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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풀무불 속에서도 함께 하신 하나님 (단 3:13-18, 2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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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무불 속에서도 함께 하신 하나님 (단 3:13-18, 24-25)

우리 한국교회는 정말로 아름다운 전통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특별히 나라를 사랑하는 전통입니다. 나라가 어려움을 당할 때 늘 교회가 앞장섰습니다. IMF 때 금모으기 운동도 그리스도인들이 앞장선 것 우리가 이미 잘 알고 있습니다. 또 하나님의 정의가 허물어질 때 한국교회는 그 정의를 위해서 용기와 믿음을 가지고 싸워왔던 그런 아름다운 전통도 가지고 있습니다. 

1919년 3월 1일 94년 전 우리 민족은 일제의 억압과 폭거에 대항해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면서 분연히 일어났습니다. 전국적으로 비폭력 운동이 번져났습니다. 이 만세운동으로 인해서 일경의 총에 맞아서 혹은 고문이나 여러 가지 방법으로 사망한 분들이 7509명이나 되었습니다. 구속된 사람만 4만 7천명에 이르렀습니다. 그리고 만세운동에 참여한 사람들은 수십만에 이른다고 우리가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3·1 만세운동을 주도적으로 이끈 세력이 누구냐? 바로 기독교인이었다는 것입니다. 한국교회 이 만세운동에 깊이 관여해 있었다는 것입니다. 독립선언서를 기초한 사람이 기독교인인 육당 최남선 선생이었습니다. 만세운동의 대표 격인 민족대표 33인 가운데 16명이 기독교인이었습니다. 15명이 천도교인이었고, 2명이 불교인이었습니다. 절반이 바로 기독교인들로 이루어진 것을 우리가 주목해 보아야 합니다. 

만세운동이 전국 311개 지역에서 번져갔는데 가운데 28%, 다시 말하면 한 100개 지역은 기독교인들이 주도적으로 만세운동을 이끌어 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구속된 사람의 17%가 역시 기독교인입니다. 당시에 남북한 인구를 합하면 약 2000만 명이 조금 안되었다고 합니다. 그때에 기독교인의 숫자가 25만명에 불과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1%에서 약1.5%에 불과했습니다. 100명을 전체인구로 친다면 100명중에 한 두 명만이 기독교인이었습니다. 오늘날과는 비교가 안되죠. 오늘날은 적어도 100명으로 친다면 25명은 기독교인이라고 보시면 옳습니다. 그러니까 100명중에 한 두 명밖에 안되는 기독교인들이 이 만세 운동을 주도했다는겁니다. 28% 지역을 기독교인들이 주도했고 구속자의 17%가 바로 기독교인이었다는거예요. 

이건 무엇을 이야기 하느냐 한국기독교가 그만큼 정의를 앞세웠고 자유를 갈망했고 역사 의식 있는 교회 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현실참여적인 교회였음을 우리는 잘 알 수 가 있습니다. 유관순열사 그는 바로 이화여고 학생이었던 독실한 감리교 교인입니다. 

여러분 어떤 분들은 한국교회를 비판할 때 그런 말들을 많이합니다. 한국교회는 복만 좋아한다. 기복주의다. 또 내세 지향적이다. 현실도피적이다 이런 말들로 비난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물론 일부는 맞습니다. 그러나 다 옳은 것은 결코 아닙니다. 

역사 속을 보면 한국교회는 역사참여적인 경향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날도 마찬가지입니다. 많은 분들은 교회를 비판할 때 교회는 헌금을 걷어가지고 집만 짓는다고 이야기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여러분 한국에 있는 모든 복지재단 고아원, 양로원의 70% 이상은 교회가 다 운영하고 있습니다. 교인들은 헌금으로 다 운영되고 있습니다. 그걸 아셔야 되요. 그러나 언론에서는 그런 것을 전혀 이야기 하지 않습니다. 좋은 점들은 말하지 않고 나쁜 점만 끄집어 이야기합니다. 여러분 100개의 칭찬거리가 있어도 한 개의 단점만 이야기하면 남들이 보기엔 그렇게 보일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몇 년 전에 태안에 기름이 유출되었을 때 100만의 우리 국민들이 참여해서 기름제거작업을 했습니다. 일본의 한 해변에 기름이 유출되었을 때 30만명의 일본인들이 모여서 그 작업을 도왔다고 해서 일본의 기적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우리 나라는 100만명이 모여서 그 일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100만명 중의 거의 70%이상은 교회와 그리스도인이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합니다. 그것은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한국교회는 민족이 어려움을 당할 때 마다 늘 희생의 마음으로 앞장을 서고 십자가를 지는 마음으로 동참했다는 것입니다. 

