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누구와 동행할까? (대하 18:1-11)

첨부 1


누구와 동행할까? (대하 18:1-11)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속담이 있죠. 자기는 하고 싶지 않지만 남에게 끌려서 덩달아 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또 ‘근묵자흑’(近墨者黑)이란 사자성어도 있습니다. 먹을 가까이 하면 검어진다는 말로, 나쁜 사람과 가까이 지내면 악에 물들기 쉬우니 조심하라는 뜻입니다. 

정말 중요한 교훈을 주는 말들입니다. 우리 인간은 원하든지 원하지 않든지 주위의 사람들에게 영향을 받기 마련입니다. 물론 나쁜 사람들에게 감화 감동을 주고 변화시키는 일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인간은 누구나 연약하기에 일단은 주위에 좋은 사람이 있는 게 훨씬 좋다는 말입니다. 

이 말은 우리 신앙생활에 그대로 적용됩니다. 될 수 있으면 영적 환경이 좋아야 신앙에 도움이 됩니다. 악한 인간들 사이에 있으면 아무래도 신앙이 흔들리고 변질될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누구와 동행하는가, 누구와 교제하는가 하는 것은 아주 중요한 문제입니다. 오늘 성경 본문을 보면 여호사밧이 등장하는데, 그의 케이스가 그런 사실을 잘 보여줍니다. 여호사밧은 

남 유다 왕국의 4대 왕(B.C. 872~848)으로 다윗 왕 다음 가는 선왕입니다. 신앙이 좋았고, 나라를 잘 다스려 나라가 태평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누구나 연약한 법! 그에게도 실책이 있었습니다. 여호사밧의 인생에 오점으로 남은 사건이 본문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는 북 이스라엘의 아합 왕과 가까이 했습니다. 

여러분, 아합이 누구입니까? 이스라엘 역사 상 가장 사악한 왕 아닙니까? 그런 악인을 가까이 하다 하나님에게서 점점 멀어졌고 결국 큰 낭패를 봅니다. 심지어 목숨을 잃을 뻔 했습니다. 
 
오늘 이 말씀을 보면서 우리는 여호사밧의 실책을 반면교사 삼고 과연 누구와 동행하며 살 것인지 잘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1] 악인과 동행 : 여호사밧의 실책  

여호사밧의 실책은 한 마디로 악인과 동행한 것입니다. 그가 어떻게 이렇게 어이없는 실수를 저질렀는지 잘 이해가 안 됩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그의 실수를 밝힙니다. 인간은 누구나 연약한 존재이고 얼마든지 실수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가 저지른 실책의 시작은 무엇이었나요? 

1절. “여호사밧이 부귀와 영광을 크게 떨쳤고 아합 가문과 혼인함으로 인척 관계를 맺었더라” 

그가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었던 것은 우상 숭배를 타파하고 오직 하나님만 의지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선 줄로 생각하면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10:12)는 말씀처럼 오히려 번영의 때에 실수를 저질렀는데, 아합과 사돈을 맺은 겁니다.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면 그의 아들 여호람과 아합의 딸인 아달랴와 결혼을 시킨 겁니다. 

여러분, 왜 그랬을까요? 다분히 세속적인 판단 때문이었을 겁니다. 정략결혼을 통해 남북 관계를 개선하고, 주변의 강대국들을 견제하려는 계산이었을 겁니다. 얼핏 보면 일리 있는 정치 외교적 행동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보면 어마어마한 실수를 저지를 겁니다. 잘 생각해 보십시오. 아합은 가장 사악한 왕입니다. 특히 그 아내 이세벨은 이방 시돈의 공주 출신이요, 바알 신과 아세라 신 숭배의 거두 아닙니까? 아무리 이익이 된다고 해도 그런 악인들과 깊은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계속 깊은 관계 속으로 빠져 들어갑니다. 2절. “이 년 후에 그가 사마리아의 아합에게 내려갔더니 아합이 그와 시종을 위하여 양과 소를 많이 잡고 함께 가서 길르앗 라못 치기를 권하였더라” 2년 후 북 이스라엘의 수도 사마리아에 친선 방문했는데 큰 대접을 받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이 문제였습니다. 아합이 길르앗 라못을 치러 가자고 참전을 권합니다. 길르앗 라못은 요단 강 동쪽 땅으로 본래 이스라엘의 영토였는데, 아합의 아버지 오므리 왕 때 아람 나라에게 빼앗겼습니다. 그것을 다시 찾고자 전쟁을 벌이자는 겁니다. 여기서 권한다는 단어는 유혹한다는 뜻입니다. 감언이설로 유혹하며 설득했다는 뜻입니다. 그 말에 여호사밧은 속수무책으로 넘어갑니다.

