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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삼겹줄 교회 (전 4: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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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겹줄 교회 (전 4:7-12)

삼형제를 둔 어느 아버지가 임종이 가까이 왔습니다. 그런데 쉽게 눈을 감을 수가 없어요. 왜냐하면 이 삼형제는 만나면 늘 다투거든요. 생각이 달라도 너무 달라요. 이 삼형제를 두고 갔다가는 이 집안 꼴이 어떻게 될질 모르겠어요. 아버지는 생각하다가 한 지혜가 떠올랐습니다. 침상 곁으로 세 아들을 불렀습니다. 그리고 그 아들들에게 화살을 하나씩 주었습니다. “이 화살을 한 번 꺾어보아라.” 아들들은 쉽게 화살 하나를 꺾을 수 있었습니다. 

그 다음에 두 개씩 쥐어주었습니다. 두 개는 좀 힘들지만 노력을 하면서 끙끙 댔더니 두 개도 꺾어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다음에는 화살 세 개씩 아들들에게 나누어주었습니다. 이 세 개를 한꺼번에들고 한 번에 꺾어보아라. 안꺾어지는거예요. 아무리 힘을 써보고 끙끙대되 안되는거예요. “아버지 안되는데요. 이 세 개를 모으니 너무 강해서 안되는데요.” 

아버지는 그 때서야 이야기합니다. “바로 너희들 하나 하나가 이 화살과 같단다. 너희 한 사람 한 사람이 각자 흩어지면 이 하나의 화살처럼 쉽게 부러질 수 있어. 인생의 실패자가 될 수 있어. 그러나 너희 셋이 함께 모이면 너희는 강한 화살이 되어서 어느 누구도 꺾을 자가 없을거야. 너희는 하나가 되야해” 하면서 아버지는 유언을 남겼다고 합니다. 아들들은 아버지의 임종후에 그 깨달음을 가슴 깊이 세기고 삼형제가 서로 마음을 합할 때 아버지 때보다도 더 크게 가업을 일으켰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됨이란 너무나도 중요한 것입니다. 오늘 이 시대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분열과 나뉨입니다. 가정이 나눠집니다. 부모와 자식간에 부부간에 형제간에 나누어집니다. 교회 공동체가 나누어집니다. 사회가 나누어집니다. 진보라는 이름으로, 보수라는 이름으로. 나라사랑하는 마음은 똑같은데 방법이 다를 뿐입니다. 

때로는 한국교회도 교리적으로 나누어질 때가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은 같은데 그 표현이 양상이 달라서 서로를 적대시 할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 된다는 것은 너무나도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태백에 가면 예수원이라고 하는 아주 훌륭한 영성센타가 있습니다. 벤 토레이라고 하는 신부님이 섬기는데 이분은 원래 외국인지만 8살 때 아버지를 따라서 한국에서 생활을 하다가 다시 미국에 가서 생활하다가 50세가 넘어서 다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는 그 예수원을 섬겨가고 있고 한국교회를 위해서 기도하는 아주 훌륭하신 존경할만한 신부님입니다. 

그런데 한 번은 그분이 그런 고백을 해요. 언제부터인가 한국교회를 위해서 기도할 때마다 눈물이 흐른데요. 또 남북통일을 생각만하면 눈물이 흐른데요. 여러분 우리가 남북통일 얘기해도 여러분 눈물흘리는 사람 못봤어요. 통일 됐으면 좋지만 안되면 뭐 그만이죠. 그런데 그 분은 외국인인데도 남북을 생각하면 눈물이 흘러서 견딜수가 없다는 거예요. 저 북한에 동포들을 생각하면 견딜수가 없다는거예요. 그래서 그 분은 남북통일을 위해서 끊임없이 기도해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남북통일을 위해서 준비하는 그런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 예수원 위에 높은 언덕정상이 있는데 거기에 남북통일 이후에 통일을 준비하는 학교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런 준비 안하는데 외국인이 와서 기도하며 그 준비를 하고 있어요. 그러면서 그는 말합니다. 남북통일보다 먼저 준비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한국교회의 하나됨입니다. 한국교회가 하나되지 않으면 절대로 남북통일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또 남북 통일이 이루어진다고 한들 결코 유익하지 않을 것입니다. 교회가 먼저 하나되는 것이 급선무이고 우선이라고 그는 이야기합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하나됨이 이렇게 중요한거예요. 우리가 올해 실천목표로 “일치와 화합으로 하나되어 지역사회를 섬기는 교회”가 되자고 그렇게 모토를 내걸었습니다. 섬기는 것 물론 중요합니다. 그러나 전제가 있습니다. 일치와 화합이 되지 않으면 우리가 하나 되지 않으면 효율적인 섬김을 이룰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그 전제조건은 바로 하나됨이고 일치와 화합입니다. 