한국교회는 또한 자유와 인권을 위해서 독재와 싸우기도 했습니다. 많은 목회자들이 고난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우상숭배는 절대로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특별히 일본제국주의자들이 우리의 민족혼을 말살하고 종교와 사상을 말살시키기 위해서 신사참배를 강요했습니다. 일본의 신사를 만들어 놓고 거기에 절하게 하였습니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공부하기 전에 그 신사에 절해야 됩니다. 심지어는 예배당에서도 예배드리기 전에 신사에 참배를 하고, 절을 하고 예배를 드리게 했습니다. 그러나 많은 교회, 많은 목회자들은 그것을 거부했습니다. 그리고 옥고를 치르기도 했습니다. 

그중에 제일 대표적인 분이 바로 주기철목사님이십니다. 이 분은 몇 번의 옥고, 그리고 5년 동안의 갖은 위협과 고문에 못 이겨서 결국은 옥사하고 말았습니다. 순교하셨습니다. 그가 섬기던 평양 산정현교회에 장로님이 바로 고당 조만식장로님이었습니다. 오산 학교 교장으로 계실 때 그는 주기철목사님을 가르쳤습니다. 그리고 젊은 주기철 목사님을 청빙해서 자기 교회의 목회자로 모셔왔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순종했습니다. 훌륭한 장로님이 있는 교회에 또 훌륭한 목사님이 배출되었습니다. 그는 정말 한국교회에 자랑스러운 목사님이라고 말 할 수 있습니다. 

그 주기철목사님의 넷째 아들이 주광조장로님이신데 극동방송 부사장을 지내셨습니다. 그 분이 주목사님에 대한 많은 일화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주기철 목사님이 한 번은 출옥한 이후에 산정현교회에서 기도의 제목을 가지고 설교를 하셨습니다. ‘다섯 제목의 나의 기도’라는 그런 설교였는데 그는 다섯 가지 이런 기도의 제목을 이야기했습니다. 

첫째는 죽음의 권세로부터 이기게 하여 주시옵소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그에게도 있었을 것입니다. 두 번째는 장기간의 고난을 이기게 하여 주옵소서. 세 번째는 내 어머니와 내 처자를 내 주님께 부탁합니다. 네 번째는 의에 살고, 의에 죽게 하여주옵소서. 다섯 번째는 내 영혼을 주님께 부탁합니다. 결국 이 설교를 하시고 얼마 후에 그는 옥사하시고 말았습니다. 

여러분 이렇게 한국교회에 아름다운 전통은 성경에서도 비슷한 예를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우상 앞에 무릎 꿇지 않고 신사에 절하지 않았던 이런 아름다운 전통이 이미 구약성경에서는 소개 되고 있습니다. 주전 600년 전 고대 중동에서 가장 강력한 나라가 바로 바벨론이었습니다. 바벨론은 그당시 중동지역을 다 통일시키고 느부갓네살 왕이 즉위했습니다. 그는 이제 제국의 권위를 드러내기 위해서 두라라는 평지에 큰 금신상을 만들었습니다. 

너비가 6규빗이고 높이가 60규빗, 이 한 규빗이라는 것은 쉽게 생각하면 여러분 이 손끝에서 팔꿈치까지입니다. 보통 50센티정도로 봅니다. 50세티 곱하기 60규빗하면은 약 30미터입니다. 30미터 높이라는 것은 보통 건물 7층 높이의 큰 금신상을 만들어 놓고 온 백성과 신하들이 거기에 절을 하도록 했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절하지 않는 세 사람이 있었습니다. 누굽니까? 

