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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언제나 하나님 편에서 (수 2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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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하나님 편에서 (수 24:15)


생각해 보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복이 많습니다. 어느 것 하나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아닌 것이 없습니다. 저는 지금 저의 삶이 꿈과 같습니다. 아니 저는 지금과 같은 삶을 꿈꾼 적도 없고, 욕심 낸 적도 없습니다. 이런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하지 못했습니다. 지금의 제 삶은 그렇고 저는 그런 삶의 큰 복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았습니다.
그 많은 복 중의 가장 큰 복, 가장 첫 째 되는 복을 말하라하면 저는 서슴없이 '믿음'이라고 말하겠습니다. 큰 믿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냥 하나님이 믿어지는 정도의 작은 믿음입니다. 예수님의 말씀과 같이 정말 겨자씨만한 믿음입니다.

그런데 그 겨자씨만한 믿음에 천국이 열렸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열렸습니다. 하나님이 믿어 진다는 것 생각하면 할 수록 축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믿어진다는 것,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저는 그것을 다음과 같이 이해합니다. 첫째는 하나
님이 계시다는 것을 믿음, 둘째는 그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전능하신 분이심을 믿음, 그리고 셋째 마지막으로 그 전능하신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되 당신 자신을 십자가에 못박으시리만큼 사랑하신다는 것을 믿음.

천지를 창조하신 전능하신 창조주가 계신다는 것을 믿고 이해하는 것은 저에게 크게 어렵지 않았습니다. 저는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과 자연과 우주와 수 많은 생명들과 사람들과 저 자신을 보면서 이 모든 것이 우연히 저절로 생겨나 진화하였다는 말과 주장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수학에 무한대라는 개념을 적용하지 않으면 풀 수 없는 우주와 생명들의 크기와 섬세함 그리고 그것들의 유기적인 움직임과 연관성 그리고 일체성과 통합성을 보면서 저는 창조주가 계시다는 것과 세상과 우주와 모든 생명이 다 그 한 분으로부터 말미암았다는 사실을 별로 어렵지 않게 믿고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세상의 모든 피조물들은 모두 다 그 창조주의 계획과 섭리를 따라 순종하고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래서 세상은 아름답고 신비하고 생명으로 충만해 있습니다.
그런데 유독 우리 인간만이 창조주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마치 이 우주 만물과 세상을 창조하신 주인이 없는 것처럼 생각하고,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러므로 이 모든 것이 그냥 다 자기 것인처럼 생각하고 욕심 부리고 제 멋대로 지배하려 함으로 세상을 파괴하고 망가트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인간도 창조주와 비교할 수는 없지만 제법 지혜롭고, 능력이 있습니다. 창조주와 비교할 수는 없지만 창조주 하나님만 빼면 다른 피조물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탁월한 지혜와 능력을 가지고 있는 존재가 바로 우리 인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매일 자동차를 타고 다니며, 컴퓨터와 스마트 폰으로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수 많은 사람들과 시간과 공간의 한계를 벗어나 소통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전혀 가보지 않은 길도 네비게이션이라고 하는 정말 신통한 기계의 도움으로 늘 다니던 길처럼 찾아 다니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둘째치고 우리 인간의 능력만해도 정말 상상이 가지 않으리만큼 크고 위대합니다.

그런데 그 인간의 능력이 죄로 말미암아 오염되었습니다. 선악과를 따먹고 범죄함으로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는 본능을 가지게 되면서부터 인간의 지혜와 능력은 오염이 되어 그 모든 지혜와 능력이 생명으로 역사하지 않고 사망으로 역사하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우리는 북한이 핵과 미사일을 개발하고 그 핵과 미사일을 가지고 우리를 매일같이 위협하는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핵 폭탄을 만들고 그것을 수 천 키로미터 떨어진 곳 까지 정확히 날려보내 목표를 타격할 수 있는 무기들을 우리 인간들을 만들어 내었습니다. 지금 우리 인간들이 만들어내 가지고 있는 모든 폭탄들을 다 터트린다면 지구가 수 십번, 수 백번도 더 터질 정도입니다.

