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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내가 주께 은총을 입었거든 (출 34: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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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주께 은총을 입었거든 (출 34:5-10) 

미국 커버넌트신학교의 실천신학 교수인 <리처드 윈터>가 쓴 『지친 완벽주의자를 위하여』라는 책에 보면 주기도문의 틀을 빌려서 쓴 <완벽주의자의 기도>라는 기도문이 나옵니다. 

<<하늘에 계실지도 모르는 그들의 아버지, 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 나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나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오늘 일용할 양식을 내가 벌 것이며(나는 당신이 주실 것을 믿지 못하겠나이다).지은 죄들이 너무나 많기에, 그리고 또 언젠가는 반드시 죄를 지을 것이 분명하기에 나는 도저히 내 죄를 용서할 수 없을 것 같나이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항상 나에게 상처만 주는데, 내가 왜 그들을 용서해야 하는지 도저히 모르겠나이다. 게다가 그들은 무엇 하나 제대로 하는 것이 없나이다. 내게는 스스로 악에 빠지지 않을 능력이 있으니 정말 감사하나이다. 하나님이 처음부터 이 세상을 지으실 때 잘하셨더라면 제가 그 모든 유혹을 참아 내지 않아도 되지 않았겠습니까?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영원히 나의 것이니이다. 아멘.>> 

이 우스꽝스러운 기도문에서 보듯이 완벽주의자는 완벽하려고 노력할 뿐만 아니라, 자신이 노력하면 얼마든지 완벽해질 수 있다고 믿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완벽주의자는 완벽하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게 됩니다. 저자는 세상 사람이 매우 피곤하게 사는 이유 중 하나가 완벽주의 때문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완벽주의자는 벗은 옷도 똑바르게 개어 놓아야 마음이 놓입니다. 단추 하나만 풀려도 마음에 안 들어 합니다. 구두도 늘 반들반들해야 하고, 차도 밤낮 세차를 해야 마음이 놓입니다. 연필도 끝을 뾰족하게 깎아 두어야 안심이 됩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 당시의 완벽주의자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율법 조항 하나라도 지키지 못하면 큰일 나는 줄 생각했습니다. 그러다보니 늘 불안했고, 늘 긴장 속에서 초조해했습니다. 

종교개혁자인 <마틴 루터>도 그러했습니다. 그는 티끌만큼이라도 죄가 남아 있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수시로 고해성사를 했는데, 어떤 때는 몇 시간씩 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한 후 돌아가다가 죄가 또 생각나면 다시 돌아와 고해를 계속하곤 했습니다. 고해하는 루터보다 그것을 들어주어야 했던 신부가 죽을 맛이었습니다. 

<리처드 윈터>교수는 사람들은 누구에게나 이런 면이 있다고 합니다. 모델의 멋진 사진을 본 후 자신의 몸매를 거울에 비추어보고 한숨을 쉰 경험이 있다면 그 사람도 완벽주의자라고 지적합니다. 모델처럼 날씬하고 완벽한 몸매를 가지게 될 때까지 애를 쓰면서 스트레스를 받을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거울 앞에 설 때마다 괴로울 것입니다. 

헬스장에서 열심히 뛰는 여성들은 헬스장에 오지 않아도 될 만한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오히려 너무 날씬하다 못해 말라서 <저러다 쓰러지지....>하는 생각이 듭니다. 얼굴도 마찬가지입니다. 콧날이 너무 낮아서, 쌍꺼풀이 아니어서, 턱이 너무 커서...등  등의 이유 때문에 속상해합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성형외과를 찾게 됩니다. 수술한 흔적이 수그러들 때까지 예배까지 빼먹는 이들도 있습니다. 여러분, 속편하게 생긴 대로 사시기 바랍니다. 