다니엘의 세 친구인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였습니다. 결국 어떤 이들이 그들을 밀고 했고 그들은 이 느부갓네살 왕 앞에 끌려가게 되었습니다. 느부갓네살 왕은 그들을 향해서 “너희가 정말 내가 만든 금신상 우리의 신 앞에 절하지 아니하였느냐? 그게 사실이냐?” 라고 묻습니다. 

사실 느부갓네살 왕은 이 세 젊은이를 무척이나 귀하게 여겼고 사랑했습니다. 왜? 그들은 총명했고 정직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을 바벨론의 높은 관리로 임명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그는 그들을 협박합니다. 너희가 지금이라도 다시 음악소리가 날 때 금신상 앞에 절하면 내가 너희를 용서하고 살려줄 것이다. 아마 그렇게 했더라면 그들을 더 귀하게 사용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다니엘의 세친구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그것을 거부했습니다. 

오늘 성경에 보니까 당신이 비록 우리를 풀무불 속에 짚어 넣을지라도 살아계신 하나님이 우리를 건져 낼 것이고 건져내지 않으실지라도 그렇게 아니하실지라도 우리는 우상 앞에 절할 수 없습니다. 거절의 의사를 밝힙니다. 얼마나 담대합니까. 

느부갓네살 왕이 분노해서 그 풀무불을 일곱 배나 더 뜨겁게 하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들을 꽁꽁 묶어서 풀무불 속에 던져 넣는데 던져 넣는 병사가 그 불의 화기에 사망할 정도로 그 불의 열기가 뜨거웠습니다. 아마 쇠도 녹일 수 있는 온도였을 것입니다. 놀랍게도 세 명을 꽁꽁 묶어 짚어 넣었는데 세 명이 자유롭게 활보합니다. 

그런데 보니까 네 명이 그 속에서 자유롭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느부갓네살 왕은 깜짝 놀랐습니다. 아니 저 어찌 된 일이냐? 한 명은 누구냐? 꼭 신의 아들같이 보이는데 느부갓네살왕은 깜짝 놀랐습니다. ‘아니 저 어찌된 일이냐? 저 한 명은 누구냐? 꼭 신의 아들같이 보이는데?’ 

주석가들은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일 것이다. 어떤 주석가는 또 하나님이 보낸 천사들이라고 설명을 합니다. 느부갓네살 왕은 놀라서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야! 이제 걸어나오너라.’ 하고 말했더니 그들이 걸어 나오는데 그들을 묶었던 포송줄만 깨끗하게 풀려 있습니다. 그리고 머리 털 하나 상한 데가 없어요. 

우리는 옛날에 공부하느라고 촛불을 켜놓고 있으면 머리도 이렇게 그슬리고 이러는데요. 그 풀무불 속에서 머리 하나 그슬리지 않았습니다. 느부갓네살 왕은 놀랐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믿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정말 너희의 하나님은 살아계신 분이구나.’ 나의 금 신상에 절하지 않는 너희들을 이 풀무 불에서 건져 주신 분이 너희가 믿는 여호와 하나님이구나‘ 그리고 영광을 돌립니다. 

그는 또한 말합니다. ’우리 백성 중에 누구든지 이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하나님을 모욕하는 자는 그들을 찢을 것이다.‘ 그 얘기는 우리말로 하면 사지를 찢어서 죽일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집은 거름 덩이가 되게 할 것이다. 폐허가 되도록 멸망시킬 것이다. 그런 얘기예요.

여러분 이 느부갓네살 왕이 이들의 믿음에 감탄을 금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오히려 그들이 믿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을 더 중용할 수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는 이 시대에 어떤 신앙으로 살아가야 하겠습니까? 