그래도 여호사밧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라 다른 게 한 가지 있었습니다. 아합의 제안을 수락하면서도 먼저 하나님의 뜻을 물어보자고 제안합니다. 

4절. “여호사밧이 또 이스라엘 왕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먼저 여호와의 말씀이 어떠하신지 오늘 물어 보소서 하더라” 

하지만 아합 주변에 4백명의 선지자들이 있어도 다 어용 선지자들이요 거짓 선지자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정직하게 전하는 자들이 아니라 아합의 비위만 맞추는 자들입니다. 그들은 무조건 아합이 승리한다고 거짓 예언을 합니다. 옆에서 듣고 있던 여호사밧이 왠지 찜찜해서 다른 선지자가 없는지 묻습니다. 

그러자 거짓 선지자들의 대표 격인 시드기야가 오버액션을 하면서 예언합니다. 

10절~11절. “10 그나아나의 아들 시드기야는 철로 뿔들을 만들어 가지고 말하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왕이 이것들로 아람 사람을 찔러 진멸하리라 하셨다 하고 11 여러 선지자들도 그와 같이 예언하여 이르기를 길르앗 라못으로 올라가서 승리를 거두소서 여호와께서 그 성읍을 왕의 손에 넘기시리이다 하더라” 

철은 당시 가장 강한 금속입니다. 뿔은 권세와 능력을 상징합니다. 아합 왕의 능력과 권세가 대단하니 아람 나라를 거뜬히 격파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딱 한 사람 미가야라는 참 선지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갖은 협박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에게서 계시를 받은 대로 정확하게 예언합니다. 대하18:27 “미가야가 이르되 왕이 참으로 평안히 돌아오시게 된다면 여호와께서 내게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리이다 하고 또 이르되 너희 백성들아 다 들을지어다 하니라” 무슨 말인가 하면 아합이 반드시 참패하고 결국은 전사하게 된다는 겁니다. 

그러나 아합도 여호사밧도 그 예언을 무시하고 출전합니다. 그 후 그들이 전쟁터에서 어떻게 되죠? 아합은 부상 당한 후 전사하고 여호사밧도 죽을 뻔했습니다. 대하18:28,31 “28 이스라엘 왕과 유다 왕 여호사밧이 길르앗 라못으로 올라가니라 ...  31 병거의 지휘관들이 여호사밧을 보고 이르되 이가 이스라엘 왕이라 하고 돌아서서 그와 싸우려 한즉 여호사밧이 소리를 지르매 여호와께서 그를 도우시며 하나님이 그들을 감동시키사 그를 떠나가게 하신지라” 여호사밧이 그 동안 하나님을 섬겼던 것을 감안하시고, 또 그가 위기의 순간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한 것을 들으시고 도와주셨기에 망정이지 큰 일이 날 뻔했습니다. 

망신만 당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여호사밧! 그에게 선견자 예후가 그의 실책을 책망합니다. 대하19:2 “하나니의 아들 선견자 예후가 나가서 여호사밧 왕을 맞아 이르되 왕이 악한 자를 돕고 여호와를 미워하는 자들을 사랑하는 것이 옳으니이까 그러므로 여호와께로부터 진노하심이 왕에게 임하리이다” 하나님을 거역하는 악인과 동행한 게 얼마나 해로운 것인지 지적합니다. 

