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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의 나라 (눅 13: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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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나라 (눅 13:10-21)


폴란드는 근세사에서 수많은 국난을 겪은 대표적인 국가입니다. 
제정 러시아와 나치 독일 같은 강국들을 좌우에 두고 그 사이에서 그야말로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격이 되었고, 게다가 일이차 세계대전의 한복판을 지나갔으며, 그 후에도 또 소련 공산독재의 치하에 떨어지게 된 나라가 바로 폴란드였던 것입니다. 
그 나라가 당한 환난과 고통이 얼마나 컸었는지는 "폴란드인으로 태어난 것은 불행하다."라는 어느 폴란드 시인의 절규 한마디가 단적으로 대변해 주고 있습니다. 
  
조국이라고는 해도 국권을 빼앗긴 나라, 국민 전체가 타국의 노예가 된 나라, 아무리 보아도 앞날에 그 어떤 희망의 구름 한 점도 보이지 않는 나라, 그런 나라에 속한 국민이 된다는 것은 실로 날 때부터 저주를 받은 것처럼 여겨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 반면에 정말 든든한 나라를 자기 조국으로 가지게 된 사람의 심정은 어떠하겠습니까?
옛날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고 자랑했던 로마제국의 시민권자나,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는 도도한 별명으로 통했던 황금기의 대영제국의 신사들은 어디를 가도 든든했을 것입니다.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어떤 한 나라의 국민이 되기 마련이지만 과연 그 나라가 어떤 나라인가 하는 데 따라서 그 국민의 처지는 천양지차인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아주 특별한 한 나라를 선포해 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곧 '하나님의 나라'라고 불리는 나라입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마 12:28)고 선언하셨고, 사도들 역시 "담대히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께 관한 것을 가르치는"(행 28:31) 것이 그들의 주된 사역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두말할 필요 없이,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바로 이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됨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하나님의 나라는 구체적으로 어떤 나라입니까?
이 시간 저와 여러분은 본문의 말씀을 통하여 예수님께서 선포하시고 세우신 '하나님의 나라'란 그 속한 백성들에게 과연 어떤 면에서 실로 믿음직하면서도 자랑스러운 나라가 되는지를 함께 상고해 보고자 합니다. 

1. 하나님의 나라는 자기 백성을 원수로부터 반드시 구원해 내는 왕을 모신 나라입니다. 

본문 10절부터 17절에 "10안식일에 한 회당에서 가르치실 때에 11십팔 년 동안을 귀신들려 앓으며 꼬부라져 조금도 펴지 못하는 한 여자가 있더라 12예수께서 보시고 불러 이르시되 여자여 네가 네 병에서 놓였다 하시고 13안수하시매 여자가 곧 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지라 14회당장이 예수께서 안식일에 병 고치시는 것을 분내어 무리에게 이르되 일할 날이 엿새가 있으니 그 동안에 와서 고침을 받을 것이요 안식일에는 말 것이니라 하거늘 15주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외식하는 자들아 너희가 각각 안식일에 자기의 소나 나귀나 마구에서 풀어내어 이끌고 가서 물을 먹이지 아니하느냐 16그러면 십팔 년 동안 사단에게 매인 바 된 이 아브라함의 딸을 안식일에 이 매임에서 푸는 것이 합당치 아니하냐 17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매 모든 반대하는 자들은 부끄러워하고 온 무리는 그 하시는 모든 영광스러운 일을 기뻐하니라"고 기록했습니다. 

여기에 보면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회당에서 한 여인을 고쳐 주신 사건이 나옵니다. 
그 여인은 "귀신들려 앓으며 꼬부라져 조금도 펴지 못하는" 병자라고 했는데, 아마 척추가 뒤틀리고 신경이 손상된 병이었던 것 같습니다. 
다른 대부분의 경우에는 병자 쪽에서 예수님께 치유를 간청해오기 마련이었지만, 이번에는 그 여인 쪽에서 먼저 예수님께 구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 대신에 예수님께서 그 여인을 보시자마자 즉시 "여자여 네가 네 병에서 놓였다"라고 선포하시고 "안수"하심으로써 그녀의 병을 고쳐 주셨습니다. 
그 여자는 그처럼 중한 병에 걸려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안식일에 회당 예배에 참석하고 있었으니 분명히 신앙심이 깊은 사람임에 틀림없었으며, 그래서 또한 자기 병이 낫게 된 순간에도 곧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던"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자리에 있던 "회당장"은 그런 놀라운 기적을 목도하고서도 오히려 화를 터뜨렸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 직접 말하지도 않고 그 곳에 있던 다른 "무리" 앞에서 '병 고침'을 받는 것도 "안식일"에는 할 수 없는 일이며 당연히 '일할 수 있는 엿새' 중에 와서 받아야 마땅하다고 "분"을 내며 말했던 것이었습니다. 
회당장은 당시 회당의 예배와 기타 행사에 대한 행정적인 책임자였습니다. 
  
