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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사순절] 우리의 죄 때문에 (롬 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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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죄 때문에 (롬 4:25)


다음 주일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날을 기념하는 고난 주일입니다. 요즘 많은 사람들이 십자가 모양의 목걸이나 반지 또는 빼지로 사용하는 것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본래 십자가는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못 박혀 돌아가신 십자가는 로마 식민지 백성들에게 내려진 가장 고통스러운 사형집행 도구였습니다. 십자가 처형은 로마 시민권이 없는 노예나 외국인들을 강압적으로 통치하기 위한 잔악한 수단이었습니다. 

십자가를 땅에 뉘어 놓고 두 손과 두발에 못을 박은 후 그것을 세워서 죽기까지 버려두는 것이었습니다. 십자가 형틀에 달린 죄수는 견딜 수 없는 고통과 굶주림과 갈증의 극한 고통을 겪으며 4~6일이 지나야 숨이 끊어 진다는 것입니다. 죽음의 고통을 극대화시킨 처형 방법이 십자가 형틀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형틀위에서 여섯 시간 만에 운명하셨습니다. 로마 병사들은 예수님의 죽음을 확인하고자 창으로 옆구리를 찔러 물과 피를 다 쏟게 했습니다. 

사람의 몸으로 오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이렇게 흉악범의 모습으로 십자가 처형으로 돌아가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죄인이 아니었습니다. 흠과 티가 전혀 없으신 예수님이십니다. 히브리서 7장 26절에 말씀하시기를“이러한 대제사장은 우리에게 합당하니 거룩하고 악이 없고 더러움이 없고 죄인에게서 떠나 계시고 하늘보다 높이 되신 이라.”하셨습니다. 

예수님께 죄가 없으셨음은 당시 재판장이었던 로마 총독 빌라도가 여러 차례 밝히고 있습니다. 대제사장의 무리가 예수님을 빌라도에게 끌고 왔을 때에 빌라도가 말하기를“내가보니 이 사람에게 죄가 없도다.”(누가복음 23:4)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대제사장의 무리들은 이에 불복하고 다시 항소했습니다. 빌라도는 절차를 따라 재심을 했습니다. 재심을 하면서 예수님께서 주로 활약하셨던 갈릴리 지방의 사법관이며 행정권자인 헤롯에게 예수님을 보내 심리하도록 했습니다. 그러나 헤롯도 예수님의 죄를 찾지 못하고 빌라도에게 돌려보냈습니다. 

이때에 빌라도가 한 말을 누가복음 23장 13절~15절에 기록하기를“빌라도가 대제사장들과 관리들과 백성을 불러 모으고 이르되 너희가 이 사람이 백성을 미혹하는 자라 하여 내게 끌고 왔도다 보라 내가 너희 앞에서 심문하였으되 너희가 고발하는 일에 대하여 이 사람에게서 죄를 찾지 못하였고 헤롯이 또한 그렇게 하여 그를 우리에게 도로 보내었도다 보라 그가 행한 일에는 죽일 일이 없느니라.”라고 선언했습니다. 초심의 무죄 판결을 재심에서 다시 확인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또다시 항소하여 예수님은 최종심인 삼심을 받게 되었습니다. 빌라도는 다시 무죄를 선언했습니다. 이에 대해 누가복음 23장 22절에 기록하기를“빌라도가 세 번째 말하되 이 사람이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 나는 그에게서 죽일 죄를 찾지 못하였나니 때려서 놓으리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누가복음 23:23~15에 기록하기를“그들이 큰 소리로 재촉하여 십자가에 못 박기를 구하니 그들의 소리가 이긴지라 이에 빌라도가 저희의 구하는 대로 하기를 언도하고 그들의 요하는 자 곧 민란과 살인으로 말미암아 옥에 갇힌 자를 놓고 예수를 넘겨주어 그들의 뜻대로 하게 하니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에 대해 무죄를 세 번씩이나 확인되었음에도 예수님은 죄인처럼 십자가의 극형을 받으셨습니다. 

一. 죄 없으신 예수님께서 왜 이렇게 죽으셨습니까? 