여러분, 신앙생활을 하면서 누구에게나 이게 어려운 문제입니다. 온전히 하나님만 의지하는 게 참 어렵습니다. 순도 100%의 신앙이 어렵습니다. 여호사밧이 나름대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인이었지만 잠시 세상의 힘을 의지하고 한눈을 팔다가 낭패를 본 겁니다. 하나님과 세상, 하나님과 우상을 겸하여 섬기는 것을 흔히 혼합주의(Syncretism)라고 하는데, 구약 이스라엘의 문제가 바로 이겁니다. 

뿐만 아니라 오늘날도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빠지기 쉬운 문제가 바로 이겁니다. 하나님만 의지하고 하나님과 동행하면 되는데, 뭐가 부족한 양 자꾸 두리번거립니다. 세상을 바라보고 의지합니다. 한 마디로 표현하면 ‘양 다리 걸치기’입니다. 이게 탈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하기 어렵습니다. 결국 실패하고 망하는 겁니다. 

고후6:14~16에서 바울은 단단히 경고합니다. “14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둠이 어찌 사귀며 15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16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 ” 

명에를 같이 멘다는 것은 소 두 마리를 한 멍에로 묶어 놓는 것을 말하죠. 덩치가 다르면 보조가 맞지 않죠. 곤욕을 치르다 엎어지게 됩니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성도가 벨리알(마귀)을 따르는 악인과 어울리면 함께 망하는 겁니다.  

그래서 약4:4은 심지어 이렇게까지 표현합니다. “ ...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는 것이니라” 세상을 가까이 하면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겁니다. 하나님과 원수가 디고 반대편에 서서 잘 되기를 바라면 정말 어리석은 거죠.

그러므로 아무리 이익이 된다 해도 악인과 상종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을 잘 섬긴다고 했던 여호사밧조차 넘어가는 것을 보십시오. 누가 큰 소리를 칠 수 있겠습니까? 정말 조심해야 됩니다.

악인과 동행하는 것은 마치 늪에 빠지는 것과 같습니다. 한번 빠지면 점점 더 깊이 들어갑니다. 헤어 나오기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늪은 피하고 보는 게 상책입니다. 혹시라도 악인을 가까이 하고 있다면 그를 변화시키거나 아니면 단호히 정리할 수 있어야 합니다.  

미국의 클리블랜드 대통령(22대, 24대)의 이야기입니다. 그의 청소년 어느 주일 저녁에 친구와 함께 술을 마시고 도박장을 찾아가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도박장 부근에 작은 교회가 있는데 지나가다 교회 입구에 게시된 설교 제목을 보게 됐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 그 말씀이 그의 마음을 찔렀습니다. 그는 친구에게 “우리 도박장에 가지 말고 교회에 들어가 보자”고 말합니다. 그러자 그 친구는 “한 번 결심했으면 가야지. 교회라니 무슨 소리야?” 하며 거절합니다. 티격태격하다가 결국 그 친구는 처음 작정한 대로 도박장으로 갔고, 클리블랜드는 교회로 들어갔습니다. 

그 날 저녁 클리블랜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회개합니다. 이제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기로 헌신합니다.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후 그는 미국의 22대 대통령으로 취임하게 됩니다. 반면 도박장으로 향했던 친구는 감옥에서 대통령 취임 기사를 읽으며 가슴을 쳤습니다. 클리블랜드가 그 날 밤 악인과 동행하다 돌아서지 않았더라면 인생이 어떻게 됐겠습니까? 

그러므로 부디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아무리 세상이 유혹을 해 와도 세상을 가까이 하지 말고 악인을 가까이 하지 마십시오!


[2] 의인과 동행 : 다윗, 다니엘 

그 대신 우리는 의인과 동행해야 합니다. 성경에 보면 의인과 동행하다 승리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의인들과 함께 하면서 큰 은혜를 체험합니다. 대표적으로 다윗과 다니엘의 예를 들어봅니다.