완벽주의는 좀 더 바르게 살도록 긴장케 하는 유익이 있습니다만, 완벽주의의 감옥에 갇히고 나면 평생 자유는 없습니다. 어차피 완벽할 수 없는 우리에게 완벽주의는 무서운 감옥이 됩니다. 그렇다면 완벽주의에서 구원을 받는 비결이 무엇일까요? 그 비결은 하나뿐입니다. 자신이 완벽할 수 없는 존재임을 인정하고, 그 부족과 결핍을 채워주실 하나님의 은총을 얻는 것뿐입니다.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완벽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하나님께 은총을 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모세도 한 때 그러했습니다. 그가 바로 왕의 궁궐에서 공주의 아들로서 왕자의 신분으로 성장하여 나이 사십 세가 되었을 때, 그는 자신이 완벽하게 준비되었다고 착각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애굽 사람이 아니고 이스라엘 사람임을 알았을 때, 동족을 도우려 했습니다. 자신은 지도자 수업도 받았고, 무예와 전술도 배웠고, 견문도 넓혔으니, 지도자로서 적격이라고 자부했을 것입니다. 당연히 노예살이를 하는 동족들이 자신을 지도자로 맞아줄 것이라고 믿었을 것입니다. 그는 이스라엘 사람과 싸우는 애굽 사람을 죽이기까지 하면서 동족들에게 다가서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동족들에게 배척당했고, 애굽인을 죽인 것이 탄로나 미디안 광야로 도망해야 했습니다. 

그 때 그의 가장 큰 실수는 은총이 필요함을 알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지도자가 되는 것도 하나님의 은총이 있어야 했는데, 모세는 자신을 완벽한 사람으로 믿었기에 은총의 필요성을 몰랐고 구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그는 은총 없이 사는 사람의 뼈아픈 패배를 경험해야 했습니다. 

그랬던 모세는 미디안 광야에서 은총이 필요함을 아는 사람이 되어갔습니다. 처음에는 누군가 자신을 찾아올 것을 기대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찾아오지 않고, 세월만 무심하게 흘러갔을 때, 스스로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미디안 광야에서 사십 년이 지나 팔십 세가 된 어느 날 하나님께서 호렙산 근처의 떨기나무에 타지 않는 불 가운데 임하셨습니다. 그 날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할 사명을 주어 바로 왕에게로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바로 왕과 이스라엘 사람들 앞에 당당히 설 수 있도록 용기와 그들을 굴복시킬 능력도 주셨습니다. 그가 애굽에 가서 이스라엘 앞에 섰을 때, 백성들이 자신을 지도자로 인정해 주었을 때, 바로 왕도 자신을 어쩌지 못하는 것을 보았을 때에서야 모세는 지도자로 섬기는 것도 하나님의 은총이 주어질 때 가능함을 분명히 알았을 것입니다. 그때부터 그는 은총이 필요함을 아는 사람으로 바뀌었고, 평생 하나님의 은총을 구했습니다. 

오늘 본문은 모세가 하나님 앞에서 다시 한 번 은총을 갈구하는 내용을 보여줍니다. 본문에서 모세가 하나님의 은총을 애타게 구하게 된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이스라엘의 죄악에 진노하신 하나님께서 은총을 거두겠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가 십계명을 비롯한 하나님의 말씀을 받기 위해 시내산에 올라간 후 오랫동안 나타나지 않자 불안을 느꼈습니다. 그들은 아론에게 가서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라>고 했고, 아론은 사람들이 가져온 금붙이를 녹여 금송아지를 만들었고, 백성들은 그 송아지를 여호와 하나님이라고 칭하면서 그 앞에 제사하고 먹고 마셨습니다. 이런 그들의 부패한 행위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진노하셨습니다. 출애굽기 32장 9-10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백성을 보니 목이 뻣뻣한 백성이로다  그런즉 내가 하는 대로 두라 내가 그들에게 진노하여 그들을 진멸하고 너를 큰 나라가 되게 하리라>고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 대해 은총을 거두시려 했습니다. 

이 때 모세는 눈물로 백성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출애굽기 32장 11-13절을 보면 모세의 기도가 나옵니다. 

