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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부활주일] 부활을 대하는 세 가지 견해 (행 17:16-18, 3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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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을 대하는 세 가지 견해 (행 17:16-18, 32-34)


인류 역사의 수많은 날들 가운데 가장 슬픈 날이 어느 날이냐고 묻는다면,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범죄하여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날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날 이후로 인간세계에 불의와 불법과 슬픔과 고통과 미움과 사망이 계속 이어졌기 때문입니다.
또한 인류역사에서 가장 복되고 즐거운 날이 어느 날이냐고 묻는다면, 예수님이 무덤에서 다시 살아나신 날이라고 주저 없이 말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처음 세상에 오신 성탄절도 즐거운 날이지만 성탄절은 구원의 역사를 시작하신 날이라면, 부활절은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시므로 인류의 죄를 깨끗하게 사하시고 생명의 구원을 완성하신 날이기 때문입니다. 

구약성경 욥기서 4:6에“사람이(장정이라도)죽으면 어찌 살리이까?”라는 질문이 있습니다. 이 질문은 어느 시대에나 이어지는 질문일 것입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죽음처럼 분명한 것은 없습니다. 죽음은 누구나 반드시 겪어야하는 과정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9:27에“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라고 하셨습니다. 죽음에서 면제 받을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하나님을 알고 섬기는 하나님의 자녀에게는 죽음이 끝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14:19에 말씀하시기를“내가 살아 있고 너희도 살아있겠음이라.”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장례를 지내면서도 소망의 찬송을 부를 수 있는 것입니다.

본문은 바울사도가 그리스 아테네에서 하나님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과 또한 그 성에 우상이 가득한 것을 보고 안타까워하며 그들과 변론한 내용을 기록한 것입니다. 본문 18절에 에피쿠로스와 스토아 철학자도 바울과 논쟁했다고 했습니다. 그들은 바울이 전하는 이상한 교리 즉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관한 진리를 더 듣기를 원했습니다. 바울을 붙들고 아레오바고 법정으로 데리고 가며“당신이 말하는 그 새 교훈이 무엇인지 우리가 좀 더 자세히 알고 싶다.”(사도행전 17:17~18)고 했습니다. 이때에 바울은 하나님의 심판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해 증거했습니다. 바울사도의 증거를 들은 사람들은 세 가지 반응을 나타냈습니다. 

첫째,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비웃었습니다. 
본문 32절에“그들이 죽은 자의 부활을 듣고 어떤 사람은 조롱도 하고...”했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은 에피쿠로스 학파는 죽음 후의 세계를 믿지 않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반면 스토아 철학은 영혼의 불멸은 믿었지만 죽었던 육신이 다시 살아난다는 것은 믿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이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비웃었습니다. 

이때만 아니라 어느 시대에나 하나님을 비웃는 사람들은 늘 있었습니다. 지금도 하나님을 비웃는 사람들이 없겠습니까? 구약성경 창세기 6장에는 하나님께서 죄악으로 가득한 세상을 대홍수로 심판하신 기사가 나옵니다. 노아라는 사람은 홍수의 심판에 대해 하나님의 계시를 받고 주위 사람들에게 안타까운 마음으로 심판에 대비하도록 권면했습니다. 그러나 대다수의 사람들은 노아의 말을 비웃었습니다. 비웃었던 대홍수의 심판이 현실로 닥쳤을 때 그들의 비웃음은 아우성으로 변했습니다. 여유로웠던 웃음은 아비규환으로 바뀌었습니다. 

온 세계가 대홍수의 심판을 격은 증거는 세계도처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해발 수천미터의 고산지대의 동굴 속에 해조류와 어패류의 화석이 무더기로 발견되었습니다. 중국에서는 높은 산속에서 소금을 캐고 있습니다. 이는 어느 때인가 온 천지가 물에 잠겼다는 증거가 아니고 무엇입니까?

