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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설날에 본향을 사모합니다 (행 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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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에 본향을 사모합니다 (행 7:1-8)

오늘은 설날입니다. 문자적인 설날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우리 사전에는 '새해의 첫날' '새해의 첫 날을 명절'로 부르는 말입니다. 설날이란 신년(New year)의 첫날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설은 음력 정월 초하룻날로 원단(元旦), 세수(歲首), 정초(正初)라고도 부릅니다. 

원래 설이라는 말은 '사린다', '사간다'에서 온 말로 조심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고, 또 '섧다'에서 온 걸로 보아 '슬프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고 보기도 합니다. 따라서 설이란 그저 기쁜 날이라기보다 한 해가 시작된다는 뜻에서 모든 일에 조심스럽게 첫발을 내딛는 매우 뜻 깊은 명절로 여겨왔습니다. 그래서 설날을 신일(愼日 삼가는 날)이라고 해서 이날에는 바깥에 나가는 것을 삼가고 집안에서 지내면서 일년동안 아무 탈없이 지낼 수 있게 해주기를 신에게 빌어왔습니다. 

설날 아침에는 일찍 일어나서 새해 아침에 입는 새 옷인 "설빔"을 입고 돌아가신 조상들에게 절을 드리는 "차례"를 지냅니다. 그런 다음 나이가 많은 어른들께 차례로 새해 인사인 "세배"를 합니다. 세배를 할 때에는 새해 첫날을 맞아서 서로의 행복을 빌고 축복해 주는 "덕담"을 주고받습니다. 이렇듯 새해 첫날인 설날은 하루종일 복을 빌고 좋은 말을 많이 해 왔습니다. 

* 참고 : 조선시대의 의정대신들은 모두 관원을 거느리고 대궐에 나가 새해 문안을 드리고, 전문과 표리(거친 무명 또는 흰 명주)를 바치고 정전(왕이 임어하여 조회를 하는 궁전)의 뜰로 나가 조하(조정에 나아가 임금께 하례함)를 올렸습니다. 이 날 사당에 제사를 지내는데 이를 차례라 하고 아이들이 입는 새 옷을 세장이라고 하며 어른들을 찾아뵙는 일을 세배라고 합니다. 이날 대접하는 시절 음식을 세찬(떡국)이라고 하며, 또한 이에 곁들인 술을 세주(초백주, 도소주)라 합니다. 한편 사돈집 사이에는 부인들이 근친하는 뜻으로 하녀를 서로 보내어 새해 문안을 드리기도 했습니다. 

▶ 차례의 의미 

차례는 설, 추석, 단오, 동지 등의 아침에 지내는 약식 제사를 말하는데, 보통 4대조까지를 동시에 지냅니다. 요즘에는 단오나 동지에 대부분 차례를 지내지 않으므로, 차례는 설과 추석에만 지내게 되었습니다. 

(자세한 사항 생략)

▶ 세뱃돈 

설날 웃어른께 인사를 하고 답례로 받는 세뱃돈 풍습은 한국, 중국, 일본에서 고루 찾아볼 수 있습니다. 중국과 일본은 우리와 달리 봉투에 돈을 넣어줍니다. 새해 첫날 세뱃돈을 주는 관행은 중국에서 시작돼 점차 우리나라와 일본, 베트남 등으로 퍼져나갔습니다. 중국인들은 전통적으로 설이 되면 결혼하지 않은 자식에게 '돈을 많이 벌라'는 뜻으로 붉은 색 봉투에 약간의 돈을 넣어주었습니다. 붉은 색을 행운의 색으로 생각한 중국인들은 새해 첫 출발에 대단한 가치를 부여했던 것입니다. 

체면을 중시한 조선시대 사람들은 돈 대신 세배하러 온 아이들에게 떡이나 과일 등을 내주기도 했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돈을 주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베트남에서도 이 같은 풍습이 전해져 빨간 봉투에 새 돈으로 소액의 지폐를 넣어주는 '리시'라는 관습이 행해집니다. 세뱃돈에 해당하지만 세배는 받지 않습니다. 일본에서도 부모가 자녀에게 세뱃돈을 주는 풍습은 에도 시대에 있었지만 도시에만 국한됐었습니다. 현재와 같이 전국적으로 퍼진 것은 고도경제 성장기인 60년대 이후부터라고 합니다. 

최근 들어 우리나라에서도 세뱃돈의 단위가 점점 커지는 경향을 보이고 있습니다. 교육전문가들이 권하는 적정규모는 필요한 학용품을 살 수 있을 정도, 세뱃돈은 어린이들에게 만만치 않게 큰돈인 경우가 많지만 부모가 관리하기보다는 자녀가 직접 관리할 수 있도록 해줍니다. 아이의 명의로 저금통장을 만들어 주고 직접 관리하도록 지도하는 것도 좋습니다. 

