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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설날] 행복한 사람 (시 3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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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사람 (시 32:1-11)

우리말에 ‘설’이란 새해의 첫머리라는 뜻입니다. 설날은 그 중에서도 첫날이라는 의미를 지닙니다. 이러한 ‘설날’의 어원에 대해서는 대개 세 가지 정도의 설이 있습니다.   

1) ‘새해에 대한 낯설음’, ‘아직 익숙하지 않은 날’이란 뜻을 가진 ‘설다’에서 나왔다는 것입니다. 새로운 시기로 접어들었는데 아직 익숙하지 않은 단계에 해당한다는 것입니다. 

2) ‘선날’ 즉 개시(開始)라는 뜻의 ‘선다’라는 말에서 나왔다는 것입니다. ‘새해 새날이 시작되는 날’이라는 뜻으로 이 ‘선날’이 시간이 흐르면서 연음화 되어서 설날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3) ‘삼가다(勤愼)’ 또는 ‘조심하여 가만히 있다’라는 뜻의 옛말인 ‘섧다’에서 그 어원이 나왔다는 것입니다. 이는 설날을 한자어로 ‘신일(愼日)’이라고 표현하는 것과 같은 맥락인데, ‘신일’이란 ‘삼가고 조심하는 날’이란 뜻입니다. 

이제 새로운 시간 질서에 통합되지 않았기 때문에 모든 언행을 삼가고 조심하여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하여 생긴 말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조상들에게 일 년은 생활의 단위였습니다. 음력의 첫날을 설날이라 하여 명절로 지키는 것은 일 년이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새해 새날인 설날을 맞이하여 몸가짐과 마음가짐을 바로 세우는 것은 우리 뿐 만 아니라 전 세계 사람들이 똑같을 것입니다. 하물며 이날에 우리 신앙인의 자세를 바로 세우는 것은 당연한 일인 줄 믿습니다. 

김동호 목사님의 ‘내게 행복을 주는 사람’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 책 앞부분에 ‘행복에 대한 생각’이라는 제목의 글이 있는데, 그 글에서 김 목사님은 세상에는 행복하게 사는 사람이 많지 않다고 합니다. 만일 지나가는 사람들을 붙잡고 “요즘 어떻게 사십니까?”하고 묻는다면, 1위가 ‘그럭저럭 삽니다’, 2위가 ‘마지못해 삽니다’, 3위가 ‘죽지못해 삽니다’일 것이라고 합니다. 

사람들은 행복하게 사는 것을 생각할 때, 무의식적으로 떠올리는 것이 있다면 그 중에 하나는 틀림없이 돈이라고 합니다. 아니, 그 중에 하나가 아니라 제일 먼저 생각하는 것이 돈입니다. 사람들은 돈이 우리를 행복하게 해줄 것이라고 확신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때문에 돈이 많은 사람을 그냥 ‘부자’라고 하지 않고 ‘잘 사는 사람’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그리고 돈이 없고 가난한 사람을 ‘못 사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잘 산다’라는 말의 의미는 ‘행복하게 산다’는 것인데, 이것은 사람들이 돈이 우리를 행복하게 해 줄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쓰여진 말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전통적인 행복론은 ‘오복’이 말해 줍니다. 

① 수(壽) : 오래 사는 것,   ② 부(富) : 부귀를 누리는 것,  ③ 강녕(康寧) : 건강하게 사는 것,  ④ 유호덕(攸好德) : 덕을 세우며 사는 것,  ⑤ 고종명(考終命) : 평안히 생을 마치는 것, 더 나아가 ⑥ 자녀를 많이 두는 것,  ⑦ 치아가 튼튼한 것도 오복 중의 하나라고 하였습니다. 

복에도 진짜 복이 있고, 가짜 복이 있습니다. 대개 ‘평안’과 ‘편안’은 서로 비슷해 보이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는 진짜고 하나는 가짜입니다. ‘평안’이 진짜 복이고, ‘편안’은 가짜 복입니다. ‘평안함’이 진짜 복이요, 행복인 것입니다. ‘기쁨’과 ‘재미’는 어느 것이 진짜 복이고 어느 것이 가짜 복입니까? ‘기쁨’이 진짜 복이고 ‘재미’는 가짜 복입니다. 돈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것은 ‘평안’일까요? ‘편안’일까요? 오락이 우리에게 주는 것은 ‘기쁨’일까요? ‘재미’일까요? ◉ 오늘 성경말씀은 진정한 복, 즉 행복에 대해 일깨우는 말씀입니다. 

(1절) “... 복이 있도다”
(2절) “... 복이 있도다” 

‘복있는 사람이다’, ‘행복한 사람이다’라는 말입니다. 오늘이 설날인데, 이 아침에 ‘행복’에 대해 묵상하고자 합니다. 오늘 시편 기자가 고백하는 행복한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1. 죄 사함 받은 사람 (1절)  

“허물의 사함을 받고 자신의 죄가 가려진 자는 복이 있도다”, 

다윗이 인생들에게 기원하고 있는 복은 ‘죄사함’의 복입니다. 그가 "사죄의 복"을 말하고 있는 것은 처음부터 죄 없는 인간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전제한 것입니다. 죄 없는 인간이란 결단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그는 "죄 없는 자"의 복을 기원하지 않고 다만 '죄가 가려진 자'의 복을 기원하고 있습니다. 즉 죄가 가려진 자가 진정으로 행복한 자입니다. 