3.1절 기념 주일을 맞이하면서 또 내일이면 18대 대통령 취임식을 갖는데 오늘 이 시대 진정한 그리스도인들은 도대체 어떤 삶의 자세를 가지고 살아야 될까요? 먼저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우상 앞에 머리 숙여서는 안 될 것입니다. 오늘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금신상 앞에 머리를 숙이지 않았습니다. 절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여호와 하나님 외에는 그들은 머리를 숙일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일본은 우리 나라를 수탈했습니다. 1910년 한일 합방을 통해서 주권을 빼앗았습니다. 영토를 다 그들이 소유했습니다. 그들이 우리의 성씨와 이름, 우리의 언어, 우리의 주권까지 송두리째 강탈해 갔습니다. 신사 참배를 명령했습니다. 그러나 많은 목회자들은 여기에 대해서 거절하고 거부하고 의연히 일어났습니다. 

출애굽기 20장 3절 이하에 보면 우리에게 우상 숭배를 하지 말라고 하나님은 명령하고 계십니다. 우리 출애굽기 20장 3절부터 5절까지 함께 읽어 보십니다.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아멘. 그렇습니다.

결코 그들은 황금 우상에게 절할 수가 없었습니다. 왜? 왕의 명령보다 하나님의 명령이 우선이었고 더 높은 차원의 명령이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오늘 그리스도인들은 무슨 우상을 경계해야 할까요? 우상이란 무엇입니까? 하나님 보다 더 사랑하는 것, 하나님보다 더 좋아하는 것이 있으면 그것이 바로 우상입니다. 

여러분 오늘 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황금 우상 앞에 무릎 꿇는 경우도 종종 있을 것입니다. 이 황금 우상이 무엇일까요? 이 바벨론 시대에는 금 신상을 만들어 놓고 절하라고 했는데 오늘 날에는 많은 사람들이 맘몬주의 우상 앞에 절을 합니다. 맘몬주의, 물질주의, 황금주의입니다. 돈 앞에 물질 앞에 많은 사람들이 오늘도 머리를 숙이고 물질의 노예가 되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거부해야 합니다. 어떤 이들은 물질 때문에 부모도 버립니다. 물질 때문에 형제도 배신합니다. 물질 때문에 동업자가 서로 등을 돌리는 경우도 볼 수 있습니다. 오늘 그리스도인들이라고 해서 결코 예외가 아닐 것입니다. 아무리 물질이 귀해도 결코 하나님보다 더 귀할 수는 없습니다. 

이 맘몬주의와 함께 기독교를 넘어뜨리려 하는 또 하나의 유혹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성공주의입니다. 우리가 성공하는 것은 아름다운 일입니다. 그러나 성공만이 우리 인생의 목적이 될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가야 할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성공을 위해서라면 탈법과 반칙도 서슴치 않는 분들도 있습니다.

한번은 고교생들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를 해 봤다고 합니다. 여러분이 법을 위반하고 10억을 벌수가 있다면 법을 위반하겠습니까? 물었더니 70%가 법을 어기더라도 10억을 벌겠습니다. 하고 대답을 합니다. 거짓말 하고 사기 치더라도 10억만 벌 수 있다면 나는 범죄라도 하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맘몬주의의 노예가 된 증거인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우리는 성공을 위해서라면 탈법도 서슴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것도 잘못된 것입니다. 오늘 이 땅의 교회와 성도들도 성공주의의 노예가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교인들이 설 명절 때 그리스도인들끼리 만나면 ‘네가 다니는 교회는 교인이 몇 명이나 되냐?’ ‘30명 되는데.’ ‘아이고!! 조그만 교회네!! 그게 무슨 교회야? 우리 구역 숫자보다도 적네.’ 교회로 인정을 안 합니다. ‘네가 다니는 교회는 몇 명이나 되냐?’ ‘ 한 3천명 되지.’ ‘아이고 그 교회는 큰 교회네’ 

여러분 언제부터 우리는 사람의 숫자로 교회를 평가하게 됐습니까? 성경 어디에 숫자로 평가 합디까? 그래서 신학교 졸업한 많은 전도사님들이 큰 교회서 목회하려고 성공한 목회자가 되려고 애를 쓰기도 합니다. 왜? 세상의 평가가 그러니까! 

