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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갈대아 우르적 신앙에서 벗어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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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3.

 

1-3: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찌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

 

우리 인간은 하나님으로부터 지음 받은 존재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으시고, 또 지으시되 당신의 형상대로 지으셨기 때문에 인간에게는 자유가 보장이 되어 있습니다. 생각하는 게 자유가 있고 또 활동하는데 자유가 있습니다. 내가 현재 세상에 살면서 어떤 생각을 했던 그 생각을 하는 그 자유성에 보장이 돼 있다 그 말이요.

 

물론 내가 그렇게 생각한다고 해서 진리이치가 변경이 되느냐 하면 변경되지는 않습니다. 내가 생각하기를 인간은 죽음에서 끝난다고 해서 하나님의 절대주권이 인간이 죽음에서 끝나는 것이냐? 죽음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예정이 인간이 죽음의 선에서 끝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예정이 그렇다 그 말이요.

 

물론 이 땅에 살면서 죽은 후의 자기를 구현할 수 있는 자유와 권리가 있습니다. 그러면 내가 죽음 이후에 그 자기를 부인하다고 해서 나의 죽음 이후가 나에게 그대로 무시를 당하느냐 하면 그렇지를 않습니다. 그 때가 되면 자기가 자기를 무시한 그 영혼에게 영원히 무시를 당하게 되는 겁니다. 인간이 영육결합으로 되어 있을 때에(현세의 삶) 영원을 무시하면 죽음 이후에 영원히 나에게 심판이 되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생아, 네가 죽음 후에 네 생존이 분명히 있는 것인데 거기에 대한 부정을 네가 한 번 해 보아라그 말이요. 자기가 이렇게 한다고 해서 이렇게 되고 저렇게 생각한다고 해서 저렇게 되고 하는 그런 것이 아니라 그 말이요. 하나님께서 인간을 단순하게 그렇게 만든 것은 아니라 그 말이요. 인간 7, 80년 먹고 마시고 사는 그거 그렇게 단순하게 되는 게 아닙니다.

 

물론 우리에게는 믿을 권리 부정할 권리가 누구든지 다 있습니다. 생각하는 권리도 있고 말하는 권리도 있고 행동하는 권리도 있습니다. 그러나 자유하는 그 앞에는 반드시 심판이 있는 것을 알아야 되겠지요. 심판에 있어서도 최종적 심판 최후적 심판 영원적 심판 자체적 심판, 이것은 모두 궁극적이기 때문에 거기에서는 누구든지 그 심판대 앞에서 항거와 항의를 못하는 겁니다. 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바른 이치대로 생각을 하고 또 말하고 행동을 해야 할 것입니다.

 

그 날에 가서는 영원히 고칠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우리가 바른 것을 찾아서 잘못된 것을 우리가 고쳐가야 되겠지요. 나의 언행심사가 언제든지 영원과 직결이 되어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다 그 말입니다.

 

우리가 신앙성장을 경험한대로, 또 다른 성도가 신앙 면에서 성장하는 면을 우리가 경험적으로 또 이렇게 한 번 보면 제 1단계는 이방인이었지요. 2단계는 인간이 하나님을 찾아와서 믿고 간구하고 요구했고. 그 때는 이제 내가 믿사오니 주시옵소서그런 식의 신앙이 됐고, 3단계 가서는 하나님을 이제 조금 알게 되는데 하나님이 인간에게 무언가 주시려고 애쓰고 원하고 계시는구나그렇게 된단 말이요. 4단계가 되면 이제 신앙이 성숙하니까 하나님께서 나를 지으신 원인과 동기와 목적이 무엇이냐? 그 목적을 두고 나를 지었구나.’ 그렇게. 이제 4단계의 신앙성도라야, 4단계의 신앙의 차원이라야 하나님과 동행을 하게 되는 겁니다.

 

그렇게 살려고 한다면 먼저 하나님을 알아야 된다는 거지요. 객관을 주관화 시켜야 되는 겁니다. 그 수밖에 없어요. 하나님을 아는 거는.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을 객관만으로 아는 것은 이거는 껍데기로만 아는 거요. 객관을 주관화 시켜야 될 텐데 주관화 시키지 않고 객관으로만 알고 있는 이거는 껍데기입니다.

