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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부활주일] 경배하는 마음 (마 28: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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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배하는 마음 (마 28:1-10)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것은 기독교의 진리의 핵심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없다면 기독교가 기독교가 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신화나 꾸며진 이야기가 아닌 역사적인 사실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역사적인 사실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증거가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에게 십자가형을 직접 선고한 빌라도가 로마 황제인 티베리오 가이사에게 보고한 보고서입니다. 

빌라도는 로마 황제가 임명한 유대총독인 전형적인 군인이었습니다. 빌라도는 유대 총독으로 부임하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거룩하게 여기는 예루살렘성에 로마군을 주둔시키면서 유대인들의 반감을 크게 샀습니다. 로마군대가 로마 황제를 상징하는 문양이 새겨진 깃발을 앞세우고 예루살렘성에 입성하려고 할 때 이스라엘 백성들을 자결을 하면서 강력하게 저항했습니다. 이런 과정에서 민중 봉기가 두 번씩이나 일어났고 민심은 매우 흉흉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빌라도는 예수님을 재판하게 되었습니다. 군중들이 돌변해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라고 소리를 칩니다. 만약 예수의 무죄를 선고하면 민란이 일어날 것은 불을 보듯이 분명한 사실입니다. 빌라도는 자신의 권력의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유대지도자들과 군중들이 원하는 대로 예수님에게 십자가형을 선언해 죽입니다.   

예수님의 사형이 집행된 이후에 빌라도는 예수님의 재판 과정을 로마 황제에게 상세하게 보고하는 보고서를 올렸습니다. 저는 아직 가 보지는 못했지만 터키의 성 소피아 박물관에 그 보고서가 소장되어 있다고 합니다. ‘예수의 체포와 심문 및 처형에 관하여 황제인 가이사에게 보낸 빌라도의 보고서’라고 제목이 붙어 있습니다. 이 보고서에는 예수님의 활동과 그의 죽음과 부활에 대한 중요한 증거를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습니다. 보고서의 시작은 이렇게 시작이 됩니다. ‘각하께 문안드립니다. 제가 다스리는 지역에서 최근 수년 동안 일어난 사건은 나라의 운명까지도 변하게 할지 모르는 일이기에 각하께 소상히 알려드리고자 합니다.’라고 시작됩니다. 

그 중의 일부를 소개하면 ‘원치 않았지만 폭동이 두려워서 희생양으로 예수라는 청년을 십자가에 처형했습니다. 그리고 다 끝난 줄 알았는데 더 큰 혼란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그가 부활했기 때문입니다. 무덤은 비었고 그의 제자들은 용기를 내서 예수가 부활했다고 전파하였습니다. 예수의 생애는, 마치 진흙이 토기장이의 손에 있듯이 모든 것이 그의 손에 있음을 증명해주고 있습니다. 

그는 물을 포도주로 만들 수 있었습니다. 그는 바다를 잠들게 하고 폭풍을 멈추게 하고, 고기를 잡아 그 입에서 은전을 얻어낼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자신이 메시아라는 그의 주장이 사실일 수밖에 없다고 감히 말씀을 드립니다. 십자가 옆에서 말커스가 말한 것처럼 이 사람은 하나님에 아들이었다고 나는 말하고 싶습니다. 각하, 이것은 제가 할 수 있는 한 사실대로 기록한 것입니다. 저는 각하의 가장 충실한 신하입니다. 본디오 빌라도가...’ 예수님의 부활은 어떤 사람에 의해 만들어진 이야기나 신화가 아닙니다. 그것은 역사적인 사실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이 부활절 아침에 여러분은 어떤 마음으로, 어떤 자세로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까? 하나님은 부활절 예배를 드리는 우리의 마음 상태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계십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안식일이 다 지나고 안식 후 첫날이 되는 새벽에’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주일 새벽입니다.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예수님께서 묻혀 계신 무덤을 찾아왔습니다. 금요일 오후에 시간이 없어 예수님의 시신을 제대로 수습을 하지 못했는데 그 시신을 제대로 수습하기 위해서 무덤을 찾은 것입니다. 그들이 예수님의 무덤을 찾았을 때 그들의 마음 상태는 두려움과 절망에 쌓여 있었습니다. 