<모세가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구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어찌하여 그 큰 권능과 강한 손으로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주의 백성에게 진노하시나이까  어찌하여 애굽 사람들이 이르기를 여호와가 자기의 백성을 산에서 죽이고 지면에서 진멸하려는 악한 의도로 인도해 내었다고 말하게 하시려 하나이까 주의 맹렬한 노를 그치시고 뜻을 돌이키사 주의 백성에게 이 화를 내리지 마옵소서  주의 종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을 기억하소서 주께서 그들을 위하여 주를 가리켜 맹세하여 이르시기를 내가 너희의 자손을 하늘의 별처럼 많게 하고 내가 허락한 이 온 땅을 너희의 자손에게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리라 하셨나이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기도를 들으셨습니다. 그 다음에 보면 <여호와께서 뜻을 돌이키사 말씀하신 화를 그 백성에게 내리지 아니하시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죄는 용서받았지만, 아직 치명적인 문제가 남아 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용서하시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하신 약속을 지키기 위해 가나안 땅을 주신다고는 했지만, 더 이상 그들과 함께 가지는 않으시려고 하셨다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32장 34절을 보면 <이제 가서 내가 네게 말한 곳으로 백성을 인도하라 내 사자가 네 앞서 가리라>고 되어 있습니다. <내 사자를 보내겠다>, 이게 문제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직접 가시는 게 아니라, 사자를 보내겠다고 하신 것입니다. 모세는 큰 위기를 느꼈습니다. 하나님의 사자가 그들을 인도하면 가나안 땅을 얻을 수는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땅은 <하나님 없는 가나안>이 되고 말 것이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 없는 가나안은 축복이 아님을 알았습니다. 하나님 없는 땅, 하나님 없는 재물, 하나님 없는 건강, 이런 것은 참 복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서 그것들을 얻어야 참된 복임을 모세는 잘 알고 있었습니다. 

이 때 모세는 하나님의 은총을 간곡하게 구하였습니다. 출애굽기 33장 16절에 모세의 이런 기도가 있습니다. <나와 주의 백성이 주의 목전에 은총 입은 줄을 무엇으로 알리이까 주께서 우리와 함께 행하심으로 나와 주의 백성을 천하 만민 중에 구별하심이 아니니이까>  자신들이 은총을 입은 증거로 자신들과 함께 행해 달라고 기도한 것입니다. 은총을 입은 증거는 다름 아닌 <하나님께서 함께 가시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본문 9절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르되 주여 내가 주께 은총을 입었거든 원하건대 주는 우리와 동행하옵소서> 모세는 하나님께서 함께 동행하면서 지속적으로 은총을 부어 주실 것을 간구했습니다. 

모세가 이토록 하나님께서 함께 가 주시길 구했던 이유는 자신들이 얼마나 패역한 백성인가를 알았기 때문이었습니다. 9절 후반부를 보십시오. <이는 목이 뻣뻣한 백성이니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 모세는 자신들이 하나님 앞에서 목이 뻣뻣한, 교만하기 이를 데 없는, 불순종하고 불신앙적인 존재임을 잘 알았습니다. 이러한 자신들의 모습을 알았기에 <하나님께서 함께 가 주시는 은총>을 절실하게 구한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목이 뻣뻣한 존재이며, 은총 없이는 못 산다>는 생각은 모세의 평생에 지속되었습니다. 모세는 백성들이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하게 될 것을 염려하여, 이 사실을 여러 차례 깨우쳐 주었습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와 가나안에 이르게 된 것은 그들이 강하거나 선하거나 의롭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총의 결과임을 백성들에게 알려주었습니다. 

신명기 9장 5절을 보면 <네가 가서 그 땅을 차지함은 네 공의로 말미암음도 아니며 네 마음이 정직함으로 말미암음도 아니요>라고 했고, 6절에서는 <그러므로 네가 알 것은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이 아름다운 땅을 기업으로 주신 것이 네 공의로 말미암음이 아니니라 너는 목이 곧은 백성이니라>고 했습니다.모세는 어떻게 해서든지 백성들이 자신들의 부족함을 깨닫고 하나님의 은총을 입어 살길 원했던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도 모세처럼 은총을 구해야 합니다. 신앙의 가장 기본적인 깨달음은 은총이 필요함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존재인가를 정확히 알아야 합니다. 아무리 겸손해지려고 해도 진정으로 겸손할 수 없고, 아무리 정직하려 해도 정직하지 못하고, 아무리 사랑하고자 해도 미움이 생기고, 아무리 성실하고자 해도 게으른 존재임을 알 때 비로소 하나님의 은총을 구할 마음이 생길 것입니다. 지금 인생을 별 문제없이 잘 살고 있는 것처럼 보여도 반드시 은총을 구해야 합니다. 