 

그러면 어떤 게 껍데기냐? ‘하나님은 신령계와 물질계를 창조하신 분이시다이렇게만 알고 있다면 이것은 껍데기입니다. 두 번째는 하나님은 우주만물을 창조하시고 주관하시고 섭리하시는 분이시다또 그렇게만 알고 있으면 물론 알기는 아는 거지요. 그렇게만 알고 있으면 그것도 껍데기로 아는 것이다. 말하자면 자기와 관계성을 못 짓지 않는가 그 말이요. 자기와 관계성적인 그게 없습니다. 지식적으로만 객관적으로만 아는 거.

 

세 번째는 하나님은 인간의 생사화복의 주권자이시다.’ 이것이 껍데기입니까, 알맹이입니까? 그렇게 아는 거? 그렇게 아는 게 껍데기요, 알맹이요? 이것도 역시 껍데기입니다. 우리가 불신자들도 가만히 보면 좀 영특한 불신자들도 있어요. ‘하나님이 비도 내려주시고 햇빛도 내줘야 우리가 농사를 지어 잘 먹지. 우리가 사는 게 하나님 덕이지하는 이게 뭐요? 그러니까 불신자라도 그만한 정도는 알고 있다 그 말이요.

 

진정 내가 우리가 기독자로서 하나님을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 속에 들어가야 되고 성경 속으로 들어가야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을 바로 알려면 객관을 주관화 시켜서 알아야 하는 겁니다. 성경이 외공행이냐, 내공행이냐? 성경의 이 말씀이 외부적 어떤 생활강조냐, 종교생활 강조냐? 생활강조인 것 같으나 그 말씀 속에는 심행에 있어서 바로 마음을 두고 하는 말이냐?

 

우리는 임시적인 존재가 아닙니다. 죽음의 선에서 끝나는 인간이라고 한다면 구태여 아브라함이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날 필요가 없습니다. 그렇지 않겠어요? 하나님께 뭐 하려고 떠나라 그럽니까?’ ‘떠나라하신 것은 너는 임시적인 존재가 아니다. 영원적인 영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너는 떠나야 한다. 갈대아 우르 신앙을 심사하고.’

 

또 떠나라는 말은 어떻게 해서 떠나야 할 것인가?

 

하나님 당신 자체적으로는 그 사랑이 능력이 거룩성이 모두가 발생적이요 내발적입니다. 하나님 자신이 자신을 사랑하고 사랑을 받는 것은 진한 아가페 사랑입니다. 성도는 성자에게 성자는 성부에게 그 한 사랑으로 만족성입니다. 신령계와 무한계 완전계 그 천국을 마음대로 누리고 느끼고 하는 거기엔 영원히 영원히 그 재미로 보고 좋아하는 하나님이십니다. 이제 이 분이 아브라함에게 명령을 했다 그 말이요.

 

물론 그 전에는 하나님이 그런 분이시구나하는 것은 아브라함은 몰랐다 그 말이요. 천국관에 대해서는 캄캄 무소식이었다 그 말이요. 사실 오늘날까지도 한 6천여 년 동안을 감추어진 그 하나님이었었는지도 몰라요.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오셔서 아브라함보고 떠나라그랬단 말이요. 그러면 하나님이 무엇이 부족해서, 무엇이 하나님이 답답해서 아브라함보고 떠나라고 했느냐? 아브라함이 살던 그곳이 굶주리고 헐벗고 하는 그런 곳이었느냐? 하나님이 굳이 이 말씀을 할 필요가 없는 것은, ‘떠나라그런 말씀을 할 필요가 없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더라도 떠날 수 있다 그 말이요.

 

그러면 아브라함은 전혀 갈대아 우르에서 떠날 생각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떠나라고 했느냐? 그 말이 맞습니까? 그 말이 맞아요, 틀려요? 지금 생각에 깊이가 있는 건데 아브라함은 갈대아 우르에서 전혀 떠날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떠나라그랬다. 그 말이 맞아요, 틀려요? 틀렸습니다. 그 말은 맞는 말은 아닙니다. 그러면 어떤 말이 맞을까요? ? 어떤 말이라야 그 말이 맞을까요? 여러분들이 신앙에서 우러나는 대답을 해봐요. 어떤 말을 해야 맞는 말일 것 같아요?