두려움과 절망의 마음을 가지고 무덤을 찾아온 여인들을 향해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첫 번째 하신 말씀이 ‘평안하뇨’였습니다. 불안과 두려움의 마음을 가지고 있는 여인들에게 예수님은 ‘평안’을 물으신 것입니다. 그 불안과 두려움의 마음을 내려놓고 평안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평안하십니까’라는 물음은 여인들이 예수님을 향해 물어야 할 질문입니다. 사흘 전에 십자가를 지고 돌아가셨는데 그 예수님이 그들의 눈앞에 부활하셔서 나타나신 것입니다. 그 예수님을 보고 ‘예수님 괜찮으세요?’라고 물어야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여인들을 향해 도리어 ‘평안하뇨’라고 물으십니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모든 부정적인 감정의 가장 밑바닥 감정이 ‘불안과 두려움, 염려’라고 합니다. 모든 부정적인 감정의 뿌리는 불안과 두려움입니다. 이 불안과 두려움이 평안으로 바뀌지 않으면 절대로 긍정적인 감정이 일어날 수가 없습니다. 불안과 두려움이 평안으로 바뀌려면 그 어떤 것으로도 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믿음으로만 됩니다. 믿음이라는 단어는 배가 정박할 때 심한 파도에도 떠밀려가지 않도록 닻을 내리는 것을 말합니다. 닻을 내리면 풍랑이 와도 배가 떠밀려가지 않습니다. 뿌리를 굳게 내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무덤을 보려고 찾아온 여인들은 두려움과 불안에 싸여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무덤 문을 여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은 여인들에게 당신의 부활의 모습을 보여주시며 ‘평안하뇨’라고 물으십니다. 다시 말하면 ‘불안과 두려움에서 벗어나 평안하거라’는 말씀입니다.    

예배하는 우리 모두가 다 멀쩡해 보이지만 ‘안녕하십니까?’라는 질문에 ‘예, 안녕합니다’라고 선뜻 대답할 수 있는 사람들은 별로 없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음에 아픔을 가지고 있고 불안과 두려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경제적인 불안과 두려움이 있습니다. 자녀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이 있습니다. 건강에 대한 두려움이 있습니다. 직장과 사업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이 있습니다. 노후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이 있습니다. 혹시 이러다가 정말 전쟁이 나면 어떻게 하나 하는 불안과 두려움이 있습니다. 실패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우리를 감싸고 있습니다. 

불안과 두려움을 가지고 예수님의 무덤을 찾았던 여인들에게 예수님께서 나타나셔서 ‘평안하뇨’라고 물었을 때 여인들이 한 행동은 ‘여자들이 나아가 그 발을 붙잡고 경배하니’입니다. ‘그 발을 붙잡고’라는 말은 예수님을 의지했다는 말입니다. 경배했다는 말은 예배를 드렸다는 말입니다. 예수님만이 그 평안을 주실 수 있음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재차 여인들에게 말씀하십니다. 10절 말씀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무서워하지 말라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리로 가라 하라 거기서 나를 보리라 하시니라’  ‘무서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리차드 범브란트 목사님에 의하면 성경에 ‘두려워하지 말라, 무서워하지 말라’는 말씀이 365회가 나온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그 분은 하나님은 삼백 육십오일 즉 일 년 내내 믿음을 가진 우리들을 향해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신다고 말합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부활 주일을 맞아 예배를 드리며 부활하신 예수님 앞에 엎드려 그 분을 발을 붙잡고 경배하며 우리 마음속에 있는 불안과 두려움을 멀리 떨쳐버리는 은혜가 있기를 소망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가 바로 그런 예배가 되기를 바랍니다. 부활의 아침에 죽음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신 예수님 앞에 엎드려 경배하며 우리 속에 있는 불안과 두려움을 제거해 내는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충만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교회사에 나오는 일화 한토막입니다. 스위스의 한 순교자가 장작더미 위에 맨발로 올라섰습니다. 이제 막 불을 질러 화형을 집행하려는 순간입니다. 그 때 화형집행을 감독하던 판사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죄송하오나 판사님의 손을 내 가슴에 얹어 보십시오. 저는 이제 곧 화형을 당할 몸입니다. 만약 저의 심장이 평상시보다 조금이라도 빠르게 뛴다면 저가 믿는 하나님을 부인하셔도 좋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순교자의 표정이 너무 담담하여 의아했던 판사는 떨리는 손으로 순교자의 가슴에 손을 얹었습니다. 그 순교자의 가슴은 화형을 기다리는 사람이 아니라 침대에 잠자러 가는 사람처럼 고요하기만 했습니다. 판사는 놀라서 외쳤습니다. ‘이러한 평안과 힘이 도대체 어디서 왔단 말인가.’ 믿음은 불안과 두려움을 만들지 않습니다. 평안과 감사를 만듭니다. 부활의 신앙은 사람들이 가장 불안해하고 두려워하는 죽음조차도 뛰어 넘을 수 있는 평안과 기쁨을 갖게 합니다. 

우리 인생의 길에는 크고 작은 절망이 마치 암초처럼 널려 있습니다. 우리의 힘으로는 그 암초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을 극복할 수가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아들이 되시며 우리의 구주가 되시는 예수님을 믿는 믿음 안에서 극복할 수가 있습니다. 부활절 주일 아침에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우리를 향해 ‘평안하뇨’라고 물으실 때 예수님의 발을 붙잡고 경배하며 ‘아멘’으로 응답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주시는 진정한 평안을 품고 삶의 자리로 일어서는 은혜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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