대제사장들을 포함한 수많은 민중들의 힘을 이길 수 없었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로마 군병들의 총칼의 힘 때문일까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고 계셨을 때에 예수님을 체포하고자 로마 군병들이 몰려왔습니다. 그때 제자 베드로가 칼을 뽑아 말고라는 사람을 쳤을 때에 그 사람의 귀가 땅에 떨어졌습니다. 이때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네 칼을 도로 칼집에 꽂으라 칼을 가지는 자는 다 칼로 망하느니라 너는 내가 내 아버지께 구하여 지금 열두 군단 더 되는 천사를 보내시게 할 수 없는 줄로 아느냐 내가 만일 그렇게 하면 이런 일이 있으리라 한 성경이 어떻게 이루어지겠느냐”(마태복음 26:52~54) 라고 하시면서 다시 말고의 귀를 붙여 주셨습니다. 

“내가 지금 당장 열 두 군단 더 되는 하늘의 천사를 동원시켜 단숨에 그들을 멸할 만한 능력이 없는 줄 아느냐?”라는 말씀입니다. 로마군대의 일개 군단 병력은 보병이 6,100명, 말이 726필 규모라고 합니다. 여기의 열두 군단이란 그 수만큼 되는 천사의 숫자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무수한 천사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이러한 천사를 동원시켜 단숨에 로마 나라를 멸할 만한 능력이 예수님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능력을 전혀 사용하지 않으시고 아무 힘없는 사람처럼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그 까닭이 무엇입니까? 로마서 4:25에 그 이유를 말씀하시기를“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어줌이 되예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하셨습니다. 죄인인 우니다. 그 피의 공로를 믿으므로 우리가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리를 의롭게 하셔서 하나님의 자녀 삼으시고자 대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이로 인해 우리들의 이름이 하늘나라 생명록에 기록되었습니다. 

노르웨이에 있는 한 교회의 탑에 어린양의 조각이 새겨져있습니다. 이 조각이 세워진 경위는 이렇습니다. 사람들이 교회를 처음 짓고 있던 어느 날 높이 세워진 디딤대 위에서 일하던 인부가 발을 헛디뎌 아래로 떨어졌습니다. 가까이 있던 인부는 떨어진 동료가 틀림없이 죽었을 것이라 생각하고 급히 현장으로 가보니 뜻밖에도 떨어진 사람은 가벼운 상처만 입었을 뿐 살아 있었습니다. 알고 보니 이 인부는 마침 이곳을 지나가던 양떼 위로 떨어진 것이었습니다. 양들 몇 마리가 깔려 죽고 대신 이 사람은 살아난 것이었습니다. 

요한복음 1:29에 예수님을 가리켜“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라고 했습니다. 영원한 멸망의 자리인 지옥으로 떨어지는 죄인을 위해 어린양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대신 죽으심으로 인간을 구원하셨습니다. 

또한 예수님에 대해 이사야 53:5~6에는“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라고 했습니다. 

二. 구원받은 우리들은 어떤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까?

1. 죄를 멀리해야 합니다. 

본문에 말씀하시기를“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 나셨느니라.”(로마서 4:25)하셨습니다. 내가 지은 죄 때문에 예수님이 대신 죽으셨으니 이제는 죄를 멀리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고 죄악을 멀리한 사람을 가리켜 고린도후서 5:17에는“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을 가리켜 새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옛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하나님을 믿지 않고 거역하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옛사람의 모습에 대하여 갈라디아서 5장 19절-21절에 밝히시기를“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하셨습니다. 

이러한 옛사람 까닭에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 가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은 옛사람을 죽여야 합니다. 이러한 옛사람의 요소는 마치 논밭의 잡초처럼 내 마음 속에서 계속 일어납니다. 잡초가 우거진 논밭에는 곡식이 잘 자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부지런한 농부는 풍년을 위해 열심히 김을 맵니다. 이처럼 참된 하나님의 사람은 옛사람을 죽입니다. 이에 대해 에베소서 4:22~24 말씀에“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사람을 입으라.”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옛 사람을 벗고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사람을 귀하게 사용하십니다. 디모데후서 2장 20절-21절에“큰 집에는 금 그릇과 은그릇뿐 아니라 나무 그릇과 질그릇도 있어 귀하게 쓰는 것도 있고 천하게 쓰는 것도 있나니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되리라.”하셨습니다. 

