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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소망과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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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강) 요한일서 3:3 소망과 삶

 

<본문>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요한일서 3:3)

<설교>

신자가 주님과 바른 교제를 하지 못하는 원인 중 하나는 주님이 왜 오셨는지 우리의 처지가 어떤 것인지를 망각하고 주님을 찾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지금 예수님께 무엇을 구하는지를 들여다보십시오. 과연 예수님이 오신 이유, 예수님 앞에서의 나의 처지를 깊이 생각하는 구함인지를 생각해 보셔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다쳐서 피흘리고 있는 아버지 앞에서 과자 사달라고 조르고 있는 철딱서니 없는 사람일 뿐입니다.

 

예레미야 9:23-24절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지혜로운 자는 그 지혜를 자랑치 말라 용사는 그 용맹을 자랑치 말라 부자는 그 부함을 자랑치 말라 자랑하는 자는 이것으로 자랑할지니 곧 명철하여 나를 아는 것과 나 여호와는 인애와 공평과 정직을 땅에 행하는 자인 줄 깨닫는 것이라 나는 이 일을 기뻐하노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이 말씀대로 하나님을 아는 것, 하나님의 자녀된 것은 지혜, 부함, 용맹, 이것들보다 더 가치 있고 귀한 것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구하는 것들이 하나님께서 자랑치 말라는 것들이라면 깨달아야 할 바를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봐야 할 것을 보지 못하고 소망해야 할 것을 소망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이런 사람이 어떻게 제대로 된 신앙생활을 할 수 있겠습니까?

 

신앙은 강한 것입니다. 비바람이 몰아치는 바위틈에서 싹이 나고 꽃이 피는 것처럼 생명력이 넘치는 것입니다. 깨끗하고 거룩한 것입니다. 이러한 신앙의 모습이 과연 세상의 자랑거리를 추구하는 것으로 발산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신자의 강함은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있습니다.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아는 그 지혜가 참으로 귀하고 가치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보게 할 것이고 신자는 그것으로 강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아는 문제를 소홀히 여길 수는 없는 것입니다. 또한 ‘나는 하나님을 안다’면서 가볍게 넘어갈 문제도 아닙니다.

 

신자가 하나님을 알게 되었을 때 현실에서 어떤 일이 주어지든 상관없이 흔들림이 없게 됩니다. 이것을 신자의 강함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믿음은 신자로 하여금 주님을 소망하게 하는 것이지 현재의 삶을 윤택하게 하는 것이 아님을 알 때 흔들림이 없게 되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9장에 보면 변화산 얘기가 있습니다. 제자들은 변화산에서 예수님의 영광된 모습을 보게 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제자들의 삶이 달라진 것이 무엇입니까? 이것이 믿음과 현실의 관계입니다.변화산에서 베드로는 초막 셋을 짓고 여기에 살자고 합니다. 변화산의 영광된 그 모습을 자신의 삶으로 삼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것을 허락하지 않으시고 산에서 내려오십니다. 그리고 산 밑의 현실은 귀신 들린 아이가 고통을 받고, 그 아이를 제자들이 고치지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변화산의 광경과는 너무 다른 현재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변화산에서 주님의 영광된 모습을 보여주신 것은. 앞으로 주님 가신 길을 가야할 제자들에게 그들이 가는 길의 현재는 고통이며 고난이지만 그 길이 담고 있는 것은 영광된 것임을 가르치시기 위한 것입니다. 즉 주님의 길에 담겨 있는 영광을 바라봄으로써 현재의 고난에서 인내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가 그 길에 서 있는 것입니다.

 

3절을 보면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고 말합니다. 주를 향한 소망은 2절에서 말한 대로 주의 나타나심이 되면 우리도 주와 같을 줄을 소망하는 것을 뜻합니다. 이렇게 볼 때 신자가 2절의 말씀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고 또 자기 속에 두고 사는 가는 3절로 나타나게 되어 있음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이것은 야고보 사도가 말한 ‘행함이 없는 믿음은 헛것’이라는 말과도 연관이 됩니다. 믿음이 신자의 삶에서 그 모습을 나타내는 것이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처럼 주님을 향한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는 신자라면 소망의 모습이 삶에서 나타나는 것은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신자는 신자의 신분이 무엇인가를 아는 것으로 멈추는 것이 아니라 어떤 삶을 살아가느냐가 매우 중요한 것임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우리의 문제는 믿음을 말하면서 믿음으로 살지를 못하고, 예수님을 말하면서 예수님으로 살지를 못하고, 소망을 말하면서 소망으로 살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두고 대개의 사람들은 실천의 문제로 생각합니다. 즉 믿음은 있는데 실천을 못하는 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힘을 내고 열심을 내서 실천을 하라는 말을 하기도 하지만 이것은 인간 스스로의 열심과 의지를 독려하고 강요하는 것일 뿐입니다.