여러분 오늘 성경은 우리에게 하나되는 것이 어떤 것인가를 우리에게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그 예로 먼저 8절을 보니까 홀로사는 어떤 사람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형제도 없고 자식도 없이 혼자 사는데 돈을 많이 벌어도 행복하지 않습니다. 열심히 일해도 보람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 후에 이어지는 말씀들은 한 사람보다 두사람이 서로 수고하는 것이 아름답다라고 이야기합니다.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오늘 성경은 증언합니다. 

자 오늘 우리 9절 말씀을 다시 한번 읽어보십니다.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그들이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을 것임이라” 아멘.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더 났다. 한 사람은 외롭지만 두 사람은 서로 기댈수 있기 때문에 그리고 그들이 협력할 때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그것만이 아닙니다. 전쟁에 나가는 사람도 둘이면 승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자 12절 말씀을 또 읽어볼까요.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맞 설 수 있나니 세 겹줄을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 아멘. 

한 사람이면 패하지만 둘이 힘을 합치면, 셋이 힘을 모으면 승리할 수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세겹줄은 쉽게 끊어지지 않는다. 옛날 성경을 보면 이것을 삼겹줄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세 개의 줄이 모이면 강한 줄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삼겹줄은 강하다”라는 것입니다. 저는 이 본문을 보면서 ‘아 우리교회가 진정으로 지역을 섬기고 세상을 섬기려면 삼겹줄 같은 성도가 되고, 삼겹줄 같은 교회가 되야 된다.’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모래 알처럼 흩어지는 교회, 흩어지는 성도는 아무런 일도 할 수 없어요. 

그러나 우리가 삼겹줄처럼 모이면 서로 합하면, 하나가 되면 우리는 강한 교회가 될 수 있다는 거예요. 결코 패하지 않는 교회, 효과적으로 세상을 섬기는 교회, 그리고 영적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교회는 바로 삼겹줄교회가 되야할 줄 믿습니다. 하나 될 때 힘이 있고 능력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정말 우리가 지향하는 우리가 추구하는 건강한 교회 삼겹줄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될까요?

삼겹줄 교회가 되려면 첫 번째 우리는 협력해야 됩니다. 
한 번 따라서 해보세요. “서로 협력해야 됩니다.” 그렇습니다. 힘을 모으고 뜻을 모으는 그런 전제가 필요합니다. 우리 9절을 다시 한 번 제가 읽어봅니다.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그들이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을 것임이라” 어걸 다른 번역으로 읽으면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그들이 함께 협력하여 일함으로써 좋은 결과를 얻을 것이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일 할 때 협력해서 함께 동역하면 그 결과가 더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전에도 어르신들이 모여서 새끼줄을 꼬을 때가 있습니다. 새끼줄을 꼬고 멍석을 마실 때 혼자 일하는 법을 못봤어요. 동네 아저씨들이 같이 모여서 같이 이야기 하면서 콧노래를 부르면서, 또 야식도 먹으면서 함께 일하면 그 일이 즐거운 거예요. 그러나 혼자 일하면 그것은 얼마 못가서 지루하고 피곤하고 지치는 것입니다. 같이 일하면 즐거운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시너지 효과라 그렇게 부릅니다. 실제로 소 한 마리가 달구지를 끌고 갈 때 그 달구지에 한 6톤정도의 짐을 끌고 갈 수 있다고 합니다. 소가 굉장히 힘이 쎄죠. 

예수님께서 승천하시면서 제자들에게 뭐라고 그랬어요. “너희는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성령을 받기 까지 이 예루살렘에서 기다려라.” 그들은 각자 자기 집에서 기도하면서 기다리지 않았습니다. 마가의 다락방에 120명의 문도가 모여서 집중적으로 기도하면서 기다렸더니 거기에 성령 충만이 임하는 거예요. 모여서 기도할 때 역사가 일어나는 거예요.

