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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다윗에게 본 받을 점 (삼하 7: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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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에게 본 받을 점 (삼하 7:18-29)


이스라엘 국기에는 “헥사그램”의 문양이 그려져 있습니다. 정삼각형 두개가 엇갈려 진 여섯 개의 꼭지 점이 있는 별 같은 문양을 말합니다. 이 문양을 흔히 “다윗의 별”이라 부르고 공식적인 명칭으로는 “마겐 다윗”(Magen David) 즉 다윗의 방패라고 부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기들의 국가의 상징 문양을 이 마겐 다윗으로 사고 있는 것입니다. 다윗의 방패가 되셔서 그를 지켜주신 하나님께서 지금도 자기들을 지켜주실 것을 믿는 믿음의 표현이기도 한 것입니다. 

이렇게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윗을 가장 위대한 지도자로 존경하고 흠모해 왔습니다. 그리고 다윗의 후손 가운데서 다윗과 같은 위대한 지도자가 메시야로 오셔서 자기들을 이끌어 줄 것을 간절히 소망하고 있기도 합니다. 
그런데 사실 다윗의 생애를 면밀하게 검토해 보면 다윗은 비난 받을 만한 많은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대표적인 예를 한두 가지 들어보면 이렇습니다. 

우선 삼상 21장을 보면 다윗이 사울을 피해 놉이라는 곳으로 피하는 이야기가 기록되어있습니다. 거기서 제사장 아히멜렉을 만납니다. 이 때 다윗이 자기가 살려고 거짓말을 합니다. 그래서 배고픔을 면하고 골리앗의 칼을 얻게 됩니다. 이 일이 발각되어 놉에 있던 제사장 85인이 죽었고, 그 성의 사람들과 가축들이 도륙을 당했습니다. 
삼상 22:22을 보면 다윗이 “네 아비 집의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 나의 연고로다”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다윗이 이렇게 자기가 살려고 거짓말을 해서 수많은 제사장들을 죽게 했고, 죄 없는 놉 성의 사람들과 가축들을 몰살당하게 했습니다. 

다음으로 삼하 11장에 보면 다윗이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범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자기를 위해 전쟁터에서 죽기를 각오하고 싸우는 부하의 아내를 간음했습니다. 그리고 그 죄를 덥기 위해 그 남편 우리아를 간계를 써서 전쟁터에서 죽게 했습니다. 
삼상 11:27을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있습니다. “다윗의 소위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하였더라.” 하나님께서도 용납하실 수 없을 정도의 큰 죄를 저질렀던 것입니다. 

성경을 자세히 살펴보면 이와 같은 크고 작은 다윗의 실수가 20번 이상 나옵니다. 

문제는 이렇게 많은 실수를 저지른 다윗을 하나님께서 귀하게 여기셨다는 것입니다. 행 13:22을 보면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거하여 가라사대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 하시더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대하 7:17을 보면 하나님께서 솔로몬이 왕으로 등극할 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만일 내 앞에서 행하기를 네 아비 다윗같이 하여 내가 네게 명한 모든 것을 행하여 내 율례와 규례를 지키면...” 게다가 하나님께서 이 다윗의 후손 가운데 메시야를 보내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런 하나님의 철저한 인정과 칭찬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윗을 흠모하고 존경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도 국기에 다윗의 방패를 그려 넣고 하나님께서 그를 사랑하신 것처럼 자기들도 사랑해 주시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다윗과 같은 지도자들이 나오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러면 도대체 하나님께서 무엇 때문에 다윗을 이처럼 귀하게 여기신 것일까요? 그렇게 실수도 많고 허물도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다윗을 높이셨을까요? 그 답을 찾으면서 소중한 교훈을 찾아보겠습니다. 

하나님만을 의지했습니다. 

다윗의 인생 여정은 그야말로 파란만장했습니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난관이 그 앞길을 가로막았습니다. 수많은 대적들의 공격으로 쉴 새 없이 생사의 혈루를 벌여야 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끝내 그 모든 난관을 극복했고 결국 모든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그 원인은 한 가지였습니다. 그가 철저하게 하나님만 의지했기 때문입니다. 

