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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믿음과 복 (말 3: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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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과 복
말라기 3:6-12 

오늘은 대부분의 한국 개신교회가 지키는 교회력으로 맥추감사주일입니다. 맥축감사절이란,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가나안 원주민이 지어 놓은 보리를 수확해서 먹습니다. 참으로 오랜만에 먹어보는 곡식인 것입니다. 그러자 40년 동안 광야 여정에서 이스라엘에게 주어졌던 만나가 그칩니다. 그런 점에서 이스라엘에게 맥추절이란 하나님 야훼가 바로 자신의 기업임을 고백하는 절기이고, 없는데서도 먹이시고, 입히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날이기도 합니다. 참으로 오랜만에 비다운 비를 봅니다. 하늘에서 비를 주시지 않으면 아무리 첨단 문명의 시대라고 할지라도 살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은 이번 특별히 중부지방에 온 가뭄을 통해서 깨달은 분도 있을 것입니다. 이처럼 인간에게는 하나님의 돌보심이 필요하고, 하나님의 돌보심을 믿고 의지하는 믿음 또한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믿음이란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신실한 그리스도인이라면,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정직하게 때로는 고집스럽게,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만 합니다. 말씀대로 순종하고 살아가면, 복을 받은 사람이 됩니다. 복을 받은 사람이 복된 길에 서면, 그 앞에서 전개되는 모든 것이, 복으로 연결이 됩니다. 그래서 오늘은 본문 말라기 3:6-12절의 말씀을 중심으로 하여 몇 가지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1. 온전한 믿음은 내 생각을 버리고, 전적으로 하나님께로 향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온전한 믿음이란, 내 모든 생각을 버리고, 내 마음을 전적으로 하나님께로 향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 7절에서 예언자 말라기는 예언하기를, ‘너희 조상 때로부터 너희는 내 규례를 떠나서 지키지 않았다. 이제 너희는 나에게로 돌아오너라. 나도 너희에게로 돌아가겠다. 나 만군의 주가 말한다. 그러나 너희는 돌아가려면, 우리가 무엇을 하여야 합니까? 하고 묻는구나.’라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바른 믿음은, 말라기의 말처럼 내 마음을 하나님께로 향하는 것입니다. 내 뜻을 하나님께로 향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분명한 것은, 내 생각이나 계획을, 모두 십자가 밑에 내려놓고, 무릎을 꿇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을 통해서 무엇이라고 하셨는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통해서 모든 것을 확증 받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언제나 하나님의 뜻을 포착하는 고감도의 안테나입니다. 아무리 전파가 가득해도, 전파를 수신할 수 있는 안테나가 없거나, 고장이 나면 전파가 있어도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없다고 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자세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이것이 하나님께서 원하는 일이라는 확증을 얻었다면, 그 때부터 여러분이 사는 삶의 자리와 모든 환경은,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기회라고 생각을 해야만 합니다. 그래서 기도는 하나님을 설득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 ‘설득을 당하는 것이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기도란 하나님 ‘이것을 이렇게 해주세요, 저것은 저렇게 해주세요.’라고 자기의 뜻을 이르기 위하여 하나님을 설득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진정한 기도는 여러분이 하나님의 거룩하시고 선한 뜻에 설득을 당하는 것입니다. 

속담에 ‘실력 없는 목수가 대패 탓만 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대패 날이 무뎌져서, 일이 마음 먹은대로 잘 안 되면, 먼저 대패날부터 잘 갈고 다듬어서 고쳐야지, 목수가 할 일은 안하고 연장 탓만 하다가는, 아무리 가진 재주가 많아도, 맡은 일을 그르치고 만다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수를 셀 수 없는 사람이 나옵니다. 그리고 그들의 이름과 행한 일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을 분류하면 크게 두 종류로 나눌 수가 있습니다. (1) 복을 받은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분들의 삶은 부럽습니다. 따라가고 싶습니다. (2) 저주를 받은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삶은 따라가고 싶지가 않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복을 받은 원인과 저주를 받은 원인을 찾아보면, 아주 단순하고 간단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계명을 지킨 사람은 복을 받고 번성했습니다. 반대로 하나님의 말씀에 거역하고, 불순종한 사람은 예외 없이 저주를 받았고, 삶에 실패했습니다.