사도행전 1장 14절에 보니까 “여자들과 그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과 더불어 마음을 같이 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니라.” 그럴 때에 거기에 성령 강림이 임하는 거예요. 예수님께서도 마찬가지예요.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그리고 우리의 구주이시지만 그분도 함께 기도하기를 원하셨어요. 

예수님이 십자가를 앞에 놓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결단의 기도를 드리시며 말했어요. “주여 할 수만 있거들랑 이 잔을 내게서 피하게 하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예수님도 내가 심히 죽게 되었다고 내가 슬프다고 자신의 심정을 토로하셨습니다. 그러면서 특별히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에게 “너희는 나와 함께 기도하자.” 라고 말씀하셨어요. 그런데 베드로, 야고보와 요한은 그 시간에 기도하지 못했어요. 육신적인 피곤함을 이기지 못해서 그들은 결국 깊이 잠들어 버리고 말았어요. 예수님이 세 번이나 깨웠지만 그들이 일어나지를 못했습니다. 결국 예수님은 그들을 깨우셨습니다.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그러시면서 그들을 일으켜 세우셨어요. 그리고 “가자 나를 잡으러오는 자가 왔다”고 말씀하십니다. 

사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지만 그 제자들의 기도의 동역이 필요했어요. 근데 예수님은 결국 그 위로를 받지 못하셨어요. 얼마나 마음에 안타까워 하셨을까요? 만약 제자들이 함께 깨어 기도했더라면 예수님은 얼마나 큰 위로와 격려를 받으셨을까? 그렇지 못했다는 거예요. 그래서 예수님이 뭐라 그랬어요? “너희가 기도할 때 두 사람이 땅에서 함께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그들을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응답 할 것이다.” 한사람의 기도보다 두 사람의 기도를 더 빨리 응답하신다. 

마태복음 18장 20절에 보면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두 세 명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 나도 성령으로 그들과 함께 있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우리가 협력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몰라요. 우리 옆에 분들하고 한번 인사합니다. 우리 협력해서 섬깁시다. 시작. “우리 협력해서 섬깁시다.”

그렇습니다. 교회는 나 홀로가 아닙니다. 이기주의가 아닙니다.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다른 사람과 함께 섬겨 가는 거예요. 그럴 때 거기에 효율이 있고 주님의 뜻이 있는 것입니다. 지난 금요일 날 이단 대책 연구소에 소장이신 신현욱 전도사란 분이 오셔서 우리교회 신천지 특강을 해주셨어요. 그분은 신천지에 20년 동안 몸담고 있었어요. 

20살 때 자기 개척교회 섬기는 목사님이 어느 날 문 닫고 우리 신천지로 가자 그래서 뭣도 모르고 그냥 따라갔데요. 거기가 뭔지도 모르고. 20년 동안 거기 있으면서 거기서 목회자가 됐어요. 목회자가. 그래서 자기가 목회하던 교회가 한 2000명 정도 모이는 신천지 교회를 목회를 했데요. 

근데 자기는 깨달았어요. 이게 사실은 가짜라는 걸 깨달았어요. 이건 사기야. 사기. 그래서 그는 거기서 나왔어요. 그리고 많은 유혹과 협박에도 불구하고 신천지에 대항해서 싸우고 있어요. 그리고 많은 신천지 성도들을 다시 끄집어내고 있어요. 다시 본교회로. 그래서 그를 훈련시켜서 다시 자기 개교회로 다시 돌려보내고 있는 작업을 하고 있는 그런 전도사예요. 

그런데 그분이 그래요. 신천지들이 이 기성교인들을 꼬드겨 낼 때 방법이 그렇다는 거예요. 절대 혼자하지 않는다는거. 혼자인 것 같지만 그 옆에 두 세 명이 꼭 같이 움직인다는 거예요. 그래서 우연히 만난 것 같지만 다 계획적인 만남이라는 거예요. 어떤 사람하고 만나 식사하면 또 우연히 “어~ 저 언니 저기 와있네 우리 같이 동석하죠.” 이래서 보면 다 계획된 사람들이예요. 그리고 가르치는 강사, 바람잡이, 이렇게 세 네 명이 꼭 한사람을 꼬드겨서 결국 끌고 간다는 거예요. 

