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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파종과 수확의 법칙 (갈 6: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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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종과 수확의 법칙 (갈 6:6-10)

6.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
7.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8.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9.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10.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

세상에는 다양한 법칙들이 있어서 그 법칙들에 의해 세상이 움직이고 있습니다. 또 법칙에는 그 법칙이 돌아가게 하는 원리가 있습니다. 어디에나 그것이 작용하고 있어서 무엇이 잘된다고 할 때는 잘될 수밖에 없는 법칙과 원리가 작용하고 있고, 실패에도 실패의 요인이 있는 것입니다. 크게 보면 법칙의 싸움입니다. 성공적이고 남다른 인생을 산 사람들은 그 법칙과 원리를 빨리 깨우치고 그 원리를 놓치지 않고 삶에 계속 적용한 것입니다. 

그 법칙이란 것이 무엇일까요? 역사의 과정 속에서 반복을 통해서 확실하게 검증된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사실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원리와 법칙입니다. 씨를 뿌리고 거두어들이는 법칙은 가장 기본적인 법칙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하는 행위로 인해 돌아가고 있습니다. 세상을 살다 보면 변수가 많습니다. 

요령과 처세에 밝은 사람도 있지만 그런 것이 적용이 안 되는 경우도 있어 낭패를 당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법칙과 원리는 오랜 세월 동안 확인되고 검증된 것입니다. 법칙을 무시하거나 깨뜨리면 피해를 입게 됩니다. 우리는 이 세상을 움직이고 있는 거대한 질서, 하나님이 만들어 놓으신 거대한 법칙을 발견하고 붙잡아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를 지날 때 하나님께서 하늘 문을 여시고 만나와 메추라기를 내려주셨습니다. 광야는 척박해서 농사를 지을 수 없고 아무것도 의존할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먹이신 것입니다. 그런데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에 들어간 후에는 만나와 메추라기가 없었습니다. 이제는 기름진 땅에 들어가 경작하고 그 땅에서 나온 것으로 충분히 먹고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씨를 뿌려서 수확한 것을 먹는 일반적인 법칙을 준수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삶에서 우리가 붙잡아야 할 법칙 중의 하나가 파종과 수확의 법칙입니다. 인간의 노력이 필요한 것입니다. 구원의 세계에도 마찬가지입니다. 구원은 내 노력 없이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주신 은혜이며 구원을 위해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다만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것뿐입니다. 그러나 구원을 받은 이후에 영적인 성장과 성화의 과정에는 하나님의 축복과 더불어 우리의 노력이 필요한 영역이 있습니다. 

예수를 믿었으니 자동적으로 성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 이후의 삶은 우리가 끊임없이 노력하고 대가를 지불하고 땀을 흘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출애굽기가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를 통과하는 구원의 책이라면 여호수아서는 정복의 책입니다. 믿음으로 밟고 쟁취하며 나아가는 구체적인 수고가 필요한 것입니다. 쟁취와 정복은 믿음 이후 우리의 삶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파종과 수확은 이 세상을 돌아가게 하는 아주 중요한 법칙입니다. 입시를 맞이한 우리 아이들에게도 파종과 수확의 법칙을 가르쳐주어야 합니다. 입시는 공부를 열심히 해서 성실하게 땀 흘린 대가를 얻는 싸움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도와주시지만 나의 성실함과 노력의 대가라는 것을 알려주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파종과 수확의 법칙을 발견해야 합니다. 원인이 있으면 결과가 있습니다. 우리의 일상은 파종과 수확의 법칙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일생 동안 파종을 하고 삽니다. 돈을 사용하는 것도 씨를 뿌리는 것입니다. 돈을 어디에, 얼마나,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결국에는 내 인생에 돌아오게 됩니다. 「18선을 행하고 선한 사업을 많이 하고 나누어 주기를 좋아하며 너그러운 자가 되게 하라 19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딤전 6:18~19)」 

이 말씀은 남을 돕고 선한 사업을 하는 일은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어 드리는 것이니 그의 선행을 그에게 갚아 주시리라(잠 19:17)」 

남을 돕는 것도 파종입니다. 구제하는 것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꾸어드리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채무자가 되어 나의 선행을 정확하게 기억하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보물을 가장 안전한 곳에 쌓아두라고 하셨습니다. 헌금이나 구제 역시 씨앗을 심는 것입니다. 현재 나의 삶은 지금까지 뿌린 씨에 의한 결과입니다. 무엇을 뿌렸느냐의 싸움입니다. 