사무엘상 18장을 보면, 다윗의 절친 요나단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는 사울 왕의 큰 아들입니다. 다음 왕이 될 사람입니다. 그러나 신앙 안에서 다윗이 왕 될 것을 예감하고  적극 후원합니다. 삼

상18:3~4 “3 요나단은 다윗을 자기 생명 같이 사랑하여 더불어 언약을 맺었으며 4 요나단이 자기가 입었던 겉옷을 벗어 다윗에게 주었고 자기의 군복과 칼과 활과 띠도 그리하였더라” 

이와 같은 우정은 인간의 사사로운 감정이나 이해관계로 맺어진 게 아니라 신앙 안에서 하나님의 사랑으로 맺어진 특별한 것입니다. 자기 옷을 벗어 주었다는 것은 이미 그에게 왕위를 넘겨주었다는 의미입니다. 신앙 안에서 의인과 동행하는 것은 이렇게 복된 것입니다. 후일 다윗이 왕이 된 후 요나단의 후손들을 챙겨주는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의인과 동행하는 축복입니다.   

다니엘 1장을 보면, 다니엘와 세 친구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바벨론 포로로 끌려간 사람들 가운데 귀족 출신 소년들이 왕궁에서 바벨론 식 교육을 받습니다. 영구 식민화를 도모한 겁니다. 그들에게 제공되는 음식 가운데 술과 우상에게 바쳤던 고기가 나옵니다. 그대로 순응할 경우 자신들도 모르게 바벨론의 세속문화와 우상종교에 물들 가능성이 농후했습니다. 다니엘이 신앙 좋지만 소년의 몸으로 혼자 거부하기는 아주 어려웠을 겁니다. 

그러나 세 친구들과 더불어 네 명이 의기투합하면서 대처해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 놀랍게 역사하셨습니다. 감독관이 채식을 허락했고, 그 후 그들은 다른 소년들보다 더 건강해졌고, 더 우수한 성적을 거두게 됩니다. 단1:16~17 “16 그리하여 감독하는 자가 그들(=다니엘과 세 친구)에게 지정된 음식과 마실 포도주를 제하고 채식을 주니라 17 하나님이 이 네 소년에게 학문을 주시고 모든 서적을 깨닫게 하시고 지혜를 주셨으니 다니엘은 또 모든 환상과 꿈을 깨달아 알더라”

의인과 동행하는 축복이 이렇게 귀한 겁니다. 전4:9~12은 그 축복을 이렇게 노래합니다. “9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그들이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을 것임이라 10 혹시 그들이 넘어지면 하나가 그 동무를 붙들어 일으키려니와 홀로 있어 넘어지고 붙들어 일으킬 자가 없는 자에게는 화가 있으리라 11 또 두 사람이 함께 누우면 따뜻하거니와 한 사람이면 어찌 따뜻하랴 12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맞설 수 있나니 세 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

한번은 신문에서 너무 아름다운 기사를 보았습니다. 연세대 남형두 교수와 조선대 특수교육과 김영일 교수의 이야기입니다.(조선일보 2012년 1월 28일자) 

남형두가 서울 법대 2학년 재학 시절 교회 선배로부터 봉사할 데를 소개받았는데, 그 때 만난 사람이 바로 맹학교 고1 학생이었던 김영일입니다. 이른 바 무보수 과외 봉사를 하게 된 겁니다. 당시 맹학교 학생들은 대개 안마사 자격증 공부를 했는데, 대학 진학을 꿈꾸던 학생 중의 한 명과 연결된 겁니다. 이런 만남을 통해 김영일은 연세대 교육학과를 졸업하게 되었고, 그 후 풀브라이트 장학생으로 미국에 건너가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귀국해서 교수가 됩니다. 하지만 그 과정은 너무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김영일이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남형두 선배의 격려가 큰 힘이 됐습니다. 한번은 정말 모든 것은 포기하고 싶었는데 바로 그 때 성탄 카드가 배달됐습니다. 남형두 선배가 카드에 써 준 성구가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는 말씀이었는데, 그 말씀의 은혜로 소망을 갖고 다시 일어설 수 있었습니다. 김영일 교수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저의 인생에서  남형두 선배와의 만남은 그 자체가 기적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신앙 안에서 의인과 동행하는 것은 인생에서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모릅니다. 교회 공동체가 그래서 좋은 겁니다. 의인들과 동행함으로 신앙의 시너지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런 아름다운 모습들이 우리 가운데 넘치기를 축원합니다.


