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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교제하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시 3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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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제하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시 32:1-11)

: 1 허물의 사함을 받고 자신의 죄가 가려진 자는 복이 있도다. : 2 마음에 간사함이 없고 여호와께 정죄를 당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 3 내가 입을 열지 아니할 때에 종일 신음하므로 내 뼈가 쇠하였도다. : 4 주의 손이 주야로 나를 누르시오니 내 진액이 빠져서 여름 가뭄에 마름 같이 되었나이다. : 5 내가 이르기를 내 허물을 여호와께 자복하리라 하고 주께 내 죄를 아뢰고 내 죄악을 숨기지 아니하였더니 곧 주께서 내 죄악을 사하셨나이다. : 6 이로 말미암아 모든 경건한 자는 주를 만날 기회를 얻어서 주께 기도할지라 진실로 홍수가 범람할지라도 그에게 미치지 못하리이다. : 7 주는 나의 은신처이오니 환난에서 나를 보호하시고 구원의 노래로 나를 두르시리이다. : 8 내가 네 갈 길을 가르쳐 보이고 너를 주목하여 훈계하리로다. : 9 너희는 무지한 말이나 노새 같이 되지 말지어다 그것들은 재갈과 굴레로 단속하지 아니하면 너희에게 가까이 가지 아니하리로다. :10 악인에게는 많은 슬픔이 있으나 여호와를 신뢰하는 자에게는 인자하심이 두르리로다. :11 너희 의인들아 여호와를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 마음이 정직한 너희들아 다 즐거이 외칠지어다.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주시기 원하시는 행복을 온전히 누리는 2013년 한 해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저는 지금까지 일본에 다섯 번 정도 갔습니다. 그런데 한 번도 일본에 간 적이 없습니다. 다섯 번이나 일본에 갔다면서 한 번도 간적이 없다는 것이 무슨 말인지 아시겠습니까? 

지난 7일부터 17일까지 스리랑카 현지적응훈련에 다녀왔습니다. 스리랑카의 선교지를 방문하면서 많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위하여 기도해 주신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제가 이번에 받은 은혜는 기회가 있는 대로 성도님들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이번에 스리랑카를 가는 길과 오는 길에도 일본에 들렸습니다. 갈 때는 인천공항에서 우리나라 비행기를 타고 일본 나리타공항으로 가서 그곳에서 스리랑카항공으로 갈아타고 스리랑카로 들어갔습니다. 올 때는 스리랑카항공을 타고 일본 나리타공항으로 와서 비행기를 갈아타고 인천공항으로 돌아왔습니다. 

일본에 갔다는 말과 일본 공항을 거쳤다는 말은 전혀 다릅니다. 일본에 갔다는 말은 일본의 출입국관리소를 통과하여 최소한 공항 밖으로 나가야 할 것입니다. 일본에 갔다는 것은 일본의 거리를 걷고, 일본 사람을 만나고, 일본의 풍물을 구경하고, 일본에서의 업무를 처리하였다는 것일 것입니다. 저처럼 일본 공항에서 단지 비행기를 갈아타는 일을 하였다면 백 번을 일본 공항에 들려도 일본에 간 것은 아닐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사람을 안다는 것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그 사람의 이름만 아는 것으로 그 사람을 아는 것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내가 그 사람을 알 뿐만 아니라, 그 사람도 나를 알아야 아는 것입니다. 그리고 깊은 교제가 있어야 진짜로 아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겉으로 드러난 몇 가지 정보를 알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에 대하여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주일 예배에 참석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는 안심할 수 없습니다. 정말로 하나님께 대하여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과 교제하여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어떻게 알고 계시는가 하는 것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은 하나님을 예배함으로 쌓여가는 것입니다. 여기에 행복이 있습니다.

이제 다른 사람과 교제하는 사람의 행복을 배우려고 합니다.  

오늘 말씀은 ‘행복하여라!’라는 말씀으로 시작됩니다. 전혀 죄가 없는 사람이 아니라, 죄를 용서 받은 사람의 행복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의 전체 주제는 하나님께 용서받는 사람의 행복입니다. 이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과의 관계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사람과의 관계 즉 교제에 대한 말씀을 들으려고 합니다.  