또한 창세기 18장~19장에는 타락의 도시 소돔과 고모라성이 하나님이 내리신 유황불로 멸망한 기사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음란의 도성 소돔과 고모라 성을 불로 심판하시기전 롯이라는 사람에게 이 사실을 알려주셨습니다. 롯은 급박한 심판에 대해 뛰어다니며 가족들에게 알렸습니다. 롯의 사위들은 장인의 말을 농담으로 듣고 비웃었습니다. 

창세기 19:14 말씀에“롯이 나가서 그 딸들과 결혼할 사위들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이 성을 멸하실 터이니 너희는 일어나 이곳에서 떠나라 하되 그의 사위들은 농담으로 여겼더라.”고 했습니다. 롯의 아내마저도 남편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다가 소금기둥이 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은 인간과 농담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성취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5:18에 말씀하시기를“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비웃으면 하나님의 심판을 면치 못함을 알 수 있습니다. 믿고 결단하여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사람만이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도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비웃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교회에서 만들어낸 거짓 이야기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역사입니다. 예루살렘에 있는 예수님의 빈 무덤은 역사의 현장으로 수많은 순례자들이 그곳을 찾고 있습니다.

필립 디 네리(Philip de Neri)는 성자로도 불리는 16세기의 위대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하루는 네리가 당시의 최고 명문대학이었던 컨티넨탈 대학의 교정을 걸으면서 어떤 청년을 만났습니다. 그 청년은, 이 대학에서 법률공부를 하기 위해 왔다고 했습니다. 네리는 그 청년에게 묻기를“대학 공부를 다 마치면 무엇을 할 것인가?”청년은 대답하기를“박사 학위를 얻겠습니다.”네리는 계속 질문하기를“박사학위를 받고 나면 무엇을 하겠는가?”“아주 힘든 문제를 몇 개 맡아 웅변과 지식으로 멋지게 변호처리해서 뭇 사람의 관심과 명성을 얻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네리는 다시 묻기를“그 다음에는 또 어떻게 되느냐?”“상당히 높은 지위를 차지하여 돈을 많이 벌고 드디어 부자가 될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네리는 계속해서“그 다음에는 또 어떻게 되느냐?”“명성과 재물을 소유하여 평안히 살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네리는 다시 물었습니다.“그 다음에는 또 어떻게 되지?”그러자 청년은 대답하기를“그 다음에는 나도 아마 늙어 죽게 되겠지요?”라고 했습니다. 네리는 또 물었습니다.“그 다음에는 또 어떻게 되는 것이지?”이 말에 무슨 대답을 해야할지 몰라 망설이는 청년에게“그 다음에는 하나님의 심판이 있네.”라고 말을 남기고 그 자리를 떠났습니다. 그 청년은 밤새 그 질문에 대한 답변을 생각하면서 인생의 허망함을 깨닫고 다음날 교회에 나갔다고 합니다. 

둘째,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 것을 연기했습니다. 
본문 32절에“어떤 사람은 이 일에 대하여 네 말을 다시 듣겠다하니”라고 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는 것에 대해 나중에 다시 한 번 더 듣고 생각해 보겠다는 것입니다. 아마 비웃는 사람보다 이러한 사람들이 더 많을지도 모릅니다. 

구약성경 출애굽기에 보면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해방시키기 위해 애굽에 열 가지 재앙을 내리신 기사가 있습니다. 바로 왕은 재앙을 만나면 모세를 불러“네가 하나님께 구하여 이 재앙을 면하게 하라. 그리하면 내가 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내리라.”했습니다. 그러나 바로는 다음으로 다음으로 계속 미루다가 끝내 애굽 나라의 모든 장자가 죽는 무서운 저주를 받았습니다. 

