 멸망하여 영원한 지옥에 떨어지고 말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 세상의 형편이, 노아 때와 같을 것이라는 말씀은, 홍수 심판 당시, 노아의 여덟 식구와, 세상 모든 인류의 분리가 있었듯이, 마지막 날에 최종적인 분리가 있을 것이라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그 때에 두 사람이 밭에 있으매,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두 여자가 맷돌질을 하고 있으매,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에는, 농부가 알곡과 가라지를 분리하듯, 그리고 어부가 그물에 있는 고기를 좋은 고기와 쓸모없는 고기로 분리하듯, 구원받는 사람과 버림받을 사람으로 영원히 분리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이 영원한 분리에 의한 양극화 현상은, 지금 세상에서의 양극화와는 상상을 초월한 엄청난 것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영원한 멸망에 떨진 이들은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경고를 받은 우리들은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너희도 아는 바니 만일 집 주인이 도둑이 어느 시각에 올 줄을 알았더라면, 깨어 있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그러므로 너희도 준비하고 있으라. 생각하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괴도 루팡 같은 도둑이 아니고서야, 예고하고 찾아오는 도적은 없습니다. 도둑은 항상 갑작스런 순간에 오듯이,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역시, 그 어느 누구도 알지 못한 순간에 돌연히 임하실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과 병행구절인 마가복음에 보면, 깨어 있으라는 말이 세 번이나 나옵니다. “그가 홀연히 와서 너희의 자는 것을 보지 않도록 하라. 깨어 있으라. 내가 너희에게 하는 말이 모든 사람에게 하는 말이니라.” 성경은 성도가 세상의 향락과 유혹의 사조에 빠진 생활을 잠자는 것으로 묘사합니다. 눅 21:34-36에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 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 이 날은 온 지구상에 거하는 모든 사람에게 임하리라.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고 했습니다. 성도가 영적으로 각성하여 깨어 살지 않으면 어떻게 됩니까?

<오래 전 옛날이야기 입니다. 어떤 동리에 한 바보가 있었습니다. 겉으로 보면 멀쩡한데 무슨 일을 계획하거나 돈을 회계할 때에는, 틀림없는 바보였습니다. 어느 해 여름에 갑자기 참외 장사를 해보겠노라고 아내에게 졸라댔습니다. 아내는 성화를 견디지 못해서, 아끼고 아끼던 무명 한 필을 농 안에서 끄집어내어 주었습니다. 

그것을 둘러매고 아침 일찍 장으로 가서, 그날 시세에 비해 훨씬 싼 값인 엽전 석 냥에 팔았습니다. 농촌에 사는 가난한 사람으로 한꺼번에 돈 성냥을 받아들고 보니, 너무도 기뻐서 입이 쫙 벌어졌습니다. 싱글벙글하면서 참외 파는 데를 찾아갔습니다. 참외를 파는 장사꾼이 한 개를 썩 베어서, 사러오는 사람들에게 한 조각씩 맛을 보라고 주었습니다. 한 조각 받아서 입에 넣어보니, 아 어찌나 달고 맛이 있는지, 과연 속된 말로 둘이 먹다가 하나가 죽어도 모를 지경이었습니다.

그래서 참외 장사가 달라는 대로, 한 개에 서푼씩 주고 백 개를 샀습니다. 자루에 넣고 멜빵을 해서 등에 걸머지고, 이 십리 가량 되는 참외가 좀 덜 나는 장거리를 찾아가기로 했습니다. 한참 가다보니 여름날 해가 높이 떠올라, 찌는 듯이 무더웠습니다. 백 개를 넣은 참외 자루를 지고 가다보니, 배도 고파오고, 땀이 비 오듯 했습니다. 그래서 길가에 있는 큰 나무 밑에 앉아서, 짐을 옆에 놓고 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참외 한 개를 끄집어내어 먹어보니, 어찌나 달고 맛이 있는지, 한 개만 먹고는 견딜 수가 없어 또 한 개, 두 개 먹으면서 독장수셈을 했습니다. 