놋그릇을 사용하던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주물 공장을 경영하는 어느 교회 장로님이 교회에 왔다가 목사님의 사택 마루 밑에 있는 못 쓰는 놋요강을 보고 목사님의 양해를 구하고 그것을 가져갔습니다. 며칠 뒤 그 장로님은 좋은 놋그릇 한 벌을 목사님께 선물했습니다. 목사님이 기뻐하며 고마워하자 장로님은 “목사님 이것은 본래 목사님의 것인데 그렇게 고마워하실 것이 없습니다.”라고 했습니다. 목사님이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라고 하자 장로님이 말하기를 “며칠 전 사택 마루 밑에 버려진 못 쓰는 요강을 제게 주셨잖습니까? 

그걸 가지고 우리 공장에서 새로 만든 것이 이 그릇입니다. 그러니까 이것은 본래 목사님의 것이지요.” 라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목사님의 얼굴표정이 일그러지면서 “그 더러운 요강으로 만든 것을 어떻게 밥그릇으로 사용합니까?”라고 반문했습니다. 장로님이 말하기를 “목사님! 아닙니다. 그 요강을 뜨거운 불에 녹여서 만든 전혀 다른 새로운 제품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우리나라 초대 선교사인 마포삼열 목사는 밤만 되면 불량배들과 유생들의 돌 세례로 곤혹을 치르곤 했습니다. 그 중의 하나가 평양 깡패로 알려진 이기풍이라는 청년이었습니다. 그는 잔칫집마다 찾아다니며 술과 떡을 내놓으라고 행패를 부리던 깡패였는데 마포삼열 목사의 집에도 끈질기게 찾아와 돌을 던지고 불을 지르는 등, 그의 행패는 말로 할 수 없을 지경이었습니다. 어느 때는 마포삼열 목사가 이기풍이 던진 돌에 맞아 입원하기도 했습니다. 

하루는 선교사의 집에 불을 지르고 도망치던 이기풍 청년이 다치게 되었는데 선교사가 찾아가서 치료를 해주며 사랑을 베풀었습니다. 이에 감동한 이기풍 청년은 회개하고 예수를 믿기로 결심했습니다. 훗날 그는 평양신학교를 나와 초대 목사가 되었고, 초대 제주도 선교사를 파송을 받았습니다. 그는 일생을 호남지방에서 목회를 했는데, 여수 돌산 앞 우학교회에서 신사참배를 반대하다가 순교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옛 사람을 죽이고 변화된 사람을 귀하게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고린도후서 5:17)라는 말씀처럼 새롭게 변화되어야 합니다.

2. 의롭게 살아야 합니다. 

본문에“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 나셨느니라.”(로마서 4:25)하셨습니다. 죄인이었던 사람이 예수님을 믿고 난 후의 신분을 밝힌 것입니다.“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라고 하셨듯, 우리는 예수님으로 인해 의로운 사람으로 인정되었습니다. 의롭다는 것은 깨끗하고, 올바르다는 것입니다. 정말 우리가 의로워서가 아니라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죽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 값을 다 치르셨기 때문입니다.

이사야 1:18말씀에“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희게 되리라”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믿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무죄(無罪)입니다. 죄가 없어서가 아니라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이미 나의 죄 값을 다 치르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천국백성이 되었습니다. 

일본에 오오가와 츠구미치라는 목사가 있습니다. 그는「예수님의 지우개」라는 책을 썼습니다. 거기에는“예수님의 십자가가 인류의 죄를 깨끗하게 지우는 지우개”라는 내용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의 십자가로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시고 깨끗하게 지워주셨습니다. 오늘도 회개하기만 하면 다 지워 주시는 것입니다. 그동안 인생의 그림을 아무리 잘못 그렸다 할지라도 예수님의 지우개로 깨끗이 지우고 새로운 작품을 만들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엄청난 신분의 변화를 주셨습니다. 요한복음 1:12 말씀에“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라고 하셨습니다. 지난날에는 하나님 없이 세상 풍속을 따라 우상을 숭배하며 죄의 자녀로 살아왔습니다.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얻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는 세상을 이기는 힘이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은 하나님이 창조하셨고, 하나님께서 주관하시는 세상이므로 하나님의 자녀는 세상을 이기게 되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5:4에 말씀하시기를“하나님께로부터 난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성도들이 한 가지 명심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섬기기 시작한 이후에는 내 자신의 의지가 아주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을 때 그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들여 순종할 것인지, 아니면 거부할 것인지 자신의 의지대로 선택할 수가 있습니다. 어느 편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성공과 실패가 결정됩니다. 