 

떠나라. 네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 아브라함이 떠날 생각을 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그 말을 했다? 그 말은 틀렸습니다. ‘떠나라하는 그 하나님의 의중이 뭐지요? 아까 말씀드렸는데? 하나님이 그 말씀하시는 요지가 뭘까요? 하나님의 그 은밀계시라고 그래야 되나, 혹은 의지계시라고 해야 되나? 그거는 글자적으로는 보이지를 않아요. 그 뭡니까?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이렇게 돼 있는데 그 속에 보이지 않는 거, 하나님의 궁극적인 뜻이 뭐요? ‘너는 이곳에서 살 자가 아니다그 말이요. ‘너는 임시적인 존재가 아니라그 말이지요.

 

성경은 역사이면서 계시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첫째로 역사적 계시. 역사가 뭡니까? 일반적으로. 뭘 갖다가 역사라고 그래요? 일반적으로? 인류의 문화 문명 과학 종교의 발달사 아닙니까? 그게 역사인데, 그런데 역사계시로 되어 있으니까 이 성경에서 나오는 역사적 계시는 하나님이 인간과 관련된 혹은 연계된 연관된 신앙의 역사지요.

 

우리가 여기서 성경을 보면서 인류의 어떤 문화 발달사를 보는 겁니까? 그렇지 않지요. 하나님과 인간, 겉으로는 물론 문화 문명 진보발달이 돼 있지요. 그 사건 사건 속에 하나님과 인간과 연관된 하나님의 역사. 구원의 역사라 그래야 될까요?

 

첫째는 역사적 계시가 있는가 하면 그 다음에 두 번째는 형식계시가 있습니다. 형식계시. 형식이 뭐요? ‘아주 형식적이다. 형식적으로 말한다.’ 그 내용을 무시하고 외부 모양을 중시하면서 나가는 이걸 형식이라고 그러지요. 또 그냥 옛날부터 죽 해내려온 어떤 의식. 그렇게도 말할 수 있고. 형용은 또 뭐냐? 말로나 글로나 몸짓으로 형용하는 거.

 

그 다음에 상징계시가 있는데 이 상징계시는 추상적인 그런 것을 관념이나 사상이나 그런 것을 사물로 나타내는 것. 기호로도 나타내고 물건으로도 나타내고. 그러니까 추상적이라 그럴 때는 관념이고 사상이고 이게 들어있지요. 모양 없는 그런 걸 사물로 나타내는 것.

 

그렇다면 요한계시록에서 그런 걸 많이 볼 수 있겠지요? 짐승대가리 뿔이든지 하는 거. 실지로 그런 짐승 없지 않아요? 그렇지요? 그런데 관념이나 사상이나 눈에 보이지 않는 그런 걸 사물로 표상적으로 나타내는 것. 상징계시요.

 

모형계시하는 모형은 뭐요? 어떤 진짜 물건을 뽑아내기 위해서 실물은 만드는 거지요. 이를테면 블록을 찍어내려면 틀 모형을 만든다 그 말이요. 실물처럼 똑같다. 그런 거 성경에서 볼 수 있지요? 어떤 겁니까? 예수님 십자가 달리는 거. 고난 받는 거. 어린양이라든지.

 

그 다음에 영적 계시. 영적 계시는 영감이 들어있고 신령한 이치가 들어있지요?

 

그 다음에 성문계시. 성문계시는 문서적이지만 성문계시는 계약과 내용을 문자로 표기해놓는 거지요. 물론 이 성문계시 속에는 불문법이 있습니다. 이 불문법은 문서의 형식을 갖추지 않은 것. 관례적이라 그럴까요? 그런데 또 성문계시 속에는 은밀계시가 있는데 겉으로 이것은 드러나지 않습니다. 숨어있어요. 그 다음에 불문계시 속에 의지계시가 있지요?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한 신적 의지입니다. 그것도 내적이지요?