다윗이 아직 어린 소년 시절 블레셋의 장수 골리앗과 맞서게 되었습니다. 이 때 다윗은 아직 군대에 차출될 수 없을 정도의 어린 나이였습니다. 이에 비해 골리앗은 무려 키가 3미터에 달하는 거인이고 전장에서 잔뼈가 굵은 백전노장이었습니다. 게다가 완전무장을 한 골리앗 앞에 고작 물맷돌을 들고 선 다윗은 상대가 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사울 왕이 만류했습니다. 이 때 다윗이 이렇게 왕에게 말했습니다. “여호와께서 나를 사자의 발톱과 곰의 발톱에서 건져내셨은즉 나를 이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삼상 17:37) 그리고 조롱하는 골리앗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 오늘 여호와께서 너를 내 손에 붙이시리니”(삼상 17:45-6) 

이렇게 다윗은 자기 힘으로 도저히 넘어설 수 없는 난관을 만났을 때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철저하게 하나님만 의지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함께 그 난관을 돌파했습니다. 
다윗은 사울 왕에게 쫓겨 10년 넘는 기나긴 도망자 생활을 해야만 했습니다. 사울의 집요한 추격을 피해 여러 차례 죽을 고비를 넘으며 기나긴 도피 생활을 끝내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시 13편은 이 기나긴 도피 생활 도중에 자기의 심경을 읊은 노래입니다. 1을 보면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나를 영영히 잊으시나이까” 끝없이 계속되는 이 도피생활의 고통을 하나님께 아뢰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5절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오직 주의 인자하심을 의뢰하였사오니 내 마음은 주의 구원을 기뻐하리이다.” 
이렇게 다윗은 절망의 한 복판에서도 오직 하나님만 의지했습니다. 그리고 소망 중의 하나님의 구원을 바라보면서 오히려 믿음으로 기뻐할 수 있었습니다. 

다윗이 왕이 된 뒤 정말 할 일이 많았습니다. 우선 주변의 여러 나라의 침략에 맞서 싸워야 했습니다. 나라의 국방을 든든히 해야만 했습니다. 
다윗은 이런 국가의 중대사를 결정할 때 공통된 특징을 보이고 있습니다. 삼하 2:1 “다윗이 여호와께 물어 가로되 내가 유다 한 성으로 올라가리이까?” 삼하 5:19 “다윗이 여호와께 물어 가로되 내가 블레셋 사람에게로 올라가리이까?” 

이렇게 다윗은 자기가 해결해야 할 중요한 일을 처리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구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일을 전적으로 하나님께 맡긴 것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 일을 향해 나아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다윗은 이렇게 매사에 철저하게 하나님만 의지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상황 가운데서도 하나님만 의지하는 이런 믿음을 보신 것입니다. 이런 믿음이 하나님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입니다. 

미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대통령은 링컨이라고 합니다. 그가 대통령에 당선되고 나서 정든 고향을 떠나 워싱턴으로 가게 됐습니다. 천여명이 그를 배웅하기 위해 기차역에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 때 링컨은 저들에게 고별 연설을 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항상 저를 돌보아 주시는 하나님의 도움이 없다면 전 성공할 수 없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도움에 힘입어 성공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도움이 있다면 나는 실패할 수 없습니다. 나와 함께 하시고 여러분들과 함께 하시고 또 선한 일을 위해 어디에나 계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모든 것이 잘 될 것에 대해 확신하며 소망합시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철저하게 하나님만 의지하는 사람을 주목하십니다. 우리가 어떤 상황 어떤 형편 가운데 놓일 지라도 우리는 철저하게 하나님만 의지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와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도 존경을 받게 해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품었습니다. 

다윗은 늘 하나님의 마음을 생각하면서 살았습니다. 우선 다윗은 자신을 향하신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며 늘 감사한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섰습니다. 
시 8:4을 보면 이렇게 노래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권고하시나이까?” 시 114:3을 보면 이렇게 노래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여 사람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알아주시며 인생이 무엇이관대 저를 생각하시나이까?” 

여기서 사람이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에노쉬라는 말입니다. 연약하고 유한한 존재라는 뜻입니다. 깨지기 쉽고 약하디 약한 존재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인자 또는 인생이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아담이라는 말입니다. 흙으로 빚어 만들어진 존재라는 뜻입니다. 무가치하고 쓸모없는 존재라는 뜻입니다.  이토록 연약하고 보잘것없는 자신을 이렇게 귀하게 돌보시고 이렇게 높이시니 감사하다는 고백입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얼마나 자신을 사랑하시는지 그 사랑에 감사한 마음으로 살았습니다. 자신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소중하게 마음속에 간직하며 살았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찬양하고 또 찬양할 수 있었습니다. 
다윗은 자기를 추격하는 사울을 살려준 일이 있습니다. 엔게디 동굴 속에 숨어있을 때 사울이 근처 굴에 쉬러 들어왔습니다. 이 때 다윗의 추종자들이 사울을 죽이자고 강하게 추궁할 때 다윗은 가만히 잠자고 있던 사울의 겉옷자락만을 베었습니다. 