저는 학교 다닐 때 한 번 작심하고 여름 방학 때 두꺼운 세계사 책을 정독해 본 적이 있었습니다. 그게 평생 제 삶에 도움이 되었습니다. 거기서 배우고 깨달은 것이 참 많았습니다.
그런데 제가 그 세계사를 읽으면서 깨달은 중요한 것 중에 하나는 인간이 하는 짓 모두가 결국은 다 세상과 세계와 자신을 파멸로 몰고 가는 짓이라는 사실입니다.

저는 성경과 세계사를 읽으며 그 이유가 우리 인간이 죄에 오염이 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인간의 지혜와 능력이 죄에 오염이 되어 그 모든 지혜와 능력이 생명으로 역사하지 않고 사망으로 역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 생각과 계산으로는 이 세상과 지구는 망해도 벌써 망해야만 했고, 망해도 수 백 번 아니 수 천 번은 더 망했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보기에 참으로 신기한 것은 세상이 아직 망하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역사가 망하지 않고 계속하여 살아남고 새로운 생명으로 새로운 역사가 이어져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 이유와 까닭이 하나님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인간의 지혜와 능력과는 비교될 수 없는 지혜와 능력을 가지고 계시는 창조주 하나님이 우리의 눈에는 보이지 않으시지만 우리와 세상을 지키시고 보호하시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시는 이유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사랑'이었습니다. 특히 우리 사람에 대한 사랑이었습니다. 사랑은 포기하지 않는 것입니다. 포기할 수 없는 것입니다. 포기한다는 것은 사랑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죄로 말미암아 타락하고 오염된 우리 인간을 그 죄의 결과인 사망과 실패로부터 구원하시고 살리시기로 작정하시고 작심하신 것이 틀림없습니다.저는 그것을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하여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도 사는 것이 힘들어 정말 죽고 싶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한 달 넘게 방에서 두문불출하며 고통스러운 때를 보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 어느 날 우연히 벽에 붙어 있는 작은 나무 십자가를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그 때 그 십자가가 나에게 말을 걸어왔습니다. 그것은 그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난 너 죽는 꼴 못봐>  단도직입적으로 예수님은 그 십자가를 통하여 제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내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살려내고 말꺼야> 저는 그게 십자가라는 것을 그날 깨달았습니다.

그날 저는 깨달았습니다. 나는 죽을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말입니다. 나는 결국 여기서 벗어날 것이며 살아날 것이며 결국은 승리하고 성공할 것이라는 것을 저는 그날 그 십자가의 음성을 듣고 깨달았습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전능하신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으시리만큼 사랑하시는데 어떻게 나에게 죽음과 실패가 역사할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논리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이까짓것 때문에 내가 죽고 망할 사람이었다면 우리 예수님 날 위해 십자가 지시지도 않으셨다.> 이 생각을 하고 한 달 넘게 씨름했던 문제로부터 근사하게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일어설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오늘까지 달려올 수 있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심에도 불구하고 어려움을 격는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즉시 건져주지 않으시고 그 어려움에 버려 두시는 때가 있습니다. 많은 이유가 있지만 그 중에 하나는 훈련과 연단을 위해서입니다.

훈련과 연단을 위하여 그리고 우리를 깨우치시기 위하여 잠시 고난과 역경 속에 우리를 던져 두시는 때가 있기는 하지만 하나님은 절대로 우리가 거기서 죽고 망하도록 내버려 두시지는 않습니다.
그런데도 신기하게 사람과 세상을 보면 여전히 죽고 망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구원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저들을 선택하지 않으셔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저들을 버리셔서가 아닙니다.

우리 사람이 하나님을 선택하지 않아서입니다. 사랑과 구원은 일방적이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내미신 손을 우리가 붙잡지 않는다면 구원은 완성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잘 아는 요한복음 3장 16절에도 보면 '저를 믿는 자마다'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아무리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하셔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으셨어도, 그리하여 누구를 막론하고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그 하나님을 믿기만 하면 다 영생을 얻고 구원을 얻게 하셨지만 모든 사람이 다 구원을 얻는 것은 아닙니다.