말라기서는 유대인이 바벨론 포로생할에서 고향 유다로 돌아온 후의 일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이유를 알 수 없는 큰 흉년으로 고통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는 일마다 제대로 되는 것이 없었습니다. 농사는 잘 되지만 메뚜기 떼나 해충들 때문에 엉망이 되고, 포도 농사도 송이는 많이 열리지만, 결실하는 것이 없습니다. 그 이유를 예언자 말라기는 유대인에게 간단하게 말하기를, ‘너희가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이다.’라고 예언합니다.

누가복음에 보면 아버지를 떠났다가 돌아 온 아들 비유가 나옵니다. 그 아들은 아버지의 간섭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었습니다. “일찍 일어나라, 일해라, 왜 늦게 들어오느냐, 그러면 안 된다.” 라는 잔소리가 싫었습니다. 도시의 유혹이 그를 손짓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자신도 독립하여 성공하겠다며 아버지를 떠났습니다. 먼 나라에 가서 허랑방탕하여 가진 것을 다 허비했습니다. 바로 그 때에 그곳도 크게 흉년이 들어서 아들의 형편이 아주 궁핍하게 되었습니다. 오죽하면 돼지치기가 되었겠습니까? 

아들이 아버지의 곁을 떠난 후에 아들에게는 변화가 있었습니다.  신분이 변했습니다. 부잣집 아들에서 거지가 되었습니다. 거처가 변했습니다. 고급 저택에서 살던 사람이 돼지우리에서 잠자는 돼지치기가 되었습니다. 음식이 변했습니다. 영양가 높은 고급 음식을 먹던 사람이, 돼지가 먹는 음식을 주워 먹게 되었습니다. 그것도 주는 자가 없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아버지는 하나님입니다. 그리고 아들은 하나님을 떠나고 싶어하거나, 이미 떠난 사람을 뜻합니다. 누구라도 하나님을 떠나면 신분과 거처와 음식이 변합니다. 불행하고 나쁜 쪽으로 변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제부터는 문제의 원인이 된 하나님을 떠나 있는 모든 상황을 정리하고, 전적으로 여러분의 마음을 그리스도 예수에게로 방향을 돌려서, 예수에게로 돌아오세요. 예수의 마음을 가지고자 정성을 다하세요. 그리고 오직 예수의 뜻을 따르려고, 최선을 다함으로써, 모든 문제를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풀어가는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바른 믿음생활을 하자면,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던 어리석은 행동을 멈추고,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드려야만 합니다. 그래서 본문 8-10절에서 예언자 말라기는 예언하기를, ‘사람이 하나님의 것을 훔치면 되겠느냐? 그런데도 너희는 나의 것을 훔치고서도, 우리가 주님의 무엇을 훔쳤습니까? 하고 되묻는구나. 십일조와 헌물이 바로 그것이 아니냐! 너희 온 백성이 나의 것을 훔치니, 너희 모두가 저주를 받는다. 너희는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놓아, 내 집에 먹을거리가 넉넉하게 하여라. 이렇게 바치는 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서, 너희가 쌓을 곳이 없도록 복을 붓지 않나 보아라. 나 만군의 주의 말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십일조는 내 것이 아닙니다. 열을 벌면 그 가운데 하나는 기업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것이니까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십일조를 드리는 근본정신은 모든 것이 하나님이 만드셨고, 하나님이 주인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십일조를 드리지만, 나머지 남아 있는 아홉도 사실은 나의 것이 아니라 주님의 것이니,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서 쓰고자 해야만 합니다. 

