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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절망하되 하나님 앞에서 절망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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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과 건강] 절망하되 하나님 앞에서 절망하라 

- 이철 연세의료원장
 

최근에 유명 연예인들의 자살이 자주 보도되면서 큰 충격을 주고 있다. 연예인과 유명인의 자살은 모방 자살을 불러일으키는 ‘베르테르 효과’를 가져온다. 베르테르 효과는 괴테의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서 유래됐다. 이 소설이 출간된 19세기 말 유럽에서 극중 주인공 베르테르를 흉내 낸 모방 자살이 급증한 현상에서 따온 것이다. 유명 연예인 자살 후에 모방 자살이 늘어난 현상은 실제로 많은 연구에서 확인되었다. 인터넷 시대에는 연예인 개인의 지극히 사적인 생활조차도 많은 사람에게 쉽게 노출된다. 자신을 향해 쓰나미처럼 밀려오는 거칠고 잔인한 마녀사냥식의 비난과 저주를 누가 견뎌낼 수 있겠는가. 

이렇게 사회적 압박감 때문에,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기 위해, 또는 속죄를 위해 스스로 죽는 일들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 2009년 한국의 자살사망률은 10만명당 28명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 자살사망률의 3배이다. 더 심각한 것은 그 증가 추세다. 1990년부터 20년간 우리나라 자살 증가율은 172%로 2위 멕시코의 4배에 달한다. 정신과 전문의들은 우리나라의 우울증 발생연령이 낮아지면서 모든 연령대의 환자들이 증가하고 있다고 걱정하고 있다. 이유는 우울증의 극단적 선택인 자살시도는 실제로 죽음에 이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의인 욥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려고 애쓰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하루아침에 자식이 죽고, 재산도 사라지고, 몸은 병들고 부인마저 그를 저주하며 떠났다. “인생 살기가 지긋지긋하구나. 그러니 내 원통함을 터뜨리고 쓰라린 마음을 토로할 것이다. 내가 차라리 없었어야 했는데. 차라리 모태에서 무덤으로 바로 갔어야 했는데!”(욥 10:1, 18∼19) 흙바닥에 앉아 기왓장으로 자신의 몸을 긁어대며 토해내는 신음이며 철저한 절망이었다. 

왜 성경은 이런 고백을 우리에게 그대로 전해주는 것일까? 욥은 하나님께 하소연했다. “내가 하나님께 말씀드립니다. 어째서 주께서 나를 모태에서 끌어내셨습니까? 아무 눈에도 띄지 않게 죽어 버렸다면 좋았을 것입니다. 이제 내 인생도 얼마 없지 않습니까? 그러니 끝내 주십시오.”(욥 10:2, 20) 욥은 고통을 극복하려는 위대한 신앙이나 정신력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아파했다. 아파했지만 욥은 하나님 앞에서 아파했고 하나님께 항변했다. 그는 자기 인생을 끝내고 싶어 했다. 그러나 자신이 끝내지 않고 하나님께 끝내 달라고 요구했다. 이것이 무슨 뜻인가? 현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되 마지막 판결과 마지막 해결은 하나님께 맡긴 것이다. 

부조리한 현실로 인한 억울함을 이기지 못해 현실자체를 부정하고 파괴하는 폭력이 있다. 반대로 현실을 부정할 수 없으니 대신 나를 파괴하겠다는 자살이 있다. 폭력과 자살은 정반대인 것 같지만 결국 문제를 해결할 사람이 자신밖에 없다는 점은 동일하다. 

인생 모두가 지고 가는 죄짐이 있다. 우리가 얼마나 수치스러운 죄인인지는 십자가 위에서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 다 발가벗겨져 있다. 그 죄짐을 스스로 해결한 사람이 이 세상과 역사 가운데 누가 있는가?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예수께서 그 짐을 벗겨주셨고 대신 존귀의 옷을 입혀주셨다는 것이다. 절망의 순간에, 수치의 순간에 해야 할 일은 내가 그 짐을 지고 나를 파괴하려 할 것이 아니다.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 그 품안에서 절망하는 것이다. 그곳만이 안전하게 절망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이다. 

- 출처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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