우리가 매일 말을 하고 사는 것에도 파종과 수확의 법칙이 있습니다. 내가 말하는 것은 어디엔가 심겨지는 것입니다. 자기에게 심겨지든지 남에게 심겨져 반드시 어떤 결과가 나타납니다. 부모가 자녀들에게 많이 한 말이 그 아이의 인생이 되어 일평생 영향을 미칩니다. 긍정의 말을 많이 하면 긍정의 인생이 펼쳐집니다. 부정적인 말을 자꾸 한다면 스스로 그 말한 것을 거두게 됩니다. 다른 사람에게 축복을 하면 축복을 거두고 비난을 하면 비난을 거둡니다. 

「37비판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비판을 받지 않을 것이요 정죄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정죄를 받지 않을 것이요 용서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용서를 받을 것이요 38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눅 6:37~38)」 

이 본문은 말에 관련된 것입니다. 비난을 하면 비난을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돌려받고, 용서를 하면 용서를 받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 부정적인 말을 많이 듣는다면 내가 많이 준 것입니다. 그러니까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눅 6:31)」 하셨습니다. 그냥 대접받는 것이 아닙니다. 대접한 대로 대접을 받는 것입니다. 사람이 무엇으로 심던지 그대로 거두는 파종과 수확의 법칙입니다.

갈라디아 교회 안에는 자유의 의미를 오해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자유를 자기 마음대로 사는 것이라고 착각했습니다. 바울은 자기 육체를 위해 헛된 것을 추구하는 것에 대해 경종을 울리고 있습니다. 책임감 없이 마음대로 살아가는 사람들로 인해 요동하지 말고 그리스도 안에서 참된 자유를 누리며 좋은 일을 지속적으로 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영적 세계에도 절대로 공짜가 없습니다. 

우리가 귀한 것을 얻고자 한다면 대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영적인 습관 하나도 내 안에 자리 잡으려면 대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성화와 변화가 저절로 이루어지는 줄 알고 세월을 보낸다면 가장 기본적인 법칙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좋은 성품은 하늘에서 뚝 떨어지지 않습니다. 자신의 영혼을 위해 스스로 치열한 싸움을 하고 투자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

리의 생각 안에 박혀 있는 세상적이고 육체적인 것들을 변화시키려면 좋은 씨앗을 파종해야 합니다. 생각은 내가 뿌린 씨앗의 결과입니다. 어떤 책을 읽고 묵상할 것인가는 나의 선택입니다. 읽는 것, 듣는 것, 보는 것, 모두가 파종입니다. 삶의 변화는 쉽지 않습니다. 죄의 본성으로 인해 만들어져 있는 잘못된 습관은 우리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바꾸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교회에 오래 다녔다고 변화되지 않습니다. 죄의 뿌리가 얼마나 깊은지 모릅니다. 병들고 죄로 물든 심령에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으로 끊임없이 파종해야 합니다. 듣는 것, 만나는 것, 보는 것도 내가 선택해야 합니다. 

심은 대로 거둡니다. 심지 않으면 거둘 것이 없습니다. 적게 심으면 적게 거두고 많이 심으면 많이 거둡니다. 불변의 법칙입니다. 인간의 죄성이 얼마나 뿌리 깊은지 변화가 쉽지 않습니다. 심지 않은 데서 거두려고 하면 안 됩니다. 영적 세계는 만만하지 않습니다. 믿음의 길에서 성화의 길을 가고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아가려면 단단한 각오를 하고 눈물로 씨를 뿌리는 자기 몸부림이 필요한 것입니다. 