물질은 어디로 새는 데가 없어야 합니다. 다른데로 새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막아주시고, 보호해 주셔야 하는 것이지, 주님께서 지켜주지 않으면 다른데로 새는 것을 누구도 막을 수가 없습니다. 세상은 돈을 맡아서 보호해 달라고 맡겼는데, 맡은 놈이 빼 가지고 도망가는 세상입니다. 여러분의 것을 하나님께서 헛된 곳에 빠지지 않도록 지켜주셔야만 합니다. 그래서 다윗은 역대상 29:11-12절에서 고백하기를, ‘주 우리 조상 이스라엘의 하나님, 길이길이 찬양을 받아 주십시오 ! 주님, 위대함과 능력과 영광과 승리와 존귀가 모두 주의 것입니다.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것이 다 주의 것입니다. 그리고 이 나라도 주의 것입니다. 주께서는 만물의 머리 되신 분으로 높임을 받아 주십시오! 부와 존귀가 주께로부터 나오고, 주께서 만물을 다스리시며, 주의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잇으시니, 사람이 위대하고 강하게 되는 것도 주의 손에 달렸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귀신을 섬기는 것처럼 하나님과의 관계를 맺어져서는 안됩니다. 많은 사람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가 아니라 주인과 종의 관계로 여겨서, 아주 힘들게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고용주와 노동자의 관계로 맺고 사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로 맺고 사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의 감사와 헌신은 억지로 마지못해서가 아니라 진심으로 받은 은혜에 감사하여 감격함으로 드리는 헌신입니다. 벌을 받을 것이 두려워서가 아니라 나같은 사람을 당신의 자녀로 품어주신 그 사랑에 감사하여 드리는 감사입니다. 이런 감사가 여러분의 삶의 여정에 주님 만나는 날까지 넘쳐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마지막으로 온전한 믿음은 온전한 복을 받는 지름길입니다. 그래서 말라기는 본문 10절에서 예언하기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고 했습니다. 

여름철에 아이들이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으면, 할아버지가 옆에서 “나 한입만 다오” 하면서 입을 벌립니다. 정말 할아버지가 돈이 없어서 손주 녀석 아이스크림 빼앗아 먹고 싶어서 그러는 것은 아닙니다.  이 녀석이 주나 안주나, 할아버지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고 싶어서 시험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철없는 손주 녀석은, 싫어! 그러면서 저 혼자 다 먹겠다고, 손을 뒤로 감추고 슬금슬금 도망을 갑니다. 그래도 할아버지 눈에는, 손주 녀석이 예쁘고 귀엽습니다. 하지만 속으로는 아쉬운 겁니다. 그리고 속으로는, ‘이놈아 한 입만 줬으면 내 주머니 속에서 열 개 아니라 백개라도 살수 있는 돈이 있어.’라고 혼잣말로 중얼거릴 것입니다. 그런데 생각지 못했던 손주가 들어오더니, ‘할아버지 여기 있어요, 이거 내가 안먹고 할아버지 드리려고 가져 왔어요.’라고 합니다. 그러면 할아버지가 ‘아이고 길동이가 최고구나! 잘 되었다. 길동이 때문에 할아버지가 여기 있는 모든 사람에게 아이스크림 한 개씩 더 사준다.’라고 하실 것입니다. 이것이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이스라엘의 신앙이 오죽했으면, 야훼께서 당신을 시험해보라고 하셨겠습니까? 말라기가 말하는 십일조는 하나님께 드려야 할 것입니다. 사람의 것이 아닙니다. 소유권과 사용권이 하나님께 있습니다. 내가 내 멋대로 쓰면 안됩니다. 그리고 십일조는 자신이 섬기는 교회에 드려야 합니다. 내가 속해 있는 교회에 드리는 것입니다. 이유는 자기의 신앙에 유익을 위해서입니다. 많은 교인이 십일조를 어려운 교회를 돕겠다고 보내다가 교만해지는 경우를 많이 봅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시험에 들기도 하고 오히려 상처를 받기도 하는 모습을 자주 봅니다. 그런데 십일조를 자기 마음대로 사용하는 것은 하나님의 생각을 무시하는 행위입니다. 엄일하게 말하면 하나님께 드린 것이 아니라 인간의 생각대로 사용한 것입니다. 
 