 

이 의지계시가 도덕적인 평가의 원인도 됩니다. 그러니까 우리 속에 어떤 의지가 있잖아요? 무슨 사건이라든지 행동이라든지 뭘 하고 싶다는 의지성. 그 속에 자기의 뜻이 있지요? 그런데 그 심행적인 그 움직임이 방향과 목적이 있지요? 그러니까 그걸 놓고 하나님은 죄다. 아니다하는 그 도덕성적으로 말을 하게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거는 활동 이전이 되는 거지요. 활동 이전.

 

우리가 성경을 볼 때는 성문계시 속의 은밀계시 의지계시로 들어가야지요. 여러분들이 성경을 볼 때에 보통 어떻게 보지요? 우리가 뭐 처음 믿을 때에 성경에서 고고학 발굴이니 확실하게 역사가 어떻다느니그런 말 많이 하지요? 그거는 너무나도 일반적이지요? 그리고 예수님 오시기 전에, 오신 후에, 또 성경적으로 상징적으로 등등 얘기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쑥 들어가서 은밀계시 의지계시 속으로 들어가야지요. 이렇게 자기의 신앙이 성장하고 자라가야 됩니다.

 

우리가 갈대아 우르 쪽 신앙을 보면 아브라함만 아니라 많은 사람이 그렇게 살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알 수가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갈대아 우르에서 아브라함을 불러가지고 여호와 하나님을 믿게끔 했고, 순종을 하고, 이제 아브라함은 그렇게 되니 기본구원을 벌써 얻은 거지요. 얻어놓고 들어가는 거지요. 아브라함은 천국 가는 겁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떠나갔지만 그곳의 갈대아 우르 사람들은 떠나지를 못했습니다. 만일에 천국과 지옥이 없다고 한다면 아브라함이나 갈대아 우르를 떠나지 않는 그런 자나 모두 일반인이 되겠지요. 그러나 천국과 직결시켜 놓고 본다면 이거는 엄청난 차이가 있는 것을 우리는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지금 참 천국에서 자기가 자기를 보고 가만히 생각을 할 때에 내가 그 때에 갈대아 우르를 참 잘 떠났구나’ ‘아이구, 내가 괜히 떠났구나.’ 어떤 생각이 들까요? ‘, 내가 참 뒤에서 그렇게 가지 말라고 끄집어 당기고 부모가 끄집어 당기고 동생들이 형제들이 일가친척들이 재물이 그렇게 그렇게 끄집어 당기고 했었는데 내가 떠나길 참 잘 했다.’ 자기가 자기를 칭찬할 수 있지요? 여기서 제일 추억거리가 될 만한 사람이 누구?

 

갈대아 우르를 참 잘 떠났다고 생각이 돼요, 도로 들어갔으면 해요? 들어가면 참 그 반려자도 있을 거고. 참 우리가 말은 진리 진리하지만 앞으로 험난한 길, 더군다나 남자보다 여자의 경우는 더 할 테지. 참 어려운데 여자들 경우 생각을 가만 해봐요. ‘진리 진리해봐도 현실이 뭐가 붙잡히는 게 없지? 그렇잖아요?

 

뭔가 물건처럼 돈이 한 보따리가 들어오던지 예수님이 나타나고, ‘내가 진리대로 가니 하나님이 뭔가 축복을 주는구나그것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그것도 없을 때에 마음속에 뭔가가 자꾸 갈등이 안 일어날까? 아닌 말로 그런 사람들의 마음은 앓고 있어요. 본인은 그 마음을 앓고 있지 않다고 해도 교역자는 그걸 앓아요. ‘신앙이 좋다, 안 좋다그것보다도 하나님께 대한 그 역사 그걸 어떻게 말로 다 하겠어? 다 이기고 나가기란 참 어려운 거다.

 

참 못난 인간이지만 저는 후회는 하나도 없어요. 얼마나 감사하고 감사한지 말로 다 할 수가 없어요. ‘그래야 김목사는 뭐 장가가고 했으니까 그렇지그런가요? 그게 아니요. 그러면서도 하나님의 그 오른 손에 붙잡힌 바가 되려고 하는 그 발돋움. 그리고 여러분들을 향한 내 마음이 또 그렇고. 그러니까 그선 신앙은 누가 뭐라고 그래도 인간을 의지하는 것은 아니다. 순전히 하나님 앞에 진리대로 만들어지고 살면서 하나님의 어떤 보이지 아니하는 그 주권섭리적 그 역사에 들리움이 되어서 쓰인다는 것. 그건 인간의 어떤 계획에 들지 않아요. 전혀 들지 않아요. 우리 선지사도들의 신앙이 바로 그렇다 하는 거.