참외가 많이 나는 지방에서 한 개에 서푼씩 주고 샀으니, 참외가 적게 나오는 지방에 가면 적어도 여섯 푼은 받을 거야. 그러면 5 6은 삼십이니, 60개만 팔면 본전이 된다. 첫 장사이니 본전이나 할 셈치고, 참외나 실컷 먹어 두자 하면서 또 몇 개를 먹었습니다. 남은 참외를 지고 가다가 또 쉬면서 먹고, 목적지까지 가는 동안에 그만 40여개나 먹어버렸습니다. 그리고 본전 할 60개만 지고 가니, 짐도 가볍고 배도 부르고, 그래서 다시 생각해 보니 자기가 퍽 지혜 있는 사람 같은 생각이 들어서 마음이 흐뭇했습니다. 시장을 거의 다 가서 좋은 나무 밑 그늘에서 한 번 더 쉬었습니다. 

쉬는 동안에 그만 깜빡 잠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나쁜 사람이 지나가다가 낮잠 자는 것을 보고, 그 참외 자루를 송두리 채 가지고 가버렸습니다. 한참 자다가 깨어 보니, 옆에 놓았던 참외 자루가 간 곳이 없었습니다. 이리저리 둘러보다가 두 손으로 허벅다리를 치면서 바보가 하는 말이 “야 이 도적놈아, 네가 참외 자루를 가져가기는 했다마는, 너는 헛수고 했느니라. 왜냐하면 利난 것은 내가 벌써 다 먹어 두었거든”이라고 했습니다. 본전이 모두 없어진 것은 생각지 아니하고, 利난 것은 자기가 벌써 먹어 두었다는 것이, 어리석은 사람의 계산 방법이었습니다.>

이 세상은 분명히 매력이 있고, 죄악에는 참외처럼 얼마간의 달콤함이 있는 게 사실입니다. 그러나 거기에 빠져 취생몽사하다가 보면, 여러분의 귀중한 영혼을 마귀가 훔쳐가 버리고 맙니다. 그래도 세상에서 얼마간의 재미를 맛보았으니, 본전과 같은 영혼을 잃어 버려도 상관이 없는 것입니까? 세상에서 얼마간의 쾌락을 맛보았으니, 영원한 지옥형벌의 고통으로 떨어져도 괜찮은 것입니까? 

노아와 롯의 시대 사람들이 심판을 받은 것은, 그들이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들고, 사고팔고 하는 일상생활을 해서가 아니라, 그것 이상은 아무것도 없고, 영적 각성 없이 타락한 문화에만 취생몽사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결코 이 세상에 취하여 살면 아니 됩니다. 그리스도인은 삶의 목적과 삶의 포커스를 분명히 하고 살아야 합니다. 

계 16:15에 “보라 내가 도적 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가 복이 있도다.”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믿음을 저버린 자는, 주님의 재림 시 벌거벗은 자로 발견되는 것 같은 수치를 당하게 될 것입니다. 또한 약 4:4에는 “간음한 여인들아,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과 원수 됨을 알지 못하느냐.”고 했습니다. 만일 남편 몰래 다른 남자와 간음을 하다 현장에서 발각된 아내가 있다면, 무슨 낯으로 남편을 대하겠습니까? 아내 몰래 다른 여자와 간음을 하다가 발각된 남편이 있다면, 무슨 낯으로 아내를 대하겠습니까? 세상을 사랑하여 세상과 짝하고, 세상과 벗이 된 그리스도인은, 주님의 재림 시에 간음하다 발각된 아내보다 더한 수치를 당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이 세상 사람들의 삶의 방식대로 살 것이 아니라, 깨어 의를 행하고 죄를 짓지 말아야 합니다. 

옛날 평북 선천 모 교회에 이 장로라는 분이 있었습니다. 그는 처음에는 가세가 극빈하였으나, 가난과 싸워가며 독실하게 신앙생활을 잘하였습니다. 아침이면 새벽 기도를 빼놓지 않고, 성경도 부지런히 읽고, 주일을 성수하고, 십일조 헌금을 지성으로 바쳤으며, 교회를 위하여 그야말로 열심히 충성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축복이 그에게 임하여 사업이 잘 되어 큰 부자가 되었고, 슬하에 아들 오형제를 두게 되었으며, 신앙이 독실하여 마침내 장로 장립까지 받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그는 예수 믿고 예수가 밑천이 되어 영육 간에 큰 축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이 장로는 사업상 인천을 자주 왕래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처음에는 주일이면 꼭 본 교회에 돌아와서 지켰습니다. 그런데 차차로 한 번 인천엘 가면 2. 3개월에 걸려 집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그 부인은 남편이 독실한 장로인 만큼, 손톱만치도 의심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해 숭실 전문학교에 축구 선수로 재학 중인 몸이 남달리 건강한 장남이, 겨울방학에 집에 와서 몇 날 감기로 앓다가 갑자기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래서 그 부인은 마음이 몹시도 아파 이 장로에게 말하기를, 우리가 가정적으로 무슨 벌 받을 일이 있기에 그렇지, 그렇게 건강하던 자식이 감기로 몇 날 만에 죽을 수 있나요 하니, 이 장로는 ‘글쎄요’ 할 뿐이었습니다.