이렇게 좋은걸 신천지들이 사용하는데 우리는 성경적인 원리를 사용하지 못해요. 이 안타까운 거지요. 전도하려면 혼자 하다가 그냥 힘들어 지쳐버려요. 우리는 기도할 때도 같이해야 되고 전도할 때도 같이 할 때 더 힘이 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교회 교우들이 서로서로 도우고 서로서로 붙들어 줄 수 있는 삼겹줄 같은 성도님들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두 번째로 우리가 건강한 교회 삼겹줄 교회가 되려면 우리는 서로 일으켜 주어야 됩니다. 자 우리 10절 말씀을 읽어볼까요? “혹시 그들이 넘어지면 하나가 그 동무를 붙들어 일으키려니와 홀로 있어 넘어지고 붙들어 일으킬 자가 없는 자에게는 화가 있으리라.” 오늘 성경은 뭐예요? 어떤 사람이 넘어 졌는데 일으켜 줄 사람이 없어요. 그 사람은 불쌍한 사람이예요. 그러나 옆에 누군가 친구가 있다가 ‘어 그 넘어졌네?!’ 하고 일으켜 줄 사람이 있다는 것은 그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여러분에게는 일으켜 줄 만한 성도나 친구가 있느냐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역할은 바로 그런 거예요. 사람들은 누구나 인생을 살면서 넘어질 때가 있어요. 좌절할 때가 있구요. 좌절할 때가 있구요. 절망에 빠질 때가 있어요. 그때 누군가가 나의 옆에서 나를 일으켜 줄 수 있다면 나를 격려해주고 나를 세워 줄 수 있다면 얼마나 큰 힘이 될까요? 그래서 일으켜 줄 수 있는 사람이 있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다. 

우리 권사님들이 눈이 오면 요 앞에가 다 쓸어도 쫌 미끄러워요. 우리 교회 나가는 현관 입구가 조금 경사가 져서. 지난번에도 어떤 권사님이 넘어지셨다구요. 그렇게 넘어지면 정신없어서 혼자 못 일어난다구요. 옆에 지나가던 분이 잡아서 일으켜 줄 때 일으켜줘야 해요. 넘어졌을 때 누군가 일으켜 줄 사람이 필요한거예요. 여러분들이 서로서로를 일으켜 주는 분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그럴 때 우리는 좋은 교회가 되고 삼겹줄 교회가 될 수 있어요. 옆의 형제가 넘어져도 ‘에잇 내 일이 아니니까 나와 상관없으니까’ 아니예요. 힘들고 어려울 때 다가와서 붙들어 주고 위로해주고 세워 주는 사람이 필요해요. 그가 바로 그리스도의 사람이다하는 겁니다. 

특별히 여러분 오늘 이 시대에는 상처 받은 사람이 너무나 많아요. 요즘 세상 살기가 결코 쉽지 않잖아요. 그런 사람이 와서 치료받고 결국 힐링을 경험하는 곳이 바로 교회다는 거예요. 요즘 화두가 힐링이라는 거예요. 사람이 상처가 너무 많아요. 몸이 너무 멍들었어요. 그러니까 누군가가 그들을 치료하고 회복시켜 줘야 해요. 저는 바로 교회가 그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의 이야기 속에 어떤 사람이 여리고를 가다가 강도를 만났어요. 강도 만나 거반 죽게 될 정도로 두드려 맞고 물건을 다 빼앗기고, 그냥 두면 죽게 될거예요. 그러나 사마리아인이 지나가다가 그의 상처를 싸매주고 자기의 나귀에 태워서 그를 주막에 까지 데려다가 그를 치료해주지요. 바로 오늘날 교회는 주막 집 같은 교회가 되어야 해요. 

세상에서 강도 만난 사람들이 교회에 들어와서 위로함을 받고 세움을 입고 격려를 받을 수 있어야 해요. 저는 그것이 바로 오늘 이 시대의 교회의 사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교회에는 늘 따뜻함이 있어야 되지요. 교회에 와서 제일 잘못하는 게 하나 있다면 교회에 와서까지 누구를 비난하고 정죄하는 거예요. 그건 잘못된거예요. 우린 다 상처 받은 사람들이거든요. 그런 우리에게 위로가 필요하고 격려가 필요하고 세워줌이 필요한데. 거기다 대고 또 비판을 하고 정죄를 한다면 어디로 가라는 말입니까? 성경에는 뭐라고 해요? 그리스도 안에는 정죄함이 없다. 그렇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힘들어서 버거워 하는 사람들, 쓰러져 가는 사람들을 일으켜 세워주지는 못할망정 짓밟는다면 이것 너무 안타까운 일이 아닙니까? 

