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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부활주일] 여호와께서 행하신 놀라운 일 (시 118: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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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께서 행하신 놀라운 일 (시 118:14-24)


여러분은 이 세상에서 가장 큰 힘을 가진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많은 돈입니까? 물론 돈도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때문에 재력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아니면 정치적으로 높은 자리입니까? 때문에 권력을 쥐기 위해서 그토록 애쓰지 않습니까? 그러나 그런 것이 아닙니다! 가장 큰 힘을 가진 것은 돈도 아니고 권력도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가장 큰 힘을 가지고 있습니까? 그것은 바로 죽음입니다. 죽음 앞에서 두려워하지 않는 존재는 없습니다. 때문에 사망의 권세라고 말하지 않습니까? 많이 배우는 것도 소용이 없고 돈을 많이 벌거나 높은 자리에 앉는 것도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 하면 사망의 권세는 그 모든 것을 한순간에 빼앗아가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이 세상에서 죽음보다 큰 힘을 가진 것은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 죽음 앞에서 벌벌 떨 수밖에 없습니까? 우리가 죽음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전혀 없느냐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안타깝게도 우리가 가지고 있는 수단과 방법으로는 결코 죽음을 이길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포기할 수밖에 없다는 말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죽음을 이길 수 있는 길이 있습니다. 생명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죽음을 이길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죽음의 권세를 이길 수 있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오늘 봉독한 본문 말씀은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시기 훨씬 전에 기록된 것입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예수께서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실 것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예고하고 있습니다. 시편 기자가 뭐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건축자가 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이는 여호와께서 행하신 것이요 우리 눈에 기이한 바로다.”(시 118:22~23) 그렇습니다! 마치 건축자들이 버린 돌처럼 험한 십자가에 못 박혀 초라한 모습으로 돌아가신 예수께서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예수께서 다시 살아나셔서 영원한 하나님의 집 모퉁이돌, 즉 머릿돌이 되시지 않았습니까?

때문에 오늘 우리도 큰 소리로 외칠 수 있어야 합니다. 그 옛날 시편 기자가 큰 소리로 외쳤던 것처럼... 시편 118편 14절 말씀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능력과 찬송이시요 또 나의 구원이 되셨도다!” 어찌 보면 이 세상은 우리가 가진 힘과 능력을 시험하는 일종의 시험장과 같은 곳입니다. 가지고 있는 능력에 따라 대접이 달라지지 않습니까? 말을 잘 하는 사람은 그렇지 못한 사람보다 나은 대접을 받습니다. 운동을 잘 하는 사람도 높은 대우를 받지 않습니까? 그렇게 능력에 따라 울고 웃는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능력이 되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우리가 미처 경험하지 못했던 세계에까지 우리를 이르게 했습니다. 그 능력이 우리로 하여금 부활을 경험하게 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그 능력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구원의 확신까지 우리에게 선물로 안겨 주었습니다.

우리의 삶의 현장에 기쁜 소리, 구원의 소리가 울려 퍼질 때에 하나님께서 권능을 베푸십니다. 기쁜 소리란 바로 찬송을 뜻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구원을 베푸시는 하나님을 늘 찬송하며 우리가 그 찬송 가운데 거할 것 같으면 하나님께서 구체적으로 구원의 능력이 되어 주신다고 시인은 고백하고 있습니다. 사실 찬송을 부를 수 있는 능력과 기회를 갖게 된 것도 하나님의 은혜가 아닐 수 없습니다. 만약 힘이 센 자들이 우리로 하여금 찬송을 부르지 못하도록 억압을 하거나 아니면 우리를 조롱하면서 억지로 찬송을 부르라고 할 것 같으면 과연 어떻겠습니까? 

시편 137편은 실제로 그런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포로로 잡아간 바벨론 사람들이 포로들에게 자기들을 위하여 시온의 찬송을 부를 것을 요구했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은 수금을 버드나무에 걸고 찬송하기를 거부했습니다. 스스로 노래하지 못하는 벙어리의 길을 택했던 것입니다. 어찌 보면 찬송을 제한받는 삶이란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된 삶이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부활하신 기쁨을 우리는 찬송으로 표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부활에 대한 우리의 믿음이 확실하다는 사실을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기쁨으로 찬송하는 것뿐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고 분명히 기억해야 합니다.

“이 날은 여호와께서 정하신 것이라 이 날에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리로다.”(시 118:24)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고 영원한 생명인 부활의 소망을 갖게 된 사람들이 드러내 보여 줄 수 있는 표시가 바로 기쁨입니다. 영국에서는 왕이 성 안에 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 성벽 높이 깃발을 거는 전통을 지키고 있다고 합니다. 펄럭이는 깃발은 왕이 안에 있다는 표시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우리 안에 거하신다는 사실을 세상에 알려 주기 위해서 우리가 과연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우리의 얼굴에 과연 어떤 표시를 나타내야 하겠느냐는 말입니다. 그것은 오직 넘치는 기쁨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경험한 초대 교회 성도들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큰 기쁨을 맛보았습니다. 부활의 소망을 간직한 초대 교회 성도들의 그 큰 기쁨은 그 어떤 무서운 핍박과 박해도 능히 이길 수 있는 힘이 되었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분명히 기억해야 합니다.

시인 김현승 님이 쓴 「부활절에」라는 시가 있습니다. 

당신의 핏자욱에선
꽃이 피어 - 사랑의 꽃이 피어
땅 끝에서 땅 끝에서
사랑의 열매들이 아름답게 열렸습니다.

당신의 못자욱은
우리를 더욱 당신에게 못 박을 뿐
더욱 얽매이게 할 뿐입니다.
당신은 지금 무덤 밖
온 천하에 계십니다 - 충만하십니다!

당신은 당신의 손으로
로마를 정복하지 않았으나
당신은 로마보다도 크고 강한 세계를
지금 다스리고 계십니다.
지금 울려 퍼지는 이 종소리로
다스리고 계시옵니다.
당신은 지금 유대인의 수의를 벗고
모든 땅의 훈훈한 생명이 되셨습니다.

모든 나라의 모든 사람들이
이웃과 친척들의 노래들이
지금 이것을 믿습니다.
믿음은 증거입니다.
증거할 수 없는 곳에
믿음은 증거입니다.
증거할 수 없는 곳에
믿음은 증거입니다.

해마다 4월의 훈훈한 땅들은
밀알 하나가 썩어
다시 사는 기적을 우리에게 보여 줍니다.
그 파릇한 새 생명의 눈으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부활절은 오늘 하루입니다. 그러나 교회는 전통적으로 오늘부터 오순절 성령 강림절까지 50일 동안을 부활절 절기로 지키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부활절 절기를 가리켜서 기쁨의 50일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공식적인 절기 이름은 The Great Fifty days입니다. 교회는 니케아 종교 회의에서 이 부활절 절기에 성도들이 무릎을 꿇는 일을 공식적으로 금할 정도로 주님의 부활의 기쁨을 강조했습니다. 주님도 분명히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마태복음 9장 15절 말씀입니다. “혼인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동안에 슬퍼할 수 있느냐?” 부활하신 주님과 늘 동행함으로 말미암아 항상 기쁨이 넘치는 복된 삶을 살아가는 여러분 모두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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