본문에 나오는 황충은 푸른빛나는 모든 식물을 먹어 치우는 곤충떼입니다. 수 천 마리가 날아오면 마치 비행기가 날아오는 소리가 들리고, 해를 가리어 하늘이 어두워집니다. 한번 지나가면 남아나는 열매나 나뭇잎이 없습니다. 야훼 하나님께서는 너희가 바른 믿음생활을 하면, 그런 황충의 떼를 막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예루살렘 성전 재건이란 소망을 버리고, 이기주의에 빠져 있었습니다. 이기주의에 빠져 사는 사람은 결코 행복할 수 없습니다. 더, 조금만 더 모았으면, 더 꾸몄으면, 더 잘됐으면, 하는 갈증에 시달립니다. 욕심이 욕심을 낳아서 부모도 자식도 남편도 친구도 없는 삶을 삽니다. 그러니 결코 행복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풍성하게 살 수 있는 것은, 다른 사람을 위한 제사장의 사명을 감당할 때입니다. 신앙공동체를 위해서 무엇인가, 자신의 것을 내어놓을 때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해서, 작은 희생이라도 즐거운 마음으로 드리고 나눌 때에, 하나님께서는 더 크신 복으로 여러분을 부유하게 합니다. 

여러분은 약간의 시간을 드렸을 뿐인데, 하나님께서는 말할 수 없는 놀라운 은혜와 즐거움을 주십니다. 지난 주 목요일에 본 교회 사회봉사부와 총 여선교회회원들이 중심이 되어서, 교회 창립 100주념 기념사업으로 교회주변에 있는 노인정 어른들을 초청해서 예배를 드리고 건강강좌를 하고, 점심대접을 했습니다. 많은 분이 오셔서 강좌보다는 일찍 친교실에 오셔서 밥부터 먹자고 하는 모습을 보면서 즐거웠습니다. 한 남자 어른께서 가시면서, ‘고맙다고 하시더니, 목사님은 꽤 오래계십니다.’라고 하시는데, 저는 잘 모르는 분입니다. 저 어르신네는 내가 오래 있는 것도 아시니, 마포중앙교회를 잘 알고 계신가보다라는, 생각이 들어서 기분이 좋았습니다.

야훼께서는 학개 선지자를 통해서, 학 1:6절에서 예언하기를, “너희가 많이 뿌릴지라도 수입이 적으며, 먹을지라도 배부르지 못하며, 마실지라도 흡족하지 못하며, 입어도 따뜻하지 못하며, 일군이 삯을 받아도, 그것을 구멍 뚫어진 전대에 넣음이 되느니라”라고 했습니다. 

많은 사람이 복이 뭔지 모르고 복 받기를 바랍니다. 복된 길을 등지고 있으면서, 복 받기를 바랍니다. 꼭 저주 받을 일, 못된 일만 골라서 하면서, 잘 살기를 바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여러분이 자세를 고치고, 복된 길에 서서 복된 사람이 가는 길을 가기를 원합니다. 

아무리 일찍 일어나서 일하고 늦게까지 잔업이다 야근이다 난리법석을 쳐도, 하나님이 함께 하는 온전한 믿음이 아니라면 아무것도 아닌 허무한 삶이 됩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이 믿음 여정을 가면서, 순간순간 하나님을 기억하고, 감사하면서, 헌신하면서, 복된 삶을 살 것을 원합니다. 이제부터 그런 삶을 살고자 버릴 것을 버리고, 포기할 것은 포기하고, 오직 주님께서 가신 길만을 따라가고자 마음과 정성을 다하는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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