그때부터 부인은 의아심을 가지게 되어, 이 장로의 뒤를 조사하기 시작했습니다. 믿지 못할 것은 사람의 마음이라고, 원인 없는 결과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는 인천에 첩을 두어 한 살림을 차려 놓고, 죄악의 즐거움을 누리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부인은 이 장로를 붙들고 “이렇게 배은망덕하고야 어찌 살 수가 있단 말이요? 앞으로 더 큰 벌을 받기 전에 회개하고 첩을 버리라.”고 강권하였으나, 그는 끝내 듣지 않았습니다. 그 후로부터 그 가정에는 불행이 꼬리를 물고 일어나게 되었으니, 둘째 아들은 기생에게 미쳐 다니다가, 어떤 백만장자의 독자에게 사랑을 빼앗기자, 질투 끝에 남의 외아들을 죽이고 상해로 도망을 쳤습니다. 셋째 아들은 폐병으로 죽고, 넷째 아들은 절도죄로 철창신세가 되었습니다. 

외아들을 잃은 백만장자는 자식의 원수를 갚기 위하여 상해로 자객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자객들은 찾지를 못하고 돌아오는 길에, 만주 선경 어느 여관에 이 장로가 묵고 있는 것을 알고, 둘째 아들 대신 아버지인 이 장로를 죽였습니다. 또한 어느 날 동네 애들이 공기총으로 새를 쏜다는 것이, 문구멍으로 밖을 내다보는 막내아들 눈을 쏘아 한 눈이 멀어 멀어버렸습니다. 한 사람의 죄 값은 이렇게도 비참하게 한 가정을 망하게 한 것입니다. 과연 죄 값은 사망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정신을 차리고 깨어 살아야 합니다.

이제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주님께서는 말세지말을 당한 우리들에게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고 말씀합니다. 주님은 분명히 다시 오십니다. 로마 제국이 부귀와 영화를 누리던 시대의 일입니다. 베스비우스 산 중턱에는 2,000명의 주민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주후 63년 어느 날 한 노인이 나타나 마을 주민들에게 외쳤습니다. “베스비우스 화산이 폭발할 것이오. 살 길은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하나님께 회개하는 것이고, 또 다른 방법은 이곳을 떠나 이사하는 것이오.” 그러나 아무도 이 말을 믿은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로부터 16년 후인 주후 79년 8월 24일 베스비우스 화산은 폭발하였고, 생존자는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이 세상에는 두 종류의 종말이 있습니다. 개인적인 종말과 우주적인 종말입니다. 성경은 분명히 역사의 마지막 날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그 역사의 마지막 날에 예수님은 다시 오십니다. 그러나 그 재림의 시간은 아무도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항상 깨어 준비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캘리포니아에서만 평생을 살아온 한 자매는, 매일 저녁 잠자리에 들 때에, 신발과 회중전등을 침대 밑에 놓아둔다고 합니다. 그녀가 어렸을 때에 아버지가 가족들에게, 만약 밤중에 지진이 일어나더라도, 집을 떠날 준비를 항상 해두고 살라 하였기 때문입니다. 그 자매는 말합니다. “지진이 일어나면 창문이 부서지고 전기가 나가지요. 그러나 신발이 있으면 깨어진 유리 위를 걸을 수 있고, 회중전등이 있으면 어둠 속에서도 길을 찾을 수가 있어요. 나는 그것 없이는 절대로 잠자리에 들지 않아요. 언제나 준비를 해놓는 것이지요.” 

주님께서도 우리에게 깨어 준비를 하고 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이러므로 너희도 준비하고 있으라. 생각하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그러므로 이 세상의 삶에만 취생몽사 하지 말고, “마라나타!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하는 믿음으로, 항상 깨어 준비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리하여 여러분 모두가 정결한 그리스도의 신부로, 부끄럼 없이 주님을 맞이할 수 있기를, 신랑 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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