오늘 7절 말씀에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고 했습니다. 심지 않고 거두는 것은 스스로를 속이고 하나님도 속이는 것입니다. 노력하지 않았는데도 나에게 주어진 것이 있다면, 엄밀히 말하면 내 것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심은 대로 거둡니다. 노력하지 않은 데에서 거둘 수 없습니다. 영적 세계에서 대박은 없습니다. 영적 훈련은 성령을 위하여 씨를 뿌리는 일과 동일합니다. 육신적인 욕망과 일시적 쾌락이 나를 당기지만 철저한 자기 절제를 통하여 하나님의 진리에 나아가기 위해 몸부림치다 보면 나에게 진정한 자유가 옵니다. 그 자유는 더 이상 죄에 끌려다니지 않고, 죄를 거절하는 능력이 주어져 하나님의 진리 안에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지속적인 절제의 삶, 지속적인 순종의 삶을 통해 어느 날 영적인 성장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파종에서 중요한 것은 좋은 씨를 뿌리는 것입니다. 지혜로운 농부는 씨를 잘 구분합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두 가지 씨를 말합니다. 하나는 자기 육체를 위해 심는 것이고, 하나는 성령을 위해 심는 것입니다. 하나는 썩어질 것이고 하나는 썩지 않을 영원한 것입니다. 하나는 순간의 짜릿함이고, 하나는 영원한 즐거움을 위해 현재의 즐거움을 유보하는 것입니다. 반드시 즐거움이 올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영원한 즐거움입니다. 세상이 주는 것은 잠시 짜릿한 즐거움일 뿐입니다. 

갈라디아서 5장 16~26절을 보면 파종과 수확의 법칙에 대해 정확하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육체적인 소욕을 따라 살아가는 사람들은 순간적인 자기만족을 추구하며 지극히 이기적입니다. 내일을 전혀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결국 육체의 열매가 맺힙니다. 음행, 더러운 것, 호색, 우상숭배, 주술, 원수 맺는 것, 분쟁, 시기, 분냄, 당 짓는 것, 분열과 이단, 투기, 술 취함과 방탕입니다. 기분 내키는 대로 살면 이런 결과들이 뚜렷하게 나타납니다. 

그러나 성령의 소욕을 좇는 삶을 살면, 육체의 소욕을 거슬러 육체의 본성과 맞서 싸우는 것입니다. 육체를 만족시키기보다 영적인 만족을 높이는 삶입니다. 지속적으로 자신의 삶을 성령께 내어 맡기는 삶을 살다 보면 어느 순간엔가 나에게 변화가 일어나 성령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22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23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갈 5:22~23)」 

이런 아홉 가지 열매를 한몸에 가지고 계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찬양 받기에 합당하시고 매력적인 성품입니다. 우리 삶에도 이런 성품이 드러날 때 정말 향기롭고 멋진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성령을 좇아 부지런히 씨앗을 심는 삶을 살 때, 그 열매가 맺혀 갈수록 영광스러워져 가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죄의 본성이 있고 육체의 소욕이 문제입니다. 이것을 그대로 두면 썩어질 씨를 계속 뿌리고 다니는 셈이 됩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자유를 육체의 본성대로 하도록 두면, 비극적인 열매를 거두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5장 13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 하라(갈 5:13)」 주어진 자유를 육체의 기회로 삼지 말라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기회란 씨 뿌릴 기회입니다. 어떤 씨를 뿌릴 것인가는 우리의 선택입니다. 육체인가, 성령인가? 순간인가, 영원인가? 인생은 선택입니다. 순간의 작은 선택이 오늘의 나를 만든 것입니다. 작은 선택을 소홀히 여기면 안 됩니다. 