I. 교제  

오늘 말씀에서 하나님과 관계를 깨뜨리는 것이 무엇인지를 볼 수 있습니다. 이로써 사람들 사이의 교제가 아닌 것이 무엇인지도 알 수 있습니다. 아닌 것을 통하여 진짜를 배우도록 하겠습니다.

교제가 아닌 것은 무엇입니까?
1절 말씀입니다.

: 1 허물의 사함을 받고 자신의 죄가 가려진 자는 복이 있도다.

오늘 성경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행복한 사람이 누구인지 말씀하십니다. 1절 말씀에서 ‘허물[[v'P,/페솨]’은 본래 ‘반역하다’, ‘거역하다’는 말에서 왔습니다. 그래서 “복되어라! 거역한 죄 용서받고 허물을 벗은 그 사람!”[새번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허물이 벗겨지고 죄가 가려진 사람이 행복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사람들과의 관계에도 무리 없이 적용될 수 있습니다. 사람과의 사이에도 허물이 없어야 행복합니다. 허물이 있으면 교제를 깨뜨리게 됩니다.

1. 교제는 허물이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에 허물이 없는 사람은 있을 수 없습니다. 인간의 본성은 반역하고 위반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허물은 서로의 관계를 깨뜨립니다. 자신은 다른 사람을 배신하면서도 자신을 배신하는 사람은 용서하지 못하는 것이 사람의 심리입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허물이 없을 수는 없고, 그 허물이 교제를 깨뜨린다면 우리에게는 허물을 벗어던져 버릴 수 있는 해결방법이 있어야 합니다.   

또 교제가 아닌 것은 무엇입니까?
2절 전반절 말씀입니다.

: 2a마음에 간사함이 없고,

2절 역시 ‘행복하여라!’라는 말로 시작합니다. 어떤 사람이 행복한 사람입니까? 마음에 간사함이 없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입니다. 여기에서 ‘간사함[ hY:mir/레미야]’은 ‘게으름’, ‘배반’, ‘속임’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마음에 속임수가 없는 그 사람! 그는 복되고 복되다!’[새번역]고 할 수 있습니다. 교제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간사한 사람이라고 여겨지면 그 사람과의 관계는 깨어지게 됩니다.

2. 교제는 간사가 없는 것입니다.

가끔 자기 혀를 깨무는 경우가 있습니다. 매우 피곤하다든지 하는 경우에 혀를 깨물게 됩니다. 본능적으로 입 안의 혀는 이빨에 깨물리지 않게 움직이게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입 안의 혀와 같다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의 비위를 잘 맞추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간사한 사람은 이용당할지는 몰라도, 믿고 일을 맡기며 교제하기는 힘이 듭니다. 사람의 마음을 훔치려는 간사함은 처음에는 교제에 도움이 될 수 있을지 몰라도 깊은 교제를 깨뜨리게 됩니다.

또 교제가 아닌 것은 무엇입니까?
2절 후반절 말씀입니다.

: 2b여호와께 정죄를 당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행복한 사람은 하나님께서 죄 없는 자로 여겨주시는 사람입니다. 여기에서 ‘정죄[@wO[;/아본]’는 ‘사악함’, ‘타락’, ‘죄에 대한 가책이나 처벌’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죄라고 단정하신다면 그 사람은 하나님 앞에 설 수 없습니다. 그러니 하나님께 정죄를 당하지 아니하는 사람이 행복합니다. 만약 하나님께나 다른 사람에게 정죄 받고 있다면 불안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따져 물어야 할 죄가 있다면 관계는 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3. 교제는 정죄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서로 ‘내가 잘했다’고, ‘네가 잘못했다’고 삿대질을 하기 시작한다면 교제는 깨어지게 됩니다. 그렇다고 피차 하기 싫은 말을 꾹 참는 것도 어느 정도지, 이것이 쌓여서 폭발하게 되면 완전히 관계가 어그러집니다. 정죄 받을 일을 전혀 하지 않던가, 정죄할 일이 있어도 정죄하지 않아야 하는데 사람에게는 둘 다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행복을 빼앗기고 있습니다.  