종교개혁가 마틴 루터가 어느 날 환상으로 마귀를 보았습니다. 마귀는 루터가 지은 많은 죄들을 기록한 두루마리를 루터에게 보이며 말했습니다. “네가 이렇게 많은 죄를 짓고도 무슨 성직자며, 또 종교개혁을 할 자격이 있는 사람이냐?” 루터는 마귀에게 말했습니다. “그것들은 내가 지은 죄가 사실이지만, 예수님의 은혜로 벌써 다 용서받은 것들이다. 그 따위로 날 공격할 수 없다. 마귀야 물러가라!”, 

1893년에 “세계 종교 회의”가 시카고 박람회에서 열렸는데, 거기에는 기독교, 회교, 불교, 유교, 힌두교 등등 많은 종교지도자들이 참석하였습니다. 각 종교의 대표자들은 각자 종교의 좋은 점을 이야기했습니다. 기독교의 순서가 되었을 때 대표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러분의 종교 중에서 사람이 죄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있습니까?”, 아무도 대답이 없었습니다. 그 기독교인은 계속 말했습니다. “기독교는 사람들의 죄를 해결해 줍니다. 예수님께서 모든 사람들의 죄를 용서하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고난 당하셨기에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어떤 죄든지 모두 용서 받을 수 있습니다.”, 

누구에게나 ‘죄’의 문제는 심각합니다. 그러나 누구도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능력으로만 죄의 문제는 해결됩니다. 우리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죄 사함을 확실히 받았습니다. 믿으십니까? 이는 내 공로가 아닌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이며 십자가 공로입니다. 우리는 다만 믿고 감사할 뿐입니다. 찬양하고 자랑할 뿐입니다. 이 세상에서 아무리 많은 재물과 높은 권력을 가졌더라도 죄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불행한 사람입니다. 우리 모두는 죄 사함 받은 행복한 사람들임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2. 기도하는 사람 (6절) 

“이로 말미암아 모든 경건한 자는 주를 만날 기회를 얻어서 주께 기도할지라 진실로 홍수가 범람할지라도 그에게 미치지 못하리이다”, 이 말씀은 경건한 무리들에게 기도할 것을 권면하는 내용입니다. ‘경건한 자’는 하나님과 언약 관계에 있는 언약 백성을 의미합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자녀들이므로 언제든지 죄를 회개하기만 하면 죄 사함의 은총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순간순간마다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 계속적으로, 순간순간마다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하는 자를 하나님이 지키시고 복을 주십니다. “진실로 홍수가 범람할지라도 그에게 미치지 못하리이다” 

‘홍수의 범람’은 갑작스런 재앙에 대한 상징입니다. 아무리 갑작스러운 재앙이 올지라도 여호와께 나아가 죄를 자복하고 기도하는 자에게는 그 재앙이 미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어떠한 환난 가운데서도 기도하는 성도는 하나님이 보호하시고 구원을 베푸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기도하는 사람을 기뻐하시고 은혜와 응답을 주십니다. 

인천에 수봉산 교회라는 교회가 있습니다. 그 교회는 열심히 기도하기로 유명하고, 그 기도로 부흥한 교회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 교회의 목사님이 쓴 책에 보면 성도들이 뜨겁게 기도하면서 많은 변화가 일어난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중에 40대의 한 집사님의 이야기를 보았습니다. 이 집사님은 신앙생활을 하면서 직장생활과 가정생활이 분주해서 열심히 기도생활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교회의 기도회에서 사람들이 뜨겁고 간절하게 기도하기 시작하면서 한 사람, 두 사람 기도로 변화되어 살아가는 교인들을 보고 ‘나도 기도의 능력을 받고 싶다’라는 마음으로 기도를 사모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어떻게든 시간을 내보자’ 결심하고 교회에서 열리는 기도회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영적으로 매우 갈급해 있던 상태였던 지라 참석한 첫 날, 첫 시간부터 마음이 활짝 열렸습니다. 그러니까 함께 부르는 찬양 속에 하나님의 영광이 임했고, 기도할 때 하나님 앞에 마음을 쏟아놓기 시작하자, 갑자기 마치 무더운 여름날 얼음냉수처럼 마음이 시원해졌고, 그 기도 속에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 이후 이 집사님은 기도회 때마다 그 자리에 참석하며 간절히 기도하면서 삶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이 거짓말처럼 씻겨 내려가는 것을 느꼈습니다.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해결해 주신다”라는 확신이 마음가운데 확고히 자리잡자 모든 염려와 근심이 사라졌습니다. 그분의 고백입니다 “기도회를 통해 제 마음 가운데 부어주시는 하나님의 평안과 감사가 저를 날마다 승리하는 삶으로 이끌었습니다. 기도는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을 줍니다”, 

여러분, 열심히 뜨겁게 기도합시다. 기도하는 교회가 복되고 행복한 교회요, 기도하는 사람이 복된 사람, 행복한 사람입니다. 