어느 편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행복과 불행이 결정됩니다. 내가 선택한 것에 대해 책임을 져야합니다. 그러므로 언제나 선택에 대하여 신중해야 하는 것입니다. 내가 내린 결정에 의해 행복과 불행, 성공과 실패가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젓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땅을 눈앞에 둔 이스라엘 민족의 경우를 보시기 바랍니다. 의심하며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않았던 사람들은 누구도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자신들이 선택한 결과였습니다. 

선택의 중요함에 대해 신명기 11:26~28에 말씀하시기를“내가 오늘 복과 저주를 너희 앞에 두나니 너희가 만일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들으면 복이 될 것이요 너희가 만일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령하는 도에서 돌이켜 떠나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듣지 아니하고 본래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을 따르면 저주를 받으리라.”하셨습니다. 복과 저주가 선택의 결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성도들의 미래에는 아무 것도 결정된 것이 없습니다. 백지 상태입니다. 그곳에 어떤 그림을 그릴 것인가 하는 것은 내 자신의 의지에 달렸습니다. 삶의 그림을 그릴 도구는 믿음과 순종과 기도입니다. 이 세 가지의 도구를 잘 활용하면 누구든지 훌륭한 자신의 삶의 그림을 그릴 수 있습니다. 이 도구는 비싼 값을 주고 사는 것이 아닙니다. 내 속에 잠재되어 있습니다. 이것을 끄집어내어 활용하면 됩니다. 

10살도 안된 어린이가 세무공무원인 아버지에게 위탁된 공금을 자주 훔쳐 아버지의 입장을 난처하게 하기가 일수였습니다. 그의 나이가 14살 때 그의 어머니가 돌아가셨는데, 그날 밤 새벽 2시까지 도박을 했습니다. 그 다음날에는 술집에서 술을 마시고 놀았습니다. 16살도 안된 어린 사람이 여자 친구와 18개월간 동거생활을 하기도 했습니다. 

또 다시 아버지 몰래 돈을 훔쳐 고급호텔을 드나들다가 돈이 따 떨어지자 다른 호텔에 가서 돈이 많은 사람처럼 행세하며 지냈습니다. 얼마 후 남몰래 그 호텔을 도망치다가 붙잡혀 감옥살이를 했습니다. 대학을 다니면서도 등록금으로 방탕한 생활을 했습니다. 이 사람은 희망이 없는 인간쓰레기입니다. 
이러한 청년이 뒤늦게 뉘우치며 하나님의 도움을 구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를 도우셔서 그가 드린 기도에 4만 번이나 응답하셨습니다. 그는 고아를 3천여 명이나 길러낸 영국의 고아의 아버지 죠지뮬러 목사의 이야기입니다. 

조지뮬러의 삶을 그림에 비유한다면 잘못된 그림이라 구겨서 쓰레기통에 버린 것과 같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의 삶의 그림을 새롭게 그려 불후의 명작을 남긴 것과 같습니다. 무엇이 그를 세계적인 위인으로 변화시켰습니까?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선택한 결과입니다. 그는 믿음을 선택했습니다. 그는 매사에 자기의 생각을 접고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길을 선택했습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 무릎 꿇는 기도의 삶을 선택했습니다. 그 결과 그의 생애에 하나님께로부터 4만 번의 기도 응답으로 세상을 이길 수 있었습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를 입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새생명을 얻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세상을 이기는 권세를 부여받았습니다. 이제 내가 하나님의 능력으로 세상을 이기느냐 이기지 못하느냐 하는 것은 나의의 선택에 달렸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소중한 삶의 도구는 믿음과 순종과 기도입니다. 
믿음과 기도는 산을 옮기는 능력이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의 순종은 성공과 행복의 창고로 인도하는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매사에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과 기도로, 언제나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므로 험한 세상 이기고,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복된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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