또 교제가 아닌 것은 무엇입니까?
3절 말씀입니다.

: 3 내가 입을 열지 아니할 때에 종일 신음하므로 내 뼈가 쇠하였도다. 

시편 32편은 ‘다윗의 시’라는 표제가 붙어있습니다. 여기에는 다윗의 개인적인 삶이 녹아있습니다. 다윗은 잘못하고도 입을 다물고 자신의 죄를 고백하지 않은 적이 있었습니다. 아마도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와 불미스러운 관계였을 것입니다. 그 때, 그는 온종일 끊임없는 신음으로 그의 뼈가 녹아내리는 듯한 경험을 하였습니다. 하나님께 잘못을 아뢰어야 하는데 아뢰지 않으려니 뼈가 녹아내리는 고통이었습니다. 더욱이 하나님께서 그 손으로 그를 내리누르는 듯한 지경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4절 말씀에 있는 그대로 ‘내 진액이 빠져서 여름 가뭄에 마름 같이 되었나이다.’였습니다. 하나님께 죄를 고백하여야 하는데 하지 않으려니 너무나 크나큰 고통이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막혀버렸던 것입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무엇으로 막혀버리면 더 이상 교제는 없습니다. 

4. 교제는 막힘이 없는 것입니다.

옛날에 ‘뚫어!’ 하는 말이 있었답니다. 그것은 연통을 뚫어준다는 말이었습니다. 연통에 그을음이 가득 차서 막히게 되면 연기가 빠져나가지 않아서 불이 제대로 피지 않습니다. 그러면 연통을 분해해서 그을음을 털어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막힘없이 연기가 빠지게 되고 불이 제대로 타게 됩니다. 시골교회에서 겨울이면 여러 번 연통을 털어 주었습니다. 연통이 막히면 불이 타지를 않습니다.

요즘 건강을 위협하는 심각한 것들 중에 하나는 혈관이 좁아지는 것이라고 합니다. 혈관에 노폐물이 쌓여서 좁아지면 혈압이 올라가고, 혈압이 올라가서 엉뚱한 곳의 혈관이 터질 수 있습니다. 더욱이 뇌의 혈관이 막히고 터지면 생명이 위험합니다. 

인간관계가 막히면 이 역시 큰일입니다. 관계가 꼬이면 될 일도 안 됩니다. 교제는 막힘이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교제는 예배입니다. 그래서 예배하는 사람이 행복합니다. 사람과의 교제는 사귐입니다. 사람은 사귐이 있을 때 행복한 사람이 됩니다. 우리는 교제하는 사람의 행복을 누려야 합니다.
  

II. 행복  

우리는 오늘 말씀에서 교제가 아닌 것이 무엇인지와 함께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길을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교제를 회복하는 사람에게 주시는 행복입니다. 어떤 행복을 누리는 것입니까?

5절 말씀입니다.

: 5 내가 이르기를 내 허물을 여호와께 자복하리라 하고 주께 내 죄를 아뢰고 내 죄악을 숨기지 아니하였더니 곧 주께서 내 죄악을 사하셨나이다.

다윗이 그의 죄를 고백하지 않을 때에는 그의 뼈가 녹아내리는 듯한 고통이 있었습니다. 그가 죄를 고백하지 않을 때에 그의 진액이 빠져서 여름 가뭄에 마름과 같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드디어 그는 그의 죄를 하나님께 아뢰며 그의 잘못을 덮어두지 않고 털어놓았습니다. “내가 주님께 거역한 나의 죄를 고백합니다.”고 하였습니다. 그렇더니 하나님께서는 그의 죄악을 기꺼이 용서하셨습니다. 이것이 다윗이 하나님께 용서 받은 기쁨이었습니다. 하나님과의 막힘이 뚫어지고 소통되었습니다. 사람과도 소통되어야 합니다.

1. 소통 되는 사람의 행복입니다.