이처럼 본문에 나타난 아덴 사람들도 바울의 증거를 듣고 다음으로 연기했습니다. 하나님은“오늘, 지금”이라고 말씀하시는데 사람들은“내일”이라고 합니다. 여기에 인간의 비극이 있습니다. 내일은 내 날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구약성경 잠언 27:1에 말씀하시기를“너는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라 하루 동안에 무슨 일이 일어날는지 네가 알 수 없음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악마가 사람을 미혹할 때 가장 설득력 있게 사용하는 방법은 내일로 미루는 것이라고 했습니다.“다음에 믿지, 다음에 더 열심히 하지, 다음에 봉사하지, 다음부터 그렇게 하지.”라고 합니다. 이“다음”의 배후에는 사탄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대구의 어느 교회 장로님의 이들이 고등학교 3학년이 되면서부터 교회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목사님이 그 이유를 물었더니 장로님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요즘 대학 입시 공부하느라고 못 나오는데 대학에 합격하면 잘 다닐 것입니다.” 목사님이 몹시 안타까운 마음으로 돌아섰습니다. 그런데 그 아들이 그해 대학 입시에 떨어졌고, 그다음 해에도 또 떨어졌습니다. 장로님의 온 가족은 우울해 하면서 교회에 나왔는데, 그 아들은 창피하다고 교회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 후 아들은 술집에 드나들며 방탕한 생활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친구들과 함께 어울려 춤을 추며 돌아다녔습니다. 이 젊은이가 대구 고교클럽 화재 사고 때 불에 타서 시체가 되었습니다. 

왜 이렇게 되었습니까? 대학에 합격하면이라는“다음의 유혹, 내일의 유혹”이었습니다. 누가복음 12:20에 말씀하시기를“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라고 하셨습니다. 혹 우리는 믿음의 결단을, 회개의 결단을, 순종의 결단을, 헌신과 봉사의 결단을 내일로 미루고 있지는 않습니까? 내일은 보장된 내 날이 아닙니다.“하루 동안에 무슨 일이 일어날는지 네가 알 수 없음이니라”(잠언 27:1)하셨기 때문입니다.

셋째, 어떤 사람은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었습니다. 
바울사도가 전한 그리스도의 부활의 복음을 듣고 믿은 사람에 대해 본문 34절에 밝히기를“몇 사람이 그를 가까이하여 믿으니 그 중에는 아레오바고 관리 디오누시오와 다마리라 하는 여자와 또 다른 사람들도 있었더라.”고 했습니다. 이 사람들은 아레오바고 법정의 판사인 디오누시오와 다마리라는 부인과 그 밖의 몇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고 담대하게 그리스도가 구주임을 증거했습니다. 

다시 한 번 말씀을 드립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역사입니다. 역사는 조작이 불가능합니다. 조작된 역사는 후대들이 고칩니다. 며칠 전 헌법재판소에서 박정희 대통령 당시 긴급초치는 헌법정신에 위배된 잘못이라고 규정했고, 박정희 대통령의 딸인 박근혜 대통령은 그것을 인정했습니다. 이것이 역사입니다. 

역사에 대해서 한 가지 잊으면 안 될 것은, 역사는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이집트의 피라미드, 잉카문명의 유적은 현대과학으로도 설명이 불가능한 불가사이입니다. 내 생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다하여 그 역사를 부정한다면 되겠습니까? 만일 그러한 사람이 있다면 그는 무식하거나 고집불통일 수밖에 없는 답답한 사람일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하여 역사가인 아놀드 토인비는 말하기를“나는 여러 해 동안 여러 시대를 연구하고, 여러 저서에 대한 증거도 조사하여 보고, 헤아려 보았으나, 인간의 역사가운데 예수 그리스도가 죽으신 후 다시 살아났다는 표증보다, 공평된 조사자가 이해할 만한 명백하고 확실한 증거가 이 이상 없다.”라고 했습니다. 

부활의 신앙은 기독교만이 지닌 우월함입니다. 어느 종교도 무덤에서 다시 살아난 교주가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가리켜 부활의 첫 열매라고 하셨습니다. 고린도전서 15:20에“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라고 하셨습니다. 첫 열매란 농사를 지어 수확기가 되었을 때, 먼저 한단을 베어 하나님의 성전에 바치면서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곡식 단을 말합니다. 