'저를 믿는 자마다'라는 말씀 속에는 '저를 믿지 않는 사람은'이라는 숨어있는 설명이 들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이 축복인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사랑하심도 믿음이 없다면 우리와 아무 상관도 없어지게 되기 때문인 것입니다.믿음이 축복입니다. 저는 사랑하는 여러분들이 그 믿음의 복을 받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믿음이란 하나님 편에 서는 것을 의미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다 오른 쪽으로 갈 때 하나님 한 분이 왼 쪽이라 말씀하신다면 두말 없이 하나님 편에서서 홀로 왼 쪽으로 가는 것이 하나님 편에 서는 것입니다. 그게
믿음입니다.
믿음은 입으로 '주여. 주여'하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그렇게 하나님 편에 서는 것입니다. 때로는 죽음을 각오해야만 하는 일입니다. 사람들에게 왕 따 당하고 버림 받고 비웃음을 받아야 하는 것을 경험해야만 하는 일입니다.

때로는이 아니라 그게 상식적이고 일상적인 세상에서 언제나 하나님 편에 서는 것, 하나님을 선택하는 것, 그리고 하나님의 식과 법을 고집하고 그대로 따라 사는 것 그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그게 바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믿음인 것입니다.
쉽지 않습니다. 당연히 쉽지 않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일 중에 하나가 하나님을 믿고 언제나 하나님 편에 서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입니다.

그러나 생각처럼 그렇게 어렵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죽기를 각오하고 그 믿음의 길을 선택하면 조금씩 조금씩 편해집니다. 길이 넓어집니다. 그리고 나중에는 즐겁고 재미있어 집니다.
그 길에 있는 생명과 구원과 행복과 승리와 성공의 열매들을 맛볼 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일단 작더라도 그런 열매들을 맛보게 되면 점점 쉬어집니다.

찬송가 중에 '주와 같이 길 가는 것'이라는 찬송이 있습니다. 그 찬송 가사 중에 정말 은혜가 되는 가사는 이것입니다. <즐거운 일 아닌가?> 그 찬송을 작사한 작사자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주와 같이 길 가는 것 즐거운 일 아닌가?>
그는 하나님 편에 서는 것의 복을 맛본 사람입니다. 믿음의 축복을 경험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편에 서서 주와 함께 걷는 길이 좁은 길임에도 불구하고 즐겁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 길이 즐겁기 때문에 자기는 '날마다, 날마다' 그 길을 걷겠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선민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친히 애굽에서 건져내신 백성들이었습니다. 저들은 하나님께 구원을 부르짖었고, 하나님은 그 음성을 들으시고 저들을 애굽의 바로에게서 건져내어 주셨습니다.
우리는 저들의 구원을 성경을 보고 믿지만, 저들은 성경에 나타난 그 소설같고 동화 같은 사실은 눈으로 보고 실제로 격고 산 사람들입니다. 저들은 정말 구름기둥과 불기둥을 날마다 보면서 산 사람들입니다.

저들은 입으로 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너희들의 종교가 무엇이냐를 물으면 누구나 다 기독교라고 대답을 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들의 지도자인 여호수아의 눈으로 보니 저들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와 정착하면서부터 저들은 가나안 사람들에게 하나님과 하나님의 식과 법을 전수하지 못하고 은근히 저들의 삶의 방식과 길을 흉내내려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여호수아가 오늘 본문의 말씀으로 자기 백성들에게 호통을 친 것입니다.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조상들이 강 저쪽에서 섬기던 신들이든지 또는 너희가 거주하는 땅에 있는 아모리 족속들의 신들이든지 너희가 섬길자를 오늘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수24:15) 아멘. 아멘.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저는 성경을 믿습니다.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도 믿고, 우리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전능하신 분이시라는 것도 믿습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이, 전능하신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도 믿습니다.
그래서 그 하나님을 믿기만 하면 영생을 얻고.,하나님 나라를 얻고, 땅에서도 하늘을 사는 것과 같은 복을 받는다는 것을 믿습니다. 그리고 그 복이 다 '믿음' 하나에 달려 있다는 것을 믿습니다.

그런데 그 단 하나의 믿음이 그렇게 여럽다는 것도 압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그 믿음에 제 인생을 걸고 싶습니다. 언제나 하나님 편에 서서 가라 하시면 가고, 서라 하시면 서는 그런 삶을 살고 싶습니다.
<나와 내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는 여호수아의 고백을 저도 하면 살고 싶습니다. 늘 하나님 편에 서서 좁지만 믿음의 길을 걸어가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실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김동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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