1960년대 미국에 한 때 히피 문화라는 것이 있었어요. 젊은이들이 이 사회에 대한 어떤 반감을 가지고 머리도 안깍고 세수도 안하고 신발도 안 신고 청바지 입고 이러고 지저분하게 하고 다닐 때가 있었어요. 그럴 때 미국의 교회들은 그런 사람들을 받아 주지 않았어요. ‘너희들 교회 오려면 머리 깍고 와라. 머리 깜고 와라. 목욕하고 와라. 신발 신고 와라. 옷 제대로 입고 와라.’ 받아들이지 않았어요. 왜 경건한 교회에 어떻게 너희 같이 더러운 애들이 들어 올 수 있느냐는 것이지요. 

그런데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목사님이 한 분 계셨어요. 그분은 진정한 공동체란 상처 받은 모든 이들을 있는 모습을 그대로 받아 주는 것이 진정한 교회가 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그 분은 새로운 교회를 개척하면서 이렇게 광고합니다. “여러분 우리 교회는 여러분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받아 주는 교회입니다. 우리는 당신의 손을 따뜻하게 잡아 줄 것입니다.” 많은 젊은이들이 히피족들이 그 교회에 몰려들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그들은 지저분한 모습으로 긴 장발의 머리를 가지고 왔지만은 말씀을 들으면서 거듭남을 경험하고 생명이 그 안에 역사합니다. 그때 바른 가치관을 갖게 되고 그들의 삶이 달라지게되지요. 그게 바로 갈보리 교회, 갈보리 채플이 됩니다. 그리고 그 목사님이 척 스윈들 목사님입니다. 

여러분 어찌 보면 우리 교회의 모습이 이런 모습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정죄하기 보다는 위로하고 비판하기 보다는 세워주고 격려하는 모습이 바로 삼겹줄 교회의 모습입니다. 우리교회가 이렇게 서로를 일으켜 줄 수 있는 삼겹줄의 교회가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누구나 넘어 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일으켜 줄 사람이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바로 교회 공동체가 그런 모습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로. 삼결줄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서로 격려가 필요합니다. 
자 오늘 11절 말씀을 다시 한번 읽습니다. “또 두 사람이 함께 누우면 따뜻하거니와 한 사람이면 어찌 따뜻하랴.” 아멘 

그렇죠. 겨울에 추울 때 혼자 누우면 더 춥습니다. 둘이 누우면 온기 때문에 따뜻해질 수 있죠. 제가 어릴 때만 해도 참 집이 추웠습니다. 그래서 연탄불을 떼도 아랫목만 따뜻해서 이렇게 자국만 생겼지 저 위는 완전 냉골입니다. 그럼 우리는 뭐 냉골에 자는 거예요. 옷 벗고 자려고 하면 얼마나 추운지 이불이 왜 그렇게 차가운지 몰라. 참 어려워요. 자려고 누워 있다가 어쩌다보면 형님 발이랑 부딪쳐요. 그럼 어찌나 따뜻한지 서로 발을 대고 잠을 청하죠. 그럼 온기가 오는 거죠. 서로 몸을 대고 잔다는 것 중요해요. 여러분 오늘 사회가 얼마나 추운가요? 그럴 때 우리가 서로를 따뜻한 온기로 서로 사랑해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유대인들은 일 년에 몇 차례씩 예배를 드리러 올라갑니다. 그러면 몇 날 몇 일 걸어가야 하는데 낮에는 막 뙤약볕에 더워서 뭐 고생을 많이 합니다. 그런데 밤이 되면 반대로 추워요. 유대의 밤은 굉장히 추워요. 그래서 이 추위에 잠을 이룰 수 없어요. 병이 나게 되죠. 그래서 그들은 어떻게 합니까? 서로 등을 맞대고 자는 거예요. 순례객들끼리 그러면 따뜻 해지는 보온 때문에 온기 때문에 서로 잠을 잘 잘 수 있어요. 

그래서 이 순례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의 꼭 필수요건은 무엇이냐? 좋은 친구를 사귀는 거예요. 물론 다 동성 친구죠. 그래서 잘 때 서로 등을 맞대고 자면 그 추위를 이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에요. 이렇게 서로를 따뜻하게 보온해 줄 수 있는 친구를 만나면 그의 인생은 훨씬 더 행복할 수 있지 않겠느냐. 이제 그 역할을 누가 할 수 있을까요? 우리 바로 그리스도인들이 성도들이 그 역할을 감당해야 해요. 