논밭에는 첫 열매와 같은 곡식이 무수히 많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부활이 부활의 첫 열매라는 것은 예수를 믿는 우리들도 장차 죽음에서 다시 살아난다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15:51~53 말씀에“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 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이 썩을 것이 반드시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하셨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부활은 장차 우리들의 부활의 증거인 것입니다. 

이 세상의 것들은 모든 것이 불안정합니다. 완전한 것이 없습니다. 모두가 돈을 벌고자 애를 쓰지만 재벌만큼 번민 많은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들은 모은 돈을 잘 지키기 위해, 그리고 더 모으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을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어느 재벌가의 유산 싸움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들에게는 돈 외에 형제애 따위는 관심도 의미도 없어 보입니다. 

권력의 정상에 앉아 있는 대통령만큼 외롭고 고뇌에 찬 자리가 어디 있겠습니까? 미국 대통령으로 백악관에서 몇 년을 살고 나면 모두가 노인이 되어 나온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얼마나 많은 번민을 했으면 그렇겠습니까?

부활하신 예수님이 계시는 하늘나라, 장차 우리가 거할 하늘나라는 완전한 곳입니다. 하늘나라를 직접 목격한 바울사도는 빌립보서 3:11~12에서 자신의 심경을 말하기를“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고 했습니다. 

부활의 복음을 전하면서 천신만고를 겪었던 바울사도는 말하기를“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로마서 8:17~18)고 했습니다. 어떤 고난과 역경이 있어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영혼구원의 삶을 포기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부활하신 주님이 계신 하늘나라, 장차 자신도 갈 하늘나라는 너무도 아름답고 황홀한 것임을 직접 보았기 때문입니다. 

무덤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은 40일간 세상에 더 계시다가 하늘나라로 승천하셨습니다. 승천하신 모습과 예수님께서 마지막으로 당부하신 말씀이 사도행전 1:8~11에 기록되어 있습니다.“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이 말씀을 마치시고 그들이 보는데 올려져 가시니 구름이 그를 가리어 보이지 않게 하더라 올라가실 때에 제자들이 자세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흰 옷 입은 두 사람이 그들 곁에 서서 이르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성령받아“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는 것입니다. 부활의 증인이 되어 복음을 전하는 사람에게 예수님은 너무도 놀라운 축복을 약속하셨습니다.“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태복음 28:18~20)하셨습니다.“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에서 예수님께서 자신에 대해 스스로를 밝히시기를“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마태복음 28:18)라고 하셨습니다.“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위임받으신 분”이 무덤에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입니다. 이 예수님이 부활의 복음을 전하는 사람과 함께 하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언제까지 함께하신다는 것입니까? 세상 끝 날까지입니다. 부활의 복음을 전하는 사람에게서 한시도 눈을 떼지 아니하시고“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하셨습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위임받으신 분! 이분보다 더 든든한 배경이 이 세상 어디에 또 있겠습니까? 

이 놀라운 배경을 힘입어 세계에 우뚝 서서 세계를 지배한 대표적인 나라가 영국이며, 미국입니다. 부활의 복음을 전하는 국가나 가정이나 개인은 반드시 흥왕합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쥐고 계신 주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사람에 대해 사무엘하 5:10에 말씀하시기를“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함께 계시니 다윗이 점점 강성하여 가니라.”고 하셨습니다. 가난하고 배우지 못한 양치기 목동 다윗이 강성하여 이스라엘 역사가운데 가장 위대한 대왕이 되었습니다. 그 비결은 단 한 가지, 만군의 하나님께서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비결을 예수님께서 밝히시기를 부활의 복음을 전하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바울사도로부터 똑같은 그리스도의 부활의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비웃었고, 어떤 사람은 믿는 것을 다음으로 미루었고, 어떤 사람은 믿고 전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시기 바랍니다. 믿을 만한 증거가 충분합니다.
주님의 교훈에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그 길은 축복의 길입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의 복음을 힘써 전하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주님께서 가장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뜻입니다. 

이로 인해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위임받으신 예수님께서 세상 끝 날까지 항상 함께 하시는, 이 놀라운 축복을 받아 누리는 복된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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