 

여러분들, 아브라함의 마음을 자기 마음처럼 가만히 한 번 생각을 해 보세요. ‘갈대아 우르를 떠나라했을 때에 아브라함은 그 말씀을 듣고 즉시 떠났다. 그런데 떠나지 않고 죽은 자들이 수없이 많을 게 아닙니까? 그러면 분명히 역사적으로 기본구원도 못 얻었다 그렇게 보고. 그러면 그들이 지옥에서 고통 하는 그 신음소리를 아브라함이 듣는 것처럼 여러분들이 지금 들을 수 있느냐 그 말이지요. 그거 느낄 수 없을까요? 느낄 수 있지요.

 

부모형제라도 믿지 아니하는 사람들의 그 자체적 심판 그걸 우리는 다 압니다. 그렇다면 그 영감적 심행에 대해서 굉장히 민감하게 움직이는 거요. 굉장히 민감하게 움직이는 건데, 물론 믿지 아니하는 사람들이 우리의 눈앞에 살아있습니다. 그리고 그와 같은 소원 목적을 가지고 끝까지 그 세상가지고 믿지 않을 때에 그 불꽃 속에 떨어져서 고통 하는 그 신음소리가 안 느껴질까요? 미리 느낄 수는 없을까요? 느낄 수 있지요.

 

천국에서 살기 싫다고 이 세상에 다시 온 사람들 만나보았습니까? 지옥에서 살기 싫다고 이 세상에 다시 온 사람들을 만나보았습니까? 그럴 수는 없지요. 갈대아 우르는 천국 지옥 가는 하나의 대기실이다 그렇게도 볼 수가 있겠어요. 혹은 대합실. 대전역에서 호남선을 타던 경부선을 타고 서울로 오는 차를 타던 제 마음대로 타는 거지요. 강제는 없습니다. 그렇지요? 그러나 자기가 일단 탔다면 탄 그 기차가 가는 노선으로 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 세상이 갈대아 우르입니다. 인간의 절대 자유가 하나님의 예정이 파괴되고 무시되지를 않습니다. 이걸 갖다가 단선적 복선이라 그렇게 인간 편에서 말하는 겁니다.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이 갈대아 우르. 너도 나도 다 같이 살고 있지만 나중에 가서는 천국과 지옥이 갈라진다.

 

아브라함이 갈대아 우르에서 살았는데 갈대아 우르에 사는 사람들이 죽음 이후의 문제를 염려하고 살았습니까? 살지 못했지요. 모르니까. 아브라함도 하나님이 찾아오셔서 하나님을 만나기 전에는 갈대아 우르에서 살았고 갈대아 우르의 신앙을 가졌습니다. 세상을 욕망하고 추구하고 소원 목적하고 살았어요. 또 갈대아 우르적 신앙이라고 그럴 때도 역시 성분은 똑같은 성분으로 그렇게 됩니다. 갈대아 우르는 다신종교적 신앙이에요. 그게 갈대아 우르 신앙입니다.

 

오늘날 예수를 믿어도 갈대아 우르적 다신종교적 신앙을 기독교 안에서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지요? 물론 바벨론 그 나라에는 천문학 발달이 되었고 태양신 배신 발신 목신 바람신 등등 그런 신앙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그런 것들은 다자의 신이 주관을 하는 겁니다. 바람을 주관하는 신이 다르고 또 물을 주장하는 신이 각각 다르단 말이요. 죽음을 무서워하는 인간들이 그 신을 잘 떠받들어주면 축복을 받고 잘 산다고 그렇게 신앙을 갖는 거지요. 또 어떤 사람은 한 사람이 열두 신을 가지고 매일 매일 바꿔가면서 섬기는 그런 신앙도 있다.