[3] 하나님과 동행 : 에녹, 요셉

그런데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인생을 살다 보면 때때로 홀로 있어야 할 때도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과 동행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그 대표자가 에녹이죠. 창5:21~24 “21 에녹은 육십오 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 22 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 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23 그는 삼백육십오 세를 살았더라 24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Enoch walked with God)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게 동행임을 알 수 있습니다. 동행한다는 것은 보조를 맞추는(walk with) 겁니다. 하나님의 뜻이 나의 뜻, 하나님의 마음이 내 마음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운동회 할 때 많이 하는 2인3각 경기의 원리와 같습니다. 둘이 하나가 되어 잘 달리려면 서로 보조를 맞춰야 합니다. 그러면 잘 갑니다. 그렇지 않으면 어기적거리다 넘어지게 되죠. 우리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과 보조를 맞추는 게 중요합니다. 그렇게만 되면 마음도 편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풍성하게 체험합니다.
 
요셉은 하나님과 동행함으로 일생을 승리한 사람입니다. 애굽에 노예로 팔려가고 감옥에 가는 등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합력하여 선을 이루고 승리합니다. 창39:2~3 “2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의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3 그의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하게 하심을 보았더라” 

하나님이 그와 함께했다는 것은 요셉 편에서 보면 하나님과 동행했다는 의미입니다. 그에게 아무 것도 없었지만, 아니 고난의 연속이었지만 전능자 하나님과 동행하니까 결국은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이렇게 노래합니다. 

시73:27~28 “27 무릇 주를 멀리하는 자는 망하리니 음녀 같이 주를 떠난 자를 주께서 다 멸하셨나이다 28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 ”

세계적은 브랜드 던킨 도넛의 창업자 월리엄 로젠버그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공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사람입니다. 1916년 보스턴에서 태어난 그는 14세 되던 해에 경제 대공황을 맞아 극한 가난을 겪었습니다. 주급 20달러를 받아 부모님을 모시고 힘들게 생활할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며 주일성수와 십일조 생활을 하며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애를 썼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함께 해 주시고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21세가 되던 해에는 작은 회사의 지배인이 되었고, 30세에는 회사를 시작하고, 나중에는 사업이 크게 번창하여 도넛과 커피만을 주종으로 하는 던킨 도넛 매장을 곳곳에 오픈하게 됩니다. 그는 후일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나는 몹시 어둡고 힘든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나의 동행자가 되셔서 늘 도와주셨습니다. 이게 바로 나의 성공 비결입니다. 나는 정말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 가장 큰 재산이고 가장 강력한 권력이고 행복의 원천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나요? 악인과 동행하지 않고 오직 말씀과 기도로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것입니다. 시1:1~3 “1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2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3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시145:18 “여호와께서는 자기에게 간구하는 모든 자 곧 진실하게 간구하는 모든 자에게 가까이 하시는도다”

여러분, 우리가 험한 세상을 살아갈 때 정말 중요한 게 무엇일까요? 누구와 동행할까 하는 겁니다. 여호사밧이 하나님과 동행할 때는 승승장구했습니다. 그러나 잠시 세상에 한 눈을 팔고 악인 아합과 동행할 때는 여지없이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이게 영적 원리입니다. 우리의 마음과 삶이 누구와 동행하느냐 하는 게 인생 승패의 갈림길입니다. 부디 하나님을 경외하는 의인과 동행하시고, 무엇보다 하나님과 동행함으로 진정한 승리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홍문수 목사)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