저는 이렇게 그 자살하는 분들 참 우리사회에 특별히 많습니다만 정말 그 분들에게 이런 삼겹줄 같은 친구가 있더라면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의 아픔 그들의 고통을 함께 아파하고 위로하고 세워줄 수 있는 그들을 계속 지킬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아마 용기를 얻을 수 있을 거예요. 그러나 홀로 떨어져 있을 때 그는 극단적인 방법을 택하는 것을 보면 우리는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서로 격려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하겠다. 서로 일으켜주고 서로 온기를 나눌 수 있는 그런 공동체 그래서 우리 삼겹줄은 어떻게 해요? 해하지 않는다고 거죠. 쉽게 끊어지지 않고 결국은 승리할 수있다고 성경은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이 삼겹줄이라는 것은 꼭 2명 3명 이야기만 하는 것은 아니에요. 우리가 서로 힘을 모으는 그룹이 바로 삼겹줄이 될 수 있죠. 어떤 주석가는 이렇게 씁니다. 내가 있고 당신이 있고 그리고 거기에 하나님이 계시면 그것은 삼겹줄이다. 내가 있고 사랑하는 성도가 있고 그리고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면 우리는 가장 강한 자가 될 수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이 둘씩 셋씩 서로 믿음의 동역자가 되고 중보기도자가 되고 서로를 세워줄 수 있다면 얼마나 교회공동체는 아름다워 질 수있을까? 하는 것입니다.

우리 사회적으로도 그렇습니다. 요즘 쌍용자동차 실직자들이 참 사회의 많은 아픔을 우리로 하여금 느끼게 하는데 뭐 몇 천명이 실직해서 복귀된 분들은 400여명 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분들이 너무 실업의 기간이 오래가니까 너무 괴로워서 자꾸 목숨을 끊고 자살을 해요. 그래서 어떤 상담가가 그분들이랑 상담도 하고 치유를 해주는데 그분들의 상태는 다 중증 환자들과 같다고 하는 거예요. 또 그분들의 가족들도 중증 환자와 똑같아요. 상담을 해보면 특히 자살한 분의 가족들은 말할 것도 없고 한 사람이 자살하면 그 가족 30명은 결국 자상 직전의 사람들과 같다는 거예요. 그래서 그들은 생과사의 개념이 없데요. 뭐 죽음에 대해 두려움이 없다는 거예요. 뭐 사는 게 이런데 죽으면 어떻느냐? 그래서 쉽게 자살한다는 거예요.

여러분 우리가 그분들에게 누군가가 따뜻한 사랑을 가지고 다가가서 버팀목이 되어 줄 수 있다면 적어도 그런 안타까운 희생은 막을 수 있지 않을까 우리 사회의 모두가 관심가지고 기도해야 될 제목이라고 저는 생각해봅니다. 

적어도 우리가 일생을 살아갔을 때, 왜 우리 인생에 어려움과 힘든 일이 없었겠어요. 그러나 오늘까지 내가 힘들고 어려울 때 버텨갔을 수 있었던 것은 날 붙들어 준 우리 친구 때문이라고 믿음의 사람들 때문이라고 우리 교회 때문이라고 교회를 통해 내가 느꼈던 주님의 사랑 때문에 내가 오늘 여기에 있을 수 있다고 고백할 수 있다면 저는 그것이 바른 신앙의 고백이 아닌가 생각을 해봅니다, 우리는 그저 나 한사람이 예수 믿고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우리의 관심이 우리의 이웃에게 우리의 구역원들에게 우리 남녀 신도 회원들에게 그리고 우리 세상에 관심이 필요한 곳에 쏠릴 수가 있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주님의 마음이라는 것이죠. 

몇일 전 신문에 보니까 캄보디아에서 한국인과 결혼을 하고자 이주를 해온 한 여인의 이야기가 소개 되었더라구요. 가명을 초혼씨라고 지었는데 그분은 꿈을 가지고 한국에 왔어요. 그런데 남편이 나이가 20살 위로 많아요. 남편이 술주정꾼이야. 일주일에 4일 정도는 술을 마셔요. 술 마시면 곱게 안자요. 술 버릇이 나빠요. 이 어린 아내를 때리고 폭력을 행사하고 괴롭힙니다. 한때는 무릎을 꿇어놓고 폭력을 행하고 때리고 모욕을 줍니다. 