힘들고 어렵게 보이는 관계도 소통이 되기 시작하면 행복한 관계가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소통을 위해서는 하나님께 자신의 죄를 고백하는 회개가 필요합니다. 다른 사람들과의 소통을 위해서는 자신의 실수를 고백하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소통을 가로막는 것이 있다면 그것을 피하여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해결하기 위하여 과감하게 뛰어드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렇게 할 때 함께 어우러지는 기쁨을 맛보게 됩니다.

올 해에는 우리교회의 성도들이 더욱 더 잘 소통되는 행복이 있기를 축복합니다. 가정에서는 가족 간에 친밀한 소통이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사회가 넉넉히 소통하는 사회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남북 간에도 소통의 첫걸음이 열려지기를 축복합니다. 

여러분의 삶에 막힌 것이 뚫어지는 소통의 행복을 축복합니다.  

교제하는 사람에게 어떤 행복이 있습니까?
6절 말씀입니다.

: 6 이로 말미암아 모든 경건한 자는 주를 만날 기회를 얻어서 주께 기도할지라. 진실로 홍수가 범람할지라도 그에게 미치지 못하리이다.

이 말씀은 경건한 사람은 고난을 받을 때, 하나님께 기도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기도하면 고난이 홍수처럼 밀어닥쳐도 그에게는 미치지 못할 것입니다. 홍수처럼 고난이 밀려온다고 할지라도 기도는 그것을 이길 수 있는 힘을 주십니다. 기도는 고난을 이깁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우리가 생각하여야 할 것이 있습니다. 고난을 겪을 때 우리가 기도하기만 하면 우리의 고난이 봄에 눈이 녹아 없어지듯이 사라진다는 말입니까? 기도는 고난을 사라지게 하는 특효약이라도 되는 것입니까? 우리가 고난을 겪으면서 부르짖을 때 하나님은 우리의 고난을 어떻게 해결해 주십니까?

8절 말씀입니다.

: 8 내가 네 갈 길을 가르쳐 보이고 너를 주목하여 훈계하리로다.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나는 너를 가르쳐 네 갈 길을 배우게 하고 너를 눈여겨보며 이끌어 주리라.”[공동]고 하십니다. 우리가 고난을 겪으면서 기도해도 당장 그 고난이 사라지지 않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기도해도 우리를 괴롭히는 문제들이 금방 사라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기도하면 하나님은 우리가 가야할 길을 가르쳐 주신다는 것입니다. 어려움이 당장 사라지는 않지만 어려움을 헤치고 나갈 수 있도록 이끌어주십니다. 그래서 9절 말씀은 ‘너희는 무지한 말이나 노새 같이 되지 말지어다.’고 하십니다. 고집을 부리지 말고 겸손하게 하나님께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부디 철없는 말이나 노새처럼 되지 말아야 합니다. 기도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지혜를 들어야 합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게서 배워야 합니다.

2. 훈계 받는 사람의 행복입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을 설득시키려고 고집을 부리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는 하나님에게서 듣는 것입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과 교제하는 것은 가르치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교제는 듣고 배우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배우는 행복이 있습니다. 

공자의 말에 “삼인행 필유아사언(三人行 必有我師焉)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는 세 사람이 함께 가면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다는 것입니다. 세 명이 함께 가면 그중 하나는 나 자신일 것입니다. 두 사람 가운데 한 명이 어질고, 한 명은 어질지 못하다면 어진 사람의 행동은 배우고, 어질지 못한 사람의 행동을 보면서 내 행동을 스스로 살핀다면 선과 악이 모두 나의 스승이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서로에게서 배워야 합니다. 좋은 모습을 보면서 그렇게 하여야 할 것을 배워야 합니다. 좋지 않은 모습을 보면서 그렇게 하지 말아야 할 것을 배워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을 통하여도 배워야 합니다. 교회는 세상과 소통하여야 합니다. 교회가 세상을 닮아가야 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는 돌멩이들이 지르는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배우려는 자세를 가지면 행복합니다.

세상의 어떤 사람에게서라도, 어떤 고난 중에서도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을 배우는 행복한 사람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교제하는 사람에게는 또 어떤 행복이 있습니까?
10절 말씀입니다.

:10 악인에게는 많은 슬픔이 있으나 여호와를 신뢰하는 자에게는 인자하심이 두르리로다.