여러분 많은 교인수가 있고 큰 예배당이 있고 많은 재정이 있으면 그것이 성공한 목회입니까? 성경에 어디 그런 이야기가 있습니까? 우리들부터가 잘못된 세속주의에 물들고 노예가 되어 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반칙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잠시 접어두고 인간적인 방법으로 교회를 늘리고 목회를 크게 하려고 애쓰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때로는 세상에서 비난 받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지나가다 보면 한 빌딩에 교회가 두 개가 있습니다. 옆에 빌딩에 또 교회가 있습니다. 서로 교인 쟁탈전을 하는 것이지요. 

여러분 그러기 때문에 큰 교회 목사들은 마치 성공한 목회자처럼 여겨지고 교인이 50명 30명 밖에 안 되면 마치 패배한 목회자처럼 패배주의에 빠져서 살아가는 경우가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이것은 하나님의 기준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자꾸 숫자를 가지고 평가합니다. 그것은 마귀가 좋아하는 것입니다. 누가 숫자가 많으면 성공한 목회라고 했습니까? 성경에 전혀 근거가 없는 얘기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는 성공주의에 빠져서 모든 것을 숫자로 재정으로 예배당 크기로 평가하다 보니까 한국 교회가 자꾸 병들어 가고 있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도대체 성공한 크리스챤 성공한 목회자란 뭘까요? 돈 많이 벌면 성공한 크리스챤입니까? 장관이 되면 성공한 크리스챤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베스트셀러 『육일 약국 갑시다.』 라는 책을 쓴 김성호 메가 넥스트 대표는 성공을 이렇게 정의 했어요,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삶이 성공한 삶이다.’ 그가 어떤 사람이든지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사람이라면 그는 성공한 크리스챤이라고 말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지구촌 교회의 원로 목사님인 이동원 목사님은 목회자의 성공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주 안에서 성숙해지고 교인들도 함께 성숙해 가는 것이 성공이다.’ 우리가 믿음 안에서 성숙해 가는 것, 어른스러워지는 것 이것이 바로 성공입니다. 

온누리 교회 돌아가신 고 하용조 목사님은 성공을 가리켜서 ‘주 예수 그리스도께 붙잡혀 사는 것이 성공이라고 설명했어요. 예수 그리스도께 붙잡혀 사는 인생 그것이 바로 성공한 인생이예요. 그렇게 보면 사도 바울의 인생이 성공한 인생이예요. 세상적인 눈으로 보면 어떻게 성공입니까? 파선 당하고 옥에 갇히고 매 맞고 굶주리고. 그게 어떻게 성공입니까? 그러나 하나님의 눈으로 보면 그것이 성공이라는 것입니다. 그는 복음을 위해서 자기의 생명까지도 아깝지 않게 드릴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미국 남가주 대학교의 댈러스 윌러드 박사는 ‘크리스챤에게 성공은 거룩함에 이르는 것이라고 정의했습니다.’ 말과 행동에서 성령의 열매가 나타나는 것이 바로 성공입니다. 우리는 세상적인 세속적인 성공의 개념을 교회 안으로 끌어 들이면 안되는 것입니다. 

어떤 선교사는 선교지에 가서 정말 일생을 선교했는데 몇 명의 영혼을 구원하고 있을 수가 있어요. 그러다가 또 풍토병을 앓고서 세상을 떠날 수가 있습니다. 그것이 실패자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평가 기준을 가지고 평가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나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맘몬주의 앞에 무릎을 꿇습니다. 성공주의 앞에 세속화 되어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경계해야 합니다. 또한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권력 앞에 결코 무릎 꿇지 않습니다.

여러분 느부갓네살은 바벨론의 절대적인 왕입니다. 그가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불러다 놓고 명령합니다. ‘너희가 내 신상 앞에 절하지 아니하면 7배나 뜨거운 풀무불 속에 던져 넣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눈도 깜짝하지 않습니다. 당신이 우리를 던져 넣을 지라도 살아계신 하나님이 구원할 것이요, 비록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우리는 우상 앞에 절할 수가 없습니다.‘ 그는 더 높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기 위해서 세상 왕의 명령을 정면으로 반박하고 거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게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이 아닐까요? 