언제 모이고 누구를 설교자로 세우고 무슨 순서를 어떻게 진행하고 하는 것들에 대한 모든 권한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당연히 회당장들은 법적인 문제에도 밝았을 것이고, 따라서 안식일 성수에 관한 바리새인들의 해석 역시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바로 그런 외적, 법적, 제도적인 사고방식에 스스로 꽉 막혀 버린 까닭에 그는 실로 중대한 것은 완전히 까먹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어서 지적하시는 바가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회당장과 그에게 동조하는 자들을 가리켜 "외식하는 자들아"라고 책망하시면서 한 가지 질문을 던지셨습니다. 
'너희가 안식일에도 너희 가축들은 돌보지 않느냐?'라고 물으신 것이었습니다. 
실제로 당시의 바리새인들은 안식일에 가축을 어떻게 돌보아야 하는 것에 대해서도 아주 상세하게 규정해 놓고 있었습니다. 
'가축의 등에 무슨 짐을 싣지 않는 한 그것을 끌고 나갈 수는 있다.'든지, '여물통에 물을 부어 주고 가축에게 먹일 수는 있지만, 사람이 물통을 손에 들고 직접 가축의 입에 물을 먹일 수는 없다.'라는 따위의 규정들이었습니다. 

그들은 그 민감한 안식일 성수 문제가 자기네의 가축에게 어떻게 적용되어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 이처럼 상세하게 기록할 만큼 그 짐승들을 아끼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와는 전혀 대조적으로 그들은 무려 십팔 년 동안이나 병마로 고생하고 있던 한 여인에 대해서는 너무나도 무관심했습니다. 
짐승이 아니라 사람이고, 이방인도 아닌 같은 이스라엘 동족이며, 더구나 안식일의 회당 예배에도 함께 참석하고 있던 그 신실한 여인에 대하여서는 정말 어처구니없게도 냉담하기 짝이 없었던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자리에서 회당장과 바리새인들의 그 엄청난 무관심과 배타심과 멸시의 벽을 깨뜨리셨습니다. 
"그러면 십팔 년 동안 사단에게 매인 바 된 이 아브라함의 딸을 안식일에 이 매임에서 푸는 것이 합당치 아니하냐"라고 반문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그 여인을 어떤 눈으로 보시고 얼마나 자상하게 생각해 주고 계셨는지를 그대로 드러내 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여인이 오직 고난으로 점철된 18년의 세월을 살아온 것을 보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여인이 사단에게 매여 그런 고생당하고 있는 것을 보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그 여인도 어디까지나 '아브라함의 딸' 즉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에 속한 자임을 보셨던 것입니다. 

듣고 보면 지극히 간단하고도 당연한 사실이지만, 그것은 그 회당에 있던 회당장 이하 동네사람들, 정작 그 여인을 오랫동안 알고 있던 그 모든 사람들은 전혀 보지도 의식하지도 못하고 있던 사실이었습니다. 
오직 예수님만 그 여인을 '사단에게 매인 바 된' 여인, 그런 까닭에 반드시 구원해 주어야만 할 '아브라함의 딸'로 보아 주셨던 것이며, 그래서 여인 쪽에서 아무 요청도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즉시 그녀의 병을 고쳐 주셨던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선민 이스라엘의 왕으로 오신 분이시기 때문이었습니다. 
즉 예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구원하실 메시아'이신 까닭에 '성부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주신 택자' 가운데서 단 한 명도 사단에게 빼앗기는 법이 없는, 실로 완벽하고도 믿음직한 왕이신 것입니다. 

어떤 나라가 거기에 속한 모든 백성으로부터 충성을 받겠습니까?
어떤 국가가 그 모든 국민으로 하여금 뜨거운 애국심이 절로 일어나도록 하겠습니까?
바로 자기 백성의 생명을 보호해 줄 줄 아는 나라입니다. 
자국민이 테러범의 인질로 잡히면 온갖 외교적 조치는 물론이고 군사 특수작전을 감행해서라도 그들을 반드시 구출해 내는 나라는 전 국민들로부터 무한한 신뢰를 얻게 됩니다. 
어느 외국에 나가도 자기 나라의 여권만 내어 놓으면 아무도 자신을 불법적으로 대할 수 없다는 사실을 온 국민이 확신할 수 있을 정도가 되면 애국심이란 따로 교육할 필요조차 없이 절로 고취되는 것입니다. 
  
