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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신자와 성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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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강) 요한일서 3:23-24 신자와 성령

 

<본문>

그의 계명은 이것이니 곧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그가 우리에게 주신 계명대로 서로 사랑할 것이니라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자는 주 안에 거하고 주는 저 안에 거하시나니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우리가 아느니라(요한일서 3:23-24)

<설교>

성령은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신자에게 어떤 능력, 힘을 주기 위해 오시지 않습니다. 그리고 성령을 구한다고 해서 받아지는 것도 아닙니다. 성령은 오직 하나님의 뜻에 의해 자기 백성에게 주어질 뿐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을 받겠다는 생각은 할 필요가 없으면, 성령이 오셔서 하시는 일이 무엇인가에 마음을 두면 됩니다. 성령이 오셔서 하시는 일에 마음을 둔다면 내가 성령께 순종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24절에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우리가 아느니라”는 말씀을 보면 성령의 관심은 예수님께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심을 알게 하기 위해 성령이 오셨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성령이 오심으로 신자에게 주어진 능력이라면 세상이 알지 못한 예수님을 알게 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사도는 무엇 때문에 3장의 마지막에 가서 성령에 대해 언급을 합니까? 24절 앞에 보면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는 주 안에 거하고 주는 저 안에 거하시나니”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말한 ‘그의 계명’이란 23절의 “그의 계명은 이것이니 곧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그가 우리에게 주신 계명대로 서로 사랑할 것이니라”고 하신 말씀을 볼 때 그리스도를 믿으며 서로 사랑하는 것을 말함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서로 사랑하는 것을 그의 계명으로 말씀하는 것은 계명이 믿음과 사랑 두가지란 뜻이 아닙니다. 믿음과 사랑은 서로 분리된 별개의 것이 아닙니다. 믿음이 곧 형제 사랑이며 형제 사랑이 곧 믿음입니다. 즉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는 믿음이 없는 형제 사랑은 사랑이 아니며, 형제 사랑이 없는 믿음 역시도 믿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는 다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모든 일을 믿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형제를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은 예수님이 행하신 일을 알고 그 일을 믿는 사람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서로 사랑하면 그것으로 주가 내 안에 거하심을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까지도 성령이 오심으로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주가 내 안에 거하심을 안다는 것은 단순히 ‘아 내 안에 예수님이 계시구나’라는 생각을 갖거나 인정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안다는 것이 이정도라면 성령이 오실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 스스로도 그러한 생각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형제 사랑은 예수님의 사랑과 은혜에서 맺어지는 열매입니다. 그런데 은혜와 사랑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알게 되어집니다. 즉 성령이 오셔서 은혜와 사랑을 알게 하시고 감격하고 감사하게 하시고 그로 인해서 성도가 서로 사랑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모든 일의 주체가 성령이시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성령으로 산다는 것은 자신의 공로를 인정하지 않는 삶을 뜻합니다. 오직 그리스도의 것만 나타내고 증거하는 것을 뜻합니다.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방언을 하고 귀신을 쫓아내고, 착한 일을 하는 것을 두고 성령으로 산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알게 되었기 때문에 나는 아무런 의미가 없음을 발견케 되고 그로 말미암아 받은바 은혜와 사랑만을 나타내고자 하는 그 마음이야 말로 주님이 거하시는 마음이고, 그것을 알 수 있는 것도 성령이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만약 성령이 오시지 않았다면 우리는 내 힘과 내 노력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고만 할 것입니다. 믿음도, 구원도 자신의 공로로 해결하려고 할 것입니다. 때문에 성령이 오신 것이 우리에게는 큰 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요한복음 16:7절에서도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는 말씀을 합니다. 예수님과 육신적으로 함께 하고 대화를 나눈다고 해서 예수 님을 알게 되고 믿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성령으로 가능한 것이기 때문에 예수님이 떠나고 성령을 보내신 것이 유익일 수밖에 없습니다.

 

신자는 성령 받은 사람을 뜻합니다. 착한 사람이 신자가 아닙니다. 이점에 오해가 없기를 바랍니다. 로마서 8:9절에서도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는 말씀을 합니다. 그런데 성령이 오셔서 하신 일은 예수님을 알게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사랑과 은혜를 알고 그로 말미암아 서로 사랑하는 신자야 말로 성령 받은 자로 분별이 되는 것입니다.

 

‘나는 성령을 받았는가?’를 어떤 특이한 현상으로 이해하지 마시고, 예수님을 향한 관심에서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비록 내 중심에서 벗어난 존재가 되지는 못하지만 내 속에 주님을 향한 마음이 있다면 성령이 나를 다스리시는 흔적으로 여기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누구나 내 속에 주님을 향한 마음이 있다고 말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냥 느낌일 뿐입니다. 진심으로 그 심령이 주님을 향해 있다면 그것은 서로 사랑하는 것으로 증거 되어집니다. 그것을 보면서 주님이 내 안에 거하신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은혜와 사랑을 알기에 모든 형제에 대해 은혜와 사랑을 받은 입장으로 다가서게 됩니다. 즉 말할 수 없는 죄인의 입장에서 형제를 대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사랑입니다. 예수님이 나를 사랑하신 그 사랑으로 형제를 만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령의 다스림을 받는 것입니다. 성령이 다스림을 받고 사는 여러분이야 말로 누구보다도 복된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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