본문 10절을 보면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갈 6:10)”고 했습니다. ‘기회 있는 대로’라는 말은 성령의 씨를 뿌리되 적극적인 태도로 하라는 말입니다. 기회 포착이 참 중요합니다. 기회라는 말은 지나간다는 뜻입니다.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언제나 내가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착각입니다. 씨를 뿌릴 때 중요한 것은 타이밍입니다. 그래야 열매를 거둘 수 있습니다. 

씨 뿌리는 자들에게 찾아오는 시험이 있는데 바로 ‘낙심’입니다. 이것은 신앙적인 경륜과 상관없이 찾아오는 유혹입니다. 바울 자신도 경험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선한 일을 하다 보면 내가 한 일에 대해서 인정받지 못할 때 낙심이 됩니다. 나는 한다고 했는데 아무도 알아주지도 않고, 감사도 하지 않을 때, 내가 한 선한 일이 오해 받기도 하고 비난으로 돌아올 때도 있습니다. 리더는 모든 사람들이 알아듣도록 다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 있습니다. 

그렇다 보면 오해와 비판을 듣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그만두면 안 됩니다. 욕도 먹으면서 하는 것입니다. 칭찬받을 때도 있고 욕을 받을 때도 있습니다. 당연한 것입니다. 수고한 만큼 결과가 나오지 않을 때, 나는 최선을 다했는데 결과가 초라할 때, 나의 기대가 무너지면 힘이 빠집니다. 그런 낙심이 찾아올 때 많은 사람들은 포기하려고 하지만, 포기하면 원점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낙심할 수밖에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툭툭 털고 일어나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내가 정말 해야 할 일을 하고 있다면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승리한 그리스도인들은 낙심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낙심을 이겨낸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선한 일을 시작했다면 그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일이라면 끝까지 해야 합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파종과 수확 사이에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려운 것입니다. 그 중간에서 내가 어떻게 반응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아무리 급해도 열매는 시간이 지나야 됩니다. 농부의 인내와 기다림을 배워야 합니다. 모든 좋은 것은 인내를 통해서 거둡니다. 오래 참음과 충성은 성령의 열매입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충성하는 것은 사람의 의지만으로는 안 됩니다. 성령의 절대적인 도움이 필요합니다. 농부가 경작을 하다가 힘들다고 그만두면 그 밭은 잡초밭이 됩니다. 

성급한 인생은 잡초 인생이 됩니다. 현대인들이 가장 못 하는 것은 기다림입니다. 파종은 내가 하지만 수확은 내 마음대로 할 수 없습니다. 내가 뿌린 것을 다음 세대가 거두기도 하고, 어떤 때는 아버지가 뿌린 것을 아들이 열매를 보지 못하고 손자가 거둘 수도 있습니다. 시간이 흘러야 합니다. 씨는 땅속에서 어두움의 시간을 보내고 썩는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썩는 힘든 시간을 통과해야 합니다. 힘든 것 중에 힘든 것은 기다림입니다. 금방 결과를 얻고자 하면 좋은 열매를 거둘 수가 없습니다. 

