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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진리의 선을 지키신 예수님 (신 4:1-2, 계 22:18-19)

첨부 1


“이스라엘아 이제 내가 너희에게 가르치는 규례와 법도를 듣고 준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살 것이요 너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시는 땅에 들어가서 그것을 얻게 되리라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말을 너희는 가감하지 말고 내가 너희에게 내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키라”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것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여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예수께서 육신을 입고 오신 성탄절을 지나고 벌써 3주째를 맞고 있습니다. 오늘은 예수께서 인자로서 이 땅의 삶을 사시면서 어떻게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정확하게 지키셨는지 생각해보겠습니다. 성경 역사 전체를 살펴보면 인간들이 진리의 말씀대로 살지 못했던 여러 가지 환경과 유혹을 극복하여 우리 예수님은 참으로 놀랍게도 진리의 선(線)을 분명하고도 세심하게 지키셨습니다. 

‘진리의 선을 지킨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조금도 더하거나 빼지 않고 말씀 그대로 믿고 말씀 그대로 실천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모든 것의 중심에 있습니다. 

신 4:2=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말을 너희는 가감하지 말고 내가 너희에게 내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키라”

만일 우리가 말씀에 다른 것을 더한다면 말씀은 더는 중심을 지키지 못합니다. 반대로 그 말씀에서 몇 가지를 빠뜨리는 것도 말씀으로 중심을 잃게 하는 것이고,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더하지도 않고 빼지도 않는 것이 여호와의 명령을 지키는 일입니다. 

계 22:18-19=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것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여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그런데 진리의 선을 지킨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세상 법정에서도 증인석에 오르기 전에 법원 서기의 요청에 따라 오른 손을 들고 “오직 진실만을 말할 것을 맹세합니다” 라고 서약하지만, 결과적으로 진실의 선을 이탈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오늘 말씀은 데이비드 헴의 ‘진리의 선 위에 서라’는 글에서 주제와 몇 가지 내용을 빌려와 설교의 형태로 만든 것입니다. 말씀을 통하여 성경 전체에서 말씀 가감(加減)의 역사를 살펴보겠습니다. 그리고 인간들의 실패의 자리에서 승리의 개가를 부르신 예수님의 모습을 다시 찾아보고, 새해 진리의 선 위에 우뚝 서는 성도로서의 각오를 다짐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1. 첫째 아담의 실패

창 3:1-3= “그런데 뱀은 여호와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 가장 간교하니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이르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열매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본절은 성경 전체에서 가장 유명한 구절 중의 하나입니다. 인류가 범죄하여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진 이야기, 인류에게 죄의 저주가 임하고 하나님의 유토피아에서 쫓겨난 이야기, 그리고 인류를 구원하고자 나서신 하나님의 구속의 역사가 시작되는 이야기입니다. 

먼저 뱀이 상징하는 사탄과 첫 여자 하와 사이에 결정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사탄은 하나님의 말씀을 간교하고도 악한 의도로 왜곡하고 있는 데 비하여, 하와는 그렇지는 않습니다. 사탄은 의도적이고 계산적으로 하나님의 성품을 우롱하기 위해 말씀을 곡해하고 있습니다. 마틴 루터에 의하면, 사탄은 답을 듣기 위해 묻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비난을 질문 형식으로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와가 진리의 선 위에 서지 못한 상황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와는 사탄과는 달랐습니다. 하와의 대답을 다시 봅시다. “동산 나무의 열매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3절). 

사실 이 대답은 사탄의 교묘한 질문이 이끌어 낸 결과물입니다.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1절). 하나님의 금령은 오직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하나에 국한 된 것이었는데, 사탄은 여자를 욱박지르듯이 “동산 모든 나무”를 강조한 것입니다.

하와는 “나는 그 열매를 먹어선 안돼. 그렇기 때문에 그 열매를 만져서도 안 된다고 말할 거야”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하와는 “반드시 죽으리라” 라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죽을까 하노라” 라고 약화시켰습니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악했습니다. 