 

그러나 신자로 하여금 행하도록 하는 것은 우리의 열심이 아니라 믿음입니다. 그러므로 실천을 못한다면 그것은 열심이 없거나 의지가 없어서가 아니라 믿음에 문제가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문제일까요? 그것은 믿음에서 주님의 죽으심과 나의 죽음을 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반대로 내가 사는 길만을 바라보기 때문이 아닐까요? 영이 사는 길이 아니라 육이 사는 길 말입니다. 죽는 길로 가기보다 항상 내가 사는 길, 내가 잘되는 길, 지지 않고 손해 보지 않는 길만을 추구하는 삶에서 믿음의 모습이 보여 지지 않게 되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사도는 소망을 가진 자마다 주님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케 한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자신을 깨끗하게 하기 위해 힘쓰라는 말이 아닙니다. 소망이 있다면 그 소망이 자신을 깨끗하게 하는 삶을 살게 한다는 것입니다. 즉 소망이 있는 신자에게 깨끗한 삶은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이지 우리가 힘써서 이루어야 할 문제는 아닌 것입니다. 그러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는 삶과 상관없이 산다면 그것은 실천의 문제일까요? 소망의 문제일까요? 소망의 문제입니다.

 

깨끗함을 실천의 문제로 보기 때문에 규칙과 법을 만들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를 깨끗하게 하는 행동을 만들게 되고, 그 행동을 하기 위해 규칙과 법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나 신자의 깨끗함은 몇가지 행동을 실천함으로 되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이러한 주장은 도덕과 윤리일 뿐 복음은 아닌 것입니다.

 

사도는 신자가 깨끗해지기 위해 무엇을 하라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사도는 신자가 자신이 누구이며 어떻게 되어질 신분의 존재인가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자연스럽게 해야 할 일을 하게 되어질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자가 더욱 붙들고 확인해야 하는 것은 주님에 대한 소망이라는 것입니다.

 

사도는 예수님이 깨끗하신 것처럼 자기를 깨끗하게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깨끗하심은 무엇입니까? 골로새서 3:2절에 보면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는 말씀처럼 예수님에게 있어서 모든 관심은 위엣 것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땅엣 것이 아니라 위엣 것을 생각하고 사는 것이 곧 깨끗함이 아니겠습니까? 소망이 이 깨끗함을 만들어 낸다는 것입니다.

 

소망은 신자로 하여금 위엣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이것은 주님께 소망을 둔 신자라면 당연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2절의 말씀처럼 여러분을 기다리는 영광을 생각하며 사십시오. 그럴 때 세상의 여러 가지 일에 대한 욕망을 거절하는 쪽으로 조금씩 나아가게 되어질 것입니다. 소망이 여러분을 그렇게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나를 구속하시기 위해 피흘리고 죽으셨음을 진심으로 믿는다면, 그리고 진심으로 그분을 사랑하고 따르고자 한다면 나의 모든 소원이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으로 되어진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도 그렇게 살아가지 못하는 것은 결국 우리의 소망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는 것입니다. 즉 위엣 것이 아니라 땅엣 것을 생각하며 살기 때문입니다.

 

소망이 현재의 어려움에서도 인내하게 하고 기다리게 하고 견디게 하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땅엣 것을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위엣 것을 바라보기에 현재를 인생의 전부로 보지를 않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힘든 것도 잠깐이고 그 어떤 어려움도 잠깐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신자의 강함입니다.

 

그런데 사실 우리의 신앙의 현실은 강함이 아니라 나약함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예수님을 말하면서도 여전히 죄 가운데 있는 자신을 볼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자는 더욱 더 주님을 의지하고 붙들 수밖에 없음을 절감하게 되는 것입니다. 나약하기에 주저앉거나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더욱 깊이 주님을 의지하고 소망해야 함을 깨닫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더욱 힘써 위엣 것을 바라보고 소망 중에 살기를 힘써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과 함께 살고 주님과 함께 동행하기를 힘쓰시기 바랍니다. 장차 주어질 영광에 소망을 두고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주님을 볼 것이라는 확신이 있고, 주님과 같이 될 것이라는 소망과 믿음이 있기 때문에 신자는 능히 뒤엣것은 잊어버리고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자로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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