모든 좋은 것은 기다림을 통해 주어집니다. 목회도 기다림입니다. 말씀의 씨를 뿌렸다고 금방 반응이 오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언젠가는 반드시 변합니다. 변화하는 시기가 다를 뿐입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기다리는 것입니다. 자녀들을 양육할 때도 지금의 모습만 보면 낙심이 됩니다. 빌 게이츠도 하버드를 다니다가 집에서 컴퓨터만 가지고 씨름하니 부모가 얼마나 속이 터졌겠습니까. 그런데 그가 세상을 움직인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씨를 뿌리기만 하면 그 열매는 반드시 거둘 것인데, 그 시기가 하나님의 손에 있다는 것입니다. 선교지에서 사역하는 선교사님들은 긴 싸움을 싸워야 합니다. 수년이 지나도 한 명도 돌아오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누군가를 사랑하기로 했다면 끝까지 사랑하십시오. 시작했다면 끝까지 사랑의 씨를 뿌려야 합니다. 주님은 제자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사랑의 씨 뿌리기를 시작했다면 포기하지 않고 계속 뿌리는 것입니다. 선한 일을 시작했다면 낙심을 이기고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가야 합니다. 끝까지 가는 사람이 승리합니다. 새벽기도를 시작했다면 끝까지 기도의 씨를 뿌리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이 자리에 있는 것도 누군가가 씨를 뿌린 것입니다. 어떤 분은 신앙이 별로 없는데 참 복되게 사는 분이 있습니다. 그 사람의 실력이 아니라 선조가 뿌린 기도의 열매인 것입니다. 양가의 부모가 기도해주는 사역자는 다릅니다. 자녀를 위한 부모의 기도는 대단한 것입니다. 부모는 자녀들을 위해 기도의 씨앗을 뿌려야 합니다. 자녀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기도뿐 입니다. 한국 교회가 이렇게 번성한 것도 믿음의 선조들이 피땀이 종자가 된 것입니다. 

우리 교회도 대가지불과 눈물의 기도를 뿌리며 하나님의 교회를 섬겼던 종들이 있었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눈물의 씨앗을 뿌릴 때 다음 세대가 영광스럽게 일어날 것입니다. 우리의 책임입니다. 이 세상에는 공짜가 없습니다. 내가 무엇인가 편안함을 누리고 있다면 누군가, 앞선 세대의 피와 땀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앞선 세대의 수고를 잊으면 안 됩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중도에 포기하지 않고 가는 것입니다. 인생의 차이는 중도에 그만두느냐 아니면 끝까지 하느냐의 차이입니다. 정신분석학자인 칼 융은 “조급함은 마귀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마귀다”라고 했습니다. 오늘 이 시대가 얼마나 조급한지, 기다리지를 못합니다. 금방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고 포기하면 안 됩니다. 씨앗을 뿌린다면 반드시 열매가 맺힌다는 이 법칙을 붙잡아야 합니다. 선한 양심을 가지고 내 삶에서 최선을 다하며 씨앗을 뿌리면 반드시 열매를 거둘 것입니다. 「5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6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시 126:5~6)」 

우리는 성령의 욕구와 육체의 욕구 사이에 살고 있는데 나에게 주어진 자유를 선한 일을 하는 기회로 삼아 적극적으로 육체와 충동을 거부하고 하나님의 진리를 따라 사는 일에 씨를 뿌리며 살면, 언젠가 삶을 통해 드러나게 됩니다. 

왜 내 인생은 이렇게 안 풀리는가 하고 원망과 불평하고 계신 분이 있습니까? 그래도 심다 보면 반드시 뿌린 대로 열매를 거둘 것입니다. 때가 오지 않았을 뿐입니다. 특별한 인생을 살고자 하면 특별한 씨앗을 뿌려야 합니다. 남과 다른 인생을 산 사람들은 다른 씨앗을 파종한 사람들입니다. 영적 거인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존경과 찬사를 받는 인생은 하늘에서 갑자기 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파종과 수확의 법칙입니다. 

이 법칙에는 심판의 메시지가 있습니다. 우리의 행위를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설 때 어떤 씨를 얼마나 뿌렸는지에 따라 평가받을 것입니다. 내가 뿌린 씨앗이 어느 날 내 인생에 정확히 다가올 것입니다. 비싼 대가를 치르고, 눈물로, 뼈를 깎는 어려움이 있을지라도 믿음의 삶을 살아갈 때 영적 근력이 생겨서 이제는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세상의 유혹과 육체의 소욕에 끌려 다니지 않고, 진리 안에서 자유를 누리며 믿음의 길을 걸어가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어갈 것입니다. 

우리는 성령의 사람입니다. 성령으로, 성령의 소욕을 따라 살며 성령의 열매를 맺어서 하나님 앞에 섰을 때 칭찬받는 주의 백성들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규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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