한번은 친구들 모임에 같이 끌고 나갔다가 돌아오기로 했는데 남편이 막 많은 친구들 앞에서 아내를 막 모욕을 줍니다. 상품처럼 여겨요. 돈 주고 사왔으니까 상품처럼 여긴다는 거예요. 그래서 이 여인이 그리 고분고분하지 않았나봐요. 돌아오는 택시에서 막 험담을 하고 술을 사가지고 들어와서 이 여인을 괴롭힙니다. 

그리고 또 임신 중이었는데 뭐 배고 뭐고 발로 걷어차는 거예요. 이 여자는 정신을 잃어버렸어요. 나중에 깨어보니까 자기 손에 부엌칼이 들려있었어요. 남편이 옆구리에 칼을 맞고 쓰러져있어요. 물론 남편이 죽지는 않았어요. 몇일 후에 죽었죠. 이 여인은 상해죄로 재판을 받게 됩니다. 10년 구형에 4년 복역을 하게됩니다. 거기서 그는 한 사람을 만납니다. 정말 하나님이 보낸 사람을 만나죠. 그리고 그의 인생이 바꿔져요. 그는 이제 정당방위로 인정이 돼서 구명운동 덕분에 석방되고 캄보디아로 돌아가서 공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학비를 대구 YWCA에서 지원해주고 있어요. 

초혼씨를 만나서 그 과정을 쭉 이어갔던 한 YWCA의 배영자라고 하는 분이 쓴 글을 읽었는데 여러분에게 소개를 해드리려고 합니다. 1962년부터 교도소 선교를 시작한 나는 2009년도에 초혼씨와 인연을 맺게 되었습니다. 남편 살인의 혐의로 수감된 초혼씨를 대구 교도소에서 처음 만났을 때 그녀는 두려움에 아무와도 이야기를 하고 있지 않았습니다. 당시 초혼씨는 임신 4개월이었는데 나는 그녀를 꼭 안아주면서 두려워하지 말라고 이야기 했습니다. 그 때부터 매주 초혼씨를 찾아갔습니다. 

그녀는 나를 만나면 기뻐하고 행복해하는 것 같았습니다. 한번은 기도를 하고 아멘을 했더니 그 뜻을 물어보았습니다. 그래서 초혼씨가 하나님께 드리는 마음이다 하고 말해주었더니 그녀의 얼굴이 환해졌습니다. 초혼씨를 만나면서 그녀가 나를 신뢰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나는 초혼씨에게 예수님은 우리 같은 죄을 위해 이 땅에 오셨고 초혼씨가 예수님을 믿으면 하나님의 딸이 되는 것이라고 설명해주었습니다. 이때 난 초혼씨가 그리스도에 대한 확신을 갖는 것을 보았습니다. 사람을 두려워하며 교도소 한쪽 구석에만 움크려있던 초혼씨는 밝은 모습으로 변화되기 시작했습니다. 지금 초혼씨는 프놈펜 대학교 한국어과에 다니면서 한국교회에서 선교사님 통역을 도와주고 있습니다. 앞으로 초혼씨의 꿈은 한국어 선생님이 되는 것과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 캄보디아 한 여성 많은 꿈을 가지고 왔는데 그 꿈이 물거품이 될 뻔했습니다. 그러나 배영자라고 하는 YWCA 증경회장을 통해서 그와의 만남을 통해서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되었습니다. 만약 그가 아무와의 만남도 없었더라면 그는 4년 복역을 하고 캄보디아로 돌아갔겠죠? 그는 일생을 한국을 증오하며 살아갔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한 사람과의 만남을 통해서 새로운 희망을 꿈꾸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의 품에는 새로 태어난 유나라고 하는 어린 아이를 품에 안고 그는 희망을 꿈꾸면서 살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바로 이런 역할을 해야 되지 않나요? 절망에 빠진 사람 강도만난 사람 쓰러진 사람에게 다가가서 그를 일으켜 세우고 따뜻한 사랑의 온기를 전하고 그리고 그에게 희망을 전해줄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면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이 아니겠느냐? 바로 우리 교회가 그런 삼결줄 교회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이영무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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