물론 그리스도인은 좋은 시민이 되어야 합니다. 세금도 잘 내고 국정에 협력해야 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세상 권력이 불의한 일을 행할 때는 절대로 동참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독일의 본 훼퍼 목사님 같은 경우는 나치 히틀러가 수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고 갈 때 신앙의 양심 고백을 가지고 나서는 것을 볼 수 있지 않습니까? 물론 그는 순교 당합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들은 권력 앞에 무릎 꿇지 않습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우리는 바로 나라를 위해 기도하고 대통령을 위해 기도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디모데전서 2장 1절에서 2절까지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 이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함으로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라. 아멘.‘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라고 성경은 권면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도 새로운 대통령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국정을 잘 운영해 갈 수 있도록 우리 국민들을 평안하게 잘 섬길 수 있도록 그리고 갈라진 대한민국이 하나될 수 있도록 모두가 행복한 나라가 되어질 수 있도록 우리가 기도해야 합니다. 여러분.

저는 노무현 대통령이 취임할 때도 정말 그 분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그분이 대통령 퇴임후 자살로 생을 마치니까 너무나 마음이 안타깝더라고요. 여러분 우리는 누구를 지지하던 박근혜 대통령이 대한민국의 대표로서 그가 국정을 잘 이끌어 갈 수 있도록 우리가 기도하고 협력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국민된 도리다 하는 것입니다. 

몇일 전 신문을 보니까 퇴임한 대통령의 지지율을 설명해 놨습니다. 보통 대통령이 취임할 때는 지지율이 50~80% 왔다갔다 합니다. 굉장히 높은 지지율을 얻습니다. 그런데 5년이 지나도 퇴임할 때 보면 아주 밑바닥을 칩니다. 김영상 대통령은 IMF를 맞이해서 인기가 없었어요. 14%까지 내려갔고 김대중 대통령은 노벨평화상도 받고 인정을 받아서 35%정도 됐어요. 노무현 대통령은 26% 이명박 대통령은 지금 27%입니다. 여러분 5년 동안 잘한 것도 있고 잘 못한 것도 있지만 국민의 지지를 잃고 신임을 잃는 경우가 많이 있어요. 또 친인척 비리 때문에 대통령 임기마치고 나면 주로 가는데가 교도소로 가요. 아니면 동생이가고 부모가 가고 누군든지 가요. 참 안타까운 모습이죠. 

그런데 브라질의 전직 대통령 룰라 대통령은 그가 8년 동안 재임을 하고 퇴임할 때 지지율이 87%였어요. 취임할 때 보다 훨씬 높은 지지율을 얻었어요. 우리는 박근혜 대통령이 그런 룰라와 같은 대통령이 되야 할 줄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명예롭게 퇴임할 수 있는 대통령이 되면 얼마나 좋겠어요. 브라질은 그 당시에 최 빈민국 이었어요. 그런데 이 룰라 대통령이 8년 동안 재임하면서 세계 제 8위의 경제력을 가진 나라로 브라질을 세울 수 있었습니다. 4천만 명의 실직자를 구제했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빈곤층을 중산층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이 룰라 대통령은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는 8남매 중에 7째로 태어나서 너무 자식이 많으니까 가난해서 초등학교를 중퇴했습니다. 그리고 생계를 위해서 어린 시절에는 구두닦이를 하는 거리의 소년이 됐습니다. 초등학교 중퇴 이후에 그는 14살에 아주 열악한 환경의 공장에 선반공으로 취직을 했습니다. 12시간을 일하고 아주 최저 임금을 받았습니다. 그는 18살에 일을 하다가 새끼 손가락 하나가 절단되었습니다. 그는 노조 운동가로 활동을 하는데 그 후 대선에 도전을 해서 세 차례의 낙선의 고배를 마신 후 2002년 대통령에 당선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대통령에 당선이 되었지만 별로 축하하는 분위기가 아니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비난했습니다. 룰라는 왼쪽 새끼 손가락이 없는 장애인 대통령이다.‘ 초등학교 학벌도 없는 사람이다. 글도 못 읽고 영어도 못하는 무식한 대통령이다. 저런 사람이 나라를 어떻게 이끌어 가겠느냐? 그래서 실제 브라질에 투자를 했던 해외 투자자들이 많이 떠나갔다고 합니다. 그런데 룰라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인구의 4분의 1일에 해당되는 가정에 무상으로 보조금을 주고 경제를 활성화시키는데 조건이 있었어요. 당신의 자녀들을 초등학교에 보내는 것을 조건을 걸었습니다. 가난하니까 학교를 안보내고 이러한 악순환이 계속 되는 거였어요. 학교를 보내는 조건으로 보조금을 지급하였습니다. 그랬더니 8년만에 빈민 2천만명이 중산층으로 올라오는 이런 결과가 나왔습니다. 