3. 기뻐하는 사람 (11절) 

“너희 의인들아 여호와를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 마음이 정직한 너희들아 다 즐거이 외칠지어다”, 죄 사함 받고 기도하는 성도들에게 하나님께서 기쁨과 즐거움을 주십니다. 자녀들이 기뻐할 때 부모도 기뻐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기뻐하고 즐거워할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짐승은 감사나 기쁨이 없습니다. 표현이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들은 기뻐하며 찬양을 드립니다. 기쁨과 즐거움은 신앙의 꽃과 열매들입니다. 성숙한 신앙인의 모습입니다. 이 모습을 통해서 전도가 됩니다. 기뻐하는 얼굴이 최고의 전도지이며 간증입니다. 기뻐하는 그리스도인들을 보고 세상 사람들이 강한 도전과 충격을 받게 됩니다. 

돌에 맞아 순교하면서 스데반이 천사의 얼굴을 하였을 때 사울의 마음에 강한 충격이 생겨 바울로 인생이 바뀌게 된 것입니다. 기쁨은 서로와 모두에게 복이며 최고의 향기와 보석인 것입니다. 기쁨의 얼굴과 삶은 믿음과 축복의 증거인 것입니다. 

어느 교회 냉정하기로 소문난 권사님이 계셨습니다. 이 분이 어느 날, 수요기도회에 오셔서 그날따라 눈물을 줄줄 흘리시더랍니다. 목사님 설교 시간엔 더 하염없이 울고 계셨습니다. 목사님은 설교 하시면서 생각했습니다. ‘저 권사님이 어려운 일이 있으시던지, 눈물나도록 기쁜 일이 있으신가보다 아니면 오늘 말씀에 은혜를 받으셨나?’, 기도회가 끝난 후 목사님께서 그 권사님을 목양실로 불러 조심스럽게 물었습니다. “권사님, 무슨 어려운 일이 있습니까? 아니면 눈물이 날 만큼 좋은 일이라도 있습니까? 아님 오늘 기도회가 권사님께 그토록 은혜가 되셨습니까?”, “아이 목사님, 쑥스럽게 그런 걸 다 물어요.”, 좀처럼 대답을 않던 권사님이 대답을 했습니다. “사실은 목사님, 교회 오기 전에 보았던 연속극이 하도 슬퍼서 그래요. 병들어 죽어가는 여자 주인공이 불쌍하잖아요!”, 평소에 눈물 한 방울 없던 권사님이 눈물을 흘리신 이유가 고작 연속극 주인공이 불쌍해서... - 그냥 웃자고 한 이야기. 재미없어도 웃으면 좋습니다. 

세상에 살면서 여러분의 눈물, 여러분의 기쁨의 이유는 무엇입니까? 세상 사람들에게는 배부를 때 오는 기쁨, 잃었다가 찾았을 때 오는 기쁨, 가지고 싶었던 것을 가졌을 때 오는 행복감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본능적인 기쁨이 내 행복의 전부라면 우리는 동물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에겐 배가 부르든지 고프든지, 가졌든지 못 가졌든지, 잃었든지 찾았든지... 상관이 없이 누리는, 차원이 다른 기쁨, 영적인 행복감이 있어야 합니다. 새해 설날 아침입니다. 여러분의 가정이 웃음이 넘치는 가정이 되시기 바랍니다. 

설날 아침, 우스운 이야기 하나 할까요? 오늘이 음력 설날, 구정인데, 오늘 여러분들이 음식을 장만하면서 쓰는 물이 뭡니까? 오늘만 쓰는 특별한 물인데...  ‘구정물’...   한 가지 더 할까요? 이런 설 명절에 여자들은 음식 만드느라고 뼈빠지게 고생하는데, 남편들은 앉아서 그대로 받아 먹기만 합니다. 그래서 아내들이 이런 명절에 남편이 집에서 식사를 몇 끼 하느냐에 따라서 호칭을 달리 부른다고 합니다. 

집에서 한 끼도 안 먹는 남편은 ‘영식님’, 한 끼만 먹는 남편은 ‘일식씨’, 두 끼를 먹는 남편은 ‘두식이’, 그러면 세 끼를 다 먹는 남편은? ‘삼식쉐끼’, ... 삼시 세 끼를 다 먹고 간식까지 꼭 먹는 남편은? ‘간나쉐끼’... 삼시 세 끼 다 먹고, 간식까지 먹고, 밤에 야식까지 꼭 먹는 남편은? ‘종간나쉐끼’... 웃음은 건강에도 많은 도움이 됩니다. 웃는 얼굴이 예쁘고 잘 생긴 얼굴입니다. 

2013년 한 해가 영적으로 육적으로 행복해 지기를 바랍니다. 행복한 사람은 죄 사함 받은 사람이요. 기도하는 사람이요. 주 안에서 기뻐하는 사람입니다. 이 한 해 이러한 삶으로 참된 행복을 누리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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