하와에게는 그녀의 잘못을 지적해주고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보호해 줄 수 있는 말씀 사역자, 곧 설교자가 필요했습니다. 이 시점에서 하와에게 닥친 위험은 그녀와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를 하나님을 만족시키기 위해 정해진 규칙을 따르는 종교로 변질시키려는 것입니다. 하와가 종교화 되려는 그 자리에서 사탄은 반역을 꾸미고 있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만일 그때 그 자리에 하와의 잘못을 지적해 줄 설교자가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그런데 그곳에 없었던 것이 아닙니다. 창세기 3장 6절을 보십시오.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하나님은 인류가 타락하기 전에 이미 설교자를 따로 세워두셨습니다. 하나님은 하와가 뱀에게서 질문을 받았을 때 하나님과 직접 약속을 맺은 한 사람을 그 옆에 있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창세기 2장 16절에서 아담에게 주신 하나님의 금령의 말씀이 여자가 창조되기 이전에(창 2:18) 이뤄진 것임을 유의해서 봐야 합니다. 하나님은 아담을 자신의 말씀을 전할 설교자로 세상에 보내신 것입니다. 

이제 아담이 해야 할 일은 법정에 서는 일입니다. 말하자면, 아담은 오른 손을 들고 “오직 진실만을 말하겠습니다” 라고 서약해야 하고, 서약한 대로 말해야 합니다. 

“사탄아, 너의 간교한 말을 정죄하노니 하나님의 심판을 기다릴지어다. 그리고 하와, 당신은 하나님의 말씀을 변개하고 있소. 하나님은 ‘먹지 말라. 먹는 날에는 반듯이 죽으리라’ 고 하시지 않았소?” 라고 말해야 했습니다.

아담은 말씀을 전할 의무를 부여받았습니다. 그는 말씀의 선(線) 위에 서야 했습니다. 하지만 아담은 설교자의 의무를 어겼습니다.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아담은 말씀을 전하지 않고 오히려 함께 먹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사람은 말씀을 전하도록 창조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이라면 에덴동산에서부터 세상 마지막 때까지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심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그 말씀을 통해 생명을 전해야 합니다. 설교자는 강단에 올라섬과 동시에 뒤에 남겨진 모든 것은 잊어버리고 오직 진리만 전해야 하는 존재입니다. 

그러나 아담은 계단을 올라가 하나님을 대신해 말하기보다 오히려 죄악의 자리로 내려왔습니다. 그는 하와의 유혹에 동참했습니다. 사탄에게 승리를 내주고 종교화의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그 이후로 인본주의가 전염병처럼 퍼져나갔고, 오늘까지 사람들은 사탄의 명령대로 살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께 저항하는 비참한 무리가 되었으며, 그분의 성품을 증오하는 자들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모두 하와의 유혹에 걸려 넘어진 자들이며 종교적인 수행을 통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다고 왜곡하는 자들입니다. 

성도 여러분! 아담이 하와의 유혹에 넘어간 순간 인간 세상에서 하나님의 말씀의 선(line)은 허무하게 무너졌습니다. 그때 세상에서 말씀을 전하는 설교자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스스로 자신의 말씀을 지키기 위해 설교자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창세기 3장 14절 이하에 나오는 사건입니다. 

하나님은 뱀과 말씀하시고 그를 심판하셨습니다(14-15절). 하나님은 또 여자를 정죄하셨습니다(16절). 그리고 17-19절에서 하나님은 아담에게 말씀하시고 모든 것들에 대해 책임을 물으셨습니다. 

그로 인해 땅도 저주를 받게 되었고 설교자는 그 땅에 매이게 되었습니다. 아담이 마지막 때까지 하나님의 나라로 경작해야 할 그 땅은 공동묘지로 변해버렸고, 그리하여 세상은 마지막 아담을 기다리게 된 것입니다. 


2. 구약에 나타난 설교자들의 실패

아담 이후의 인류 역사를 기록하고 있는 구약 성경의 앞부분을 보면 몇몇 경우를 제외하고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설교자가 세상에 없었습니다. 에녹과 노아가 있었지만, 많은 경우 하나님이 스스로 말씀하셨습니다. 