그는 8년 재선을 마쳤을 때 가장인기있는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주위 사람들이 당신 헌법을 개정해서 3선에 도전하라고 하니까 나는 법을 고치면서까지 대통령이 되고 싶은 마음은 없다고 그는 겸손하게 퇴임했습니다. 그는 퇴임식장에서 눈물을 흘립니다. 그 눈물은 감격의 눈물이었어요. 자신이 대통령으로서 훌륭하게 그 일을 감당 할 수 있었던 것은 내 능력이 아니라 나를 지지해준 국민들의 몫이라고 겸손하게 이야기 했습니다. 

우리 박근혜 대통령이 5년 후에 이런 대통령으로 겸손하게 퇴임할 수 있게 여러분 격려해주시고 기도해주시기 바랍니다. 그가 여당 대통령이든 야당 대통령이든 상관없습니다. 우리가 뽑은 대통령입니다. 그리고 대통령은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닙니다, 적어도 한 나라의 대통령은 하나님이 내시는 거예요. 그렇다면 우리는 그에게 협조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풀무불 속에서도 보호함을 얻었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황금 우상에 절하지 않고 권력 앞에 무릎 꿇지 않는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하나님께서 능력과 보호를 더하실 줄로 믿습니다. 새롭게 출발하는 이 대한민국 배도 하나님이 지키시고 인도할 줄로 믿습니다. 

우리는 대통령을 위해 기도하는 일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대통령을 통해서 우리 국민들의 흩어진 마음이 하나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우리의 역사 속에 백범 김구 선생님이 훌륭한 분이십니다. 그분은 정말 나라를 너무 사랑하셨던 분이셨습니다. 그분은 그런 말을 하셨어요. ‘내가 하나님 앞에 간다면 하나님께서 야! 김구야 너의 소원이 무엇이냐? 라고 물으신다면 저는 예 하나님 저의 소원은 대한민국 독립입니다. 

두 번째로 하나님이 또 물으신다면 역시 내 소원은 대한민국 자주독립입니다. 세 번째 또 물으신다면 대한민국의 완전한 자주 독립입니다. 그렇게 말할 정도로 그는 애국심이 강한 분이셨어요. 그는 신실한 크리스천 이었습니다. 그는 좌우익으로 나라가 분열되는 것을 안타깝게 여기면서 이야기 했습니다. 우리 마음에 38선이 무너져야 땅 위의 38선이 무너질 수 있다고 그렇게 그는 종종 이야기 했습니다. 그는 이 땅에 경찰서 여러 개를 세우는 것보다 교회 하나를 세우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가는 곳마다 강조했습니다. 

여러분 이 땅에 한국교회의 역할이 이렇게 큰 것입니다. 한국교회는 자랑스러운 전통을 가지고 있습니다. 새로운 시대 새로운 정부를 위해서 여러분이 기도해주시면서 이 땅에 정의를 실현해 나가는 날에 우리교회가 앞장섰으면 좋겠습니다. 

갈라디아서 5장 1절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고 말씀 하십니다. 물질의 노에가 되지 맙시다. 권력 앞에 무릎 꿇지 맙시다. 하나님 주시는 말씀을 붙들고 세상에 사랑을 실천하며 정의를 구현하는 그리고 나라와 위정자를 위해 기도하는 우리 교회 성도들 다 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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