이 말씀에서 교제와 관련하여 우리가 기억하여야 할 것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한결같은 사랑이 넘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도 신뢰를 쌓을 때 행복하게 됩니다.

3. 신뢰 받는 사람의 행복입니다.

우리가 교제하는 것은 서로에 대한 신뢰를 쌓아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행복합니다.

한 때 이런 유머가 유행하였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이 목욕탕에 갔는데 아버지가 탕 속에 들어가면서 “아, 시원하다.”라고 했다고 합니다. 그 말을 듣고 아들이 뜨거운 탕에 들어갔다 뛰어 나오면서 하는 말이 “세상에 믿을 놈 하나 없네!”였다지요.

어느 기자가 유명한 도둑과 인터뷰하였습니다. 기자가 “왜 혼자 일을 합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 도둑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면서 근엄하게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세상에 어디 믿을 놈 있어야 지요.”

우리는 서로 믿어주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어쩌면 다른 사람에게 속아도 여간해서는 속이 쓰리지 않고 태연해지는 법을 연습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행복해지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을 믿기에 사람을 믿는 연습을 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신뢰받는 사람이 되어가야 합니다. 믿음직한 사람의 행복을 누려야 합니다.

더욱 신뢰할 수 있는 나 자신이 되어 지기를 소망합니다.  

교제하는 사람에게 또 어떤 행복이 있습니까?
11절 말씀입니다.

:11 너희 의인들아 여호와를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 마음이 정직한 너희들아 다 즐거이 외칠지어다. 

여기에서 주목하려는 말씀은 ‘마음이 정직한’이라는 말입니다. 여기에서 ‘정직한[rv;y:/야솨르]’이라는 말은 ‘곧은’, ‘똑바른’, ‘정확한’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올곧고 똑바른 마음을 가진 사람을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십니다. 정직한 사람을 행복하게 하십니다.

4. 정직한 사람의 행복입니다.

사람이 신뢰를 쌓아간다는 것은 하루아침에 되는 것이 아닙니다. 교제를 통하여 서로의 관계를 쌓아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어렵게 쌓여진 신뢰가 하루아침에 무너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에게 정직하여야 합니다. 허물이 생기고 간사해지고 정죄할 일이 생길 때 정직할 수 있는 용기를 가져야 합니다. 이것이 교제로 신뢰를 쌓아가는 길입니다. 이것이 행복해지는 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처음 창조하셨을 때 그들에게 한없는 행복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 행복을 제멋대로 사용했습니다. 그래서 천사들이 사람의 행복을 회수하고, 그 행복을 어디다 숨겨놓아야 할지 의논했습니다. 

“행복을 저 깊은 바다 밑에 숨겨놓으면 어떨까요?” 

천사장이 고개를 흔들었습니다. 

“그건 안 돼. 인간은 머리가 비상하기 때문에 바다 속쯤은 금방 뒤져서 행복을 찾아낼 수 있을 거야.” 

“그러면 행복을 저 높은 산꼭대기에 숨겨 놓으면 어때요?” 

“인간의 탐험정신 때문에 아무리 높은 산 위에 숨겨두어도 그 행복을 찾아내고 말 것이야!”

한참 고민을 하며 의논한 끝에 결론을 내렸습니다. 

“인간의 마음속에 숨겨두기로 합시다. 아무리 저들의 두뇌가 비상하고 탐험심이 강해도 행복이 자기들 마음속에 숨겨져 있는 것은 좀처럼 찾아내기 어려울 거요. 그래도 찾아낸다면 그 사람은 행복을 누릴 자격이 있지요.”

그래서 행복은 각 사람의 마음속에 있답니다. 마음속에서 행복을 찾아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가 행복하기를 원하신다는 사실을 믿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런 하나님을 예배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서로 교제합니다. 서로의 가슴 속에 숨은 행복을 찾아주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교제를 가로막는 것이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그래서 말씀에 순종하여 교제를 가로막는 것들을 조심스럽고 지속적으로 제거하여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조금씩 더 행복한 사람이 되어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음으로 참으로 행복한 사람, 하나님을 예배하고 사람들과 교제하는 사람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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