▶ 설교 

민족의 대명절인 설날입니다. 이번 설날에도 뉴스에서는 시간 시간마다 고향을 찾는 사람들의 대행렬을 보도합니다. 모천회귀라는 말이 있습니다. 연어는 알을 날 때나 죽을 때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갑니다. 음력 정월 초하루 설날에 한국인들은 고향을 찾아갑니다. 고향을 찾는 한국인의 귀소본능은 가히 본능이라 할 만큼 유난히 극렬합니다. 

교통체증과 불편함을 이끌고서도 고향을 찾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는 조상들의 묘소를 찾는 모습이 있고, 둘째는 생존에 계시는 부모님이나 조부모님을 찾아뵙는 효심어린 모습이 있고, 셋째는 산업사회에 찌들린 현대인의 피로에 지친 모습으로 태고적 고향과 자연으로 돌아가는 모습 즉, 죽마고우라고 하는 친구들과 흙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넷째는 타향에서 꿈을 이루고 금의환향하는 모습도 있고, 다섯 번째로 가지 못하는 땅을 바라보며 임진각에서 자신의 땅을 바라보는 슬픈 모습도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모세의 소명기사와 스데반의 순교 전 설교에서 조상들의 하나님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요셉의 하나님 ....' 그리고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이야기와 출애굽이야기를 반복해서 말하고 있다는 점에서 특히 유의합니다. 

우리는 고향을 찾는 섣달 그믐날의 분주한 발걸음을 통해서 사람은 고향을 찾는 본향을 그리는 마음이 있음을 압니다. 육신이 탄생한 산천의 고향을 넘어서 인간은 우리 생명의 영원한 본향을 그리워하고 있음을 새삼 깨닫게 합니다. 

이스라엘 조상들의 이야기와 오늘 우리들의 삶과는 무슨 관계와 의미가 있을까요? 

그런데 모세나 스데반의 조상 이야기에는 우리들이 고향을 찾는 것과는 다른 하나의 이유가 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요셉의 하나님 ....'이라는 말속에는 핏줄을 확인하는 것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고백이 있다는 것입니다. 바로 구원의 사건에 대한 자손 대대의 고백이 담겨있는 것입니다. 

설날을 맞으면서 우리는 몇 가지 자각하고 믿음으로 고백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 

첫째는 고향을 찾는 발걸음은 단순히 혈육의 고향산천을 향하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믿음의 본향 영생의 나라를 찾아가는 길이라는 것을 자각함이요. 

둘째는 우리 조상들의 피땀어린 노력과 애씀 그들의 고난과 시련을 은혜의 고백으로 감사해야 합니다. 

셋째는 부모형제가 하나되고 화목하며 새로운 출발을 다짐하는 축복의 날임을 알아야겠습니다. 

고향은 육으로만 찾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정신으로도 찾아야 하고, 또한 더욱 중요하게 영으로도 찾아야 합니다. 우리는 죽은 사람들을 가리켜서 '돌아가셨다'라고 합니다. 어디로 돌아갔단 말일까요? 반드시 온 곳이 있어야 돌아갈 수 있습니다. 바로 우리 영혼의 고향, 영원한 생명이 있는 곳! 영원한 안식처를 찾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께 세배를 드리는 정성을 제의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모세와 스데반과 많은 믿음의 선조들의 공통된 고백인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요셉의 하나님 ....'이라는 고백 끝에 "나의 하나님" 이라는 고백이 될 수 있어야겠습니다. 

고향을 찾는 마음은 근원을 찾는 마음이며 나의 뿌리를 찾는 마음입니다. 불의 근원은 어디인지 아세요? 하늘 높은 곳 태양이 불의 근원이기에 불은 항상 태양을 향해 솟구친다고 합니다. 물의 근원은 어딜까요? 저 바다에 있기에 물은 항상 낮은 바다로 향해 내려가는 것입니다. 나무의 생명의 근원은 뿌리에 있습니다. 뿌리가 향하는 곳에 생명이 깃듭니다. 고향을 찾는 마음이 귀소본능이며 역사의 흐름 속에서 한 존재의 가치로 의미를 이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새로움이란 하나님이 역사 속에서 의미 있는 사건을 일으키시고 인간의 자유의지를 통해 그 사건에 참여시키는 것입니다. 성서는 그 사건을 구원의 역사 곧 구원사라 합니다. 

해가 바뀌고 달력이 새로 바뀌는 것 그 자체는 지구가 태양의 주위를 한바퀴 돌았다는 것이고 천체운행의 또 한번의 시작을 말하는 것입니다. 

역사와 조상들의 이야기를 하는 것 아브라함과 이삭 야곱을 이야기하는 것은 그들의 핏줄을 확인하려는 인간적 동기가 아니라 그들을 불러서 약속의 백성으로 삼으신 하나님의 경륜을 증언하기 위함입니다. 과거의 사실들을 오늘 현재 속에서 새로운 형태로 살아나 영향을 끼치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명과 삶은 우리의 것이 아니고 과거를 이어 온 조상들의 얼을 찾는 고향 찾는 마음입니다. 고향을 찾아가시면서 우리가 궁극적으로 소망하고 늘 사모해야 할 곳은 영원한 본향, 하늘나라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 나라를 사모하며 모두가 함께 영원한 본향에 이르게 도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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