정부가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을 지극히 소중히 여기고 존중하는 것이 그 모든 정책과 시행을 통하여 언제 어디서나 명백히 드러나는 나라는 그 국민들부터 무한한 사랑을 받게 될 뿐 아니라 필요하다면 자기 목숨까지도 기꺼이 바칠 수 있는 충성심까지 유발하게 되지 않겠습니까?

반면에 자국민의 안보와 이익을 지키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기는커녕 기본적인 책임조차 회피하는 국가는 국민으로부터 늘 불신임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자국의 어선이 나포되거나 여객기가 폭파당하고 자국의 영토가 폭격을 당해도 대응하기는커녕 제대로 따지지도 못한다면 어떻게 국민으로부터 국가에 대한 충성을 요구하거나 기대조차 할 수 있겠습니까? 국가는 무엇보다도 자기 국민의 생명과 권익을 그 어떤 종류의 위협으로부터도 지켜 낼 수 있어야만 비로소 국가다운 국가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바로 '하나님의 나라'야말로 그 나라에 속한 백성 전부를 완벽하게 구원해 줄 수 있는 유일한 나라입니다. 
북한 같은 나라는 아예 자국민을 스스로 굶겨 죽이는 나라이니 말할 것도 없고, 현재 명실 공히 세계 최강국인 미국조차 온갖 테러로부터 자국민의 생명을 완전하게 보호해 줄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나라'는 그 나라의 시민권을 가진 백성을 단 한 명이라도 놓치는 법이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나라의 왕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에서 '나라'라고 번역되어 있는 단어는 원래 '왕국' 즉 '왕을 주권자로 모신 나라'를 가리킵니다. 
그리고 이 예수님만큼 자기 백성을 사랑하시는 왕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기 백성이 사단에게 압류되어 있는 것을 결코 내버려 두지 않으시고 당신께서 스스로 십자가를 지시기까지 하면서 끝내 살려내고야 마시는 너무나 위대한 왕이십니다. 
자기 백성이 원수로부터 고통당하는 것을 보실 때마다 즉시 당신의 무한하신 인자하심을 발동시키시고 당신의 전지전능을 동원해서 그들을 한 명도 빠짐없이 완벽하게 구원해 주시는 왕이신 것입니다. 

전 세계 어디를 가도 이처럼 믿음직한 왕을 모신 나라는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야말로 실로 '당신에게 주신 자 중에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으시고' 또한 '자기 백성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는' 왕을 모신 최고로 위대한 천년왕국임을 깨닫고 이 나라를 사랑하며 소중히 여기고 충성을 다하는 백성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 하나님의 나라는 계속 번창하여 온 세상을 정복할 막강한 국력을 가진 나라입니다. 

18절 이하 21절의 말씀에 "18그러므로 가라사대 하나님의 나라가 무엇과 같을꼬 내가 무엇으로 비할꼬 19마치 사람이 자기 채전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자라 나무가 되어 공중의 새들이 그 가지에 깃들였느니라 20또 가라사대 내가 하나님의 나라를 무엇으로 비할꼬 21마치 여자가 가루 서 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 하셨더라"고 기록했습니다. 

이 본문이 "그러므로"라는 단어로 시작되는 것은 이 내용이 바로 앞의 사건과 연관되고 있음을 암시합니다. 
그 회당장이나 바리새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선포된 하나님의 나라를 알지도 못하고 거기에 속하지도 못한 자들이었습니다. 
또 그들과 마찬가지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복음의 선포를 받고도 아직 그 나라의 백성이 되지 못한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아니 현실적으로, 예나 지금이나 하나님 나라에 속한 백성은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아닌 사람 수에 비해서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소수에 불과합니다. 

