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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메일 책벌레 176호 | 사랑의 나눔 있는 곳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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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욱 님의 글(드림위즈 작가, 내 아들은 220만 볼트 전기맨 저자)

요즘에 교회 까페에 쓴 글 중에 하나를 보내 드립니다.

괴로운 세상사에 시달리고 절망하고 찌들은 오늘, 갑자기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우먼센스 디자인팀에 다닐 때 함께 일한 황차장님이라고, 나랑 띠동갑인 선배
가 있었다. 이분의 이야기는 예전에 책에도 쓴 적이 있다.
경상도 사투리를 찐하게 쓰는 이분의 에피소드중 하나만 소개한다.

수작업을 하던 당시, 회사와 거래하는 컴퓨터 활자실에서 들어오는 C과장이라
는 사람도 고향인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데, 어느 여름 휴가 출발 전에
그와 황차장님이 대화하는 내용이다.
"이번 휴가는 어데로 가십니까?"
C과장의 물음에 황차장이 대답했다.
"용팽요."
나는 알아 들었는데 C과장은 잠깐 멈칫 하더니 눈치를 살피며
다시 한 번 묻는 것이었다.
"근데....., 용팽이..... 뭡니까?"
"아, 용팽이요 용팽. 왜 있잖아요, 쓰키 타는 데."
그러자 C과장의 대답이 이랬다.
"아- 용팽요? 거긴 알지예."
머나먼 타향에서 거의 환상적인 대화를 주고받는 두 사람이었다.

부산 위 구포 출신인 황차장님은 무신론자였다.
하지만 와이프를 제외한 처가쪽 식구들은 독실한 기독교 신자들이었다.
특히 손윗 처남은 휴거를 기다리던 다미선교회의 목사였고, 장모님도 막강한
크리스천이었다. 하지만 그 때문에 더욱 반감이 생겨 저항한 황차장님은 점점
더 구원에서 멀어져만 갔다.
그 집 사람들이 모이면 식사시간에 기도를 10분 정도 한다고 했다.
그 목사님이 식사기도를 할라치면 여동생인 황차장님 와이프가 경고를 한다고.
"오빠, 짧게 해."
그러나 여전히 온식구를 들었다 놓는 긴 기도가 이어지곤 했다.


하루는 토요일에 사위집에 다니러 오신 장모님을 모시러 서울역에 나갔다고 한다.
그런데 뒷좌석에 모신 장모님은 벌써부터 주일성수를 걱정하셨다.
"황서방. 내일 주일인데, 집 근처에 좋은 교회 좀 없나?"
그 물음에 황차장님은 세상적인 생각으로 이렇게 말했다.
"장모님. 오랜만에 오셨는데, 낼은 거냥 하루 쉬세요. 교회 가지 마시고..."
그러자 백 밀러로 보이는 장모님은 사위를 노려보며 대뜸 말했다.
"사탄아, 물러나라!!"
그 말에 충격을 받은 황차장님은 나한테 와서 그 얘기를 들려주며 혼잣말로
중얼댔다.
"내는 사탄사위야..."

그 장모님이 칠순을 맞았다.
밴드를 불러 잔치를 벌이는데,
이 사람 저 사람 나와서 노래를 한 곡씩 불러 제꼈다.
분위기가 한껏 무르익자 사회자는 오늘의 주인공을 불렀다.
"어머니, 나와주세요! 오늘의 주인공을 모십니다.
나오셔서 노래 한 곡 불러 주시겠습니다.
자, 뜨거운 박수 부탁드립니다--!!"
그러나 떠밀려 앞으로 나가신 장모님은 마이크를 잡더니
모두의 기대를 저버리고 4절짜리 발라드 찬송가를 시작했다.
반주도 멈추고 장내는 찬물을 끼얹은듯 잠잠해 졌다.

마치 판소리 같은 노래가 다 끝나고 그렇게 이어진 행사도 막을 내렸는데,
나중에 출장 촬영한 비디오가 편집돼 나온 걸 보니 장모님이 마이크를
들자 뚝 자르고, 다 부르신 후에 마이크를 내려 놓는 것으로 연결되더라는 것이었다.

그 후에 얼마 안 가 휴거예정일이 다가왔고, 다미선교회들은 지붕까지
뚫어놓고 기다렸지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사기극이라며 신도들 일부가 들고 일어나자
그 처남은 종적을 감춰버렸다.


  

나중에 장모님은 암에 걸리셨다.
한동안 치료를 해 봤지만 효험이 없었고
돌아가실 날만 점점 다가왔다.
그런데 돌아가시기 전날, 잠을 못 이루고
불안해 하던 장모님은 혼자서 스쿠알렌 큰 병을
밤새도록 한 병 다 드셨다고 한다.
한 알, 한 알... 그게 몸에 좋다고 하니 집착을 보이신 것이었다.
그러나 결국 장모님은 세상을 떠나시고 말았다.
"그 한 벵을 다 드시고, 함 살아 보시겠다고... 쯧쯧,
노인네가 으찌나 안쓰럽던지..."
황차장님이 안타까워 하면서 한 이야기였다.

하나님의 계획과 역사는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법이지만
황차장님을 생각하면 그 사람이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건
참 어려워 보였다. 물론 지금까지도 그렇게 살고 있다.
그는 하나님이 대체 뭐냐며 크리스천들에 대한 부정적인 비난을 하곤 했다.
정말 법 없이도 살 사람이지만 그도 역시 잃어버린 양에 불과하다.
늘 안타까운 건 내가 크리스천으로 부끄러운 모습을 보이지는 않았는지,
또 그의 가족들이 실망스런 모습을 비치지는 않았는지...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을 잘못 헤아린 휴거에 대한 호언장담, 사위에게 사탄 운운한 일,
내세를 바라보며 들림받겠다던 사람이 보인 목숨에 대한 집착...
바로 나 자신의 모습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의 모습에 실망해 안 믿었다는 변명이 하나님에게 통할 리 없다 해도,
먼저 구원받은 자의 책임은 면할 수 없을 것 같아 두렵다.

나는 가끔 하는 얘기가 있다.
"난 예수쟁이들이 싫어."
물론 나를 포함하는 자조적인 말이다.
말이 많고, 실천이 없고, 안 믿는 사람보다 나을 것 없는 이들...
남의 일에 관심 많고, 정죄하고, 판단하고, 저주하고, 머리로만
너무 똑똑한 사람들...
은혜만 앞세워 자기 할 도리는 하지 않고 약속도 저버리는 예수쟁이들...

이제는 모든 잘못과 교만을 버리고...
모두가 좋아하는, 모두가 믿고 신뢰하는 그런 크리스천이 되고 싶다.
그렇게만 된다면 많은 이들이 나를 보고 하나님을 믿을 게 분명하다.
나를 신뢰한다면 나를 만드신 아버지도 신뢰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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