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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은혜에 대한 보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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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득연(66,황해도 장연군 출생)씨는 몽금포중학교 3학년 때 전쟁을 맞았습니다. 
가족들과 헤어져 홀로 월남하여 전쟁이 끝나고 53년 8월 백령도에서 
미 공군 608부대 사령관의 하우스보이로 일하게 되었고, 
이 때 로이드 슈 씨를 만났습니다. 

미군 군속 민간통신회사에서 근무하던 슈씨는 
낮에는 청소를 하고 구두를 닦으면서도 밤에는 책을 놓지 않던 김득연 학생을 눈여겨보다가 
후원자가 되겠다고 나섰습니다. 
고등학교에 입학할 수 있도록 주선해 주고 매달 25달러를 학비로 대주었습니다. 

미국으로 돌아간 뒤에도 슈씨의 도움은 계속됐습니다. 
전쟁이 끝나고 미국으로 돌아갈 때 김씨는 슈씨에게 
“어떻게 하면 이 신세를 갚을 수 있겠냐”고 물었을 때 슈씨는 
“네가 나중에 성공하면 나를 찾지 말고 더 어려운 사람을 찾아 도움을 줘라. 
그리고 그 때는 인종과 국경을 초월하라”고 대답했습니다. 

대학 졸업 후 철가공업체인 동성공업에 입사한 김씨는 회사를 인수한 뒤 
원자력발전소 공사에 참여해 돈을 벌었고, 
이 때 번 돈으로 경기도 광주시에 경화여자중고등학교를 설립했습니다. 

생활이 안정된 후 김씨는 가족들과 함께 플로리다에 사는 그를 찾아가 
은혜를 갚을 방법을 찾았지만 그는 금전적인 보답을 극구 사양했습니다. 
김 이사장은 슈씨가 사망한 98년 학교 뒤뜰에 그를 기리는 ‘로이드 슈 기념공원’을 만들었지만 
그것만으로는 뭔가 허전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사장으로 있는 경화여중·고 교정에 
6·25 전쟁에 참전한 우방국 용사들의 뜻을 기리기 위해 ‘평화공원’을 조성하고 
2004년 6월 22일 준공식을 거행했는데 
이 식에는 터키 참전용사 12명과 UN한국전참전국협회장을 비롯한 향군인사 등
120여명의 외빈과 자리를 함께했다고 합니다. 

식이 열리는 동안 내내 눈시울을 붉혔던 김 이사장은 
“반세기 전, 배고픔보다 배움에 대한 열정이 더 절실했던 그때 입었던 은혜를 
조금이나마 갚을 수 있어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 ⓒ 설교닷컴 : http://www.biblei.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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