위대한 선지자 모세조차 말씀의 선 위에서 비틀거리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민수기 20장 8절에서 하나님은 모세에게 “지팡이를 가지고··· 반석에게 명령하여 물을 내라 하라”고 아주 단순하게 명령하셨는데, 뜻밖에 모세는 손을 들어 바위를 두 번 내리쳤습니다. 무엇이 문제였습니까? 하나님의 책망을 들어보십시오. 

민 20:12=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서 내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한 고로 너희는 이 회중을 내가 그들에게 준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모세의 실패는 하나님의 말씀과 거룩함을 백성들 앞에서 높여야 할 대상으로 여기지 못한 점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백성들의 목전에서 값싼 것으로 여겼던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말씀의 선을 지키는 것은 이처럼 어려운 것이었기에 하나님은 진리에 충실한 사람을 그리도 기뻐하신 것입니다.

대제사장 아론의 두 아들의 실패는 아론 뿐 아니라 모든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그들은 회중 앞에서 선택받은 특별한 위치에 서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자신들의 특권의식만 생각하고 ‘하나님께서 명하시지 않은 다른 불’을 성막 안으로 가지고 들어가다가 그 자리에서 죽임을 당했습니다. 제사장들의 수많은 실패의 본보기라 할 수 있습니다.

제사장들 뿐이 아닙니다. 위대한 왕들 역시 흔들리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여러분은 이스라엘 초대 왕 사울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엄숙한 말씀을 기억하십니까? “지금 가서 아말렉을 쳐서 그들의 모든 소유를 남기지 말고 진멸하되 남녀와 소아와 젖 먹는 아이와 우양과 낙타와 나귀를 죽이라”(삼상 15:3).

그런데 우리는 다음 구절에서 사울의 안타까운 모습을 봅니다. “사울과 백성이 아각과 그의 양과 소의 가장 좋은 것 또는 기름진 것과 어린 양과 모든 좋은 것을 남기고 진멸하기를 즐겨 아니하고 가치 없고 하찮은 것은 진멸하니라”(9절).

여러분, 불순종한 사울 때문에 밤새도록 근심하며 기도한 사무엘에게 사울은 태연히 말합니다. “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행하였나이다”(13절). 말하자면 사울은 ‘내가 말씀의 선을 지키고 있습니다’ 라고 대답한 것입니다. 그러나 사울에게 설교하는 사무엘의 선언은 매우 무겁습니다.   

삼상 15:22-23=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이는 거역하는 것은 점치는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이 세상은 말씀의 선을 정확히 지킬 수 있는 분을 더 기다려야 했고, 우리는 구약의 여러 인물들에서 장차 오실 그분의 그림자를 희미하게나마 보고 있습니다. 


3. 진리의 선을 지키신 마지막 아담 예수님

위대한 선지자들, 제사장들, 그리고 왕들도 모두 말씀의 선을 지키는 일에 실패했습니다. 영원한 말씀이신 하나님께서 직접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이 땅에 오시기 전까지 아무도 성공할 수 없었습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진리의 선을 정확히 지키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말을 너희는 가감(加減)하지 말고 내가 너희에게 내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키라”(신 4:2). 예수님은 구약의 이 말씀에 철저하게 순종하셨습니다.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광야에서 40일 동안 금식하신 예수님은 우리와 꼭 같은 인간이었지만, 인간들이 실패한 지점에서 승리하셨습니다.  

사탄은 광야를 찾아와 그분을 집요하게 유혹했습니다. 그 광야, 모세가 자신의 욕망을 따라 반석을 쳐서 물을 내게 함으로써 하나님의 명령을 변개하는 죄를 지었던 그 광야에서, 예수님은 돌들로 떡을 만들라는 사탄의 유혹에 흔들리지 않으셨습니다. 