또 과거에 많은 은총을 받은 사람도 은총을 지속적으로 구해야 합니다. 은총은 한 번 받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은혜는 받고, 또 받아야 합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구원의 은혜를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죄성이 우리 안에 남아 있고, 마귀가 우리를 공격하여 쓰러뜨리려고 계속 노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은총은 우리로 하여금 죄와 마귀를 이기도록 도와줄 것입니다. 

은총을 입어야 할 또 다른 이유는 은총을 얻어 사는 동안에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돈독해지지만, 은총이 끊어지는 순간 하나님과의 관계도 끊어지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금송아지 사건으로 하나님의 진노를 받았지만, 모세가 은총을 구하는 기도를 드리고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으심으로써 다시 하나님의 백성으로 회복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관계 회복을 알리기 위해 새로운 언약을 선포하셨습니다. 10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보라 내가 언약을 세우나니 곧 내가 아직 온 땅 아무 국민에게도 행하지 아니한 이적을 너희 전체 백성 앞에 행할 것이라 네가 머무는 나라 백성이 다 여호와의 행하심을 보리니 내가 너를 위하여 행할 일이 두려운 것임이니라> 아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은총을 통해 다시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고, 가나안 땅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현재 자신이 어떤 죄 때문에 하나님의 은총에서 멀어진 것처럼 느낀다면 더욱 더 은총을 구해야 합니다. 

은총은 평생 필요합니다. 시편 30편 4-5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주의 성도들아 여호와를 찬송하며 그의 거룩함을 기억하며 감사하라  그의 노염은 잠깐이요 그의 은총은 평생이로다 저녁에는 울음이 깃들일지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오리로다> <은총은 평생이로다> 할렐루야! 평생 은총을 구하는 진지한 기도를 드리시길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은총을 구하는 자의 기도를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모세의 기도에 어떻게 응답하셨습니까? 출애굽기 33장 17절을 화면을 보면서 함께 읽어봅시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가 말하는 이 일도 내가 하리니 너는 내 목전에 은총을 입었고 내가 이름으로도 너를 앎이니라> 아멘! <너는 내 목전에 은총을 입었고....>라고 하셨습니다. 

또 출애굽기 32장 13-14절을 읽겠습니다. <내가 참으로 주의 목전에 은총을 입었사오면 원하건대 주의 길을 내게 보이사 내게 주를 알리시고 나로 주의 목전에 은총을 입게 하시며 이 족속을 주의 백성으로 여기소서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친히 가리라 내가 너를 쉬게 하리라> 아멘!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은총을 베푸셔서 <내가 친히 가리라>고 응답하셨습니다. 우리가 은총을 구하는 기도를 드릴 때도 이렇게 응답해 주시길 기원합니다. 

성경의 모든 인물들은 다 은혜, 은총 안에서 살았습니다. 다윗의 고백을을 보십시오. <주를 두려워하는 자를 위하여 쌓아 두신 은혜 곧 주께 피하는 자를 위하여 인생 앞에 베푸신 은혜가 어찌 그리 큰지요> 

시편 31편 19절 말씀입니다. 또 고린도전서 15장 10절에서 바울 사도는 <그러나 나의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전 생애도 은총이 흐르는 삶이 되길 기원합니다. 그리하여 오랜 후에 <아 하나님의 은혜로 이 쓸데없는 자 왜 구속하여 주는지 난 알 수 없도다. 내가 믿고 또 의지함은 내 모든 형편 잘 아는 주님, 늘 돌보아 주실 것을 나는 확실히 아네>라고 찬송할 수 있길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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