이 때 다윗은 추종자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기 사람들에게 이르되 내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내 주를 치는 것은 여호와의 금하시는 것이니 그는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됨이니라 하고 다윗이 이 말로 자기 사람들을 금하여 사울을 해하지 못하게 하니라”(삼상 24:6-7) 
이 사울 때문에 자기가 십년 동안 이토록 고생을 하고 있습니다. 이 사울 때문에 자기가 언제 죽을지 모릅니다. 이 사울만 죽이면 자기가 손쉽게 왕도 되고 크게 성공할 수도 있습니다. 자기 마음에는 죽이고 싶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렸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이 하나님께서 기름 부으신 왕을 죽이는 것을 원치 않으심을 알게 되었습니다. 죽이고 싶은 자기 마음을 접고 살리라는 하나님의 마음을 따랐습니다. 다윗은 이렇게 자기의 마음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마음을 따랐습니다. 
다윗이 밧세바를 범했습니다. 우리아를 전장 최선봉에 서게 해서 죽게 했습니다. 장례를 치른 뒤에 밧세바를 아예 자기 후궁으로 맞았습니다. 왕이라 자기 마음대로 일을 처리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단 선지자를 보내셔서 하나님의 마음을 알려주셨습니다. “이제 네가 나를 업신여기고 헷 사람 우리아의 처를 빼앗아 네 처를 삼았은즉...”(삼하 12:10)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하나님의 마음이 짓밟혔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다윗이 그 말을 듣는 순간 바로 회개를 시작했습니다.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삼하 12:13) 시 6:6을 보면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내가 탄식함으로 곤핍하여 밤마다 눈물로 내 침상을 띄우며 내 요를 적시나이다.” 감히 자기가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해 드렸고 하나님의 마음을 짓밟았다는 생각에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밤마다 눈물로 회개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다윗은 늘 하나님의 마음을 생각했습니다. 이 일에 대하여 하나님의 마음은 어떨까를 생각했습니다. 자기 마음보다 하나님의 마음을 앞 세웠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마음이 어떤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내 마음을 앞세우지 말고 하나님의 마음을 앞 세워야 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따라 살려고 해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귀하게 여기시고 우리를 높이십니다. 

하나님의 소원을 이루고자 했습니다. 

다윗은 자기를 향하신 하나님의 소원이 무엇인지 늘 생각하고 따르려고 애를 썼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왜 자기 같은 보잘것 없는 사람을 왕으로 세우셨는지 늘 생각했습니다. 

다윗은 그 답을 찾았습니다. “다윗이 여호와께서 자기로 이스라엘 왕을 삼으신 줄을 깨달았으니 이는 그 백성 이스라엘을 위하여 나라를 진흥하게 하셨음이더라”(대상 14:2) 하나님께서 자기를 왕으로 세우신 것은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를 믿음의 반석 위에 굳게 세우고 강성한 나라로 발전시키라는 것임을 깨달은 것입니다. 자기를 왕으로 세우신 하나님의 소원을 발견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 하나님의 소원을 이뤄드리고자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래서 다윗이 왕이 돼서 제일 먼저 한 일은 나라를 믿음의 반석 위에 굳게 세우는 것이었습니다. 예루살렘으로 수도를 옮긴 뒤에 하나의 야심 찬 프로젝트를 추진합니다. 바로 예루살렘을 단지 행정적 정치적 수도가 아니라 영적 수도로 만들고자 한 일입니다. 

이 프로젝트를 위해 벌인 첫 번째 사업이 법궤를 옮겨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를 행진할 때 법궤를 앞 세웠습니다. 요단강을 건너 이 가나안 땅에 들어올 때도 법궤를 앞 세웠습니다. 그리고 여리고를 함락할 때도 법궤를 앞 세웠습니다. 그러니까 법궤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하시는 심벌이었습니다. 
그러나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법궤를 빼앗겼습니다. 나중에 되찾기는 했지만 70년 동안이나 기럇여아림의 한 촌부의 집에 방치되어있었습니다. 다윗이 이제 이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모셔오고자 했던 것입니다. 우여곡절 속에 법궤가 예루살렘으로 모셔 들여짐으로써 온 백성들이 영적으로 하나님의 백성으로 다시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기를 왜 왕으로 삼으셨는지 늘 물었습니다. 그리고 자기를 향하신 하나님의 소원을 늘 마음  속에 품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소원을 향해 최선을 다해 달려갔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귀하게 여기신 것입니다. 그를 높이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모두 소원이 있듯이 하나님께서도 소원을 가지고 계십니다. 우리가 무엇인가를 해 주기를 바라시는 소원이 있으십니다. 그러나 그 하나님의 소원을 외면한 채 우리의 소원만을 추구하면서 살아서는 안됩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7:33) 주님의 소원을 앞세우며 사는 사람들 그들을 하나님께서 귀하게 여기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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