통상 한 국가의 국력은 그 나라에 속한 국민의 수와도 비례됩니다. 
아무리 국민 개인의 평균 수입은 높다 해도 총인구가 몇 백만 명밖에 안 되는 싱가포르 같은 작은 나라가 GNP는 상대적으로 낮아도 16억의 국민을 가진 중국과 상대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런 관점에서만 본다면 그처럼 늘 소수의 백성만 거느리고 있는 '하나님의 나라' 역시 세상의 열국들 앞에서 맥을 추지 못할 것 같지 않습니까?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이어지는 두 가지 비유를 통하여 결코 그렇지 않다고 선포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우선 "채전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은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씨 한 알이니까 물론 아주 작은 것입니다. 
식물학적인 분류에 따라 엄격히 말한다면 이것은 나무는 아니지만, 하여튼 이 겨자씨가 자라면 4미터 정도의 높이까지 이르러서 "공중의 새들이 그 가지에 깃들일"만큼, 즉 둥지를 틀 수 있을 만큼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비유를 통해 강조하고자 하시는 요점은 바로 그 작은 겨자씨 한 알 속에 감취어진 엄청난 '번성의 능력'입니다. 
새의 한 입 먹이거리도 되지 않는 그 작은 씨가 오히려 새들에게 보금자리를 제공해 줄 수 있을 만큼 크게 자라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 역시 그러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고 복음의 씨를 세상에 뿌리셨을 때 그것은 실로 '작은 겨자씨'와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를 향하여 전도하기 시작했을 때에도 그 움직임이란 것은 당대 세계를 제패하고 있던 로마제국의 영향력에 비하면 상대도 안 될 정도로 미미한 것에 불과했습니다. 
오늘날 그 복음을 선포하기 위한 개척교회가 하나 세워지는 것 역시 겉보기에는 마치 드넓은 밭의 한구석에 겨자씨 한 알 떨어진 것처럼 표도 잘 나지 않는 것입니다. 

하지만 바로 그 겨자씨가 지금은 결국 '온 땅'에 다 퍼지게 되었습니다. 
그 지극히 작은 천국 운동이 오늘날에 와서는 오대양육대주의 나라와 민족에게 전파되면서 택자들을 불러 모으고 있습니다. 
그리고 교회는 그처럼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된 자들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 삶을 누리는 영적 보금자리를 펼쳐 주기에 넉넉할 만큼 그 가지들이 무성하게 번창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겨자씨가 '번창의 힘'을 강조한 것이라면, 이어지는 "누룩"의 비유는 하나님의 나라가 내포하고 있는 '변화시키는 힘'을 강조한 것입니다. 
"가루 서 말"이란 상당한 양의 곡식 가루입니다. 
하지만 그것을 "전부 부풀게 할" 힘이 단 한 숟가락의 누룩 속에 들어 있는 것입니다. 

떡을 만들 때에 필요한 누룩은 이처럼 밀가루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양이 아주 적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밀가루 속에서 어떻게 작용하는지 사람의 눈에 보이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그 변화력은 그 밀가루의 본래의 모습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버릴 정도로 강력합니다. 
즉 오직 누룩이 가지고 있는 힘 때문에 밀가루는 빵이라는 다른 형태의 물질로 완전히 변화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전 인류에게, 또한 전 세계에 주는 영향력 역시 그러합니다. 
복음이란 이 세상의 강력한 권력과 재력이나,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솟아 있는 지식이나, 끝없이 발전하는 문화나 사회조직들과 비교해 볼 때, 실로 그것들에 무슨 영향력을 끼치기는커녕 그것들을 상대하려고 그 앞에 설 엄두조차 낼 수 없을 것처럼만 보입니다. 
하지만 그런 불가능하게 보이는 일이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실제로 일어나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한 사람을 그 영혼 가장 깊은 속에서부터 그 전 생애에 이르기까지 변화시켜 나가는 능력은, 권력이나 돈이나 지식이나 문화나 사회가 사람을 변화시키는 능력과는 전혀 견줄 수조차 없을 정도로 오묘하며 결정적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에게 '중생'이라고, '다시 새로 태어난 생명'이라고 불릴 정도로 강력하고도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날 수 있게 해 주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나라' 안에서 '복음'이라는 누룩을 통해서만 가능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로 이런 놀라운 왕국을 개국하셨지만, 그 초기의 모습은 정말 보잘것없는 것이었습니다. 
빌라도가 예수님을 향하여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라고 물었을 때, 그리고 예수님께서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다. 
'라고 대답하셨을 때, 빌라도의 눈에는 그 비참한 몰골의 죄수를 왕으로 모신 왕국이란 것이 그 얼마나 가소롭게 보였겠습니까? 
하지만 바로 그 하나님의 나라가 결국 그 로마제국을 거꾸로 압도했을 뿐 아니라, 지금에 와서는 전 세계 방방곡곡에 그 시민권자들을 두고 있는 지상 최대의 왕국이 되었습니다. 
오직 이 예수님의 왕국인 교회만이 각 사람에게 '거듭남'이라는 기적적인 변화와 '영생'이라는 최고의 복지를 제공해 주는 위대한 나라가 된 것입니다. 

