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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어른의 ‘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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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의 ‘책임’ 

- 백소영 교수(이화여대)
 

“엄마, 배고파!” 처음으로 자살을 결심한 중에 갑자기 다섯 살배기 딸아이의 한마디에 다시 살기로 마음먹었다. 드라마 ‘내 사랑 내 곁에’의 ‘선아’ 이야기다. 아이가 두 살 때 뺑소니 교통사고로 남편을 잃고 곧이어 마음 의지하며 살던 친정어머니마저 돌아가셨단다. 아직 어린 딸 ‘미솔’이를 데리고 이 일 저 일 기웃거려보았으나 번번이 쫓겨나고 막막하던 차, 남편과 어머니 계신 곳으로 따라가리라 마음먹고 아무 것도 모르는 미솔이 손을 이끌고 차가운 강물로 걸어 들어가던 중이었다. 이제 곧 죽을 텐데 배고픈 게 무슨 상관이랴! 어이없고 기막히고, 그래도 곧 죽을 아이가 천진하게 내뱉은 ‘배고프단 말’에 마음이 아파 남은 돈 탈탈 털어 시장에서 만두 하나를 사 먹였다. 작은 입으로 오물오물 맛나게도 먹는 그 어린 생명을 보며 선아는 살아야 할 이유를 비로소 깨달았다. 

“그래서, 너 때문에 다시 살려고 했어! 네가 그렇게 내 사는 이유고 전부란 말이야!” 그런데 그런 딸에게 다시 손잡고 강물에 뛰어들자고 소리치던 날은 19세 미솔이가 아이를 가졌다는 것을 알게 된 날이었다. 고3, 한창 수능을 준비해야 하는 시기에 아이를 낳겠다니, 선아는 자신의 꿈이 다 무너졌다며 그냥 죽어버리자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말았다. 막무가내로 딸을 끌고 강물로 들어가려는데 울며 매달리던 미솔이가 외친다. “아기가 살고 싶대. 살고 싶다고 자꾸 발로 차, 엄마. 그런데 어떻게 죽어?” 

그 말에, 미솔이의 말 때문에 선아는 그날도 죽지 못했다. 젊어 혼자 된 이래 미솔이 하나 당당하고 떳떳하게 길러 내리라, 그 희망으로 하루하루 살아왔던 자신의 꿈이 딸의 혼전임신으로 산산조각 나버린 마당에 살아 무엇하랴 싶었는데…. 그런데, 어느 새 자라버린 그 아이가 이젠 어른이 되어, 엄마가 되어 ‘살고 싶다’ 말을 거는 제 아기를 책임져야 한단다. 그 말에 둘이, 아니 셋이 껴안고 한참을 울었다. 겨우 나이 열아홉에 그 엄청난 이름, 어른의 몫을 하겠다고 선언한 딸과 세상에서 살고 싶은 또 하나의 생명 덕분에 선아는 그날도 그리 다시 살기로 결심했다. 돌아오던 길에 엄마 몫까지 우동을 허겁지겁 먹는 임신부 딸을 보던 엄마 선아의 마음이 얼마나 복잡했을까? 그래도 그 모든 마음을 꼭꼭 눌러 담으며 미솔에게 다정한 한마디를 건넨다. “많이 먹어, 엄마도 너 가졌을 때 우동 좋아했어.” 

자살이 개인의 선택이 아니라 하나의 문화 현상이 된 이 땅에서 선아와 미솔의 이야기가 남다르게 다가왔다. 살 ‘맛’도 안 나고 사는 ‘멋’도 찾기 힘든 그런 각박한 세상임을 모르는 바 아니다. 그러나 어찌 이 세상을 맛과 멋으로만 사나. 어른이니, 오롯이 나만을 의지하는 더 여린 생명들이 우리에게 주어졌으니, 그 ‘책임’으로 사는 것이지. 하나님의 창조세계를 지켜나가는 ‘청지기’가 별 것이겠나? 그저 지금, 이 자리에서 내게 주어진 어린 생명들, 살고 싶다고, 배가 고프다고 천진한 본능을 외치는 그 소리에 성실하고 책임감 있게 귀 기울여 응답하는 것, 그것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청지기의 삶이지 싶다. 내 가까이서, 그리고 조금 멀리서도 들려오는 생명의 소리들, “배고파요!” “살고 싶어요!” 그 어린 외침에 응답하는 책임 있는 어른이고 싶다. 그것이 우리가 오늘을 사는 이유이기에. 

- 출처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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