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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새 술은 새 부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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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술은 새 부대에 

- 백소영 교수 (이화여대)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 ‘시티헌터’가 화제다. 새롭게 선보인 ‘개념액션’이 참신하다는 반응이다. 상대방에게 치명적인 해를 가하지 않고 제압하는 차원에서만 폭력을 행사하는 터에 붙여진 이름이란다. 도시를 누비며 악당을 잡는 시티헌터 ‘윤성’은 끔찍한 무기 대신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생활용품들, 그러니까 가방, 모자, 서류뭉치, 숟가락, 넥타이 등을 활용해 액션을 펼친다. 더구나 장신에 말쑥한 미남인 ‘윤성’이 긴 팔다리를 이용해 우아하고 빠른 동작으로 액션을 선보이다 보니 시청자들은 ‘액션을 빙자한 예술’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양아버지 ‘진표’는 이런 윤성이 영 불만이다. 억울한 죽음을 당한 친아버지의 복수를 하라고 생후 1개월 때 생모에게서 납치해 살인병기로 길러냈건만, ‘진표’의 계획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복수는 하겠지만 잘못한 사람들이 세상 앞에서 죄의 대가를 치르도록 만들겠단다. 하지만 다시 피를 부를 살인은 싫단다. “더는 나 같은 애 만들고 싶지 않다구요. 피가 피를 부르는 복수는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아요.” “나 이 일만 끝나면 평범하게 살고 싶은데, 누군가의 아버지, 누군가의 남편을 죽여 놓고 내가 어떻게 행복해질 수 있겠어요?” 그러고는 소신껏 법망 안에서 상대의 비리를 밝혀내고 국민의 도덕적 비난을 받게 하는 방식으로 복수해 나가려 한다. 그러나 지난 28년 동안 ‘너희에게도 똑같이 갚아주마’고 맹세했던 아버지는 다른 방식을 말하는 아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결국 ‘죽이는 것만이 복수’라 믿은 아버지는 윤성에게 “방해하면 너라도 가만두지 않겠다”며 전쟁을 선포해 버린다. 

신기하기도 하지? 난 ‘윤성’을 보면서 얼른 하나님을 ‘압바’(아빠)라 불러버린 예수를 떠올렸다. 유대 전통에서 너무나 높고 초월적인 존재라 감히 그 이름을 발음하지도 못했던 야훼 하나님을 감히 ‘아빠’라 불러버렸던 그 겁 없는 청년 말이다. 하나님은 인간 위에 군림하는 왕의 이미지보다는 오히려 ‘인간을 낳았고 자유혼을 불어넣었으며 기다리고 기대하시기에’ 부모의 이미지에 가깝다고, 새로운 해석을 내놓은 젊은이! 예수의 새로운 해석을 힘 있고 권위 있는 기성세대는 이해하지 못했다. 때문에 그들의 지식체계와 신앙언어 안에서 예수의 메시지를 담아내지 못했다. 하여 모두 입을 모아 ‘틀렸다’ ‘신성모독이다’ 그리 비난하였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고, 예수가 그리 말했던가? 막 발효되기 시작하는, 그 안에서 팔팔 뛰는 생명력으로 팽창하기 시작하는 새 술은 헌 부대가 담아낼 수 없다. 견디지 못한다. 자꾸 그 안에 담으려 제한하다가는 자루만 뻥 터질 일이다. 어느덧 기성세대가 되어버린 내가, 우리 세대가 젊은이들의 새로운 시선, 새로운 시도를 제한하고 막는 헌 자루는 아닐는지, 반성해 본다. 

새 술을 담아낼 새 부대를 준비해야 한다. 싱싱하고 젊고 희망차고 아주 새로운 시도들이 빵빵 활기차게 부풀어 나와도 든든하게 견디어줄 수 있는 새로운 울타리를 마련하기 위하여 ‘전통’이니 ‘권위’니 그런 옛 이름으로 젊음을 제한하기보다 마음을 열고 귀를 기울여 그들의 몸짓을, 언어를 이해하려 노력해야 한다. 그 ‘열림’을 상실할 때 자칫 우리는 예수를 골고다로 보내고, 소중한 제 아들을 제거상대로 선포하는 그런 ‘기성세대’가 될지 모를 일이기에…. 

- 출처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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