그러니 이 하나님의 나라에는 약소국가의 서러움이란 것이 결코 없습니다. 
이 나라는 외적의 침략으로 망한다든지, 경제 파탄으로 자폭하는 경우도 절대로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왕국을 개국하신 이래 이 나라에서는 그 어떤 지표도 하향곡선을 그려 본 적이 없는 것입니다. 
실로 하나님의 나라인 교회는 지금까지 오직 번창일로를 달려왔으며 앞으로도 온 세상을 복음으로써 완전히 정복하고야 말 사상 최대의 강대국임을 깨닫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 '나라'는 이 땅에서 사람이 속하게 되는 단체나 조직들 중에서 제일 위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느 나라에 속한 백성이 되느냐 하는 것은 어떤 학교에 다니고 어떤 직장에 가게 되느냐 하는 것들보다 훨씬 더 근본적으로 그 사람의 생애에 영향력을 끼치게 됩니다. 
북한의 인민으로 태어나는 것과 대한민국의 국민으로 태어나는 것 자체가 이미 그 인생을 결정적으로 갈라놓게 됩니다. 
일단 강하고 부요한 나라의 국민이 되면, 그 사람의 일생은 약소국가의 국민과 비교해 볼 때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행복이 보장되어 있는 것이나 다름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신자'가 되는 것을 이처럼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이 되는 것으로 표현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었다는 이 사실이 자동적으로 우리에게 보장해 주는 축복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나라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 속한 백성 각 사람을 하나도 빠짐없이 완벽하게 구원해 주시는 놀라운 은혜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저와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를 왕으로 모시고 속해 있는 교회는 그 얼마나 든든한 하나님의 나라이겠습니까?
우리는 인류역사가 지속되는 동안 계속 번창하고 끝내 온 세계를 정복하고야 말 이 막강한 왕국 안에서 금세부터 내세에 이르기까지 온갖 특권과 축복을 향유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 기독신자는 그 얼마나 자랑스러운 시민권을 가진 천국 백성이겠습니까?

오래 전에 미국의 LA에서 큰 폭동사태가 일어났을 때였습니다. 
폭도들에 의하여 자기 가게를 몽땅 털리고 파괴당한 한 일본인 아주머니가 그 다 깨어져 버린 가게 창문가에 서서 지나가는 행인들을 향하여 외치고 있었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미국입니까? 이것이 자유롭고 평등하다는 미국의 참 모습입니까?"라고 피눈물을 흘리면서 그녀는 절규하고 있었습니다. 
미국이라면 자신의 생존권을 확실히 지켜 주고 자신의 전 인생을 틀림없이 행복하게 해 줄 것이라고 기대하면서 이민을 왔던 그녀는 결국 그런 실의와 절망에 빠지고 말았던 것이었습니다. 
명실 공히 현재 세계 제1위의 강대국인 미국조차 그러하다면, 자국민의 생명과 권익을 100퍼센트 안전보장해 줄 수 있는 완벽한 복지국가란 이 지구상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을 것이 분명하지 않겠습니까? 

오직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이 영원히 지속되는 나라, 모든 인생의 유일한 길과 진리와 생명이 되시는 '왕 중의 왕'을 주권자로 모신 나라, 바로 이 위대한 '하나님 나라'에 속한 백성들만이 진정한 행복과 영원한 안전보장을 누릴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하나님의 나라'는 무슨 북한의 '정전협정 백지화'라는 공갈협박 따위 앞에서도 꿈쩍도 하지 않는 실로 든든하기 짝이 없는 사상최고의 초강대국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나라의 백성이 될 수 있는 길은 곧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세주로, 하나님의 독생성자로 믿고 영접하고 고백하기만 하면 누구에게나 활짝 열려 있습니다.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고 선포하신 이 주님을 교회라는 천년왕국을 통하여 그처럼 자신의 영생의 왕으로 모시고 살기만 하면, 설사 세계적인 경제공황이나 제3차 대전이 일어난다 할지라도 '그 주님의 날개 품 아래'에서 보호를 받으며 세상이 알지 못하는 놀라운 평안을 누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고 예수님께서 선언하셨습니다. 
즉 예수님의 초림으로 말미암아 사단의 권세는 완전히 깨어지고 하나님의 나라가 실제로 도래하게 된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나라'는 그 속한 백성을 단 한 명이라도 잃지 않고 다 구원해 내고야 마는 실로 믿음직한 나라입니다. 
  
이 하나님의 나라는 계속 발전 번창하면서 세상 나라들이 다 망하고 말 종말 이후에도 든든히 서 있을 실로 영원불변의 강국입니다. 
왕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써 이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어 금세에서의 복과 내세에서의 영생구원까지 다 함께 누리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석기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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