희생제물이 드려지는 성막에서 하나님의 거룩을 개의치 않고 무례하게 행동했던 제사장들과 달리, 예수님은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면 하나님이 구해주시리라는 유혹을 한마디로 거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사울과 다윗 그리고 다른 왕들이 이겨내지 못한 유혹도 거뜬히 극복해 내셨습니다. 그는 인간의 왕국을 취하지 않으셨고, 이를 위해 사탄의 말에 굴복하지도 않으셨습니다. 예수님만이 말씀의 선을 지키셨고, 그분만이 성경적인 설교자의 힘들고 험한 사역을 감당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아무리 예수님이라 하더라도 이 사역은 분명히 쉽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죄로 인해 왜곡되었고 여기 저기 모순투성이로 가득차 있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19장 3절에서 바리새인들은 예수님께 “사람이 어떤 이유가 있으면 그 아내를 버리는 것이 옳으니이까” 라고 질문합니다. ‘어떤 이유이든 아내와 이혼하는 것은 합법적이지 않습니까’ 라는 의미입니다. 하지만 성경 말씀의 선은 그렇지 않습니다.

4절에 나오는 예수님의 대답을 보십시오. ‘사람을 지으신 이가 본래 그들을 남자와 여자로 지으신 것을 알지 못하였느냐’ 라고 말씀하시며 창세기 1장을 인용하십니다. 그리고 창세기 2장 24절 말씀으로 마무리하십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아내에게 합하여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예수님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 다른 것이 아닌 완전한 진리의 말씀만을 나타내십니다.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마 19:6).

우리는 진리의 선을 지키는 한 사람이 계시다는 사실에 대해 감사해야 합니다. 하지만 예수님께 질문한 그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7절에서 바리새인들은 “그러면 어찌하여 모세는 이혼 증서를 주어서 버리라 명하였나이까” 라고 항변합니다. 

바리새인들은 창세기 1장과 2장에 근거한 예수님의 진리의 말씀을 신명기 24장에 근거한 모세의 진술과 대조해 설명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당시 상황과 연관된 복잡한 문제입니다. 지금도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부분적으로 도려내어 서로 비교해 모순되는 부분을 찾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대답은 명확합니다. “모세가 너희 마음의 완악함 때문에 아내 버림을 허락하였거니와 본래는 그렇지 아니하니라”(8절). “누구든지 음행한 이유 외에 아내를 버리고 다른 데 장가 드는 자는 간음함이니라”(9절).

하나님의 창조 섭리와 모세의 규례는 서로 상반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아무런 연고 없이 이혼하려는 당시 바리새인들의 의도가 창세기 1, 2장과 신명기 24장의 말씀에 위배된다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말씀에 담긴 진정한 의미를 밝히십니다. 이것이 곧 우리가 받은 사명입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진리의 선을 지킬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피흘려 죽으신 것도, 무덤을 깨뜨리고 부활하심을 통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입증하신 것도 우리를 진리 가운데 서게 하기 위함입니다. 예수님은 진리의 선을 철저히 지켜내신 마지막 아담이십니다!


[나오는 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오늘도 말씀 전파자를 부르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구약의 모든 일꾼들이 실패했던 그 자리에 이제 우리를 세워 예수 그리스도의 남은 일을 하도록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말씀 사역은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우리는 아담의 후손들이고 타락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진리의 말씀을 맡기셨습니다. 사도 바울의 고백을 들어보십시오. 

고후 4:1-2= “그러므로 우리가 이 직분을 받아 긍휼하심을 입은 대로 낙심하지 아니하고 이에 숨은 부끄러움의 일을 버리고 속임으로 행하지 아니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오직 진리를 나타냄으로 하나님 앞에서 각 사람의 양심에 대하여 스스로 추천하노라”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라고 했습니다. 이 시대는 자유주의, 신비주의, 종교다원주의, 세속주의, 혹은 이단 사이비 등에 의해 진리의 말씀이 심히 혼잡해진 때입니다. 이런 때에 가장 필요한 것은 진리의 선 위에 굳게 서는 일입니다. 

구약의 사람들이 실패했던 그곳에서 예수님은 승리하셨습니다. 이제 주님은 우리를 불러 진리의 선 위에 굳게 서도록 원하십니다. 주님의 이 마음으로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엄숙히 당부합니다.

딤후 2:15= “너는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며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는 세상을 향해 주님의 말씀을 외치는 설교자로 부름받았습니다. 다른 것이 아닌 완전한 진리만을 말하고 하나님의 도움을 요청하십시오.  

계 22:18-19=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것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여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기억하십시오. 지금도 하나님은 여전히 세상을 향한 설교자를 원하십니다.

(대구서현교회.박순오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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