 

왜 이런 신앙이 있을까? 우리 인간 속에는 인격적으로 지음을 받았기 때문에 그런 신앙심이 있는 겁니다. 짐승들은 그런 마음들이 없어요. 신앙심이 없어요. 인격자로 지음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소원도 욕망도 없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가질 수가 있고 있는 거지요.

 

인간은 부귀와 영예나 영광이나 영화를 권세를 또 소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게 자기 마음대로 안 되는데 안 될 때는 어떻게 하느냐 하면 인간의 힘으로 안 되니까 신의 힘을 빌리자, 신의 조력을 얻자하게 됩니다. 아들을 원하지만 계속 딸만 낳으니까 신의 조력을 얻자 그 말이요. 생산문제 건강문제 명예문제 출세문제 자손문제가 인간의 힘으로 안 되니까 신의 힘을 빌리자고 하는 이것이 일반종교입니다. 염라대왕 잘 섬기면 오래 산다고 그러지요?

 

이게 다 일반종교인데 우리 기독교 안에도 오래 살려면 장수하는 성령을 받아야 한다하는 사람 있지요? 불공드려서 아들이나 딸이나 자식 낳는 사람 봤지요? 없습니까? 못 봤어요? 불공드려서 자식을 낳았다면 이를테면 아들을 낳았다면 그 아들을 누가 줬습니까? 석가가 준 거요? 석가가 줬어요? 마귀가 준 거요? 누가 준 거지요? 하나님이 줬지요. 그럼 그게 그 기도를 들었기 때문에 준 거요? 참 희한하게 맞아.

 

여자들 심리라 그럴까, 생리가 그렇다 그럴까? 공을 들이면 편하단 말이요. 마음이 안정이 돼. 안정이 되니까 자식이 생겨지기도 하는 거지요. 그러니까 공을 들이나마나 뭐 마음을 안정성을 갖고 있으면 되지. 인간은 정신력에 의해서 되는 일들이 많습니다. 공들이는 이거와 합치면 잘 맞아 들어간단 말이요.

 

각양의 종교는 인간의 욕망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인간의 힘으로 안 되니까 신의 힘을 얻어서 하자고 하는 것이 일반종교고. 물론 그것도 100% 다 되는 것도 아니지요. 되는 것도 있고 안 되는 것도 있고 그렇지요. 안 되면 또 다른 신 만들어 섬기고. 그러다 보니 많은 종교가 생겨난 거지요. 그게 이제 갈대아 우르적 신앙이다. 갈대아 우르적 신앙. 인간의 힘과 신의 힘을 합하면 된다 그 말이지요.

 

또 어떤 사람은 이 신 저 신 찾아다니고 해도 안 되니 만능의 능력의 신을 찾아가자고 한 것이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신앙이다. ‘예수 믿으면 부자 된다. 예수 믿으면 병 낫는다.’ 그건 이제 예수 도깨비 방망이지.

 

생각을 해봐요. 열두 가지 신을 섬기느니 예수 신 하나만 섬기면 되는 거 아니요? 그러면 자기 입맛대로 구하면 준다고 하고 이제 예수 믿을 만 하다고 예수님께 나온다 그 말이요. 그게 예수 바로 믿는 거요?

 

오늘 그만합시다.

 

기도 올립시다.

 

저희들의 이룰구원을 손색없이 이루게 해 주시려고 오늘 저녁에도 아브라함을 붙잡고 오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저희들이 시대적 차이 시간적 차이 상황적 차이는 있지만 그러나 아브라함 속에 들어있는 여러 가지의 성분에 관한 성질적 신앙은 저희들 속에도 어김없이 들어있습니다.

 

아버지 하나님, 아브라함을 들어서 그렇게 역사하신 것은 오늘날 우리들에게도 역시 그 말씀을 하시는 게 분명합니다. 아버지 하나님, 저희들도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으로부터 다양적인 구원의 신앙도리를 찾아서 하나님 앞에 달음박질하는 복된 자녀들이 될 수 있도록 축복해 주시옵소서.

 

이 모든 말씀 우리 주 예수님 이름으로 가도하옵나이다. 아멘. (계속)

 

(궁극교회 김경형목사님의 설교를 정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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